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갈등/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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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 ※표는 민족, 인종, 종교간 갈등 사례다.
  • ★표는 제1도시 VS 제2도시와 제3도시, 예전 수도 VS 현재 수도와의 갈등이다.
  • 해외 사례는 이웃나라/한지붕 두가족 문서와도 관련이 깊다.

2. 사례[편집]



2.1. 대한민국[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지역감정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남북한이 실질적으로 한 나라였던 당시의 이야기와, 남북한을 실제로 한 나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 북한 출신, 고령층의 생각을 다루기 위해 북한도 같이 다룬다.


2.2. 일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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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중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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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대만[편집]



2.4.1. 대만 북부(타이베이) vs 대만 남부(타이난), (가오슝)★[편집]


대만도 지역감정이 적지 않다. 이쪽은 역사적 배경이 분명한데, 국공내전 당시 중국본토에서 쫓겨난 장제스 중국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 섬으로 옮겨 오는 과정에서 국민당은 대만인들을 상당히 탄압하고 학살했다.(2.28 사건) 꼭 그 사건 때문은 아니어도, 이른바 원주민 vs 이주민 간의 마찰은 어쩔 수 없는지라 중국본토에서 온 외성인과 원래부터 대만 섬에 살아오던 본성인 간에 상당한 감정의 골이 남아있으며, 여기에 객가인 같은 소수 집단과의 문제까지 겹쳤다. 지금도 선거때만 되면 외성인과 객가인이 많은 북부는 중국 국민당 몰표, 본성인이 많이 사는 남부는 민주진보당 몰표가 계속 되고 있다. 언어도 남부는 중국어방언대만어를, 북부는 표준중국어를 많이 사용한다.


2.4.2. 타이완 섬 VS 진마지구[편집]


시진핑 장기집권 이래로 타이완 섬 사람들의 중국인 의식이 줄어들고 대만을 더욱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갈등이 있다.


2.4.3. 서부 vs 동부[편집]


대만섬의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서부는 평야, 동부는 산악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서부가 중국 본토와 가까워서 이주하기도 편하다. 이러다보니 당연히 대만의 인구는 서부에 집중되어 있고, 동부의 인구는 많지 않다. 이란현, 화롄현, 난터우현, 타이둥현의 면적은 대만섬 전체의 5분의 2 정도에 해당하지만 인구는 다 합쳐도 2300만 인구 중 10분의 1도 안되는 150만 정도에 불과하다. 대만 원주민들도 이곳에 많이 산다. 어쨌든 그렇다 보니 인구가 많은 서쪽에 개발이 집중되기 마련이라 동쪽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편. 그래서 알게 모르게 동부를 촌이라고 얕잡아 보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다만, 특별한 일은 아니고 어느 나라에서나 흔히 보이는 도농 갈등에 가깝다.


2.5. 튀르키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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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몽골[편집]


  • 바잉을기(카자흐족) VS 나머지 몽골 지역(몽골족) ※
몽골 서부의 바잉을기 지역은 현재 몽골 영토이지만 몽골의 주류민족이자 종교적으로 티베트 불교를 믿는 몽골족이 아닌 카자흐족 등 이슬람교를 믿는 튀르크계 소수 민족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어 몽골족들이 많은 다른 몽골 지역과 다르게 민족, 언어, 종교, 문화적으로도 굉장히 이질적인 지역으로 남아있다.


2.7. 베트남[편집]


베트남 역사에서 남북이 대립한 시기가 길었으며[1] 한반도처럼 베트남 역시 남북분단 국가였던데다 이 경우는 과거 사회주의의 북베트남과 자유주의의 남베트남의 영향이 있다. 현재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는 북베트남 시절까지는 북베트남의 수도였으며 호치민 시는 남베트남 시절의 수도로 과거에는 사이공으로 불렸다.[2] 1975년 베트남 전쟁 종전 후 남북 베트남이 통일되어 하노이가 통일수도가 되었고 사이공은 부도시로 격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지금도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에 영향을 받은 일부로부터 감정이 있다. 돈만 아는 박쥐 VS 피눈물도 없는 냉혈한 빨갱이 하는 식으로. 드물지만 베트남 공화국 체제 회복 운동까지 존재할 정도.


2.8. 방글라데시[편집]


  • 벵골계 서부 본토 지역 VS 줌머족 등 동남부 지역 ※
수도 다카 등 방글라데시 서부 본토 지역은 방글라데시의 주류 민족인 벵골인들이 많은데 비해, 치타공 구릉지대 등 동남부 내륙 지역에는 황인계 소수민족인 줌머족들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이들은 방글라데시의 주류 민족인 벵골인들의 억압과 차별에 맞서 오랜 기간 자치와 분리독립을 요구하며 대립했다.

2.9. 인도[편집]



2.9.1. 아리안계 북부 VS 드라비다계 남부 ※[편집]


아리안인들의 인도 침입으로 인도 북부 지역에서 살던 드라비다계 민족들이 인도 반도 남부로 밀려나는 등 역사적인 이유도 있고 단순히 지역감정을 떠나서 언어, 문자도 북부와 남부가 서로 다를 정도로 인도 역시 같은 인도인데도 북부 지역과 남부 지역끼리 민족적 이질감이 심하다.

