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권법/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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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비판에 앞서 주의할 점
2.1. 전통 무술 보편의 문제
2.2. 인간에 대한 존중
2.3. 시범, 연출용 액션과 무술 동작의 차이
3. 전통 무술의 특성
3.1. 무술의 역사: 무기술의 몸동작 재현
3.2. 싸움의 간합과 중국무술의 퇴보
3.3. 투박한 신체 단련법
3.4. 단전, 등의 기묘한 개념
3.5. 형(形)과 투로(套路) 위주의 기술 훈련
3.6. 폐쇄적인 전수 시스템
3.6.1. 비전(秘傳)
3.7. 고수 전설?
4. 현대의 중국무술
4.1. 도장 등록 가격
4.2. 실전에 적용된 형태
4.3. 기격, 대련이 활성화된 경우
4.3.1. 응용 사례
4.4. 중국권법의 정체성이라는 허상
4.5. 단상: 척계광의 지적
4.6. 중국의 무술 어그로꾼과 쇼 비즈니스
4.7. 중국 무술 내 무기술의 퇴보
4.7.1. 무기를 건드릴 수 없었던 청 말기 민간무술
4.7.2. 군용 무술, 민간용 무술, 그리고 쇼 비즈니스 유사무술
4.7.3. 중국 무기술의 현주소
5. 새로운 시대에서의 가능성
5.1. 맨손
5.2. 무기술
5.2.1. 서양에서의 해법
5.2.1.1. 실전을 추구하는 파
5.2.1.2. 실전을 추구하지 않는 파



1. 개요[편집]


들어가기에 앞서서 다음 내용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중국무술은 왜 실전에 약한가[1]
전통권의 기술적 쇠퇴
중국무술의 실전성에 관한, 중국의 유명 격투기 선수, 무술 배우들 인터뷰(중국어로 [路] 영상)

결론부터 말하면 현대 중국권법의 대부분은 맨손격투와 무기술에서의 실전성 모두 제대로 된 실전과 거리가 멀다.

1. 해당 무술 측에서 실전성 있는 파이터의 양성, 실전을 염두에 둔 훈련법을 크게 지향하지도 않고
2. 생각 있는 수련자들은 실전성이 별로 없음을 쿨하게 인정하고 훈련법을 개선하거나 아예 양생공을 지향한다.
3. 생각 없는 수련자나 각종 판타지 마케팅에서 여전히 중국무술의 실전비법 등을 홍보하기는 하나, 그건 누가 봐도 쇼 비즈니스인 게 뻔하다.

중국무술 포함 전통 무술은 과거의 비과학적인 훈련법과 기술체계를 전통이라는 이유 때문에 유지해 왔으며, 그걸 얼마냐 바꿔나갔는지가 무술 별로 다를 뿐이다. 실랏의 코코넛 격파 같은 것도 그렇고, 무에타이도 한동안 바나나나무 걷어차기로 유명했다. 그래서 옛날 색채가 많이 남은 전통 무술일수록 현대 무술과 비교하기 힘들며, 무술이 세계화, 현대화될수록 훈련 방법 및 도장 풍경도 변해간다.

복싱주짓수무에타이 등 과거에 개발되었으나, 현대에 와서 실전성을 인정받은 무술들은 한번씩 대격변을 겪었다.[2] 스포츠과학, 안면타격을 가능케 하는 훈련도구, 다른 무술과의 교류 등을 겪고 그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보편화되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중국권법의 대부분은 시대상으로 무아이보란이나 오키나와 테, 스모 등과 같이 고전적인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근접전투로 실전을 빈번하게 치르던 시대의 "병법"과도 다른 과도기의 형태이다. 비유하자면 중국권법이 청나라 말기, 서양식 머스킷과 단발소총이 넘어오던 시절에 잔류한 화승총 사격술이라면 현대 복싱이나 주짓수는 각각 소총/사격술, 권총/사격술과 같은 현대화 다 된 종목이고, 그걸 다 합친 MMA는 거의 각개전투 전술 수준이라 보면 된다. 청나라 내부의 병법만 가지고 비교하더라도, 만주 팔기군이 무쌍을 찍고 한족 보병대도 거기에 한몫하던 전성기 병법이 아니라, 아편전쟁 이후로 오락가락하던 시절의 청 말기 민간에서 성행하던 병법이라 볼 수 있다.

청나라 당대의 숙련된 군관도 아니고 21세기에 청나라 화승총술 복원하려는 대부분은 방구석 멸치 또는 돼지일힙스터가 현대 직업군인이랑 사격 대회나 서바이벌 게임 등으로 붙으면 당연히 직업군인이 사격솜씨도 훨씬 좋을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화승총이 퇴보하던 시절의 의례화된 사격술이라면, 화승총을 갖고 진지하게 전투를 고려하던 청조 초기 직업군인과 똑같은 총을 가지고 붙어도 간당간당할 것이다. 청나라 FM대로 사격술을 수련해서 장거리 표적 만발 낼 수 있으면 그 사람이 대단한 것이며, 청나라 군용 FM(병법)이 아닌 민간 사짜 도교 주술비방을 가지고도 그럴 수 있으면 더더욱 대단한 것이다. 어찌저찌 자료들을 수합해 명, 청대 화승총 사격술을 복원하는 연구는 할 수 있겠지만 지금 "청대 화승총 사격술"이란 이름으로 팔리는 것들은 그 연구자료와도 상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금 실전을 고려하고 타 무술과 교류하거나 산타, MMA 대회에 나가거나, 호구를 갖추고 무기술 대련을 하는 전통권'사'들은 볼 수 있지만, 권법 시스템 절대다수는 이런 개별 권사들을 키워주는 걸 지향하지 않는다. 아예 중국 무술에서는 실전이 더 이상 중요한 목표가 아니며, 무술에 필요한 몸을 만드는 걸 더 중시한다고 솔직하게 입장을 밝히는 우슈 관장도 있다. 사려깊은 사람이라면 전통권에 애정을 갖더라도 없는 건 없다고 인정하며, 이건 비단 중국무술만이 아니라 대부분 지역의 전통무술도 해당되는 사항이다. 중국무술을 오랫동안 한 이들도 격투시합에 나갈거면 킥복싱이나 우슈산타를 배우라고 한다. 관점에 따라서는 그냥 우슈산타가 ‘실전’을 집어넣은 중국무술의 한 분파이자 훈련법이기도 하므로, 중국무술식 실전이 궁금하다면 그 쪽을 보는 것도 방법이다.

