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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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1. 샴페인 병을 깨뜨린다?
3. 방식
3.1. 레일식 진수
4. 각국의 진수식
4.1. 대한민국
4.2. 미국
4.3. 영국
4.4. 일본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進水式 / Launching ceremony

건조한 선박을 진수(進水), 즉 물에 띄우는 시점에서 조선공들의 수고를 격려하고 선원들이 안전하게 항해하기를 바라는 등의 목적으로 여는 행사. 배의 선체를 조립하고 엔진, 발전기, 스크루, 레이더, 함포, 미사일[1] 등 장비를 탑재하고 드라이 도크일 경우 도크에 물을 채워 배를 띄운다.

이 행사에서 이름을 붙이고 선체번호도 부여되기 때문에 진수식은 보통 명명식(命名式, christening ceremony)을 겸하지만 경우에 따라 명명식을 따로 하기도 한다. 배의 특성상 한번 진수한 뒤에는 다시 뭍으로 올라올 일이 드물기 때문에, 특히 거대한 배의 진수식은 장관으로 많은 구경꾼들이 모이는 대형 행사가 된다.



취역식과는 다르다. 특히 해군의 경우 진수식을 한다고 바로 배가 투입되는 것은 아니다. 물에 띄운 다음 의장 공사를 해야 할 곳도 여럿 있는 경우가 많고, 테스트 항해를 한 다음에 통과하면 취역식을 거쳐 정식으로 취역하게 된다. 따라서 군의 진수식은 단순한 행사로써의 역할일 뿐, 해당 배가 그날부터 바로 쓰인다는 의미는 아니다.

2. 역사전통[편집]



변덕스러운 자연에 운명을 맡겨야 하는 선원의 입장에선 다른 탈것에 비해 미신을 믿는 상황이 잦았고[2], 그만큼 진수식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일례로 고대 바이킹들은 배를 진수할 때 처녀를 바쳤고 타히티에서는 피를 뿌렸다고 하니 전 세계적으로 배와 관련하여 비슷한 문화가 전승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바이킹들은 종교행사도 아닌 일상의 일부분이었던 진수식에 처녀를 바치지 않았다. 이런 낭설은 언론사에서 진수식 기사를 낼 때마다 진수식을 여성이 거행하는 것은 바이킹의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처녀를 바치는 풍습에서 비롯됐다는 신뢰성이라곤 없는 구절을 복사해서 붙여넣기하길 반복해서 퍼진 것으로 추정된다.### [3]

18세기 경 인도의 와이다 사가 운영하던 봄베이 조선소에서는 진수식에서 배의 용골에 해당 배의 설계자가 은으로 된 못을 박아 넣는 전통이 있었다. 파르시 교도들의 풍습인데, 영국 해군에 납품하던 함선들에도 똑같이 못을 박았다고 전해진다.

2.1. 샴페인 병을 깨뜨린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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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차세대 항모 CVN-78 제럴드 포드 호 명명식에 참석한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의 딸 수전 베일스 여사가 샴페인병을 깨고 있다.

서유럽에서는 18세기부터 사제를 불러 포도주를 바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이 현대의 뱃머리에 포도주나 샴페인 등의 술병을 깨뜨리는 의식으로 바뀐다. 그리고 도끼로 진수선을 절단하는데 상선의 경우엔 선주의 딸이나 아내가, 군함은 진수식에 참여한 VIP(남성)의 부인, 딸이나 VIP(여성) 본인이 하게 된다. 국내 조선소의 경우 조선 3사 모두 절단에 쓰는 도끼로 순금을 입힌 특제 강철 도끼를 사용한다. 미 해군 같은 경우에는 전사자나 이름있는 군인의 이름을 명명한 군함이 진수될 때 명명되는 사람의 어머니나 딸, 아내가 샴페인병을 터트린다. 공통점은 이를 행하는 사람은 여성이라는 것으로 이들을 업계에서는 선박의 대모 혹은 스폰서라 부르며 이러한 전통은 국내외할것없이 함선의 종류 불문 21세기에도 꾸준히 유지되는 중이다.

진수식 때 남자가 샴페인 병을 던지거나, 던진 병이 안 깨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경우 그 배의 함생이 별로 좋지 않을 것이라는 징크스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타이타닉, K-19[4], 에드먼드 피츠제럴드, 아크로열[5] 등은 진수식에서 샴폐인 병이 깨지지 않았다고 한다.

문화권에 따라 샴페인이 아닌 물건을 사용하거나 추가적인 퍼포먼스를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인도의 경우 샴페인을 깨트린 후 코코넛을 깨고 선원들이 민속요를 부르는 퍼포먼스를 추가적으로 한다. 그리스나 러시아와 같이 정교회가 강세인 국가에선 정교회 사제가 직접 성수를 뿌리며 선박을 축복하는 의식을 치르기도 한다.