보통 북부 아리안계 인도인들이 남부 드라비다게 인도인을 피부색이나 혈통을 가지고 놀리면 남부는 문맹률, 소득 통계로 반격을 한다. “크샤트리아 집안에서 태어나면 뭐하냐 글도 못 읽는 주제에” 드립 등이 대표적.


2.9.2. 마하라슈트라 VS 비하르, 우타르프라데시[편집]


인도에서 제일 가난한 주들로 꼽히는 비하르, 우타르프라데시 주민들이 소득이 높은 지역인 마하라슈트라 주와 봄베이에 이주하는 경우가 많아서 발생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북인도 내륙 지방의 비하르, 우타르프라데시는 토질이 비옥하여 과거 2~3,000년 가까이 인도에서 손에 꼽히는 부유한 지역이었고, 마하라슈트라 지방은 척박한 데칸 고원에 위치한 나머지 밀 대신 수수와 기장을 먹었으며 소금 결핍으로 인한 질병이 만연하던 지방이었다. 마하라슈트라 지방이 부유해진 것은 무굴 제국이 몰락하고 해상 무역 중심지가 구자라트의 수라트 시에서 봄베이 시로 옮겨가고 마라타 동맹이 부흥한 이후이다. 한 국가 내에서 가난한 지방과 부유한 지방 위치가 바뀌면 심한 지역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다.


2.9.3. 타밀나두, 케랄라, 카르나타카 VS 안드라프라데시(텔랑가나+하이데라바드), 오디샤[편집]


인도 반도 남부 최남단 지방의 잘 사는 3개주가 남동부 지방의 가난한 지역 주민들을 놀리는 형태이다. 같은 남인도라고 묶으면 무척 싫어하는데, 남서부 지방과 타밀 지역은 고대부터 해상 무역이 발달해서 비교적 외부와는 교류가 적었던 안드라프라데시, 오디샤 지방과는 사람들의 외양도 꽤 다르다.


2.9.4. 동북부(나갈랜드·마니푸르·미조람·메갈라야, 트리푸라, 아삼, 시킴) VS 기타지역 ※[편집]


부탄, 미얀마 등과 국경을 접한 인도 동북부 지역에 사는 민족들은 유전적으로 티베트나 미얀마의 카친족이나 버마족 같은 황인계 민족들과 가깝기 때문에, 외양이 다른 인도 지방과 차이가 있다. 그래서 그들도 같은 인도인이지만 다른 지역 인도인들로부터 멸시가 있는 편이다. 여기에 아삼이나 마니푸르, 나갈랜드등 인도 동북부의 3개 주 모두 지역 독립운동까지 겹쳐 있는 상태. 그나마 일찍이 평화협정을 맺은 미조람과 분리주의 반군 저항 세력들이 인도군에 의해 대거 진압되다시피한 아삼 지역은 상황이 그나마 낫지만 나갈랜드에서는 지역 반군인 NSCN-K(나갈랜드 사회주의 위원회)가, 마니푸르에서는 KCP(캉레이팍 공산당), PREPAK(캉레이팍 인민혁명당), UNLF(연합민족해방전선)등 좌익 계열 반군이 활동하고 있다.


2.9.5. 인도 본토 VS 카슈미르[편집]


인도 북부의 카슈미르 주는 카슈미르인들의 지역으로 인도-파키스탄 분리 당시 인도가 카슈미르를 병탄해 힌두교도 카슈미르인과 무슬림 카슈미르인 간의 갈등이 극심하여 현재도 준전시상태에 놓여있을 수준이다.


2.10. 인도네시아[편집]


자바섬과 자카르타, 욕야카르타, 반둥만 인도네시아냐며 하소연할 정도로 같은 이슬람권에 같은 인도네시아 땅인데도 자바와 수마트라, 술라웨시, 발리등 나머지 도서 지역 대립이 존재하다. 그나마 수마트라나 칼리만탄은 지역/역사성은 자바와 다르긴 해도 종교적으로 자바와 같은 이슬람이고 특히 자바와 이웃한 람풍 주 등 수마트라 섬 남부 지역은 민족, 정서적으로 자바 섬과 가깝지만, 발리의 경우 이슬람교가 아닌 힌두교를 믿는 등 인도네시아의 다른 지역과는 전혀 딴판이다. 술라웨시는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가 한 지역 내에 섞여 있으며, 서파푸아의 경우 멜라네시아 계통에 기독교를 믿는 등 종교, 민족도 달라 아예 인도네시아에서 분리독립하겠다고 무장독립단체들이 기세를 부려 인도네시아 정부군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거기다 수카르노, 수하르토, 메가와티, 유도요노, 조코 위도도등 인도네시아 역대 대통령들 모두 자바 섬 출신의 자바인들이다.[3] 요즘은 인프라 개발에 열을 올리고 정부 주도의 개발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현실은 시궁창 실질적으로 주요 5개 섬 중 가장 작은 자바섬에 인도네시아 인구의 80%가 밀집해 있기 때문에 나머지 섬에는 인구가 적고, 노동력이 부족하다 보니 공장을 짓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며, 무엇보다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자바섬에만 교통 인프라가 발달을 하다 보니 기형 성장을 한 것이 지역 간 갈등을 더욱 유발을 한 것이다. 수하르토의 병크 중 하나인 자바인 강제 이주로 인하여 지역을 넘어 민족간 갈등을 일으킨 것도 그 이유가 되기에는 충분하다.