그나마 (동작을 제한하고 스포츠 형태로라도) 자유경쟁을 늘리는 또 다른 분야로는 자유 추수 대회가 있는데, 이 쪽은 중국어, 중국 문화에 능통하지 않으면 접하기가 아무래도 힘들다. 태극권 기법을 MMA에서 해석하는 백상헌 관장 등은 이 쪽 계통이다. 아무 배경지식 없이 보자면 그레코로만 레슬링과 구분이 힘들기도 하고, 실제로 추수 종목이 자유대련이 가능한 것도 말하자면 그래플링 룰로 붙자고 룰을 정했기 때문이다. 이것도 결국 해당 수련자가 중국무술 스타일을 버리고 레슬링이나 무에타이, 주짓수를 베껴 쓰는 것인지, 중국권법의 철학과 몸놀림을 갖고 그래플링을 하는 건지는 중국권법과 레슬링(포함 현대화 무술)을 둘 다 능통하게 아는 심판이나 지도자가 판정해줘야 하는만큼, 쉽사리 접근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2. 비판에 앞서 주의할 점[편집]


비판과 비난은 구분해야 한다. 무도 및 투기스포츠에도 스포츠맨십이 있는 건 당연하며, 중국무술에 대한 일방적인 옹호 또는 일방적인 비난이 아닌 비교할 수 있는 것들끼리의 비교, 건전타당한 근거에 따른 비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말로 장풍이나 기공점혈술 같은 게 돈 받고 팔리던 쌍팔년도라면 모를까, 현대에는 그런 이상한 기법 같은 건 없고, 실전성 있는 격투기/무술 체계는 몸 만들기, 멘탈 만들기, 스파링, 기술 연습, 스포츠맨십과 매너, 스포츠 과학적인 훈련체계 등등 여러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굴러간다는 걸 바보가 아닌 이상(...) 이해할 것이다. 따라서 본 문서의 내용도 중국권법은 저 합리적인 시스템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일부는 문화 컨텐츠 등 무술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풀어서 말하는 것이다.

2.1. 전통 무술 보편의 문제[편집]


과거 일본 문화를 접할 기회가 적고 중국 외 타지 무술을 접할 기회가 적었던 한국 기준에서야 중국 무술이 전통무술의 대표주자인 것처럼 취급되지, 일본, 중국, 동남아, 서양 가리지 않고 세계 각지의 전통무술은 본 문서에서 말하는 문제 및 딜레마에 봉착한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도 그걸 극복하기 위해 노력중이거나 아예 포기하고 일부 기능을 퇴화시킨 바 있다. 막말로 서양 커뮤니티나 격투기 채널 등에서는 본 문서에서 오가는 것 같은 이야기가 중국 무술보다는 일본의 아이키도에 대해서 아주 열렬히 오간다. 그들이 자주 접했으며 MMA 환경에는 맞지 않고 한때 거품도 끼었던 동양 무술의 이미지엔 일본 아이키도가 딱 맞는 것이다.[3]

20세기 내내 오리엔탈리즘으로 뻥튀기되었던 장삿속이 꺼지면서 그 허실에 대한 비판을 받은 건 일본의 아이키도나 고류 검술 역시 마찬가지이며, 서양 검술 복원계 역시 대회가 검리를 무시히고 이루어진다는 비판이 나오거나, 반대로 검리를 엄격히 준수하려는 보수적 단체들에 대련이 부족해 실전감각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오는 등, 본 문서의 중국무술에 대한 비판과 똑같은 설전이 오간다. 당장 같은 대동류 합기유술 관련 정보를 찾아도 한국 컨텐츠로는 태도도 열려있고 검증에도 적극적인 지도자들이 나오는 반면, 영미권에서 조리돌림당하는 영상을 보면 관장 한 명을 위해 ‘받기’들이 지나친 접대성 플레이(…)를 하거나 힘의 흐름을 보여준답시고 서너 명이 노인 앞에서 오버를 하는 등, 누가 봐도 이상한 케이스들도 그대로 볼 수 있다. 결국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듯이 케이스 바이 케이스 문제도 있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중국무술 내에도 무술의 전투적 성격을 되찾고자 대련, 스파링을 늘리고 옛날 기법을 해설하려 노력하는 지도자도 있고, 아예 실전 안 건드리고 문화 컨텐츠로 남아있겠다는 지도자도 있고, 허무맹랑한 사기를 치는 지도자도 있다. 이는 비중과 정도가 다를 뿐 일본 무술, 동남아 무술 등에서도 다 일어나는 일이다.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될 정도로 국제 룰이 하나 정해진 무술이 아닌 이상 전부 겪는 진통이며, 그나마 국제 룰이 정해진 무술 역시도 그 역사가 순탄치는 않았다.

2.2. 인간에 대한 존중[편집]


중국권법 사기꾼들을 두드려패는 걸로 유명한 쉬샤오둥조차도 공과 사, 스포츠맨십 준수가 철저한 사람이다. 자신이 오해했다는 걸 알았을 땐 인정하며 사과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밀며 시비를 거는 권사들에게야 거칠게 나갔지만 그 외의 무도인들에게 먼저 들이박는 성격은 아니다. 객관적으로 허술한 점도 많고 허풍도 많이 떨고 논란을 많이 일으킨 유대경을 보고도 “양민학살엔 좋지만 숙련자한텐 안 먹히겠는데?” 리는 짤막한 코멘트 외에는 딱히 강경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 유대경 측에서 시비를 거는 대신 친선경기를 하자는 온건한 태도로 나왔기 때문이다.

쉬샤오둥도 그렇고, 여타 실력이 검증된 무도가, 격투가에 대해서도 그렇고, 당사자들이 열 내고 싸워서 이기려는 의지가 넘치는 게 아닌 이상, 제 3자(특히 “누가누가 더 셀까?” 같은 말초적인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가 어거지로 싸움을 붙이려 들고 누구는 누구를 발라버릴 것이다 하고 바람잡는 짓은 사람을 투계, 투견 취급하는 행위이다. 쉬샤오둥에게 얻어맞은 무술가들은 자기가 나서서 매너를 내다버리고 싸움개 수준으로 거칠게 굴었기에 거칠게 얻어맞은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렇게 빤쓰 내리고 매너없이 구는 상대가 아닌 이상 굳이 상대보다 못한 짓거리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멀쩡하게 잘 지내는 사람들을 경우 없이 수준 이하의 양아치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둘 모두에게 무례한 처사다.

결국 개별 무술가들을 무례하게 뉘 집 개처럼 호명하는 대신, 오로지 해당 무술의 체육학적, 역사적 가치나 특징들을 잘 알고 그걸 기반으로 타당한 비판을 가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유치한 인신공격으로 나가자면 생산적인 논의는 이루어질 수 없다.

정말로 허례허식이고 뭐고 신경쓰지 않고 상대방을 박살내는 무술 고수 내지는 검증가가 정말 없는 건 아니었다. 일도류에 한 획을 그은 오노 타다아키는 전시 평시 가리지 않고 진검으로 적군 베어죽이고 목검으로 사람 불구 되도록 때려죽이는 걸로 실전에서의 자기 실력을 증명했다. 하지만 그 성격 때문에 타다아키는 귀양도 몇 번 갔고, 동시대의 비슷한 실력자들에 비해선 검소한 삶을 살다 간 데다 무엇보다 본인이 그러한 대접에는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 에도 막부의 개역 처분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사무라이를 평민으로 만들어버리는 건데, 한국사로 쳐도 양반을 그냥 상민으로 만들어버리는 처사다. 보통은 한 번만 당해도 인생 종치는 것인데, 타다아키가 특이한 인물이라 회생한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 프로레슬링식 ’잡‘을 해주지 않고 기무라 마사히코를 무참히 두드려팬 역도산이 있는데, 이 사건 이후로 경호원을 대동하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결국(기무라 사건과도 상관없이) 별 거 없는 야쿠자 조직원과 시비 붙은 끝에 칼침을 맞고 죽었다.

