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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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어원
2.1. 다른 설
3. 기타
4. 중국인들의 인식
5. 여담


1. 개요[편집]


중국인을 비하하는 멸칭이다.


2. 어원[편집]


일본어 ちゃんころ[1]에서 유래한 말이다.

의외로 사용 시기가 상당히 오래된 단어로,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도 중국과 중국인을 저렇게 불렀다. 즉 중국이란 중국인들이 불러주길 원하는 단어로서 영어권에서는 중국을 'China'라고 부르는 것처럼 당시 일본에서는 '시나'라고 불렀으면 조선에서는 일반적으로 '짱꼴라'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는 것.[2]

열차 투석 빈빈(頻頻)[3]

장꼬로 머리를 때려

...돌을 던진 자가 있어서 그 돌이 삼등차의 유리창을 깨치고 들어와서 지나인 승객 한사람의 머리를 맞추어서 부상케 하였는 고로 지금 그 범인을 엄탐 중이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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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4월 26일 매일신보


일본에서는 지나(支那)라는 말보다도 더 모욕적인 '장꼬로-'라는 말이 사용되는 것을 들은 일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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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6월 25일 조선일보

문헌상 광복 이전에는 '장꼬로', '짱꼬로'로 쓰였고, '짱꼴라'는 광복 이후에나 발견된다. 1920년대까지는 속칭이지만 경멸의 뜻은 나타나지 않으나 1930년대로 오면 놀리거나 모욕적인 언사로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이 무렵부터는 멸칭으로 자리잡은 것을 알 수 있다.

뉴스 라이브러리로 검색하면 해방 전엔 '짱꼬로'로 쓰였고, 해방 이후에 '짱꼴라'로 쓰이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일본에서 부르는 'ちゃんころ'를 거쳐서 우리도 쓰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4] 'ちゃんころ'의 기원에 대해선 한족들이 청나라의 만주족 군주 앞에서 무릎을 끓고 큰절을 하며 자신들을 '노재(奴才)'라 부른 것을 청나라에 방문한 일본인들이 보고 '청나라의 노예'라는 뜻으로 '청국노(淸國奴)'라 부른 말이 건너온 것이라는 설이 가장 설득력있다.[5]

당시 중국식 의복을 챵복(チャン服), 중국 음식을 챵료(チャン料) 등으로 불렀으며 이것은 적어도 메이지 초기 때부터 나타난 단어이다. 일본에선 특히 중국 한족들에게 쓰이던 말이였다. 영화 주전장에 출현한 일본군으로 복역했던 노인에 따르면, 중국인들을 학살할 때 칼로 머리를 자를 때 나는 소리인 'チャン'과 머리가 떨어질 때 나는 소리인 'コロ'가 합쳐져 'チャンコロ'가 되었다고 하지만 중국인들을 학살하기 이전 메이지시대부터 사용되면서 이것이 꽤 시간이 지나고 군시나어(兵隊シナ語)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6]

즉 짱꼴라의 어원인 ちゃんころ(챵코로)는 일본에서 중국인(한족)을 가르키는 군시나어(兵隊シナ語)[7] 속어로서 일본제국 시절 중국에 적극적으로 출병할 당시 빈번히 사용되었다. 당시 일본군은 중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중국 요리는 챵료(チャン料), 중국 의복은 챵복(チャン服)으로 사용되었다.

영화 주전장에 출현한 일본군으로 복역했던 노인에 따르면, 중국인들을 학살할 때 칼로 머리를 자를 때 나는 소리인 'チャン'과 머리가 떨어질 때 나는 소리인 'コロ'가 합쳐져 'チャンコロ'가 되었다고 하고, 한국 언론에서도 같은 내용의 유래를 소개한 기사가 있어 이러한 설이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중국인들을 학살하기 이전 메이지시대부터 사용되면서 이것이 꽤 시간이 지나고 군시나어(兵隊シナ語)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2.1. 다른 설[편집]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쭝꿔런(中國人)의 일본식 발음에서 유래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흔히 넷상에선 중국어로 '불결하고 더러운 썩은 뼈다귀' 같은 인간이라는 뜻이란 설명이 돌아다닌다. 짱(장葬) 꼴(골骨) 라(인人)이란 그럴싸한 한자까지 덧붙여서. 한비야가 쓴 '중국견문록'이 그 출처이다. 하지만 실제 이런 욕은 없다.