2.11. 미얀마[편집]


  • 미얀마 본토 VS 아라칸 주, 샨 주, 카친 주, 몬 주, 카인 주, 친 주※
양곤과 만달레이, 네피도 등 미얀마 본토 지역은 버마족들이 다수를 점하는데 비해 나머지 미얀마의 주들은 카렌, 카친, 타앙, 아라칸, 몬족 등 소수민족들의 비중이 높다.


2.12. 말레이시아[편집]



2.12.1. 서말레이시아(말라야) vs 동말레이시아(사라왁, 사바)※[편집]


그닥 알려지지는 않지만, 사실 한국의 '전라디언'이나 '개쌍도'는 저리 가라이고, 스페인 못지않은 수준이다. 대게 서말레이시아(주 11개, 연방특별시 2개)와 동말레이시아(주 2개, 연방특별시 1개) 간의 갈등이지만, 서말레이시아 안에서도 나름의 지역감정은 존재한다. 문제는 말레이시아의 지역감정은 정치적 대립과 인종, 문화간 대립이 교묘하게 섞여있어 더 복잡한 양상이다. 종교적 대립이나 정치적 대립은 주로 서부와 동부간의 대립이지만, 인종적 대립은 서부 내에서도 심하면 심하다.

일단 종교적 대립을 보면, 서말레이시아의 경우는 평균 인구의 50% ~ 60%가 무슬림이다. 반면 동말레이시아의 경우는 평균 30%가 기독교인이며, 특히 동부의 사라왁은 유일하게 기독교인이 대부분인 주이다.[4] 그러나 사라왁은 기독교 중심임에도 무슬림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고, 사바는 아예 무슬림이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하지만 나름 정치적 대립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정치적 이유와 함께 설명하겠다. 원래 사라왁과 사바는 말레이시아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으나, 1963년 싱가포르와 함께 말레이시아에 가입했다. 하지만 둘이 말레이시아에 가입한 것은 사실 싱가포르 때문이었으며, 심지어 사바의 총리(한때는 총독)였던 툰 푸아드 스테픈스는 싱가포르의 총리였던 리콴유친구 관계였다. 만약에 가입 안했으면 독재 브라더스? 하지만 2년만에 싱가포르가 나가면서 문제가 불거지는데, 이는 싱가포르가 인종적 대립에 의해 쫓겨난 것이었고, 싱가포르 때문에 가입한 둘은 결국 주체가 쫓겨나면서, 고로 말레이시아에 잔류할 필요가 없어진 거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자원이라곤 하나도 없는 코딱지만 한 섬이라 오히려 '득'이었지만, 나머지 둘은 천연자원이 가득한 점 때문에 쫓아내면 뻔한 '실'이었다.[5]

어쨌건 10년 동안은 영어를 사용하고 기독교 중심으로 돌아가는 기존의 상태를 그나마 유지시켜 주었다. 물론 홍콩이나 마카오 같은 특별행정구도 아니고 중국 국내의 자치구처럼 자치를 하지도 않는 엄연한 말레이시아의 행정구역이라 1973년 10년이 이미 다 되고 나서는 기존상태를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이 때부터 본격적인 수난이 시작되는데 마침 서부에서는 말레이화를 명목으로 중국인과 인도인 등을 차별하고 외국인을 '쫓아내는' 수모가 벌어지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게 동부에서도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라왁과 사바의 공용어가 갑자기 말레이어로 바뀌고, 차츰 말레이인[6] 우대가 시작되면서 원주민인 카다잔, 이반[7] 등의 반발이 심했다. 게다가 기독교 중심이던 이들에게 이슬람이 전도되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여기에 강제개종의 의혹이 있었다는 것이다. 폭로된 바에 따르면, 뇌물로 유도하며 개종시켰다던가, 심지어는 개종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던가...

1976년 6월 6일 현충일 사바의 총리였던 스티븐스가 코타키나발루의 슴불란 구에서 의문의 사고로 사망했는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처음에는 호주산 비행기에서 일어났었기 때문에 호주 정부에서 비행기 검사단을 보내면서 혹시 비행기의 결함이 아닌 가 했었다. 하지만 비행기에는 아무런 결함이 없었고, 그 이맘때부터 중앙정부의 개입이 심해지자 스테픈스 자신이 이에 대해 불평을 종종 했었는데다가 본인이 독립파였기 때문에, 결국 중앙정부의 소행이라는 논란이 불거지게 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더블 식스 트라제디 참조.