2.3. 시범, 연출용 액션과 무술 동작의 차이[편집]


중국무술이 유독 영화 등 대중매체에 많이 노출되어서 생기는 문제로, 영화나 시범에서 보이는 모습만이 해당 무술의 전부라 전제하고, 전통권 특징을 섞어서 싸우는 사람들더러 “중국무술의 동작을 안 쓴다”고 속단하는 케이스를 자주 볼 수 있다. 이는 중국권법뿐만 아니라 여타 (비교적)마이너 무술들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가지는 오해 중 하나다.[4]

비극적이게도, 반대로 중국무술 포함 전 세계 무술에 열려있는 사람이 ”이것 보세요, 모 권법의 이런 수가 무에타이 경기에서 나왔어요“ 하고 신선한 해석을 들고 와도, 오히려 중국무술 옹호자가 저건 중국무술이 아니라며 땅굴을 파고 숨어버리는 경우도 많다.[5]

딱 잘라 말하자면 자유대련 및 경기에서 시범과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무술은 극히 드물다. 격투기 시합에서도 교과서적인 KO가 나오거나 승점이 안 나더라도 군더더기 없는 기술이 오가면 하이라이트로 찍히고 몇 년간 회자되는 건 그게 희귀하고 멋진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해당 기술의 모체가 된 종목(예컨대 태권도, 유도 등)이 아무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

세상 모든 무술이 실전에서는 다소 거칠고 불안정한 상황을 통제하며 자신들의 기술을 집어넣거나 유도하려는 경향을 띠므로, 당연히 중국무술에 대해서도 거칠고 복잡한 싸움 도중에 자신들의 개성있는 기술을 펼칠 수 있느냐, 그런 기술을 펼치는 파이터를 양성할 수 있느냐를 따지는 것이 타당하다. 현대 중국권법이 미진한 지점은 이렇게 움찔대다가도 거칠게나마 기술 박아넣고 자신만의 개성을 펼치는 파이터를 잘 키우지 못한다는 점이지, 영화같은 기술을 못 펼치고 움찔댄다는 점이 아니다.

당장 펜싱이나 검도 경기만 봐도 칼싸움 수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긴박하게 칼 떨고 사거리 재는 심리전 속에서도 무슨 기술이 오갔는지 눈에 보이지만, 일반인 입장에서는 슬로우 모션이 없으면 뭐가 오갔는지 잘 보이지 않기도 하거니와, 그냥 선수들 움찔대는 모습이 영화 속 멋진 모습과 다르다고 실망하는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이는 현대에 ’실전성‘이 차고 넘친다고 검증된 무술에도 가끔 가해지는 억지 비난이다. 복서들끼리 무슨 장애 있는 것마냥 움찔대거나 껴안는다거나, 주짓떼로들은 무슨 게이라서 바닥에 눕는 거냐던가 하는 비난이다. 당연히 해당 종목들은 세계 각지의 전통권보다는 자신들의 개성을 지키면서도 투기 종목에서도, 길바닥이나 경찰 출동 현장 등에서도 잘 싸우는 사람을 만드는 데 기여해 왔다. 저런 소리를 듣는 선수나 수련자들이 유치한 사람들에게 신경성 장애를 하나 더 만들어주거나 발목 방향을 바꿔주지 않는 건 법과 도덕 덕분이다.

무엇보다도 스파링이나 경기에서 오가는 공방이 특정 중국무술의 방법론이나 기술에 잘 들어맞는지 판정하려면 해당 무술에 대한 이해와 격투(최소 타격이니 그래플링 둘 중 하나, 또는 아예 무기술)에 대한 이해가 동시에 갖추어져야 한다. 그래야 눈 앞에 보이는 동작이 다소 거칠게 실전에 적용된 중국무술 동작인지, 여타 격투기 및 무술에서 빌려온 동작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이걸 판단할 수 있는 격투기, 무술 선구안 없이 단정하는 건 구구단을 못하는 사람이 뉴턴 물리학에서 오류를 발견했다고 단정하는 꼴이다.

3. 전통 무술의 특성[편집]



3.1. 무술의 역사: 무기술의 몸동작 재현[편집]


무술, 즉 싸움에 쓰이는 기술체계는 대부분 무기술을 포함해 왔다. 석기시대부터 막대기와 돌을 사용한 게 인류이니 당연하다. 무기의 리치를 살려 적을 쳐서 끝장낼 수 있으면 좋은 일이고, 한 방에 제대로 끝장내지 못한 상황을 위해, 또는 무기가 휘둘러지는 원리와 간격을 연습하기 위해, 또는 올림피아 제전이나 권투사 경기 등의 무기 없는 대결 및 신체단련을 위해, 또는 무기가 정말 거지같은 흙수저 전사들을 위해(...)[6] 맨몸도 무기처럼 활용하는 걸 지향했다.

결국 전근대 무술에서의 맨몸철학은 현대 격투기처럼 효율적이기보다는 해당 무술의 철학이나 컨셉에 충실한 방향으로 발달했다. 예컨대 독일 리히테나워 무술은 상대와 나의 팔과 무기를 얽어버려서 공격 주도권을 잡고 안전하게 공격하는 걸 지향했고, 이탈리아 피오레 무술은 중거리에서 팔을 얽기보단 아예 원거리에서 사타구니를 차거나 아예 순식간에 붙어서 태클 걸고 단검으로 찌르는 걸 선호했다. 일본의 아이키도 및 그 원류 유술도 결국 와키자시를 박아넣기 위해 상대의 팔을 묶는 데 최대한 집중하지, 굳이 펀치나 킥을 막거나 피하거나 가하는 데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오키나와 테실랏의 정권지르기는 맨몸 동작이라 치면 허술해 보이지만 손에 카람빗이나 톤파만 들면 그럴듯한 공격이 된다.

현대 기준으로는 킥과 펀치 공방 개념이 부족한 이빨 빠진 무술로 보일 수 있지만 당대 사람들은 맨몸만으로 전천후 전투를 할 필요가 없다 생각했다. 킥이나 펀치 사거리에서는 연장 꺼내서 쑤시거나, 아예 레슬링식 태클을 시도한 다음 눕혀놓고 연장으로 쑤시면 된다 보았기 때문이다. 맨손 무술은 맨몸 스포츠의 형식(씨름, 올림피아 레슬링, 부흐 등)이 아니라면 무기 쓰는 무술의 교양과목 내지는 간합 꼬였을 때의 변칙기로서 존속했다.

이런 이유로 중국권법을 비롯한 전세계의 모든 전통무술들은 타격기와 유술기를 병행하는 특징이 있다.[7] 즉, 상대를 바닥에 엎어놓고 창, 칼로 찔러죽이거나, 격투기에서의 클린치처럼 간합 내에서 서로 꼬였을 때 내 창,칼을 제대로 써서 상대를 이기는 법을 고민했다.

