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제 파시즘

덤프버전 :

이미지:icon-roman-fasces-vector-icon-roman-fasces-170587569.png
파시즘

[ 펼치기 · 접기 ]
이념
파시즘 · 군국주의 · 국가주의 · 국수주의 · 전체주의 · 권위주의 · 대중주의 · 민족주의 · 반공주의 · 지도자 원리 · 사회진화론 · 반자유주의 · 반자본주의 · 반민주주의 · 영웅주의 · 우생학 · 협동조합주의
분파
원류 파시즘 · 이탈리아 파시즘 · 나치즘(네오 나치즘포스트 나치즘) · 국민생디칼리슴 · 팔랑헤주의(프랑코주의파일:whattheydo.png) · 영국 파시즘 · 렉시즘 · 군단주의오스트리아 파시즘 · 국민급진주의 · 교권 파시즘 · 메탁사스주의파일:whattheydo.png · 천황제 파시즘파일:whattheydo.png · 프랑스 파시즘 · 좌익 파시즘파일:whattheydo.png(슈트라서주의 · 민족 볼셰비즘) · 네오 파시즘포스트 파시즘 · 유라시아주의 · 일민주의파일:whattheydo.png · 대안 우파파일:whattheydo.png
정당/조직
국가 파시스트당 ·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 팔랑헤(통합 팔랑헤파일:whattheydo.png) · 신 팔랑헤 · 우스타샤 · 전위조국당 · 화살십자당 · 영국 파시스트당 · 영국 파시스트 연합 ·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단 · 렉스당 · 국가사회주의 오스트리아 노동자당 · 조국전선 · 국민연합(노르웨이) · 라푸아 운동 · 슬로바키아 인민당 · 독일 사회주의 국가당 · 독일 민족민주당 · 공화 파시스트당 · 민주 파시스트당 · 산마리노 파시스트당 · 네덜란드 국가사회주의 운동 · 국민대중행동파일:whattheydo.png · 국민조합주의자 · 국민정당 우리의 슬로바키아 · 민족 볼셰비키당 · 유고슬라비아 국민운동 · 육군전우협회 · 프랑키스트 운동 · 프랑스 인민당 · 불의 십자단파일:whattheydo.png · 황금새벽당 · 회색 늑대들 · 국민급진기지 · 캐나다 파시스트 연합 · 국민연합당(캐나다) · 아메리카 은색 군단 · 대정익찬회파일:whattheydo.png · 동방회파일:whattheydo.png · 사쿠라회파일:whattheydo.png · 페르콩쿠르스츠 · 브라질 통합주의 행동 · 칠레 국가사회주의 운동 · 오제바브란트바흐 · 러시아 파시스트당 · 소련 자유민주당파일:whattheydo.png(민족 볼셰비키당CHEGA! · 유라시아당 · 러시아 자유민주당파일:whattheydo.png) ·그리스 민족사회당
국제 조직
추축국 · 1934년 몽트뢰 파시스트 회의
군사 조직
추축군 · 슈츠슈타펠(독일) · 돌격대 · 히틀러유겐트 · 아인자츠그루펜 · 검은 셔츠단 · 슈츠슈타펠(오스트리아) · 보국단 · 대천사 미카엘 군단 · 우스타샤 민병대 · 아메리카 은색 군단 · 마카필리파일:whattheydo.png · 발리 콤페타르파일:whattheydo.png · 반볼셰비키의 프랑스 지원군단 · 강철늑대 · 황도파파일:whattheydo.png · 남의사파일:whattheydo.png · 아조프 연대파일:whattheydo.png · 바그너 그룹
인물
아돌프 히틀러 · 에리히 루덴도르프 · 베니토 무솔리니 · 프란시스코 프랑코파일:whattheydo.png · 안테 파벨리치 · 오스왈드 모슬리 · 코르넬리우 젤레아 코드레아누 ·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 · 아우구스티나스 볼데마라스 · 비드쿤 크비슬링 · 요제프 티소 · 살러시 페렌츠 · 엥겔베르트 돌푸스 · 쿠르트 슈슈니크 · 안톤 무세르트 · 레옹 드그렐 · 파울 요제프 괴벨스 · 그레고어 슈트라서 · 오토 슈트라서 · 에른스트 룀 · 카를 슈미트 · 율리우스 슈트라이허 · 율리우스 에볼라 · 알프레트 로젠베르크 · 기타 잇키파일:whattheydo.png · 오카와 슈메이파일:whattheydo.png · 안호상파일:whattheydo.png · 이범석파일:whattheydo.png · 장제스파일:whattheydo.png · 호리아 시마 · 줄리아노 고지 · 마르셀 뷔카르 · 자크 도리오 · 프랑수아 드 라 로크파일:whattheydo.png · 콘스탄틴 로자예프스키 · 플리누 사우가두 · 이오인 오더피 · 조르주 소렐파일:whattheydo.png · 조반니 젠틸레 · 알렉산드르 두긴 · 윌리엄 피어스 · 윌리엄 더들리 펠리 · 찰스 코글린
국가
나치 독일 · 파시스트 이탈리아* · 스페인국파일:whattheydo.png · 크로아티아 독립국 · 헝가리 왕국 · 루마니아 왕국 · 노르웨이 국민 정부 · 오스트리아 연방국 ·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 산마리노 공화국 · 일본 제국파일:whattheydo.png · 국민군단연합 불가리아
* 1922~1943의 이탈리아 왕국과 1943~1945의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파일:whattheydo.png 파시즘 여부 논란 있음