사바의 서부, 브루나이 근교에 있던 라부안이 연방정부로 넘어가고, 1990년 일련의 정치 테러로 중앙정부가 사바 지역 정치인들을 대규모로 탄압하는 사태가 벌어져, 문제는 더 심해진다. 그리고 이제, 동말레이시아의 정치도 지역정당이 아닌 본토의 정당들이 활개치는 실정이다.[8] 사실 말레이시아가 나름의 독재국가인데다 이들의 분리주의가 썩 알려진 편도 아니라 이들의 상황을 잘 알 순 없지만, 자칫하면 아군과 협력해 무장투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여하튼 이러한 점은 곧 종교적 대립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독교 단체인 SIB는 이슬람 전도를 막으려는 시도를 한다는 게 밝혀졌고, 한 외국인 학생의 폭로에 따르면 어느 카다잔 출신의 기독교인 과외선생이 무슬림 전체를 테러리스트로 막 매도하는 발언들을 본인에게 했다는 게 밝혀졌다는 점.

그리고 인종문제는 서말레이시아 내부 자체에서도 흔한 일인데, 특히 말레이인과 중국인간의 대립이 그렇다. 원래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인의 땅이었지만, 중국인들이 대거 밀려든 뒤 나라의 실권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대립이 시작되어, 5.13 사건과 같은 최악의 폭동까지 일으켰다. 싱가포르가 쫓겨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는 말레이인을 우대하는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는데, 제2의 아파르트헤이트. 문제는 이 타겟이 아무련 관련 없는 외국인들한테도 쏠리면서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실제로 직원을 구할 때 대놓고 '자국민만 받겠다'고 써놓는 경우는 말레이시아 말고 없다. 이는 곧 '외국인 사절'의 뜻이고, 아예 '외국인 사절'을 대놓고 적어놓는 경우도 흔하다.[9] 게다가 대학들의 불편한 위치 등으로 학교 앞에 집을 빌려 사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내국인 학생에게만 빌려주겠다'고 적어놓는 것도 흔하다. 이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들의 철수가 늘어나고 있고, 나중에 본국으로 돌아간 외국인들이 말레이시아를 대놓고 욕하고 보이콧하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이 것은 곧 지역감정의 큰 원인이 적용된다.

이러한 문제로, 중국인 중심의 피낭 주는 한국의 평양과 유사한 위상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라도나 함경도보다 더 낙인이 찍혀, 오죽하면 피낭이 싱가포르처럼 쫓겨날 것이라는 얘기까지 있다.

서부와 동부가 서로 욕하는 건 흔에 빠진 일이고, 사실 쿠알라룸푸르 한복판에서(서부) 동부 방언(예: 사라왁 방언, 사바 방언)을 사용하는 건 그리 문제삼지 않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잘못하면 현지에서 먹던 밥상이 제삿상이 될 수도 있다.[10] 그러나 그 중에서도 사바는 서부에 많이 동화돼서 그런지, 너무 그럴 일은 없으니 다행.

외국인들이 말레이시아에서 종종 하는 실수 중 하나가, 바로 중국계들에게 말레이어를 쓰는 것이다.[11] 아무래도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비영국계에게도 영어를 쓰는 등의 특징 때문인지 말레이시아에서도 중국인들은 말레이어를 쓴다고 오해를 하는데, 동부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서부에서는 잘못하면 끝장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서부에서 중국계 친구들에게 말레이어를 쓴다, 그러면 그들은 처음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가, 나중에는 절교한다. 때문에 영어나 중국어, 차라리 한국어를 쓰는게 낫다. 이 점을 주의.

추가로, 한국의 반도인(한반도 주민)이 제주도를 갈 때는 문제가 없지만, 말레이시아에서 서부인이 동부를 갈려면 별도의 입국 허가가 필요하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손가락 아프게 서술한 지역감정이 요인이 되는 것 같다. 동부인이 서부를 갈 때는 여권만 있으면 되고, 가서 아예 살고 취직하고 학교 다녀도 문제가 없는데, 그 반대의 경우라면 들어갈 때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그냥 관광할 거라면 외국인처럼 90일 무비자로 돌아다니는 것. 만약에 아예 살거나 취직하거나 하려면 현지 영주권이 필요하다.[12] 동부인들은 출생과 동시에 말레이시아 국적과 함께 영주권이 주어지지만, 서부인은 말레이시아 국적만 주어진다. 영주권은 신청하면 된다고 하지만, 혹시나 지역드립을 하거나 그러면 박탈당할 수도 있고, 재수없으면 영주권이고 나발이고 그냥 단순히 왔다가도 입국금지 목록에 오를수도 있다. 일례로 술루 테러리스트[13]와 접촉해 물의를 빚은 서부 출신의 누룰 이자 안와르는 이 일로 사바에서 입국 금지당했다.


2.12.2. 수도권(쿠알라룸푸르, 슬랑오르) vs 탄중푸트리(조호르)[편집]


근래에 떠오른 새로운 지역감정.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부유하고 그야말로 말레이시아의 중심쿠알라룸푸르 일대와 제2의 도심인 조호르바루 일대 간의 대립이다.