근대에 스포츠맨십에 입각한 격투 스포츠가 등장하며 맨손 무술이 효율성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시대가 흐르며 대부분의 무술은 룰의 제약을 받거나 상업화되되 자유 대련이 가능한 프로 스포츠에 가까워졌고, 이 과정에서 무기의 몸놀림과 관계없이 맨몸만으로 효율적으로 싸우는 방법, 반대로 유술기를 생각하지 않고 무기만으로 효율적으로 결투하는 방법이 따로 발달했다. 검도가는 접근 당했다고 해서 바로 유술로 땅에 내려꽂힐 걸 걱정하지 않고 죽도를 비비며 코등이 싸움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복서는 상대가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거나 태클을 걸지 않을까 걱정할 것 없이 두 손으로 상대를 잘 때리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전근대와 달리 결국 사람 간 목숨 건 싸움 대부분이 총질로 끝나다보니, '스포츠'로서 분화된 무술을 수련하는 게 더 전문화되었다. 검술 역시 다루는 칼이 간소화되며 더욱 가볍고 검도시합의 양상 역시 맨손격투와 유사해졌다.

그 시절 맨손 무술에서는 안면 타격이 별로 중요시되지 않았다. 이는 맨손의 특성상 얼굴, 특히 이마나 눈 주변을 타격하다 자기 손만 다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8] 그렇기에 맨손 무술에선 '앞 손'을 내밀어 가까이 오는 것을 견제하거나 잡아 넘어뜨리는기에 집중하는데,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모습이다. 저 시절 잔뼈가 굵은 싸움꾼이 현대 격투기 선수를 만난다면 생각보다 매서운 스트레이트에 바로 KO 당할지, 반대로 옥수수 몇 개 털리는 선에서 태클이라도 성공할지는 알 수 없다. 이건 두 싸움꾼의 멘탈과 피지컬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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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의 전신인 베어너클은 여러 가지로 중국권법과 비슷했다. 앞 손을 내밀어 견제한 것도 비슷했고 붙으면 던지는 것도 비슷하다. 그래플링을 대비해 자세는 낮게 잡았고 얼굴을 때릴 땐 종권을 쓰는 등 여러 가지로 남권과 비슷했다. 하지만 규칙의 도입과 글러브의 발명으로 서로의 명암은 갈라졌다. 규칙도 장비도 없이 정상적인 대련을 하지 못한 중국권법과 달리, 복싱은 경기를 꾸준히 치르고 한 방에 상대를 넉다운시키는 머리, 상대의 흐름을 끊을 수 있는 몸통을 제대로 때리고 주먹을 피하고 막는 기법을 연구할 수 있었다.

그래플링은 반칙이었으므로 얼마든지 클린치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자 자세는 점점 높아졌고 스텝은 빨라졌다. 즉, 변수의 제한이 기술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로 손기술은 극도로 발달했으되 하체공격이나 그래플링 대비는 하지 않고 오로지 주먹을 이용한 상체 타격기술만 발달하는, 실전성으로는 꽤 기형적인 무술이 되었지만, 훗날 창시된 종합격투기가 모든 무술의 장점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권투의 손기술도 흡수해 주력으로 사용하게 되므로 종합격투기를 완성하는데 매우 큰 기여를 한 무술이 되었다.

또 유술기와 타격기가 병행되면서 거리는 유술과 타격기가 가능한 애매한 거리, 중거리를 유지하게 했다. 이런 맨손의 특징을 이해하지 않으면 전통무술을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다. 어떻게 보면 현대 MMA판에서 상대를 몰아넣거나 묶어놓고 더티복싱, 파운딩으로 두드려패는 그래플링 무술 기반 격투가들이 부분적으로 이뤄낸 게 전통 무술의 이상향이다(...). 숙련된 격투가들은 중거리에서 맞아주질 않고 아예 떨어지거나 아예 붙기 때문에 중거리 공방을 보기가 힘들다.

전통무술에서 상대방을 향해 길게 내민 앞 손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상대방이 다가오는 것을 방해하는 역할이다. 상대가 나에게 무작정 다가오면 내 앞 손이 상대를 밀어대고 억지로 들어온다고 해도 대기하던 뒤 손이 날라온다. 즉, 앞 손은 상대방을 더 이상 다가오지 않게 하는 견제기이자 방어기인 셈이다. 사실 이는 실전성이 넘치는 무에타이에서도, 가라테 기반 입식/종합격투가들에게도 일부 현역인 기술이다. 꾸준한 경기와 대련으로 갈고 닦기만 하면 기술 자체는 어디에서나 쓸 수 있다. 중국권법의 문제는 개별 기술이 아니라 갈고닦는 훈련체계의 퇴보이다.

팔극대타

태극권 추수

영춘권의 치사오

추수(推手)라는, 중국권법 특유의 훈련법[9]은 타격에 대한 고려 없이, 상대와 팔을 묶고 어떻게 공세를 이어나갈까 일종의 레슬링을 하는 기법이었다. 이렇게 팔/무기를 맞댄 상태에서 힘의 강약을 읽고 받아치는 개념 등은 동양의 무기술뿐만 아니라 서양의 무기술에도 존재한다. 롱소드 검술에서는 병기를 묶어서(Wind) 느낀다(Fuhl)한다 표현했고, 일본에서 말하는 합기(기세를 합친다)도 비슷한 소리이다. 상대 칼을 묶지 않고 움직이면 반격을 먹지만, 상대 칼을 묶은 다음 내 칼끝만 교묘하게 박아넣거나 아예 넙어뜨리면 비교적 안전하기 때문이다. 격투로 치면 레슬라이커들의 더티복싱에 가깝다.

가라테의 초창기에는 중국무술처럼 투로(카타)에 얽매여 실질적인 격투훈련은 자제되었다. 현대에도 일반 가라테 계열은 슨도메, 즉 상대방에게 직접적인 데미지를 입히지 않는 자유대련을 채택했다. 그리고 극진공수도를 위시한 개혁의 바람이 불면서 현대식 세련된 격투기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리고 극진공수도 역시 맨손을 고수하기 때문에 수기 안면타격을 금지하는 풀컨택트룰을 채택했다.

극진공수도처럼 중세-근대 권법은 안전한 도구와 규칙의 도입으로 인해 변화했다. 복싱은 권투 글러브를 통해 안면타격이 주는 위협성을 절실히 느꼈고, 레슬링은 보다 효율적인 그래플링을 만들어냈다. 게다가 이런 변화는 기술 전개를 바꾸었다. 중국권법 같은 손을 얽는 추수는 복싱의 경우 먼 거리에서 주먹을 휘둘르거나 아니면 레슬링처럼 완전히 몸을 밀착시킨 채 던지는 방식으로 대체되었다. 일본의 유술 역시 유도로 대표되는 현대식 무술로 탈바꿈되면서 타격기를 불허하였다. 이렇게 기술을 한정시키자 각 스포츠는 각자의 규칙 내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기술을 발전시켰고, 실전과 대인 타격 역량을 쉽게 키워주는 쪽으로 발달했다. 그런데 중국권법이 이 흐름에 늦게 편승해서 지금처럼 괴리가 생긴 것이다.

이러한 타 무술종목의 현실적인 발전에 비해 현대 중국무술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오랜 기간 공력을 닦아야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발상은 근현대에 와서 중국의 내전이 끝나고 무술이 군사적 의미를 잃으면서 발생한 것이다. 중국 무술이 실전성을 상실한 데에는 이런 영향이 지대했다.