3. 기타[편집]


도조 히데키(東条英機)가 챵코로(ちゃんころ)를 자주 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도조 히데키는 당시 난징을 정복한 이후 "챵코로의 역사는 한족(漢民族) 여성의 엉덩이로 이룩한 역사일뿐이다. "지나(支那)의 역사는 이민족의 지배에 점철된 역사이다"라고 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4. 중국인들의 인식[편집]


중국식 표현은 아닐지라도 중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명칭인 듯하다. 특히 예전 일본 넷게시판인 니챤네루(2ちゃんねる)와 고챤(5ちゃんねる)에서도 중국인 부르는 군시나어(일본제국때 부르던 군대어)어로 자주 사용되었으며 니챤네루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니챤코로로 부르기도 하였다.


5. 여담[편집]


  • 도조 히데키가 자주 사용했던 말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 설[8]에 따르면 일본군의 난징 점령 이후 도조 히데키는 "지나(支那) 챵꼬로(ちゃんころ) 역사는 한족 여성 엉덩이로 이룩한 역사다, 이민족 지배에 점철된 역사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고구려, 몽골족, 선비족, 거란족, 그리고 만주족 등이 중국을 먹은 역사를 가리키는 것에서 나온 말이다. 고구려가 적극적으로 중국을 침공하여 중국을 먹은 부분을 도조 히데키는 관동군의 중국 지배의 정당성으로 여겼다.[9] 여기서 말한 支那라는 말이 '짱깨'의 의미와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항목 참조.

  • 짱꼴라의 유래에 대해 살펴보면, 후금여진족이 세운 청나라 시기 피지배층이던 한족(漢族)[10]은 주로 환관이나 내시로 활동하였으며, 이들이 이민족 군주 앞에서 무릎을 끓으며 항상 자신들 한족을 낮추어 '여진족의 노예'라는 뜻의 '노재(奴才)'라고 부르던 말이 '청국노(淸國奴)'가 되었다는 것이다.

  • 짱꼴라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단어로는 짱깨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짱깨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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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국어라고 생각되어 카타카나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일본에서는 메이지 이전부터 대정 시대 때 쓰인 단어로 순 和語(화어)이기 때문에 히라가나로 쓰인다.[2]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는 아예 중국 자체를 짱골라라고 불렀다고 적혀 있다.[3] 빈번[4] 일본식 언어이기 때문에 히라가나로 사용된다.[5] 淸國奴의 대만어 발음이 chheng¹-kok⁴-lô⁵인데 대만의 일본식민지 시절에 이 발음이 일본에 전해지면서 와전되었다고 함.[6] 일본에서 챵코로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는 사이트 # 아주 예전에는 비속어가 아닌 중국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7] 군대 시나어는 피진의 일종으로 간단히 말하자면 일본제국군이 출병하여 중국에 상주하고 있을 당시 사용하던 속어들을 말한다.위키[8] 해당 이야기는 2ch에서 ちゃんころ 스레 때 언급되었던 이야기라고 알려진다.[9] 물론 이러한 이데올로기로 인해 중국에 주재하던 일본 군인들은 난징 등에서 수많은 중국인 여성들을 강간하여 시체를 매달아 놓는 난징 대학살이라는 만행을 저질렀고 중국인 백명을 참수하는 것을 경쟁하는 역사적 만행을 저질러버렸다.[10] 청나라 한족학자 곽용민(郭傭憫)은 한족이 이민족들에게 변방으로 몰려 땅 한쪽 남기지 못하고 이민족들의 1000년 노예였다고 한탄하며 멸청을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