원래 조호르는 15세기 포르투갈의 침공으로 믈라카가 함락되자 이때 쫓긴 세력들이 남부의 조호르로 피신하면서 대대적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19세기 페락에서 주로 일하던 탄광촌들이 지금의 쿠알라룸푸르 일대에 어마어마한 자원이 발견되었음을 알고 이쪽으로 밀려들면서 대대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고로 말레이시아의 제1의 도시를 넘어 수도로서 명실공히 떠올랐다. 뭐 그렇다고 하지만,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자는 민족주의적 공통점 때문에 처음에는 둘이 싸울 리가 없었다.

그러나 조호르의 경우는 싱가포르와 바로 붙어있는 문제가 있는데 1965년 싱가포르가 원치 않게 쫓겨나고,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면서 말레이시아에는 다소 위협이 되었다. 결국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조호르바루 일대에 "탄중푸트리"라는 대규모 도심을 건설하면서 급격한 발전을 이루어, 풀라우피낭조지타운을 뺨치고 제2의 도시로 떠오른다.

쿠알라룸푸르의 경우는 외국인 투자 및 경제, 금융의 중심지로 자발적인 발전과 성장을 이루는 데 반해 조호르바루의 경우는 싱가포르에 사실상 의존하는 상태이다. 게다가 광부들의 노력과 피땀으로 발전한 쿠알라룸푸르와는 달리 조호르바루는 싱가포르가 발전하니깐 이에 따른 질투심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발전했다... 뭐 이런 식이다.

당연히 쿠알라룸푸르가 제1의 도시이자 명실공히 수도로서 그 위상은 막강하고, 쿠알라룸푸르와 그 주변에서 쓰이는 말은 이제 전국에서 통용되며 모르면 걍 간첩인 꼴이다. 반면 조호르에서 쓰는 말은 근래에는 싱가포르 방언에 크게 물이 들면서, 쿠알라룸푸르 쪽에서는 "너네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냐?"라고 묻는 식. 오죽하면 "조호르는 당장 우리나라에서 나가라"라고 떠들어대는 사람들까지도 있다.


2.12.3. 수도권(쿠알라룸푸르, 슬랑오르) vs 피낭 섬(풀라우피낭)[편집]


풀라우피낭의 주도인 조지타운은 근래에는 조호르바루에 밀려 제2의 도시라고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위상은 쿠알라룸푸르 다음으로 제2이다. 1957년 말레이시아 최초의 특별시가 되었고 당대에는 말레이시아의 최대 도시라고 할 수는 없어도 정치적 위상만큼은 제1이었다.

그런데 1972년 쿠알라룸푸르가 특별시로 떠오르면서 상대적으로 위협을 받았고, 싱가포르가 쫓겨난 것도 인종문제 때문인데 여기가 바로 그 다음의 대상이 되었으니 나름의 갈등이 생기는 건 어쩌면은 당연지사. 2015년 조지타운뿐 아니라 풀라우피낭 주 자체가 특별시로서 인정을 받았지만 얼마 안 된 이야기라 그런지 피낭 자체를 도시로 표기하는 지도들은 없다.[14]

두 지역간의 대립은 한국과 비교하자면 서울과 평양간의 대립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왜냐하면 두 지역이 그렇게 변해가고 있기 때문(...) 쿠알라룸푸르는 외국인들도 많이 유치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데 반해 풀라우피낭의 경우는 되려 외국인을 쫓아내려는 뻘짓들이 지속적으로 행해지면서 새로운 문제가 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 쪽에서 나름 개방적이고 높은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풀라우피낭을 "네오나치", "파쇼"라고 부를 정도.

게다가 인종문제도 엮여, 일부 말레이인 우익들은 "칭크들이 판치는 피낭은 당장 우리나라에서 나가라"라고 떠들어 대기도 한다. 뭐 한때는 싱가포르처럼 독립하기를 원했다는 얘기도 있으나 검증할 방법도 없고... 하지만 적어도 피낭 사람들은 독립을 원하는 편은 아닌 것 같다.


2.12.4. 서부(직할시 2개 및 주 10개) vs 북동부(클란탄)[편집]


북동부에 고립되어 사실상 따로 노는 동네라고도 불리는 클란탄의 골수적인 성향에서 생긴 지역감정.

1990년 이래 클란탄은 이슬람 근본주의 정당인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가 집권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정권을 내놓은 적이 없다. 이웃한 트렝가누만 해도 한때 집권한 적은 있었으나 지금은 아니라고.

이 클란탄의 골수적인 성향은 타 지역에서도 눈엣가시로 간주되기도 하는데 사실 말레이시아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적용하기는 하나 클란탄은 상대적으로 그 범위가 넓다. 예를 들어 클란탄에서는 남녀가 줄을 따로 서야 하고, 같은 벤치에 앉을 수도 없으며, 여성의 권리가 다소 제약을 받는다. 타 지역에서는 이러지 않는다.

여하튼 이러한 골수적 성향이 떠오른 계기 중 하나가 바로 후두드. 굉장히 잔인한 처벌법으로 이슬람 내에서도 논쟁을 부르는 처벌인데 클란탄에서는 도입하려고 했으나... 연방정부가 거절하여 실패했다.