1. 개요
2. 명칭
3. 천황제 파시즘이란?
4. 논쟁
4.1. 일본 제국은 대중의 지지에 기반한 천황제 파시즘이다
4.2. 일본 제국은 파시즘이 아닌 군사독재이다
4.3. 일본 제국은 천황제 파시즘이 아니고 테크노파시즘이다
5. 관련 정파, 조직
6. 관련 이념
7. 관련 인물
8. 참고 문헌
9.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천황제 파시즘(天皇制ファシズム / Emperor-system fascism)는 쇼와 연간,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일본 제국의 정치 체제에 관한 이론 및 논쟁이다.

흔히 동아시아권에선 일본 제국을 의심할 바 없는 파시즘 국가로 생각하며[1], 일본 학계에서는 이른바 <위로부터의 파시즘>, <천황제 파시즘>이라고 명명하여 일본 특유의 파시즘 현상을 정의한 데에 반하여, 20세기 서구학계에선 일본이 파시즘 국가였다는 것에 회의적인 시선이 있다.


2. 명칭[편집]


천황제 파시즘은 서구권에선 쇼와 국가주의(Shōwa Statism 또는 Shōwa nationalism)라고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 용어는 천황제 파시즘을 파시즘이라고 보지 않는 입장 쪽에서 자주 사용되며, 천황제 파시즘의 존재를 인정하더라도 더 폭넓은 의미의 전전 쇼와 시대의 다양한 초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사례들을 지칭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서구권,일본과 달리 한국에서 '쇼와 국가주의'라는 용어는 그렇게 자주 사용되지는 않는다. 서구권,일본과 달리 한국에서 '천황제 파시즘'이라는 용어가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쇼와 국가주의'라는 용어는 그렇게 자주 사용되지는 않지만 일부 미디어에서 사용된 사례가 있기는 하다.[2]

당시 일본 제국내지인(=일본 본토인) 90프로 이상이 야마토 민족이였고[3], 조선인까지 포함해도 인종적, 혈통적, 생김새 등이 동일했다. 따라서 당대 일본에서 '민족주의', '국가주의', '국민주의', '내셔널리즘' 등등은 거의 같은 의미로 쓰였으며, 이에 따라 전전 쇼와 시대에서 기타 잇키, 황도파, 국민동맹, 일본 군부 세력 등등 급진적이고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초국가주의(超国家主義)하고 지칭하며, nationalism이라는 의미에서 사용했다. 따라서 전전 쇼와시대의 초국가주의는 일반적으로 천황제 파시즘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일본 파시즘(日本ファシズム / Japanese fascism)이라고도 한다. 다만 천황제 파시즘과 일본 파시즘은 거의 동의어로 쓰이긴 해도, 천황제 파시즘이나 쇼와 국가주의라는 용어는 전전과 전시 쇼와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고, 전후 일본을 포함해 모든 시대의 일본 파시즘을 지칭하는 용어는 아니다.[4]

