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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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법정동
청운동
淸雲洞 | Cheongun-dong




광역자치단체
서울특별시
기초자치단체
종로구
행정표준코드
1111010100
관할 행정동
청운효자동
면적
0.80㎢
1. 개요
2. 지명 유래
3. 역사
4. 지리 및 환경
5. 상권
6. 주요 시설
6.1. 주거
6.2. 학군
7. 교통
7.1. 도로
7.2. 대중교통
7.3. 여담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쪽에 위치한 법정동. 동쪽으로는 삼청동, 서쪽으로는 서대문구 홍제동이 있으나 각각 북악산인왕산으로 가로막혀있어서 남쪽이나 북쪽으로 돌아가야 하며, 남쪽으로는 신교동, 북쪽으로는 부암동에 접해 있다. 행정동으로는 청운효자동에 속해 있으며, 동주민센터는 청운효자동주민센터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 92 (궁정동)에 위치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법정동/ 중에서 법정동/리코드가 가장 앞선다. 한편 가장 마지막으로 오는 법정동/리코드는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강현면 물갑리이며[1], 법정동만 생각했을 경우에는 삼척시 근산동이 가장 마지막에 온다.[2]


2. 지명 유래[편집]


청운초등학교 뒤쪽에 위치해있었던 '인왕산의 맑은 바람'이라는 뜻을 가진 계곡인 '청풍계(淸風溪)[3]'와 북쪽 부암동 경계에 위치한 '흰 구름이 떠있는 계곡'이라는 뜻을 가진 계곡인 '백동(白雲洞)'에서 유래하였다.


3. 역사[편집]


조선 초기 중추부 이의념이 거주한 뒤로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면서 백운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성부 북서 순화방의 사재감계(사재감상패계)로 신교 · 백운동 · 박정동 · 청풍계 지역이 해당되었다.[4] 1914년 한성부 북서에서 경성부 북부로 바뀌고,[5] 개편된 백운동·청풍동·박정동·신교[6]의 각 일부를 합쳐 청운동이라고 제정[7]했다. 같은 해 북부출장소 관할에 속했으나,[8] 이듬해 6월 1일 북부출장소의 폐지로 경성부 직할이 되었다. 1936년 4월 1일 경성부 관할구역이 확장되고[9] 동 명칭이 개정될 때 경성부 청운으로 바뀌었다.[10] 1943년 6월 10일 종로구가 신설[11]되면서 경성부 종로구 청운정이 되었다. 광복 후 1946년 10월 1일 청운동이 되어[12] 오늘날에 이른다. #


4. 지리 및 환경[편집]


동쪽의 북악산, 서쪽의 인왕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중심으로 자하문로가 지나고 있다. 공동주택 보다는 빌라나 대형 단독주택이 많다.


5. 상권[편집]


주택이 많은 조용한 동네라 초입에 위치한 몇몇 음식점을 제외하면 상권이 많이 미약하다. 청운동 아래에 있는 서촌마을의 통인시장 등을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6. 주요 시설[편집]




6.1. 주거[편집]


건설사
단지명
입주
세대수
벽산
청운벽산빌리지
1988.11.
126세대
현대건설
청운현대
2000.10.
60세대


6.2. 학군[편집]




7. 교통[편집]



7.1. 도로[편집]


부암동 방면
강변북로

세검정로

자하문로
사직동 방면
사직로

기타 관내 도로
자하문로28길, 자하문로 30길, 자하문로 33길, 자하문로 35길, 자하문로 36길
자하문터널이 지난다.
부암동 방면
강변북로

자하문로

창의문로
사직동 방면
사직로

기타 관내 도로
창의문로1길

부암동 방면
강변북로

북악산로

인왕산로
사직동 방면
사직로

기타 관내 도로
-


7.2. 대중교통[편집]


버스
[[서울 버스 1020|

1020
]] [[서울 버스 7212|

7212
]] [[서울 버스 7022|

7022
]] [[서울 버스 1711|

1711
]] [[서울 버스 7016|

7016
]] [[서울 버스 7018|

7018
]]

경기상고(01101, 01103)
청운동 경기상업고등학교 정문 앞에 위치한 정류장.
신교동 방면
지선

자하문터널입구.석파정 방면
지선

[1] 참고로 2023년 6월 10일까지는 각각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가 기록했다.[2] 참고로 2023년 6월 10일까지는 각각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영남동이 기록했다.[3] 병자호란 관련 인물인 김상용의 옛 집 자리이기도 하며,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고 새겨진 암벽이 지금의 청운동 53-51번지 위치에 남아 있다.[4] 태조 5년(1396) 4월 1일 / 도성삼군문분계총록, 영조 27년(1751) / 육전조례, 고종 4년(1867) / 칙령 제98호, 1895년 윤5월 1일[5] 조선총독부령 제7호, 1910년 10월 1일[6] 경기도령 제3호, 1911년 4월 1일[7] 경기도고시 제7호, 1914년 4월 1일[8] 경성부조례 제8호, 1914년 9월 27일[9] 조선총독부령 제8호[10] 경기도고시 제32호[11] 조선총독부령 제163호에 의한 구제도(區制度) 실시[12] 서울시헌장, 미군정법령 제106호


경복고교(01104, 01109)
청운동 경복고등학교 정문 앞에 위치한 정류장.
신교동 방면
지선

청운중학교 방면
지선



청운중학교(01105, 01108)
청운동 청운중학교 정문 앞에 위치한 정류장.
경복고교 방면
지선

청운중학교 방면
지선



자하문고개.윤동주문학관(01106, 01107)
청운동 창의문과 윤동주문학관 앞에 위치한 정류장.
청운중학교 방면
지선

부암동주민센터.무계원 방면
지선




7.3. 여담[편집]


정주영 현대 창업주가 생전에 살았던 자택이 이 곳에 있다. 청운초등학교 옆 골목으로 쭉 올라가면 언덕배기 끝에 집 한 채가 나오는데 그 집이 정주영의 자택이다. 정주영은 200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집에서 살았고 타계 이후 빈소도 이 집에 차려졌다.

정몽구, 정몽근, 정몽헌, 정몽준, 정몽윤정주영의 아들들도 청운동 인근에 살았는데 매일 아침마다 정주영의 청운동 자택에 와서 아침을 먹고 계동 현대 사옥까지 걸어서 출근했다고 전해진다. 현재도 집은 그대로 있지만 사람이 살지는 않는다.

이 집의 소유권은 2001년 정주영이 타계한 후 실질적 장남인 정몽구 회장에게 상속됐고 정주영의 손자이자 정몽구의 장남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현재 갖고 있다. 현재는 매년 정주영의 기일과 정주영의 부인인 변중석 여사의 기일 때 이 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는 이 집이 아니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의 자택이 있는 한남동에서 제사를 지낸 적이 있다.


8.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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