3.2. 싸움의 간합과 중국무술의 퇴보[편집]


상단에 링크된 한병기의 기고문과 마찬가지로, 현재 중국권법의 맨손 테크닉 대부분은 이른바 중거리의 소드 레슬링성 기술이 대부분이라 보는 건 일견 합리적이다. 그리고 한병기의 지적대로, 만약 중국무술 특유의 간합을 살리며 실전성을 탐구하고 싶다면, 간합 컨트롤을 위해 대련을 늘리고 기술 및 기세를 개선하는 게 옳은 방향이다.

중국권법이 약했던 이유에 대해 전근대에 통용되었던 기술이 어떠했다는 계보가 자주 언급되지만, 극단적으로 말해 전근대적인 기술들은 현대에도 약간의 개량을 거쳐 주류 무술에서도 절찬리에 쓰이고 있다. 우슈산타에서는 무에타이 대회에서도 자주 나오는 클린치-스윕 테이크다운을 볼 수 있으며, 그런 테이크다운 기술들은 태극권에서 말하는 전사경 계통의 돌려서 눕히는 기술들이라 해도 말 된다. MMA 경기에서도 앞손을 팔랑거리거나 붕붕펀치 같은 오버헤드훅을 타이밍 좋게 박아서 KO를 따내는 격투가들도 있고, 레슬링/주짓수 테이크다운들은 고대 그리스 미술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기술들은 개인이 어떻게 쓰냐에 달려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중국무술의 기술이 어떠했다는 변명보다는, 무술의 훈련 시스템과 철학이 어디서부터 조져졌는지(...)를 밝히는 것이 합리적이다.

현대 중국권법, 특히 대련과 압박실험이 부족한 권사들의 문제는 결국 살아 움직이고 저항하는 상대와의 간합 싸움이 부족하다는 데에서 온다. 산타 수련자나, 전통권 수련인 중에서도 타 무술과의 스파링에 열려 있는 사람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다. 반대로 중국권법뿐만 아니라 그 세상 어떤 무술을 가져와도 사람 상대로 훈련이 덜 되면 실전에서 제대로 못 쓰는 건 마찬가지다. 극단적으로 말해 체육관에서 주짓수/무에타이를 병행하는 훌륭한 커리큘럼을 짜 줘도 수련자가 성실하지 못하면(...) 도루묵인 것이다.

문제는 지금 고착된 중국무술의 형태가 대부분 사람 상대로 싸우는 법을 알려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무술마다 원거리, 중거리, 근거리가 특기인 등, 각가 장기가 되는 간합이 있을 수는 있다. 발차기 위주 무술은 발차기 스위트 스팟만큼이 주력 사거리고, 니킥과 엘보우가 필살기라면 당연히 니킥 들어갈 클린치 거리가 주력 사거리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 싸우자면 상대가 맞아줄 리가 없으니, 사거리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주력 사거리로 쳐들어가고 상대를 주력 사거리에 묶어두는 방법을 당연히 연구해야 한다.

전근대 무술가들은 현대처럼 자유 스파링을 자주는 못 하더라도 서로에게 타점을 대주는 대타(약속 스파링), 슨도메식 자유대련, 혼자 하는 동작연습, 멘탈 및 피지컬 단련(...) 등을 섞어서 실전성을 갖추려 노력했지만, 대부분의 중국무술 체계에는 시스템상 동작연습과 전근대식 단련법"만" 남은 것이라 보면 된다. 단련법이란 것이 말이 단련법이지 스파르타의 아고게마냥 99%는 사람 병들게 만들기 딱 좋은 것이라는 것도 문제다.

여기까지는 한병기의 비판론과도 유사하지만, 한병기가 중국 무술가들이 타 무술의 사거리에 끌려간다고 걱정한 것과 달리, 진짜로 중거리라는 장점을 살리고 싶다면 타 무술의 원거리, 근거리에 대한 이해 역시 당연히 필요하다. 정상적인 무술들은 단점이 되는 사거리를 패스하고 주력 사거리에 진입하는 방법들을 연구한다.

아예 전천후로 상대방 조지기 위해 발달한 무에타이는 장거리에서는 딥과 미들킥으로, 중거리에서는 강력한 펀치와 로우킥으로, 근거리에서는 니킥과 팔굽치기, 유술 기술로 모든 사거리에서 사람을 이기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나마 중거리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하지만, 일단 장거리에서 아작을 내든 클린치로 붙어서 떡을 치든 상대적으로 불리한 중거리를 안 내 주면 그만이다. 중거리가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거지, 숙련된 낙무아이의 돌주먹이나 로우킥이 꽂히면 버틸 사람이 얼마 없다. 상대 입장에서는 원, 중, 근거리 모두 죽을 맛이 되는 것이다.

근거리 승부 보겠다 하는 레슬러들도 복싱 정도는 배워서 숙련된 타격가한테 태클 먹일 각을 보려고 노력한다. 반대로 입식 타격가들도 최소한 그라운드 방어법이나 태클 방어법 정도는 배워서 근거리에서 제압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무에타이처럼 전천후 대비하기에 좀 귀찮다 쳐도, 적어도 최대한 상대한테 안 맞으면서, 맞더라도 덜 아프게 맞고 버티면서 내 필살기 꽂으려면 어떻게 할까 대비를 한다.

무기술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로, 상대적으로 불리한 간합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전천후 간합에 대한 대비는 필요하다. 독일식 롱소드 검술이 근거리 뒷날베기를 주축으로 삼았다고 하지만, 일단 원거리에서 시원하게 머리나 손목을 베는 기술도 당당하게 있었다. 원거리부터 시원한 베기로 쳐들어가며, 만약 상대가 쓰러지지 않았을까 봐 계속 공세를 유지하며 중거리, 근거리 기술을 계속하는 게 핵심이다. 아예 상대와 내 칼이 꼬여버리게 만들고서 미묘하게 칼을 비틀어 치명타를 넣으려면 일단 원거리에서 상대 칼에 맞아 죽지를 말아야 한다. 중근거리가 장점인 검술이라도 원거리에서 근거리로 다가가는 방식도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중, 근거리에서의 화려한 공격이 장기인 필리핀의 칼리도 마찬가지로, 무기가 워낙 작아 불리하긴 하지만 원거리에서 진입각 찾기 위한 방법을 당연히 구비해서 제시하고 있다. 오히려 무기가 평균적으로 짧아, 장검을 쓰는 독일이나 일본 무술 이상으로 원거리에서 얻어맞는 걸 피하고 근거리로 다가가는 걸 연구해야 하는 입장이다. 머리 막으면서 들어가는 빠용이나 사분면 벽 세우기, 페키티의 트라이 V 3연타 등이 원거리에서 무력하게 따이지 않고 다가가기 위한 기법들이다.

칼에 살고 칼에 죽는 일본은 아예 무도를 근대화시킬 때에도 나기나타/조도(장봉)/검도/거합/맨몸무도 등 원거리 무기/근거리 무기/격투기를 다 같이 수련할 걸 은근히 권장했으며, 고류 시절에는 아예 하나의 무술체계에 저게 다 통합되어 있었다. 우리 무술은 원, 근거리는 잘 못 한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은 것이다. 원거리에서 격자부위 찌르고 베기, 중거리에서 회피하고 손목 베고 강하게 찍어서 베기, 근거리에서 와키자시로 푹 찌르거나 유술로 상대방 컨트롤하기, 기습당했을 때 상대 칼 못 뽑게 하고 내 칼 뽑기 등등은 무사라면 당연히 익혀야 했던 것이다.

