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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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
2. 미디어믹스



1. 생애[편집]


陳九經
(?~1646)

명나라의 인물로, 진린의 아들이다.

좌영도사를 지내 정유재란 때인 1598년에 양광수병 2천 명을 거느리고 물길을 따라 노량으로 향해 전투에 참전했으며, 왜군 병사 둘이 진린의 배에 뛰어들어 진린을 위협하자 진구경은 몸으로 적의 칼을 막아 부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계속 분전하다가 문위가 급히 달려들어 왜군 병사 둘을 모조리 창으로 찔러 죽였다.

진린이 각 아문에 보고한 첩문에 따르면 진구경이 시마즈 요시히로를 생포했다는 말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생포되지는 않고 요시히로는 엄청난 피해를 입으면서 퇴각했다. 정유재란이 끝나고 진린과 함께 명나라로 귀국했고, 그 후 나라의 국운을 두고 애산에서 청나라군과 싸우다 전사했다.[1]

한편 그의 아들인 진영소는 감국수위사(監國守衛使)로 있던 중 애산에서의 비보와 나라까지 망하자 '원수와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며 식솔들을 데리고 고금도를 거쳐 해남에 정착해 한국계 광동진씨의 시조가 되었다.

2. 미디어믹스[편집]


소설 조선대혁명에서는 진린을 보호하기 위해 몸으로 적의 칼을 막다가 죽는 것으로 나온다.

드라마 임진왜란 1592에서는 노량해전 직전에 진린이 하늘에 떨어지는 유성을 보고 불길한 조짐이 일어날 것으로 여겨 진린의 명에 따라 이순신에게 가서 불운을 없애기 위해 제갈량이 사용했던 비책을 써보자고 제안하는 것을 전한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나올 예정이다. 배우는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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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교롭게도 남송 세력이 마지막까지 원나라 세력에 항거하다 최후를 맞이한 곳이다. 청나라군이 1646년 11~12월경에 애산 부근까지 남하한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청군과 싸우다 전사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