3. 천황제 파시즘이란?[편집]


일본 파시즘을 말할 때, 일본 사회 전반에서 군대의 가치가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더 커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앤터니 제임스 조스(Anthony James Joes)


최초로 일본을 파시즘 국가로 분석한 이들은 1930년대 마르크스주의 학자들과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국 선전원들이었다.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은 1935년 8월 2일 제7차 코민테른 대회에서 게오르기 디미트로프가 발표한 보고서에 응답하여 세계 각국의 파시즘 운동 및 이념의 전파 상황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소련의 일본학자 오스카르 타르하노프[5]와 예브게니 욜크[6]는 일본 파시즘을 "일본의 사회구조가 일본군의 봉건 제국주의와 잘 융화된 것"으로 해석하였다. 일본 파시즘론에 따르면 일본 파시즘이 뿌리내리게 된 중요 요인은 다음과 같다.

  • 1. 1930~1940년대 일본 사회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군대의 파급력.

  • 2. 미숙한 일본 민주의회구조의 취약성.

  • 3. 다른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과 확연한 대조를 보이는 일본 근대화의 속도와 성공.

  • 4. 일본의 이념적 영향력.

마루야마 마사오에 따르면, 일본 파시즘은 기타 잇키로부터 비롯되었으며[7] 왕도, 유교사상, 니치렌의 종교철학, 무사도 정신과 서양 파시즘을 결합하여 군국주의, 근대화, 범아시아주의를 근간으로 한다는 것이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 파시즘은 1919~1931년에 걸친 시민들 사이의 우익운동이 첫 단계이며 만주사변이 군대가 파시즘의 원동력이 되게 한 두번째 단계, 중일전쟁에서 태평양 전쟁 시기가 일본 파시즘을 단순한 운동에서 국가구조로 전환시킨 절정기로 보았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또한 일본 파시즘의 주요 특징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 1. 가족 제도: 국가 체계는 천황을 종가로 하는 가족(家, いえ)의 연장선.

  • 2. 토지 균분론: 도시 산업 생산력 확장을 막기 위해 농촌 자치권 실시.

  • 3. 범아시아주의: 유럽 식민지로부터 아시아인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이상론.


4. 논쟁[편집]


일본 학파와 영미 학파 간의 의견 차이가 있지만 지역 간의 차이라기 보단 성향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서양 학계에서도 진보 성향 학자들은 일본 제국을 파시즘 국가로 보는 경우가 많으며, 동양에서도 보수 성향 학자들은 일본을 파시즘 국가가 아닌 단순 제국주의 국가로 보기도 한다.[8]


4.1. 일본 제국은 대중의 지지에 기반한 천황제 파시즘이다[편집]


일본 제국이 파시즘이라고 보는 쪽은 일본 학계와 더불어 허버트 빅스, 베링턴 무어 같은 서양 학자들이다. 일본 학자 마루야마 마사오와 야마구치 야스시는 파시즘 체제를 위로부터의 파시즘과 아래로부터의 파시즘으로 구분했다. 통상적으로는 아래로부터의 파시즘이지만 일본에서는 파시즘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려면 기존 보수주의 권력과 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동맹이론>의 결정적이고 극단적인 예시였다는 것이다.

천황제 파시즘 부정론에 대해서 일본 학계는 이렇게 설명한다. 일본의 권력 구조가 군부, 의회, 혁신 관료로 분산되었지만, 거국일치 내각이 1932년에 이미 형성되었으나 천황은 실질적 지도자가 아니었음에도 대중들에게 절대적 카리스마를 행사했다. 또한 쇼와연구회의 핵심 멤버인 류 신타로, 미키 기요시, 료야마 마사미치 등은 정책 고안에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왕국에서 깊이 영향을 받았으며 오카와 슈메이, 기타 잇키, 니시다 미쓰기, 다치바나 고자부로 등의 폭력을 옹호하는 민간 우익이 등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 학계 역시 아래로부터의 파시즘이 2.26 사건을 계기로 소멸[9]되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5.15 사건진주만 공습 등에 대한 일본 대중의 반응 등을 예시로 들어 일본 대중이 파시즘에 동조하였다고 주장한다. 또한 1935~1936년 국체명징운동으로 일본 정치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완전히 일소되었을 때 대중적 운동단체 7곳과 언론이 개입한 것 역시 일본 대중이 파시즘에 동조하였다는 증거로 파악했다.