제대로 된 무술이라면 불리한 간합을 벗어나 유리한 간합으로 접근하고 상대를 거기에 묶어두며 싸움을 끝내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한다. 심지어 현대의 각개전투술에서도 원거리 의탁사격, 근거리 기동사격, 수류탄 투척, 지근거리 영거리 사격 및 총검술 등등을 묶어서 고려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중국무술에 시스템적인 문제가 있다면 이 방법에 대한 고민이 크게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근본적인 결핍 때문에, 전통 중국무술은 기격에는 그다지 실용적이지 않다. 무기를 들건 안 들건 발전된 수련방법으로 기량이 상향평준화된 현대 투기스포츠를 따라가려면 그에 맞춰 현대적인 보호구와 수련방법, 규칙과 제도를 도입하고 무엇보다도 사람 대 사람으로 싸우는 간합과 박자감각을 길러줘야 한다.

이러한 필요 때문에 현대화된 중국권법 산타가 나타났다. 산타가 출범할 당시 중국정부와 민간에서 인정받은 중국의 전통권사들은 산타를 두고 "복싱에 발차기를 더하고 솔각을 더한 사불상(四不像) 잡무술"이라고 폄하하는 등, 일종의 정통성 논쟁은 있지만 산타 자체는 격투에 좀 더 효율적인 형태가 맞다.

무기술과의 관계가 깊은 것과 별개로, 중국 특유의 실전 병법 복원은 느린 편이며, 각 문파들의 무기술도 결국 민간에서, 상호 대련을 절제하고, 전쟁터에서도 별로 쓰지 않은 채로 고였다는 점에서는 맨몸 권법과 마찬가지로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오히려 서양 검술(HEMA)을 접한 중국인들이 HEMA 동호회를 만들어 유사한 방법론으로 문헌을 연구하고 일본, 조선으로 퍼져나간 군용 병법들을 비교, 대조하며 갈피를 잡고 있다. 이런 전투용 병법과 민간 권법 문파의 무술이 차이가 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3.3. 투박한 신체 단련법[편집]


과거 중국을 포함한 전세계에서는 세부적이고 보다 과학적인 신체단련법이 부족했기 때문에 신체를 단련하는 방법이 꽤 투박한 편이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푸대자루에 물건을 담아다 들어올리거나, 휘두르는 식으로 운동을 하는 삽화가 발견되는가 하면, 고대 그리스에서는 올림픽에 출전하던 레슬러 밀론(Milo of corton, Μίλων)이 살아있는 소를 들고 움직이며 신체단련을 하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외 다른 지역에서는 무거운 돌이나 바위를 들고 움직이거나, 던지는 식으로 운동을 하였는데, 중국에서는 그러한 것이 발전하여 10~20 kg짜리 돌을 던지고 받는 석쇄공이란 운동이 있었다.

오키나와 테 항목 참고.



http://v.youku.com/v_show/id_XMTE4Njg4NTky.html

케틀벨

중국의 석쇄공은 단순히 근력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시력과 반사신경이나 판단력, 감각과 체력 등 신체능력 전반을 다 쓸 수 있는 운동이었는데, 중국에서는 이 외에도 소림72예나 참장 등의 여러가지 신체단련법이 발전해왔다.

문제는 서유럽에서 1860년대부터 오이겐 산도프의 등장으로 체계적인 웨이트 트레이닝 방법이 보급되는 것을 시작으로, 과학적인 각종 신체단련법과 건강관리를 보조해주는 의학과 영양학등이 등장 및 급격하게 발전하게 되었다는 데에 있다. 중국의 신체단련법도 나름의 체계를 갖추고 발전하였으나,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발전한 신체단련법에 비해서는 비효율적이었고, 이 때문에 근래에 들면서 문제점이 부각되었다.

예컨데, 현대에는 신체를 단련하고자 하는 개인에게 부족한 부분과, 더 보강하고 싶은 목적에 맞추어 분야별로 세분화된 체력단련법을 제시해줄 수 있다. 몸에서 어느 부위의 근육량이 부족하여 더 많이 다친다거나, 지구력이나 체력, 유연성등의 이유로 더 많은 운동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이런 점을 체계적으로 진단하고, 그에 따라 보강계획을 지도하여 종합적으로 신체단련을 해줄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중국권법의 전통적인 신체단련방법과 개념을 살펴 보면, 이렇게 세밀하게 사람의 신체를 파악하여 수련을 하는 개념은 상대적으로 정립되지 않았다. 게다가 몇몇 수련은 몸을 강하게 해주기는커녕 만성적인 부상이나 질환을 유발하기 쉬웠다. 가령 소림 칠십이예의 '일지금강법(一指金剛法)'은 손가락으로 나무나 벽을 힘껏 찌르는 수련법이다. 정말로 손가락 강화효과가 있는지는 불명확한데 부상위험은 너무나 명백하다. 자칫하면 손가락이 골절되고, 손가락 관절이 영구히 손상될 수 있다.

물론 이런 기괴한 훈련방법들을 다 제외한다면, 신체전반의 균형감각이나 직접적인 운동능력, 판단력 등을 종합적으로 단련시킬 수 있는 좋은 단련법도 많이 있다. 하지만 전신운동을 포함하면서도 분야별로 집중시켜 단련을 시키는 현대적인 체력훈련법에 비해 덜 체계화되었고, 특히 운동 이후에 신체를 회복하고 영양을 보충해주는 개념이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3.4. 단전, 등의 기묘한 개념[편집]


중국의 재야단체들이 대부분 도교와 친숙했기에 그 쪽의 용어들이 많이 섞여들었다.

다소 모호하게 일컬어졌던 단전의 개념을 서양 체육계에서는 코어 머슬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일본에서도 코어 운동을 정립화하는 신체이론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이른바 아운카이(阿吽会, Aunkai)이다. 아운카이는 아쿠자와 미노루(阿久澤稔)가 만들어낸 운동으로 가라테와 산타를 연마하던 아쿠자와가 고류 무술인에게 패배한 후 그에게서 배운 신체 운용법을 재정립한 것을 의미한다. 골반의 이완과 신체의 정립을 주장하는 그의 신체 운용법은 중국무술의 신체운용을 간소화했다는 평을 들으며 국내외 많은 무술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는 코어의 이해를 통해 통해 전근대 무술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7jxip1cpPLg#t=66

과거에 단전에 쌓는다는 내공이라 불렀던 것도 몸 만드는 기본, 양생공을 통해 길러진 코어 근육, 균형감각, 근력 등을 총체적으로 칭하는 말이지, 뭐 별다른 초자연적인 게 아니다. 이걸 초자연적인 것인마냥 약 판 사람들이 문제다.

전근대적인 비유를 다 떠나더라도, 현대 격투기에서도 맞으면 바로 KO를 당하는 신체 중심선 상의 급소는 가드로 가리고, 끊임없는 풋워크와 회피기동으로 조금씩 피해서 정통으로 맞지 않게 지킨다. 또한 효율적으로 잽, 스트레이트를 칠 땐 내 중심선은 유지하면서 상대 중심선을 쥐어박는다. 심지어 대테러 기동사격술에서도 효율적으로 여러 발 쏘는 반동을 제어하고 표적 획득을 빨리 하기 위해 신체 코어의 단련과 운용을 중시한다. 이 정도로 보편적인 원리를 괜히 단전이니 내공이니 하는 표현에 집착하는 구닥다리 무술가들이 오염시킨 셈이다(...). 이소룡도 이런 사람들에 대해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면 안 된다고 디스했다.

