초계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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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초계분지.png
초계분지의 항공사진
파일:초계 분지.png초계분지의 위치

1. 개요
2. 지리
2.1. 한반도 최초로 발견된 운석 충돌구
3. 기타



1. 개요[편집]


초계분지(草溪盆地), 적중분지(赤中盆地) 또는 적중·초계분지(赤中·草溪盆地)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합천군 적중면초계면에 걸친 분지 지형이다. 천황산(688 m), 미타산(663 m) 및 대암산(591 m) 등의 봉우리에 둘러싸여 있으며, 특징적인 너비 7km의 그릇 모양 지형은 천체 충돌로 인해 형성된 운석 충돌구(크레이터)인 것으로 밝혀졌다.


2. 지리[편집]


분지 내부는 평야가 있어 농경에 유리하고 현재에도 대부분의 땅이 농지로 쓰인다. 강의 흐름으로 생긴 분지가 아니기 때문에 내부를 흐르는 큰 은 없다. 주변 산지에서 발원한 작은 물줄기가 모인 산내천이 북쪽 황강으로 빠져나가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그 덕분에 전근대 농업의 큰 문제였던 범람에서 비교적 자유로워 선사시대나 그 이후 가야 등 역사시대까지 지역 주민들이 농경지로 활용하던 땅이었다.

본래 신라의 초팔혜현(草八兮縣)이었던 곳으로, 경덕왕 때 팔계(八溪)로 개칭되었다가 고려 때인 940년에 초계로 개칭되어 1018년에 오늘날 합천군의 전신이 되는 합주의 속현인 초계현이 되었다. 1334년 초계군으로 승격하여 이후 조선시대 내내 초계군으로 존속하였다.[1] 이순신 장군이 원균의 칠천량해전 패전 이후 병사들을 모으며 전라우수영까지 퇴각할 당시 들렀단 "초계"가 바로 이 곳이다. 이후 1914년에 초계군이 합천군에 통합되었고 이때 초계분지 내에 있던 양동면, 택정면, 적동면, 중방면의 4개 면이 초계면[2]과 적중면[3]의 2개 면으로 통합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2.1. 한반도 최초로 발견된 운석 충돌구[편집]


국제 지구과학 저널 <곤드와나 리서치(Gondwana Research, 12.8., IF: 6.174)>에 발표된 초계분지의 형성원인에 관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임재수 연구팀의 연구결과

2000년 무렵까지 지질학계에서는 이 분지의 생성 원인을 양구군 해안분지(이른바 펀치볼)와 같이 차별침식으로 보았다. 즉, 기반암인 편마암 밑으로 화강암이 뚫고 들어온 뒤에, 화강암이 먼저 침식되면서 분지가 형성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초계분지는 기반암이 퇴적암이고 화강암이 뚫고 들어온 흔적이 없어서 운석 충돌이 원인일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2001년 지질학회 학술발표회에서는 부산대학교의 최광선 교수(지질조사 담당), 이상원 교수(중력탐사 담당)가 운석충돌 가설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최근까지도 생성 원인을 두고 차별침식, 운석충돌, 기반암 풍화 등의 설이 대립하였다.

그러다가 합천군 지역사회의 끈질긴 노력 끝에 2020년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연구센터 임재수 박사 연구팀에서 지하 142 m까지 시추하며 정밀 조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퇴적층 맨 밑바닥에서 운석충돌의 강한 충격으로 형성되는 석영의 평면변형 구조와 원뿔형 암석 구조를 발견하는데 성공하였고, 2020년 12월 14일에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보도자료, 연구논문, 기사)

결론적으로 이 초계분지는 신생대 제4기 플라이스토세 타란토절(Tarantian, 기원전 12만 4천 년 ~ 기원전 1만 1500 년) 한반도 남부에 지름 약 200 m에 달하는 운석이 충돌하여 생성된 거대 운석 충돌구인 것이 확실시되었다. 충돌 당시 예상 에너지는 약 1400 Mt(1.4Gt)으로 추정되며, 토리노 척도 8-9에 해당한다.

퇴적층에서 발견된 숯에 대한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 측정 결과, 운석 충돌구는 지금으로부터 5만여 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추정되었다. 이는 한반도의 중기 구석기 시대로, 웅기 굴포리, 청원 두루봉 동굴, 제천 점말 동굴 유적 등이 만들어졌을 때이다. 한반도에 이미 구석기 인류가 진출하여 살던 때이나 당시 운석 충돌로 인해 반경 50 ㎞ 이내는 초토화되고 반경 200 ㎞까지도 폭풍이 몰아쳤을 것으로 보이므로, 사실상 남한 전역이 크게 파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과적으로 한반도에 살던 원시 인류는 물론, 당시 생태계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로써 한국 지질학계는 한반도 최초이자 중국에 이어 동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운석 충돌구를 발견하는 쾌거를 얻게 되었다.[4] 초계분지는 또한 인구 밀집지역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충돌구이기도 하다. 실제로 초계분지에서 대구광역시 시내와는 직선거리로 50 km 이내의 거리이다. 지구상에서 발견된 대부분의 충돌구가 인구 밀집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상대적으로 외진 오지나 나대지에 위치하고 있는 사례가 많은 것을 감안하면 특이한 케이스이다.[5]


3. 기타[편집]


  • 유튜브에서 초계분지 관련 영상 댓글을 보면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 초계분지가 예로부터 별이 떨어진 자리라고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왔다고 하는 댓글을 간혹 볼 수 있다. 운석이 충돌한 시기는 최소 6.3만년 전 으로 추정되는데 이 시기는 한반도의 중기 구석기 시대 말로, 선사시대이다. 운석 충돌이 당시 한반도 전국 각지의 인류에게 아주 충격적인 사건이었겠지만 실제로 이 목격담이 수천 세대를 넘어 현대까지 전해졌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런 전설이 있다 해도 주변 산에 올라가면 둥글게 패여있는 모습을 쉽게 내려다볼 수 있으므로[6] 형태를 통해 유추한 이야기일 것이다. 카더라긴 하지만 사실이라면 조상님들의 통찰력이 대단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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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계군의 관할 구역은 대략적으로 현재의 합천군 초계면, 적중면, 청덕면, 덕곡면, 쌍책면, 율곡면에 해당한다. 합천군 대양면 백암리, 오삼리도 본래는 초계군 관할이었다.[2] 양동면과 택정면을 통합.[3] 적동면과 중방면을 통합하면서 한 글자씩 따와 명명.[4] 랴오닝 성(遼寧省) 슈옌(岫岩) 만족 자치현에 위치한 슈옌 운석구가 동아시아에서 발견된 첫 번째 운석 충돌구이다. 직경 1.8 km, 생성연대는 약 5만 년 전.[5] 이는 인구가 자연히 밀집되는 지역에 있던 충돌구들이 이미 지형 개발로 사라진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6] 둥글게 생긴 초계분지의 가장자리 봉우리에는 가야 시대의 토성 유적도 있다. 산에 올라가본 사람은 역사시대 이후로도 많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