2.13. 태국[편집]


불교를 믿는 타이족들이 많은 태국 북부의 본토 지역과는 달리 말레이시아와 인접한 얄라, 파타니, 나라티왓 등 남부 말레이 반도의 3개 주들은 이슬람 계열의 말레이인들이 주류로 태국이 무력으로 병탄한 곳이어서 지역감정이 심하고 아예 태국에서 분리하여 이웃 동족국가인 말레이시아에 합병하거나 별개 주권국으로 독립하자는 움직임이 강하며 정 둘다 불가능하면 인도네시아의 아체 특별자치주처럼 태국 중앙정부와 협상해서 지방 자치권을 얻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2.14. 캄보디아[편집]


  • 캄퐁톰 주 VS 나머지 캄보디아 지역들
1970년대 킬링필드 대학살을 자행하며 과거 캄보디아를 암흑으로 몰아넣었던 크메르 루주의 지도자 폴포트의 실제 출생지였고, 캄보디아 내전과 크메르 루주 정권 당시 구 크메르 루주 세력들의 정치적 중심지였던 역사적인 이유 때문에 크메르 루주 정권에게 큰 피해를 입었던 수도 프놈펜[15]과 캄보디아내 다른 지역들은 캄퐁톰 주를 살인자들의 고장 취급하며 적대하고 있다. 다만 캄퐁톰 주에서는 이러한 다른 캄보디아 지역들의 학살자 몰이에 폴포트를 제외한 구 크메르 루주의 지도부 인사들 중 키우 삼판(스바이리엥 주 출신)이나 누온 체아(왓코르 주 출신)처럼 다른 캄보디아 지역 출신들도 있었다며 반론을 가한다.

2.15. 필리핀[편집]


민다나오는 본래 스페인령 필리핀의 일부가 아니었으며, 필리핀의 북부 지방의 나머지 도서 지역들이 전부 스페인령이던 시절에도 술루 술탄국이라는 이름의 독립국가로 존재하다가 훗날 미국의 침략으로 미국령 필리핀의 일부가 되면서 지금까지도 필리핀의 영토가 되었다. 그래서 민다나오는 필리핀의 다른 지역들과 달리 이슬람이 주류 종교이며, 그로 인해 가톨릭이 주류 종교인 필리핀 북부 도서 지역들과 대립하고 있다.


2.16. 라오스[편집]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안과 제2도시인 루앙프라방이 경쟁의식을 지니고 있다.


2.17. 오만[편집]


무산담 반도과 마드하는 오만의 영토이지만 오만 본토와 이격된 월경지역이다 보니 오만 본토 지역하고는 지리적, 정서적 괴리감이 존재하고 있다.


2.18. 요르단[편집]


  • 수도 암만 등 서부 지역 VS 이라크, 시리아 국경 인근 동북부 지역
수도 암만과 제2도시 자르카, 페트라 유적지 등이 위치한 요르단 서부 지역은 치안도 좋고 안정적인 것에 비해, 이라크와 시리아와 국경을 접한 동북부 지역은 반대로 치안 및 정세상황이 좋지 않고 범죄율도 높아, 서부 지역의 요르단 국민들은 동북부 지역에 거주하는 요르단 사람들을 잡히면 손목을 잘라버려야 할 절도범죄자 내지는[16]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 같은 테러리스트의 부역자로 괄시하기도 한다.


2.19. 이란[편집]


페르시아인들의 비율이 높은 이란 타 지역들과 달리 이들 지방들은 쿠르드, 아랍, 아제리인 등 소수민족 비율이 높다.


2.20. 이라크[편집]







2.21. 시리아[편집]



  • 시아파 서부 VS 수니파 동부※[17]



2.22. 스리랑카[편집]


  • 타밀계 동북부 VS 싱할라계 서남부※
이 양자의 대립과 갈등은 1983년 스리랑카 내전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2.23. 파키스탄[편집]




2.24. 타지키스탄[편집]


도시와 마을 등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 서부이고 동부는 지형이 험한 지역이라 발전되지 못한 곳들이 많고 사람들이 많지 않은데다가, 동부 지역의 민족들 중 페르시아계에 속하는 타지크인이 아닌 파미르인 등 동이란계 소수민족 주민들도 있고[18], 이곳에서는 이슬람 근본주의가 강하다보니 이러한 이유 때문에 1992년부터 1997년까지 타지키스탄 내전이 나타났고, 내전 때는 이곳의 주민들과 파미르계 소수민족들이 박해와 학살을 당했다. 심지어 같은 서부 지역의 타지크인이더라도 가름(타지키스탄 중서부 도시) 주민들처럼 이슬람 원리주의 또는 이슬람주의 성향이 강했던 주민들도 있었는데, 가름이라는 곳이 이슬람 근본주의 계열 군벌들이 많았던 동부와 가깝다보니, 이곳의 영향으로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의 가름 출신 조직도 많았고 타지키스탄 이슬람 부흥당의 중심지였다. 당시 이슬람 근본주의를 배척했던 세속주의 성향의 서부 인민 전선들이 타지키스탄 이슬람 부흥당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가름 출신의 주민들을 박대하거나 학살을 했었다. 또한 20년 후에 고르노바다흐샨에서 다시한번 더 내전이 발발했지만 2015년 9월에 진압이 되었다.