3.5. 형(形)과 투로(套路) 위주의 기술 훈련[편집]


전근대에는 의료 기술, 안전한 훈련도구를 만들 기술 및 사회적 여유가 부족했기 때문에, 현대의 스파링과 같은 자유 대련보다는 약속훈련 및 단독 기술훈련의 비중이 높을 수 밖에 없었다.

당장 환부 소독 개념, 파상풍 예방주사, 페니실린 등은 19-20세기 동안 급격히 알려졌다. 그 전까지는 기술문명을 주도하던 서구조차 의학 분야에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그나마 무술이 존중받는 일본에서는 비교적 빠르게 후쿠로지나이 등의 훈련도구를 만들어 자유격검을 시도했다.

투로는 쉽게 말해 태권도의 품새처럼, 수련자가 각 동작의 플로우를 익힐 수 있게 여러 기술들을 쭉 이어놓은 세트이며 현재의 중국권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시스템이다. 언어로 치면 문법 연습용 구문이나 단어의 용례가 담긴 예문 같은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중국권법 중에서도 투로를 최대한 간소화하거나 아예 없앤 문파들이 세계적으로 그나마 인정받는다. 투로가 3개밖에 없는 영춘권, 억지로 투로 할 시간에 개별 기본기와 대인타격 훈련을 꾸준히 하는 대성권(의권), 아예 현대 스포츠과학으로 재편을 시도한 이소룡의 절권도가 이에 해당한다.[10] 이것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지, 의권이나 영춘권도, 심지어 절권도도 고도로 발달한 여타 투기종목보다는 갈 길이 멀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현대에 투기종목으로 발달한 무술들은 무기술, 맨몸 할 것 없이 매우 짧은 동작연결세트(전근대로 치면 투로 혹은 카타)만을 유지하고 있다. 복싱의 원투, 원원투, 원투쓱빡을 3동작짜리 단조수라고 보자면 볼 수 있으며, 원투, 원투훅, 원투더블훅 하는 일련의 연습 루틴을 복싱식 투로라고 이름 지을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 격투무술들은 혼자 연습하는 단조수를 실제 사람에게 어떻게 집어넣을지 연구하고, 사람에게 집어넣을 수 있는 동작들만 숙달하기 쉽게 짧게 끊어서 연습한다. 무엇보다 연습한 동작을 살아 움직이는 사람에게 넣기 위해 스파링과 미트웍을 한다. 이 점에서 투로, 형 연습만이 남은 권법과는 차이가 커진다.

특히 이 하나의 짧은 카타가 막혔을 때를 자유롭게 훈련한다는 게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당장 주짓수의 기본 가드 패스나 서브미션은 고단자나 힘 센 사람한테는 잘 안 먹힐 때도 많으며, 잘 안 먹힐 때를 위한 변칙 기술 연계들이 매우 다양하고 수련자들은 이걸 살아 움직이는 상대와 스파링하며 연습한다.

일단 각 문파 고유의 투로나 형은 하나의 기초훈련이었다. 실전적으로 보기에는 너무 화려하고 비실용적인 자세 및 기법이 많은데, 몸을 만들고 동작의 흐름을 익히려고 일부러 큰 동작부터 기계적으로 반복했었다. 큰 동작부터 시작해서 작은 동작으로 나아가라는 말은 형의권을 제외하면 중국무술 전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표현이다. 무에타이나 가라테 등 현대에 먹히는 무술들도 혼자서는 크게크게 연습하고, 실전에서는 동작을 짧고 빠르게 변형해서, 정확히는 실전에서 간합 변화가 워낙 불규칙해서 짧게 쓰기도 한다. 길게길게 연습한 스트레이트 동선에 상대가 어줍잖게 다가와주면 숏 블로를 상대가 알아서 맞아주는 일이므로 아주 감사할 일이다. 마찬가지로 길고 크게 빠따질하듯이 연습한 미들킥에 상대가 걸려주면 감사한 것이고, 같은 감각으로 후려친 로우킥에 휘청하거나 비틀어진 니킥에 간장을 맞으면 아주 감사할 일이다.

중국권법 여타 문파들의 시연이나 표연에 등장하는 형과 투로가 실전에서는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어야 둘 사이 차이점과 역할을 알 수 있겠지만, 이를 위해 어떤 교육이 이루어졌는지는 근, 현대에 죄다 실전되어서 알기 힘들다. 중국에서도 권법으로 실전을 하는 시대는 지났고, 문화대혁명같은 근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과거에 대한 기록은 죄다 날아가서 현대에 와서야 일종의 마케팅 상품으로 재편된 것들이 전통 컨셉을 잡는 무술 문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같은 중국 무술 내에서도 자료가 좀 많은 군용 병기술 쪽 움직임이 어떻게 싸움에 적용될까 하는 연구는 HEMA처럼 문헌 고증적인 성격으로 더듬더듬 이루어지는 실정이다. 살아서 그 동작들을 해설해줄 사람이 지금은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이에 대해 명확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지금은 없는 무술잡지 <마르스>에 한병기가 중국무술 고유의 간합에 대해서 글을 투고한 적이 있는데, 이에 의하면 중국무술은 중거리를 유지하는 타격기+유술기 하이브리드라고 한다. 하지만 역시 한병기 개인의 의견일 뿐이다. 하나의 완성된 체계를 가진 무술이라면 중거리가 필살기라 하더라도, 일단 원거리 및 근거리에서의 대처법도 충분히 숙달해야 싸움을 위한 무술이라 할 수 있다. 그나마 비슷한 적용례는 산타 경기나 자유추수 경기, 국술원 계통이나 해외 중국권법 도장들의 레슬라이킹 및 레슬링 동작인데, 중국권법 내부보다 오히려 여타 무술가들이 비슷하게 쓰는 사례를 더욱 접하기가 쉽다. UFC 초창기에 전통권 측에서 크게기를 못 펴는 동안 맹위를 떨친 격투가들이 의도치 않게 기격이 잘 갖춰진 전통권사같은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청나라 말기에 각 무술이 역사에 등장하고, 나름의 일화를 남긴 이후에는 그 전승의 과정에서 실전이 누락되어 소실되었다 추측할 수 밖에 없다. 당장 중국 근대사의 흐름만 봐도 청나라 말기 여러번의 난, 열강의 침략, 중일전쟁, 국공내전, 공산당 독재, 문화대혁명 등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다. 중국무술 중 해외에도 널리 퍼진 몇몇 문파가 있는 이유는, 이런 시기에 무술가들이 해외로 망명을 많이 갔기 때문이기도 하다.[11]

단독 훈련방법은 남아있으나 실전 및 이를 위한 연습은 망실(忘失)되어 남아있는 게 없다. 같은 시기에 있던 복싱은 계속해서 공개시합을 통해 검증을 해왔고, 그것을 토대로 버려질 이론은 버려지고, 더욱 갈고 닦을 이론을 갈고 닦아서 오늘날에도 확실하게 실전성을 인정받아, 종합격투기에서도 주력으로 배워둬야 하는 기본기가 되었다.