사상적인 측면에서 일본 파시즘은 파시즘의 본질을 충족했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 제국의 자기 우월적이고 스스로를 도덕적이라 믿는, 나치의 레벤스라움과 흡사한 '광역권'을 바탕으로 한 팽창적 민족주의는 구조적으론 몰라도 사상적으론 파시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학자론 재니스 미무라, 존 다우어 등이 있다. 특히 브라이어 마이어스는 존 다우어의 논의를 확장하여 북한 체제를 일본 제국의 체제로 보는 시각을 제시하면서 왜 북한은 극우의 나라인가(원제: The Cleanest Race)를 출판하였다.


4.2. 일본 제국은 파시즘이 아닌 군사독재이다[편집]


많은 서구 학자들은 일본 제국이 파시즘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10] 이들은 파시즘과 같은 20세기형 전체주의 체제의 성립은 단순히 소수의 악당들이 다수를 억압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정치과정에서 동원되는 민주정치가 어느 정도 발달한 국가에서 가능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서구 학계는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제국이 파시즘이 아니었다고 본다. 그 당시 일본 제국의 정치는 지배자층이 계급제도를 민주주의로 이름만 바꿨다고 해야 될 정도로 민주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서구 학계는 세계 대공황만주사변으로 일본의 민주주의는 붕괴되기 시작했으며 기타 잇키를 비롯한 일부 서구식 파시스트들이 등장했으나 쇼와 덴노 자기 자신이 2.26 사건을 진압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소멸되었으며 이후 권력을 잡은 고노에 후미마로 등은 대중 정치가가 아니라 정당 정치를 반대하고 귀족 계급의 이익을 보장하는 보수 권위주의자였다고 보고 있다. 설령 고노에가 파시스트라 해도 1년 안 가 사임했으니 무의미하다. 또한 이후 권력을 잡은 도조 히데키 같은 일본의 권력자들은 동방회[11] 지도자 나가노 세이고 등을 가택 연금시키는 등 파시즘 운동을 탄압했으며 이들의 싱크탱크를 맡았던 쇼와연구회에서 내놓은 조언들 중에서 사회 연대주의, 반자본주의 요소는 철저히 묵살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로버트 팩스턴은 일본은 파시즘 국가가 아니라 파시즘의 도구를 일부 취사선택한 국가로 보고 있으며 일본 제국을 파시즘으로 보는 것은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타도된 결과로 파시즘 국가가 설립된 것이나 다름없는 주장이라고 본다. 또한 일본 제국은 당시 일본 제국 지도층의 생각과는 별개로 독일이나 이탈리아와는 달리 볼셰비즘 혁명의 위협에 결정적으로 노출되지 않았으며 지도자들과 경쟁을 벌이는 공식 정당이나 자생적 대중운동이 끝내 궤도권에 들어서지 못했으므로, 일본은 파시즘 국가가 아니며 어디까지나 대중운동이 적당히 가미된 군부 독재 및 단순 제국주의 국가라고 결론 내린다.


4.3. 일본 제국은 천황제 파시즘이 아니고 테크노파시즘이다[편집]


제니스 미무라, 아론 무어 등 서양 과학기술사학계에서 제기한 담론. 기시 노부스케를 비롯한 혁신관료 집단에 주목해서 일본 제국은 과학기술적 합리성을 이념화하고 소련식 계획경제로 군수생산에 최적화된 사회재조직화를 추구한 "테크노파시즘" 사회였으며, 이런 측면이 일본 혁신관료 뿐 아니라 독일의 보수혁명파, 이탈리아 미래파에게서도 나타난다며 과학기술의 이념화가 파시즘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주장한다.