2.25. 우즈베키스탄[편집]






2.26. 아랍에미리트[편집]


아랍에미리트의 수도인 아부다비와 제2 대도시인 두바이와의 경쟁의식이 존재한다.


2.27. 아르메니아[편집]


  • 예레반 및 수도권 vs 수도권 제외한 곳
아르메니아는 카프카스 지방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인데, 그래도 수도인 예레반 및 인근 도시들은 그나마 잘 발전했지만 다른 곳은 여전히 상황이 좋지 못하다보니 이로 인한 불만도 있다. 또한 주요 도시들조차 북부 지방에 집중되어 있고 남부는 도시가 많지 않은데다가 국경 지대가 터키, 아제르바이잔 등 관계가 좋지 않는 나라들과 접하다 보니 분위기도 산엄하거나 험악하고 그로 인해 더욱 도시가 나타나기 어려운 이유도 있다. 다만 이란과는 사이가 좋다보니 이란과 접하는 곳은 예외이다.


2.28. 아제르바이잔[편집]


나흐츠반은 아제르바이잔의 영토이지만 아르메니아를 사이에 두고 격리되어 있는 월경지라서 그런지 아제르바이잔 본토 지역과는 지역갈등이 존재하고 있다. 나흐츠반이 터키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보니 나흐츠반 주민들 중에서는 나흐츠반이 터키령이 되길 바라는 이들도 있으며, 마침 터키는 아제르바이잔의 우방국이기도 하지만, 정작 아제르바이잔 본토인들은 나흐츠반이 다른 나라의 영토가 되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는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아르메니아의 침공으로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상실한 역사 때문에[19] 자국 영토가 외세에 넘어가는 것 자체에 엄청난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제르바이잔은 수니파가 주류인 터키와 달리 시아파가 주류라서 양국의 보수적인 무슬림들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데, 오스만 제국 말기에는 시아파의 분파인 알레비파가 극심한 박해를 받기까지 했다. 그리고 나흐츠반이 아제르바이잔의 전임 대통령 헤이다르 알리예프의 고향인지라 아들인 일함 알리예프가 이끄는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기를 쓰고 나흐츠반을 지키려 하는 상황이다.


2.29. 조지아[편집]


조지아 국민들 대다수가 반러 성향이 강한 것과 달리 아자리야 주민들은 친러 성향이 강해서 이 점에서 갈등이 있다. 그리고 혈통상으로만 놓고 보면 양쪽 모두 조지아계이지만 조지아 본토인들이 그냥 조지아인인 반면 아자리야 주민들은 조지아 제민족 중 하나인 아자르인이 대다수다. 그래서 내전까지 일어난 끝에 아자리야가 자치 공화국 지위를 얻어낼 수 있었다.
  • 조지아 서부 VS 조지아 동부
전자가 동유럽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반면 후자는 페르시아의 지배에 따른 영향으로 페르시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러한 문화적 차이로 인해 지역감정이 있다.


2.30. 카자흐스탄[편집]


  • 카자흐스탄 남부 VS 카자흐스탄 북부※
카자흐스탄의 백인들 대다수는 러시아 제국이나 소련 시절에 이주해온 러시아인[20]의 후손인데, 특히 소련의 대기근으로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카자흐인 인구가 급감하자 러시아인들이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카자흐스탄으로 대거 이주되면서 카자흐스탄은 한때 러시아인 인구가 카자흐인 인구를 추월하기도 했다. 카자흐스탄이 독립한 현재도 카자흐스탄 북부는 카자흐스탄 남부에 비해 러시아인 인구가 많으며, 이것이 카자흐스탄 남부와 북부의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오죽하면 카자흐스탄의 수도가 카자흐스탄 남부의 알마티에서 카자흐스탄 중앙의 아스타나로 천도될 정도.


2.31. 네팔[편집]


  • 남부 평야지역 VS 북부 히말라야 산맥지역※
같은 네팔의 영토이지만 인도와 국경을 접한 네팔 남부의 평야지역는 문화, 인종적으로 아리안계 북부 인도인과 유사한 인도유럽어족의 백인계 민족들이 많고 종교도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믿는데 비해, 히말라야 산맥이 위치한 북부 지역은 티베트계 황인족의 비율이 높고 종교도 티베트 불교를 신봉하는 등 지리, 민족, 종교적으로도 매우 상이하다.


2.32. 동티모르[편집]


  • 오에쿠시 지역 VS 동티모르 본토※
티모르 섬 북서부에 위치한 오에쿠시 지역은 현재 동티모르의 영토이지만 인도네시아의 영토인 서티모르에 가로막혀 동티모르 본토와 떨어진 월경지인데다, 지역내 민족 구성도 동티모르 본토의 다수 민족인 테툼족[21]과 다른 아토니족들이 다수라 동티모르 본토와는 민족, 지리, 문화적으로 크게 상이한 지역으로 남아있다.