3. 방식[편집]



3.1. 레일식 진수[편집]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육상에서 레일 위에 배를 건조한 후, 완성되면 바다로 밀어넣는 방법이다. 드라이독 방식과 다르게 육상에 해수면 높이의 독을 파고 개폐문과 펌프 등의 설비까지 갖출 필요가 없이, 그냥 완만하게 바다로 들어가는 평야에 선로만 깔거나 원시적으로 아예 통나무를 일렬로 눕혀놓고 그 위에 배를 건조한 뒤 밀어넣으면 되기 때문에 오히려 이쪽이 전통적이고 정석적인 방식이다. 함수나 함미가 바다를 향하게 건조하고 천천히 밀어넣는걸 정면 진수식, 영상처럼 아예 배 측면이 바다를 향하게 건조하고 옆을 밀어 한번에 수면으로 자빠뜨리는걸 함측면 진수식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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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근처에서 잘못 얼쩡거렸다간 부상당하거나 사망할 수 있다.[6]

이렇게 독이 아니라 레일식 진수만 했던 시대에는 선박이 완성되기 전까지 레일에서 안 미끄러지도록 잡아주는 쐐기 역할의 거치목(고임목)을 고아 놓았는데 배가 완성되면 이걸 치울 사람이 필요했다. 물론 치우는 순간 선박은 레일을 타고 수면을 향해 미끄러지기 시작할 테고, 사람의 신체는 여기 빨려들어가면 말 그대로 선체와 레일 사이에서 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치우는 사람은 치우자마자 죽기살기로 달려야 했다. 때문에 가장 중요하면서도 위험한 이 일은 노예나 전쟁포로, 근세에는 범죄자를 썼는데, 만약 살아남는다면 그 대가로 자유를 주었다고 한다. 근대에는 높은 위험수당을 주고 노동자를 썼다고. 물론 현대엔 원격으로 치운다.

일러스트리어스급 항공모함 3번함인 HMS 포미더블 함의 경우 진수식 때 거치목이 부서지는 사고가 나면서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배가 선대를 벗어난 것이 마치 스스로를 진수했다고 여겨져 '스스로를 진수한 함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배가 미끄러져 내려가는 상황에서도 어찌어찌 샴페인은 깼다고.

올리버 해저드 페리급 호위함의 초도함인 올리버 해저드 페리는 1976년 진수식 때 조선대에 걸려 멈추는 일이 있었다. 당연히 이를 보던 관계자들은 '이 배 나중에 큰일 나는거 아냐?'라며 수군댔다. 그런데 진수식에 참석한 영화 배우 존 웨인이 직접 나서서 밀자, 선체가 스르륵 밀려서 정상적으로 바다에 떴다고. 이 덕분(?)인지 페리는 1997년 2월 20일 퇴역할 때까지 큰 사건 없이 잘 운용하였다.

잠수함의 경우, 스크류나 워터제트 추진기 형상 자체가 기밀이기 때문에 신형 추진기를 사용한 경우 가림막을 친 상태로 진수식을 한다.

3.2. 드라이독[편집]


현대에는 드라이독처럼 지상에서 배를 건조하는 경우가 많아서 진수식 때 직접 배를 띄우지 않는 경우도 많다. 드라이독에 물을 주수해서 진수하는 경우 규모에 따라서 배 한척을 진수시키기 위해 한나절 내지는 하루 꼬박 드라이독에 물을 파부어야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물 다찰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으니 샴페인 병만 깨트리거나 아니면 깨트린 후 도크의 주수펌프를 가동하여 도크에 물이 쏟아져 들어가는 모습만 보는 걸로 행사를 끝내고 실제 진수는 한참 나중에 건조공정의 '일부'로 진행되기도 한다. 이때는 말만 진수식이고 그냥 '완성 행사'에 가깝다. 아니면 행사 전이나 도중에 물을 집어넣어 행사 즈음 혹은 도끼질하기 전에 완전히 차 있게 만들고, 진수선을 색종이 든 박에 연결해 끊으면 벌어지게 하거나, 타이밍에 맞춰 조작하는 별도의 장치로 박이 터지게 만드는 것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또한 물에 띄운 뒤에도 상당기간을 장비의 장착 및 테스트를 위해 조선소의 안벽에 계류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샴페인 병을 깨는 행사를 진수식 때가 아니라 명명식이나 취역식 때 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의 초대형 유조선이나 항공모함 같은 배는 너무 커서 애초에 레일식으로 진수할 수 없다. 정면으로 진수시키면 수면에 먼저 들어간 함수는 부력으로 뜨는데 함미는 아직 육상 위에 있으므로 중간이 뜨게 되고 이 과정에서 용골에 무리가 간다.[7] 그렇다고 함측면으로 진수시키기엔 덩치가 너무 커서 균형 복원이 안 될 불안성이 있고. 결국 함급이 거대한건 독에서 건설하는게 제일 안전하다.

