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 협주곡 E단조(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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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클린 뒤 프레 연주,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

Elgar Cello Concerto in E Minor, Op. 85

영국의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첼로 협주곡이다. 드보르작, 랄로 등의 첼로 협주곡과 더불어 낭만주의 첼로 협주곡 분야의 걸작으로 꼽힌다.

1. 창작 배경
2. 재조명
3. 작품의 구성
4. 기타



1. 창작 배경[편집]


엘가가 첼로 협주곡의 작곡에 착수한것은 1919년 이었다. 이 당시 61세의 엘가는 편도선 절제 수술을 받고난후 요양중에 있던중이었다.

사실 엘가는 이곡을 발표하기 전에 1910년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했는데 이곡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한편으로 첼로 협주곡을 작곡해달라는 의뢰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발표하기 훨씬 이전부터 받고 있던 터였다. 첼리스트 카를 푸치가 그 의뢰자였는데 1900년에 엘가에게 첼로 협주곡을 의뢰했고 엘가는 의뢰를 받아들이는듯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협주곡 작곡은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카를 푸치는 1903년에 친구인 파울 그뤼머를 통해서 엘가에게 다시 1900년에 의뢰한것을 지키라고 요구했고 엘가에게 구두로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역시나 엘가는 다시 이런저런 이유로 협주곡 작곡을 미루었고 3년뒤엔 1906년 파울 그뤼머는 이번에는 직접 편지를 써서 엘가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촉구했다.

그런데 첼로협주곡의 첫 테마는 엘가가 수술후 의식을 차렸을때 그 순간 번뜩 생각나서 부인 캐롤라인 엘리스에게 서둘러 종이와 펜을 가져오게 해서 멜로디를 적어넣었다고 한다. 이후 엘가는 서섹스주 피틀워스에 있는 블링크웰이라는 별장으로 가서 요양을 하면서 작곡에 매진했다. 부인 캐롤라인이 제안한 실내악곡 3개[1]를 작곡했고 이 작품들은 1919년 봄에 초연되었다. 이 곡들을 초연한후 엘가는 비로소 첼로 협주곡에 착수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1919년 5월이었다.

실내악곡들을 초연하긴 했지만 대중의 반응은 영 신통치가 않았는데 한때 위풍당당 행진곡등으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던 엘가는 이시점에 들어서는 몇년간의 공백기 때문에 청중들에게서 점점 잊혀져 가고 있었던 탓으로 청중들을 놀라게할만한 걸작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이 엘가의 창작열을 불태우게 했다. 한편으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상황에서 오랜 전쟁으로 상처입은 영국 국민들을 음악으로 위로하겠다는 생각도 엘가에겐 있었던걸로 보인다.

엘가는 오랜 친구인 첼리스트 펠릭스 살몬드와 첼로 독주파트에 대해 상의해가면서 작품을 만들어나갔고 3개월만인 1919년 8월에 완성되었다. 엘가가 처음 생각했던것과는 달리 작품은 상당히 내재적이고 비통하며 절절한 내면을 묘사하는 작품이 되었는데 이는 엘가가 직접 보고 겪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분위기, 그리고 건강이 좋지 않아 수술까지 해야했던 엘가의 심리가 고스란히 반영되었다고 볼수있다.

이곡은 1919년 10월 27일, 엘가 본인이 직접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이곡의 완성에 도움을 준 펠릭스 살몬드의 협연으로 초연되었지만, 처참한 실패를 겪어야했다. 사실 이곡의 초연이 대실패한데는 몇가지 요인이 있었는데 우선은 당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황이 문제였다. 이 연주회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1919-20시즌의 개막 연주회였는데 특이하게 협주곡만 엘가가 직접 지휘해고 나머지 프로그램은 앨버트 코츠가 지휘했다. 코츠는 상당히 속된말로 말하면 빡세게 런던 심포니를 굴렸는데 이 개막 연주회의 리허설이 상당히 빡센편이었다. 그런데 코츠는 엘가의 협주곡 파트는 리허설을 그냥 대충대충 넘겨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다른 프로그램 리허설이 더 중요하단 이유로 엘가의 협주곡 파트 리허설을 소홀히 한편이었는데 이것이 초연의 참담한 실패에 한 요인이 되었다. 오죽하면 이런 상황을 지켜본 엘가의 부인 캐롤라인은 자신의 일기에 "저 잔인하며 비도덕적인 코츠... 그는 리허설을 계속 진행했다"라고 적었을 정도. 이런 문제는 당시의 음악 평론가들도 지적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다.

하지만 런던 심포니의 리허설 문제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대중이 바라던 엘가의 음악과는 달랐다는게 컸다. 이건 이곡과 1910년에 발표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교해보면 드러나는 부분인데 바이올린 협주곡의 경우 상당히 낭만적이고 달달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대중들은 엘가의 새로운 협주곡도 이런 분위기일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결과물은 상당히 처절하고 우울한 분위기의 작품이었다. 당시의 시대상황이 1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즈음이란걸 감안한다면 이런 처절한 분위기의 작품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차가울수밖에 없는건 당연했던걸지도 모른다. 여기에 런던 심포니의 리허설 부족까지 더해져서 참담한 초연의 실패라는 결과가 나온것이다. 결국 이런 실패 때문에 첼로 협주곡이 정식으로 출판된건 초연후 2년이나 지난 1921년이 되어서야 였다. 그나마 첼로 협주곡을 출판한 음악 출판사 사장은 "엘가의 협주곡은 더이상은 사양이다. 그의 합창곡은 다르지만"이란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첼로 협주곡의 참담한 실패후 5개월뒤, 엘가의 영원한 동반자였던 부인 캐롤라인이 세상을 떠났다. 첼로 협주곡의 실패에 이어 캐롤라인의 죽음까지 겹치면서 엘가는 창작 의욕이 꺾이고 공백기를 거쳐야 했다. 1923년이 되어서야 합창곡과 오르간곡을 발표해나갔고 1927년에는 오케스트라곡도 발표했다. 그러나 죽을때까지 협주곡은 당분간 나오지 않았으나 말년에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는데 병세가 악화되어 중단하면서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2. 재조명[편집]