기존 서양 사학계에서 나치로 대표되는 "서양 파시즘"의 양태를 기준으로 삼아 일본 제국은 파시즘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에 반하여, "일본 파시즘"의 양태야말로 파시즘의 일반적 현상이었다고 파시즘의 정의 근간 자체를 전복적으로 재해석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하게 연구되는 것이 혁신관료들의 테스트베드 국가였던 만주국.[12]

문제는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기시 노부스케를 선두로 한 혁신관료들이 만주국을 운영하면서 벤치마크했던 스탈린 시대의 소련이야말로 파시즘의 프로토타입이고 파시즘 국가들은 스탈린을 벤치마킹한 것이 되어 버린다. 전통적으로 "일본 파시스트"라고 불린 기타, 오카와, 나카노 같은 사상가들의 위치가 붕 떠버린다는 것도 약점.


5. 관련 정파, 조직[편집]


극우 파시즘뿐 아니라 사회대중당 등 넓은 의미의 파시즘 세력들도 포함된다.

전후에 전범들 중 현실 정치에 복귀한 이들 다수는 파시즘을 버렸으나[13] 이후에도 파시즘 운동을 계승한 정치 세력들도 소수 있긴 있었다.


6. 관련 이념[편집]




7. 관련 인물[편집]




8. 참고 문헌[편집]


  • 파시즘, 로버트 팩스턴, 교양인.
  • 기타 잇키 평전, 마쓰모토 켄이치, 교양인.
  • 파시즘, 케빈 패스모어, 교유서가.
  • 파시즘, 장문석, 책세상.
  • 장제스와 국민당 엘리티스트, 정두음, 도서출판 선인.
  • 왜 북한은 극우의 나라인가?, B.R 마이어스, 시그마북스.
  • 비교사의 시각에서 본 한국의 파시즘과 권위주의, 채오병, 경제와사회 111집, 비판사회학회.
  • 열광의 정치: 일본의 천황제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 박한규, 대한정치화회보 14집 3호,


9.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8 20:34:54에 나무위키 천황제 파시즘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물론 일본 제국이 파시즘 국가였던 기간에 대한 이견은 있다. 특히 군부가 폭주한 1930년대 이후로 일본이 군국주의 파시즘 국가로 들아섰다는 인식이 매우 짙지만, 역설적으로 통제파보다 더 서구적 파시즘 색채를 띤 조직은 되려 이들에게 밀린 황도파였다. 물론 통제파도 파시즘 요소는 있었다.[2] '쇼와 국가주의'라는 용례가 사용된 한국어 출처: 교양 서적 자료, 조선일보, 한국어 위키백과[3] 현재도 일본에서 야마토 민족의 비율은 90프가 넘는다.[4] 가령 국가사회주의 일본 노동자당의 경우 '일본 파시즘'은 맞지만 ''천황제 파시즘'이나 '쇼와 국가주의'라고 자주 불리지는 않는다.[5] Оскар Сергеевич Тарханов(1901-1938). 본명은 세르게이 페트로비치 라주모프(Сергей Петрович Разумов). 대숙청 당시 처형됨.[6] Евгений Сигизмундович Иолк(1900-1937). 타르하노프와 마찬가지로 대숙청 당시 처형됨.[7] 마츠모토 켄이치와 같이 기타 사상의 인민주의적 측면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으나, 이런 견해는 일본 학계에서는 굉장히 오랫동안 소수설에 머물렀다.[8] 하지만 일본 제국주의 자체를 본다면, 일본 제국주의 연구의 권위자인 W.G. 비즐리 등이 지적한 사실이지만 일본 제국주의는 유럽 제국주의와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간 것이 명백하다.[9] 그러나 4년 뒤 고노에 후미마로가 주도하는 신체제운동의 주도로 대정익찬회가 설립되면서 일본이 잠시 파시즘 국가였던 적은 있었지만 이마저도 1년만에 고노에가 사임하고 통제파 도조 히데키가 집권하면서 일본 파시즘은 실질적으로 끝장났다.[10] 다만 위에서 언급하듯, 서구 학자들 중에서 일본 제국이 파시즘 국가였다고 보는 이들도 없는 것은 아니다.[11] 일본에 있었던 나치즘 단체이다.[12] 또한 1930년대 만주국과 2차대전 패전 이후 경제재건을 주도한 혁신관료들의 경제개발 노선을 그대로 베껴왔던 196~7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도 파시즘으로 해석할 수 있다.[13] 기시 노부스케 등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