4. 각국의 진수식[편집]



4.1. 대한민국[편집]



영상은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인 HMM 알헤시라스호 명명식 영상. 대한민국 해운 산업 재건에 의미가 있는 선박이라 대통령이 참석하였는데, 이는 특이한 경우이다.[8]

  • 대한민국에서는 진수식을 한다고 배를 밀어넣는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폭죽을 쏘아올린다던지 하는 등으로 인해 행사 자체는 화려한 편이다.

  • 군함이 진수하거나, 특별한 의미가 있는 선박은 대한민국 영부인이 도끼질하는 경우가 많다. 군함은 영부인과 대통령, 국방장관이 같이 도끼질하며, 특별한 의미가 있는 상선은 영부인 단독 혹은 해당 조선소의 여직원과 함께 도끼질을 하는 경우가 많다. 군함이 진수할 때 영부인이 오지 않으면 국방장관의 부인이 도끼질을 한다.
    • 2022년 정조대왕함 진수식은 이야깃거리가 많았는데, 영부인 김건희가 진수선을 1번에 못 끊고 4번만에 끊었으며, 아직 못 끊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방송사 화면이 넘어가거나 축하 음악이 나오는 등의 장면이 생방송으로 중계되기도 했다. # #

4.2. 미국[편집]



제럴드 R. 포드급 항공모함의 진수식(2014년). 보면 알겠지만 미국높으신 분들의 향연이다. 해군 군종관과 함장부터 해당 프로그램 책임자, 해군핵추진프로그램 국장인 존 리처드슨 제독, 해군참모총장 조너선 그리너트[9], 해군부 획득차장, 버지니아 주 주지사하원의원, 전임 국방장관부통령도널드 럼즈펠드딕 체니 등이 참여했다.


4.3. 영국[편집]



영상은 2차 세계대전이 진행중인 1944년 11월 30일 엘리자베스 공주가 왕실 첫 업무로 영국 최대 전함인 HMS 뱅가드의 진수식에 참석한 영상이다.

4.4. 일본[편집]



이즈모급 항공모함의 진수식. 보면 알겠지만 진수선을 자르는 사람이 당시의 방위대신 에토 아키노리(江渡聡徳)와 부총리아소 다로이다. 여성이 진수선을 자르는 것과는 좀 다른 일본의 풍경. 그들 옆에 서 있는 해군 제독 두 명은 키 큰 쪽이 다케이 도모히사 해상막료장, 작은 쪽이 가와노 가쓰토시 통합막료장이다.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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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반 상선의 경우 레이더 까지. 뒤의 부분은 해당 사항이 없다.[2] 땅은 그나마 인간이 발을 디디는 만큼 인간의 극복의지에 따라서 다양한 방법으로 대처할 수 있으며, 하늘은 그 근간이 인간이 자연을 극복한 사례라고 볼 수 있는 비행기를 사용하고 태풍같은 자연적 변수는 이륙 전에 징조를 감지하거나 속도를 내서 아예 위험할 위치에서 피할 수 있다. 하지만 배는 그 기원이 아주 오래된 물건이지만 항해 도중엔 단순한 조류나 해류만이 아닌 배를 뒤집을만한 파도와 운항 중에 발생할 수 있는 태풍처럼 장엄한 자연을 직접적으로 마주쳐야 하고, 어느정도의 우회가 가능하지만 자연을 아예 극복하지 않고선 배를 목적지까지 이끌고 갈 수도 없다. 그런 선원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직 선원과 배. 그리고 신 뿐이었기에 다른 탈것보다 미신에 더 민감할 수 밖에 없었다.[3] 그리고 이 모든 인용의 최초 출처는 한 네이버 지식iN 답변으로 추정된다.#[4] 불행히도 남성 제독이 던진 샴페인이 안 깨졌고, 함생이 완전히 꼬였다.[5] 그나마 아크로열은 어뢰 피격시 피격에 휘말린 수병 1명을 제외 하곤 함장을 포함 모두 퇴함에 성공했다.[6] 해당 진수식은 조사선 루벤 러스카의 진수식으로, 진수식 후 사상자는 근처에서 발이 미끄러져 다리가 부러진 선원 1명 밖에 없다고 한다. 해당 영상을 찍은 인물은 별 부상 없이 잘 살아있다.[7] 그나마 이 경우는 후면으로 진수시키면 정면으로는 하는 것보다는 떠오르는데 시간이 더 걸리는 관계로 용골에 무리가 조금이라도 덜 간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진수되는 대형함들(비스마르크급 전함, 그라프 체펠린급 항공모함, 야마토급 전함 등이 대형함인데도 이러한 방식으로 진수되었다.)을 보면 죄다 후면이 수면을 향하도록 진수된다.[8] 그 이전에는 해운 산업이 어려웠던 시기인데다 최순실의 농락으로 인해 한진해운이 망했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이 방만한 경영을 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그만큼 회생 가능성이 높았던 기업이라 이런 말이 나온 것.[9] 정작 이 두 제독은 잠수함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