2.33. 아프가니스탄[편집]


모두 아프가니스탄에 속해있지만 북부는 타지크, 하자라, 우즈베크인 등이 주류를 이루는데 비해, 남부 지역은 파슈툰인들이 다수를 차지하며 파슈툰과 기타 아프간내 소수민족들의 대립과 경쟁은 지금까지도 내전과 내분을 일으킬 정도로 현재 진행형이다.


2.34. 예멘[편집]


  • 예멘 북부(구 북예멘 지역) vs 예멘 남부(구 남예멘 지역)
1990년 북예멘남예멘통일을 이뤘으나, 1994년 예멘 내전으로 남예멘이 다시 분리독립하였다가 북예멘에 의해 제압되었다. 현재 예멘에선 남예멘 독립을 목표로 한 남부과도위원회라는 분리주의 조직이 활동하고 있다.


2.35. 팔레스타인[편집]


가자 지구는 이집트인에 더 가깝고, 서안 지구는 요르단과 더 비슷하다보니 팔레스타인인이더라도 갈등이 심각하며 파타-하마스 분쟁으로 관계가 더 안 좋아졌다.

[1] 베트남의 다수 민족인 킨족의 남진 이전까지 남부 지역은 참파족과 캄보디아의 영역권에 속해있었다.[2] 그래서 호치민 현지에서 이 도시 이름을 호치민이라고 부르면 시민들이 "여긴 호치민이 아니고 사이공이야!!!"라고 화를 내며 정정해준다(...).[3] 바하루딘 유숩 하비비는 제외. 이 쪽은 술라웨시 섬 출신이다.[4] 중국인 중심이라 싱가포르와도 비교되는 피낭도 무슬림이 대부분이다.[5] 브루나이가 말레이시아에 가입하려다 만 것도 이 때문이다.[6] 정확히는 브루나이계 말레이인으로, 서부의 말레이인들과는 문화적으로 같지만 엄연히 다른 민족이다.[7] 보르네오 지역 원주민은 계통적으로는 말레이인보다는 저 멀리 마다가스카르 쪽에 더 가깝다.[8] 참고로 사라왁은 나라 전체의 여당인 UMNO가 유일하게 진입하지 않은 지역이다. 물론 친여 성향의 정당이 존재하긴 하지만.[9] 근데 이건 대한민국에서도 흔하다.[10] 사라왁 방언은 마치 한국어의 제주도 방언처럼 표준어와 너무 차이가 나서, 외부인이 알아들을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긴 하다. 대표적인 동부 방언을 보면, 말 끝에 'bah'를 붙이고, o가 u로 바뀌거나 e가 i로 바뀌는 현상이 일어난다. 반면 서부 방언의 경우는 단어를 끝내는 a나 ah가 e로 바뀌고, 'mahu'와 'cuba' 대신에 'nak'을 쓴다. 그리고 영어를 많이 섞어 써 인칭대명사는 걍 영어를 쓰고, 외부인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문법을 아주 망가뜨린 슬랭을 많이 사용한다. 본래 이는 동부 방언은 브루나이 방언에서, 서부 방언은 믈라카 방언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지만, 한국말로 따지면 동부 방언은 쉽게 말해서 남부 지방 방언이고, 서부 방언은 걍 북한말이다.[11] 반대로 중국계가 다수이고 말레이계가 최대 소수민족인 싱가포르에서는 외국인들이 말레이계들에게 중국어를 쓰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12] 중국 홍콩의 영주권과 비슷함.[13] 남한이 생각하는 북한 정권과 같은 격.[14]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미 이전부터 피낭 자체를 하나의 도시로 여겼다.[15] 노동자와 하층민들을 제외한 프놈펜 시민들 특히 중상류층과 식자층들이 크메르 루주에 의해 농촌으로 강제이주당하거나 뚜올쓸라엥 수용소로 끌려가 학살, 고문당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16] 그러나 요르단은 아예 극단적인 이슬람 율법에 의거해 절도범죄자의 손목, 손가락을 절단해버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달리 절도범에 대한 형벌도 징역형과 벌금형으로 처벌한다.[17] 결국 이들의 갈등은 시리아 내전의 원인이 되며, 현 시리아 대통령인 바샤르 알 아사드의 아버지인 하페즈 알 아사드 역시 서부 지역 시아파 무슬림 출신이었다.[18] 페르시아가 이란계에 속하지만 이란계 = 페르시아인은 아니다. 또한 이란계라도 서북이란계(주로 쿠르드족, 발루치족), 서남이란계(페르시아인), 동남이란계(파슈툰족), 동북이란계(오세트족)로 분류되어 있다. 참고로 같은 혈통인 이란 역시 아리안의 나라라는 뜻의 이란으로 국명을 바꾼 것도 페르시아인을 비롯한 여러 이란계 민족들이 거주했고, 페르시아인은 이란계 중 대표적인 일부 이란계 민족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19] 물론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다시 되찾긴 했다.[20] 물론 러시아인 뿐만 아니라 독일계 러시아인, 폴란드계 러시아인, 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 타타르인 등 다른 백인 민족들도 이주해왔다.[21] 동티모르 본토에도 테툼족 이외에 다른 소수민족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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