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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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태권도 남자 +80kg 우승자
파일:오륜기(여백X).sv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문대성
(2004)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차동민
(2008)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카를로 몰페타
(2012)


차동민
車東旻 | Cha Dongmin


파일:차동민.jpg

출생
1986년 8월 24일 (37세)
전라남도 장흥군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학력
부림초등학교 (졸업)
동성중학교 (졸업)
서울체육고등학교 (졸업)
한국체육대학교 (체육학 / 학사)
한국체육대학교 (스포츠심리학 / 석사)
종목
태권도
체급
헤비급(-+80kg)
신체
189cm, 88kg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소개[편집]


대한민국의 前 태권도 선수로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다. 3번의 올림픽에 출전하였는데, 여자부 황경선과 더불어 올림픽에 3회 연속으로 출전한 선수 중 한 명이다.[1] 김제경, 문대성과 더불어 한국 태권도 남자 최중량급[2]을 대표하는 인물로, 은퇴를 한 지금에도 그는 최중량급 경기에서 높은 비중으로 회자되고 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2008 베이징 올림픽[편집]


알렉산드로스 니콜라이디스[3]와의 접전 끝에 금메달을 따면서 한국 태권도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출전 선수 전원이 금메달을 획득하는 기록을 남겼다. 다만 야구에서 대한민국 야구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명장면이 나오는 바람에 금메달을 따는 모습은 야구 중계 때 자막으로 나왔다.

2.2. 2012 런던 올림픽[편집]


유력한 메달 후보였으나, 8강에서 탈락했다. 올림픽 사상 동메달 결정전도 뛰지 못한 최초의 대한민국 태권도 선수였다.[4]

2.3.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편집]


상대 선수가 계체에 참여하지 않아[5] 부전승으로 16강에 진출했으나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후 있었던 동메달 결정전에서 우즈베키스탄의 드미트리 쇼킨을 상대로 연장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는데 나래차기를 통한 득점에 성공하여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 경기에서 승리한 직후, 박종만 감독에게로 가서 큰절을 올렸다. 리우에서의 동메달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메달이라 밝혔으며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의 아픔은 런던에서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에, 출전 선수 다섯 모두가 메달을 목에 걸고 갈 수 있어 기쁘다고 말하였다.[6] 그가 획득한 리우 올림픽 메달은 그의 모교이기도 한 한국체육대학교 역사상 백 번째 메달인 동시에 그가 선수로서 획득한 마지막 메달이 되었다. 2016년 10월 21일에 선수 은퇴를 했다.

3. 수상 기록[편집]


올림픽
금메달
2008 베이징
+80kg
동메달
2016 리우데자네이루
+80kg
세계선수권
은메달
2011 경주
+80kg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14 인천
+80kg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2012 호치민
+80kg
그랑프리 파이널
금메달
2014 케레로테
+80kg
은메달
2013 맨체스터
+80kg
동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9 홍콩
+80kg

4. 기타[편집]


  • 황경선과 같이 해피선데이 코너인 <스쿨림픽>에 참여해서 우승한 전적이 있다.

  • 2017년 1월, 자신의 모교 한국체육대학교에 발전기금 1000만원을 기탁하고 아일랜드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 생활 도중 아일랜드 대표팀 코치를 제안 받아 지도자 생활을 겸하였으며 같은 해 9월, 결혼하였다.

  • 2012 런던올림픽 당시, 무리한 체중 감량으로 금메달 획득에 실패한 이대훈에게, '나이도 많은데 이렇게 하고 있는 나를 봐. 넌 아직 어리니까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어.'라는 맥락으로 위로를 건넸다고 한다. 당시 이대훈은 이에 대해, '동민이 형 자신도 힘들었을텐데..' 하며 그때를 회상했다. 이대훈 말마따나 차동민은 8강 탈락의 충격에 휩싸여 있던 때였다. 당시 은메달을 획득한 이대훈과 따로 산책하며 위로를 한 것은, 자신의 고통보다 어린 후배의 상처를 먼저 생각한 행동으로 보인다.

  • 2018년 10월 15일, 제56회 대한민국체육상 시상식 및 2018년 체육발전유공자 포장 전수식에서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여 받았다. 같은 날, 박종만 감독과 이대훈이 청룡장을 수여 받았는데 박종만 감독은 태권도 총감독, 차동민과 이대훈은 출전 선수 자격으로 2016년, 함께 리우 땅을 밟은 전력이 있다.

[1] 남자부에서는 최초의 기록이다. 그 후 이대훈2020 도쿄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면서 올림픽에 3회 연속 출전한 대한민국 태권도선수는 3명이 되었다.[2]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태권도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대한민국이 한 번도 빠짐없이 출전한 체급은 남자 최중량급(+80kg급)이 유일하다. 태권도 종주국의 자존심 때문에 이 체급만큼은 빠짐없이 출전 쿼터를 획득하고 선수를 출전시키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바로 아래 체급인 남자 -80kg급은 유일하게 단 한 번도 출전하지 못한 체급이라는 것이다.[3] 그리스의 태권도선수로 자신의 모국에서 열린 2004 아테네 올림픽 당시 결승전에서 문대성의 뒤후려차기 한 방을 맞고 쓰러져 KO패를 당했던 바로 그 선수이다. 2022년 10월 13일 지병으로 별세했다.[4] 이 대회 여자 +67kg급에 출전한 이인종은 동메달 결정전까지 참가했다. 그 후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49kg급에 출전한 심재영과 여자 -57kg급에 출전한 이아름이 동메달 결정전도 뛰지 못했다.[5] 정확한 사유도 드러내지 않은 채 아예 리우에 오지도 않았다.[6]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기존에 있던 국가별 출전 인원 제한(국가별 남녀 두 체급씩, 최대 네 명)이 없어졌고 세계랭킹 6위 선수까지 올림픽 자동출전권을 부여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차동민이 세계랭킹 6위 자격으로 출전권을 따낸 덕에, 우리나라는 역대 최대 인원인 5명이 올림픽에 자동으로 출전하게 되었으며, 출전 선수 전원이 메달을 획득(금2, 동3)하는 쾌거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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