그나마 이 곡이 재평가를 받기 시작한건 1928년으로, 엘가 본인이 직접 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영국의 여성 첼리스트 베아트리스 해리슨과 협연하여 녹음한 이곡의 음반이 발매되면서 부터였다. 이때는 상당히 신경을 쓴덕에 상당한 호연이 되었고 이곡의 명예를 회복하는데 일조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 이 곡이 재평가를 넘어 명곡의 반열에 오르게 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람은 자클린 뒤 프레다. 1965년 뒤프레는 존 바비롤리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음반은 이곡에 대한 평가를 바꿔버렸다. 뒤프레는 이후 1968년 남편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하는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음반도 내놓았는데 부부가 함께 연주한다는것 만으로도 상당한 화제가 되었다. 존 바비롤리와 녹음할 당시의 에피소드도 유명한데, 이때 뒤프레는 불과 19살의 나이에 명연주를 해냈다. 처음 1,2악장을 녹음한뒤 휴식중에 이곡의 연주가 훌륭하다는 소식에 스튜디오로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3,4악장을 녹음할때는 거의 실황연주 수준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 음반을 들은 러시아의 명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2]는 "뒤프레만큼 연주할 자신이 없다"라면서 1965년 이후로는 이곡을 거의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나마 연주한 기록은 1968년 카네기홀에서의 연주가 거의 유일하다고 할정도.

이후에는 요요마의 연주가 유명하며 첼리스트마다 한번씩은 도전해보는 작품이 되었을 정도로 명곡으로 인정받고 있다.


3. 작품의 구성[편집]


보통 협주곡은 3악장의 형식을 취하는데 특이하게 엘가는 4악장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그래서 협주곡이지만 교향곡의 형식같은 느낌이 나는 작품이다. 하지만 교향곡과는 달리 4개의 악장이 1,2악장과 3,4악장으로 나뉘어서 2개의 악장이 끊이지 않고 연주된다. 또한 주요 주제가 각 악장에서 등장하여 작품내의 통일성을 부여하고 있는것도 특징이다.

오케스트라 편성은 2관 편성으로 플룻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4, 트럼펫 2, 트럼본 3, 튜바 1, 팀파니, 현악 5부이다. 첼로의 특성상 오케스트라가 합주를 하면 첼로소리가 묻히는데 엘가는 이런 첼로의 특성을 고려해서 오케스트라의 투티를 첼로의 음량과 잘 조율해 작품을 만들었다.

  • 1악장 아다지오 - 모데라토
첼로의 장엄한 솔로로 곡이 시작된다. 오케스트라의 현악파트는 레시타티보로 연주되며 클라리넷과 바순이 비극적인 색채를 더한다. 첼로 솔로가 음울한 멜로디를 주도해나가다가 감정이 점점 고양되면서 오케스트라의 투티가 이를 폭발시킨다.[3]

  • 2악장 렌토 - 알레그로 몰토
교향곡으로 치면 스케르초에 해당되는 악장. 1악장에 이어서 쉬지않고 바로 이어진다. 첼로 솔로가 상당히 경쾌한 분위기를 주도하는데 이를 두고 어떤이들은 2악장의 분위기를 끝없는 슬픔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를 관철하려는 노력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 3악장 아다지오
2악장의 경쾌함에서 다시 차분한 분위기로 돌아온다. 1악장의 처절함과는 달리 내적으로 자아를 성찰하는 듯한 느낌의 악장으로 특히나 사람의 노래하는 목소리를 가장 닮았다는 첼로의 특징을 가장 잘 살려서 노래하는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 4악장 알레그로 - 모데라토 -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Allegro - Moderato - Allegro, ma non troppo)
역동적이고 강한 인상을 남기는 악장이다. 첼로는 격정적이면서 우수와 탄식에 젖도록 곡을 이끌어나간다. 이전 악장의 주제들이 중간중간 등장해 나가다가 마지막에 3악장 아다지오의 주제가 재현되고 이후 분위기가 짧게 고조되면서 곡이 마무리된다.


4. 기타[편집]


영화 어거스트 러쉬에 등장한다. 영화의 내용이 첼리스트인 여주인공과 락밴드의 기타리스트인 남주인공의 사랑이 스토리의 주된 내용인지라 여주인공이 연주하는 엘가 첼로협주곡 1악장의 서두가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가 부르는 something inside와 이어지는식으로 등장한다.

영화 타르에서도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며 등장하는데, 주인공이자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인 타르가 새로운 단원 첼리스트인 올가의 영향으로 이 곡을 선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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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이올린 소나타 E단조 Op,82, 현악 4중주 E단조 Op.83, 피아노 5중주 A단조 Op.84가 바로 이때 작곡된 작품들이다. 바이올린 소나타 E단조는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노다메와 치아키가 함께 연주한 곡이기도 하다.[2] 파블로 카잘스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했던 첼로계의 거장이다. 데뷔 초기 장한나의 스승이기도 했다.[3] 여기 나오는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진짜 멋있다. 선율은 모데라토 시작에서 비올라가 연주한 부분을 약간 변형한 형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