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지스와프 벡신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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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dzisław Beksiński[1]
(1929년 2월 24일~ 2005년 2월 21일)

1. 개요
2. 일생
3. 작품 세계



1. 개요[편집]


폴란드의 초현실주의 화가, 사진가, 조각가이다.


2. 일생[편집]


폴란드 제2공화국 남동부의 사노크(Sanok)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대부분을 2차대전을 거치며 암울하게 보냈다. 크라쿠프(Kraków)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1955년 사녹으로 돌아와 건축현장 감독 일을 했다. 몇 년을 그렇게 지낸 후 건축설계에 대한 압박감과 지겨움으로 건축을 그만두고 예술 작업을 시작했다.

1977년, 바르샤바로 이사하면서 많은 그림들을 뒷뜰에서 손수 태웠다. 너무 사적이고 맘에 들지 않아서 그랬다고. 심지어 설명이나 그림에 대한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말년에는 서방에도 이름을 알린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고, 화풍도 '환상적인 기간'과 좀 달라졌다. 작품들은 조형성이 강조되고 배경도 없어지고 색도 많이 쓰지 않았다. 이때 남긴 본인의 말에 따르면 배경을 극단적으로 제거하고 형태, 빛, 그림자도 왜곡시켜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년에는 나쁜 일의 연속이었다. 1998년에 아내 조피아 헬레나 벡신스카(Zofia Helena Beksińska)[2]가 향년 70세로 죽었고 이듬해 99년에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들 토마시(Tomasz)가 자살했다. 특히 현장을 직접 목격했기에 벡신스키는 죽을 때까지 이 충격에서 돌아오지 못했고 스스로도 삶에 비관해 미리 유서까지 준비했다. 결국 2005년 2월 21일, 76세가 되었을때 자신의 생일 사흘 전에 바르샤바의 아파트에서 오랜 지인의 아들과 친척인 십대 2명에게 살해당했다. 17번이나 칼에 찔렸는데 이 중 2개가 치명상이었다. 범인 중 한 명에게 돈 수백 즈워티[3]를 빌려주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범인들은 범행을 저지른 뒤 도주했다가 폴란드 경찰의 추적으로 모두 체포되었다. 재판에서 범인 로베르트 쿠피에츠(Robert Kupiec)에게는 25년형, 공범 우카시 쿠피에츠(Łukasz Kupiec)에게는 5년형이 선고되었다. [4]

그림들이 독특하다 보니 인터넷에서는 그의 작품들이 '우울증 걸린 사람이 그린 그림', '자살한 사람이 그린 그림' 등으로 알려졌다. 정작 벡신스키 본인은 꽤 유쾌하고 대화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다만 좀 부끄럼을 많이 탔는지 외출을 꺼리고, 전시회나 박물관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3. 작품 세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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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신스키 스스로는 자기 작품을 바로크고딕으로 정의했는데, 일반적으로는 누구나가 그렇듯이 초현실주의라고 평가받는다. 다만 전문분야에서는 벡신스키와 그를 따르는 유파들을 환시미술이라 일컫는다.

초기에는 건축가로 활동하며 취미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그림들처럼 빛과 그림자가 과장된 사진 작품이 많고, 얼굴이 뜯긴 인형이라든가 하는 음침한 피사체들이었다. 이후 추상화로 종목을 바꾸고 1960년대 쯤에 환시미술로 갈아탔다. 회화를 전문적으로 배운적은 없지만 건축일을 했던 특성상 일과 어느정도 연관이있을것으로 추정된다. 보통 카드보드에 유화로 그렸다. 아크릴 물감도 종종 썼다고 한다.

조용한 것을 싫어해서 작업 중에는 항상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았다고 한다. 록 음악도 좋아했다고 하며, 음악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1958년, 비평가들로부터 그의 작업들이 호평을 받기 시작한다. 1964년 연 개인전이 성공하며 현대 폴란드 예술계에서 우뚝 서게 되었다. 1960년대 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그 스스로가 '환상적인 기간(Fantastic Period)'이라 부른 이때에 우리가 아는 많은 작품들을 그렸다.

그림들 대부분이 매우 황량하고 음침한 분위기를 띈다. 공포감마저 불러일으키는 통에 세간에서 많은 오해를 사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그의 그림을 두고 '세 번 보면 죽는 그림'과 같은 도시전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다만 정작 본인은 자기 그림들이 긍정적이고 유쾌했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꿈'을 그렸다고. 그의 작품에는 모조리 제목이 없는데, 이는 화가 자신도 그림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뜻을 찾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의 특징이라면 인체의 활용. 거의 모든 그림에 인간이 등장하는데, 절대 멀쩡한 인간은 등장하지 않는다. 등장하는 인간은 깡마르고 죽었는지 아닌지 분간이 안 가는 상태의 모습이며(딱 절멸수용소의 유대인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된다.) 주로 한 덩이의 무언가(건물, 가구, 거대한 인간 등 다양하다)로 합쳐지고 있다. 그 외에도 건물 등이 인간의 형상을 띈다. 한편 이와 대조되는 고요하고도 웅장한 배경이 자주 그려지는데, 고딕풍의 건축물과 곡선적인 인간이 합쳐지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기괴함을 선사한다. 딱 그로테스크, 프롬 소프트웨어의 게임들에서 접할 법한 분위기이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지면 어느 순간 어딘가 초현실적인 편안함과 차분함을 선사한다. 이 때문에 몇몇 작품은 유사하게 그로테스크한 작품이 많은 H. R. 기거와 혼동되기도 하였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Untitled_painting_by_Zdzislaw_Beksinski_1984.jpg
후기작.

1990년대부터는 디지털 열풍이 붊에 따라 시대의 조류에 맞춰 포토샵 작업을 시도했는데, 인체와 무생물을 이어붙이는 그로테스크 기법은 여전했다. 이 시기 그의 작품들은 그의 팬들 사이에서 가장 호불호가 심히 갈리는데, 결국 그도 이러한 기법이 자신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2000년대에는 기존의 작풍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작풍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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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ˈzd͡ʑiswaf bɛkˈɕiɲskʲi\][2] 혼전성은 '스탄키에비치(Stankiewicz)'.[3] 미국 돈으로 치면 100달러이다.[4] 성을 보면 알겠지만 둘은 형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