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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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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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2017년 3월 28일
구독자 수
13.2만명[A]
총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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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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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비판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역사 유튜버.

깊이 있으면서도 재미있게 역사와 철학을 분석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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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 설명문



2. 상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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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역사를 깊이 있게 분석하는 채널이다.때문에 역덕들이 많이 본다. 삼국지, 한국사, 역사 고정관념, 철학 등을 다룬다. 대체적으로 영상들이 긴 편이다. 모든 영상의 썸네일은 모두 검은 바탕에 흰 글자로 제목을 나열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실제 역사 문헌에 자신의 추론을 덧입혀 정사에서 벗어난 결론을 만들기도 한다. 그의 학력과 전공 등의 이력은 하나도 공개되지 않았으며, 사료나 정사에 관하여는 명확히 제시하는 한편 주장이나 설들에 관해서는 출처를 밝히지 않고 있다. 본인도 현재로서는 증명할 방법이 없다며 그냥 이런 설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사료를 곡필하는 경향은 없고 기존에 존재하던 학설이나 사료에서 없는 부분을 자신의 창의력으로 풀어 썰을 푸는 방식이다. 애초에 그가 삼국시대에 대해 만든 영상들을 보면 대부분 기존의 학계에서도 존재하던 학설이다. 예를 들면 비류 시조설이라든지 백제의 미심쩍은 ‘둘째 아들’에 대한 계보, 고구려 태조왕에 대한 미스테리 ‘고천원’에 관한 일본서기의 창세신화 [1] 등등은 이미 주류학계에서도 제기된 학설이며 몇몇은 정론[2]으로 굳어가고 있다. 애초에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고대사에 대해서는 주류학계에서도 추론과 가설들을 만들어 이를 토대로 후학들이 좀 더 정교하게 제련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사료와 정 반대되거나 고고학적 성과에 반하는 학설을 뇌피셜로 푼다면 사이비 학자이겠지만, 선술 했듯이 청화수의 경우에는 현전하는 역사 기록을 토대로 자신의 추론을 덧붙이는 편이다.

주지해야 할 점은 우리가 지금에야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한국 고대사의 상당수도 처음에는 누군가의 추론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구와 학설은 수세대 간의 축적과 헌신의 결실이며, 그 시발은 사료와 고고학적 발굴의 연구를 토대로 한 합리적 상상과 가설이었다는 점이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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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멘트



3. 비판[편집]


상기 문단에서는 다분히 긍정적으로 적어놨지만,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믿기 싫은 것은 외면하는 전형적인 OTT형 유튜버'이다. 근거가 없는 비주류 가설을 다수 다루지만, 자신이 주장하는 가설에 부합하는 근거/사료는 그나마 제한적으로라도 제시하는 반면, 자신의 가설을 부정하거나 반박하는 명확한 근거/사료는 모르는 척하거나 외면한다. 대표적인 사례를 몇가지만 지적하자면 다음과 같다.

박창화의 화랑세기 필사본 진본 설

→ 화랑세기가 다루는 시대와 거의 같은 시대에 새겨진 울주 천전리 각석에 남아있는 수많은 화랑들의 이름 가운데 화랑세기에 등장해 교차검증된 예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외면[3]


촉나라 유선 바보 행세 설

→ 문헌에 다수 남아있는 유선의 군주로서의 자질 부족과 수많은 실책은 못본척 함[4]


안시성 전투의 주역 고정의 설

→ 고정의가 안시성 전투에서 어떤 활약을 했는지에 대해 단 한 줄의 기록도 존재하지 않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세민과 중국측 사료가 안시성 전투의 패전을 덮기위해 의도적으로 안시성주를 띄우고 고정의에 대한 기록은 말살했다는 식으로 근거없이 주장[5]


그의 주장들은 대개 이런 식이다. 물론 상기 문단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비주류이던 설이 후일 고고학적 발굴과 연구를 통해 정설로 받아들여진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청화수의 주장처럼 아마도 그럴 것이다 식의 뇌피셜이 정설이 된 적은 없다. 단순히 비주류 가설을 주장한다는 이유만으로 쓸데없는 고평가를 받는 유튜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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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A B 2022년 2월 8일 기준.[1] 아예 이런 내용들은 파편적으로나마 일본사학자들도 주장하던 내용이다.[2] 예를 들면 노태돈의 태조왕 왕계 교체설은 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진다.[3] 이런 종류의 반박도 있다는 식의 지나가는 언급조차 전혀 안한다. 울주 천전리 각석은 화랑세기 필사본 발견 이후에 발굴된 것이며, 삼국사기/삼국유사에 등장하는 화랑도 다수 등장한다. 문제는 각석에는 등장하나 삼국사기/삼국유사에 등장하지 않는 화랑들 중에서 화랑세기 필사본에 등장하는 인물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화랑세기 진본설의 가장 커다란 약점이므로 청화수가 의도적으로 외면했다고 봐야 할 듯하다. [4] 유선은 중국사에서 대표적인 암군인데, 그 암군의 행동에 깊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청화수의 일방적 주장은 대략 난감하다.[5] 중국측 사료가 자신들의 패전을 가리기위해 의도적으로 전체 전투를 누락하거나 무성의하게 기록했다면 나름 이해 할 수 있지만, 일부러 고정의 활약만을 핀셋 배제 할 이유가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