결국,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중국무술에도 '신체단련'과 '단련된 신체를 바탕으로 실제로 싸우는 방법이 둘 다 존재했으나, 그 중에서 전자는 전근대적인 혹사가 버젓이 남겨졌고, 후자는 전혀 전래되지 않았다고 추정된다. 부상에 민감하고 문파 간 자존심 때문에 치고받는 걸 자제한 청조 말기쯤 되면 아예 패러다임을 깨는 새로운 철학을 제창하지 않는 이상, 과거에 있었던 실전성도 망실하고 컨셉질로 회귀하기 충분한 시간이다. 중국권법만큼이나 오래된 여타 지역 무술들도 세계무대에 진출할 땐 단련과 대련을 적절히 섞는데, 중국권법은 그 흐름에서 비교적 오래 단절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 무술은 어디까지나 상대를 효율적으로 쓰러뜨리는 기술과 훈련법이 주가 된다. 중국무술이라고 해서 흔히 투로나 연무에서 드러나는 화려한 것들의 전부라고 믿으면 안 되겠지만, 교류 없이 고이고 신비주의 마케팅을 내세우다 보니 일부 중국 무술가들 스스로가 보여주기용 차력쇼를 무술이라고 착각하고 떠벌리다가 제대로 수련한 격투가들에게 얻어맞는 추태를 보여준 바 있다.

3.6. 폐쇄적인 전수 시스템[편집]


고대 이후 중세의 서양 세계는 상당 기간 동안 무인들이 주도하던 난장판시대였던 만큼 군사학 및 병기술에 대한 논의가 공개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서양 무술의 진화과정은 상세하게 추적이 가능하다. 맨손무술은 물론 군용무술인 병기술과 마상무예, 군대의 포진법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자료는 무려 고대부터 발견된다. '5000년 역사' 운운하는 중국 무술은 과거 자료가 거의 없는 반면, 서양 무술은 실제로 족히 2천 년 전 고전기 그리스, 로마시대까지 자료가 있기 때문.[12]

반면, 중국의 전통무술은 모두 하나같이 이전 기록[13]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19세기 동안 약 100년 전후 기간 내에 일제히 역사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 시기는 곧 청나라 말에 해당된다.

청나라 말로 접어들어 사회가 불안정해지면서 향촌질서와 경제가 붕괴하는 등 사회적 문제는 지방 호족이나 향리 등 신분으로 큰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었던 사회계층, 계급의 수입 및 생활이 불안정해지는 심각한 문제를 낳았는데, 소위 '무술가'들이 죄다 그 계층이었다.

이렇게 수입이 끊긴 무술가들은 달리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없다보니, 기존에는 엄격한 일자전승의 원칙 아래 비밀리에 '가문의 비전'으로 전해오던 것을 밑천 삼아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그 대가로 교습비나 재물을 받았다. 살길 막막해진 무술인들이 일제히 도장을 열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전국시대가 끝나고 에도 막부가 들어오면서 평화가 찾아오자 먹고 살길 막막해진 사무라이들이 검술도장을 일제히 개업한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즉, 기존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중국무술들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역사에 등장한 이면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당시의 도장/문파 시스템은 오늘날처럼 '돈을 주고 배운다.'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어느 문파의 일원이 되면 사실상 도제관계로 그 문파 아래 완전히 종속되었는데, 일반적으로 장문인, 도장주 및 사범들은 교습만을 하는 전업 무술인이었으고 그 아래 학생들은 생업과 무술단련을 겸하였다. 이런 연유로 무술은 말 그대로 밥줄이었다. 이전까지는 혈연 가족들 사이에서만 폐쇄적으로 전승하던 무술은 이 시대에 이르러 일종의 상업적 도제관계로 변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소위 전설적 고수들이 한꺼번에 출몰하는 것이다.

팔극권이서문, 형의권곽운심과 상운상, 홍가권황비홍, 연청권의 곽원갑, 태극권양로선, 팔괘장의 동해천, 영춘권엽문 등등등... 오늘날 알려진 유명한 유파들은 전부 다 적어도 한 명 정도는 고수의 전설이 존재한다. 이러한 고수들이 실제로 강했는지와는 전혀 별개로 중요한 것은, 이들이 어떠한 경로든 무술을 익힌 후에 먹고 살길을 찾아 자기 두 주먹만 갖고 세상에 나와 떠돌며 이런저런 일화를 남기며 출세를 꿈꿨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14]

즉, 먹고 살길 막막해진 혼란한 중국의 사회상에서 무술인들은 무술교습을 하며 생계를 이어나갔고, 그렇게 무술을 배운 사람들은 사회 각지로 퍼져나가 그 무술을 내세워 출세를 꿈꿨다. 일반적으로 유명세를 타면 부유한 신흥계급에게 고용되어 후원을 받으며 개인 교습자가 되거나, 야심찬 군벌들에게 고용되어 훈련교관이 되거나, 특출한 재주를 높이 사서 황궁의 관리가 되는 등 출세를 기대할 수 있었다.

한 문파의 도장을 세우든 부유한 후원자를 얻든, 일단 유명해지면 제자들이 모여 곧 주된 수입원이 된다. 이 상황에서 최악의 상황은 다른 무술가와 대결하고 지는 것이다. 즉, 이때의 도장 깨기는 무술가가 부와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길이었고, 반대로 이미 그러한 것을 얻은 무술가들에게는 패망의 길이기도 했다. 얼핏 생각하면, 19세기 전후로 일제히 출몰했으니 그만큼 상호교류의 기회가 늘어 중국무술의 실전성이 서로 이상과 현실의 격차를 절절히 깨닫고 오히려 강화되었을 법도 한데 그렇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생계의 수단으로 도장/문파 시스템 아래 놓이게 된 만큼 기존보다 대량의 인원을 상대로 교습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정예에게 철저하게 가르치던 시스템이 불가피하게 열화되었다. 투로와 형에만 집중하는 교습법은 여러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가장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기도 했다.

  • 오랫동안 가르칠수록 수입이 오래 동안 보장되는 셈이니, 기술들을 매우 천천히 가르치는 교습자들도 등장하였다. 오랜 전수 기간을 합리화하기 위해 정신수양을 들먹임은 덤.[15][16]

  • 세상에 등장하는 무술이 많아질수록 세상에 먼저 나와 자리잡은 각 문파는 기득권이 되었으므로 새로 등장하는 문파를 억누를 필요가 있었다. 일종의 조폭 나와바리 싸움을 생각하면 된다. 소위 이게 중국 영화 등에서 묘사되는 문파간 갈등의 실제 모습이었다. 결국 대형 문파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위상이 깎이면서 이로 인해 수입이 줄어들 우려가 있는 공개적인 교류, 시합, 대련 등을 철저하게 금하고 내적으로 폐쇄적으로 변했고, 소규모 문파들은 이런 추세에 맞춰 '시장을 분할한' 안정상태에 순응하였다.

  • 전통무술이라고 해도 무술의 목적은 당연히 상대와 싸워 이기는 것이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무술가끼리 싸우면 승패에 따라 해당 문파의 체면이 크게 좌우되고, 곧 생계곤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공개적인 대결을 금지했다. 대결을 피할 수 없다면 철저하게 비공개 합의로 행했고, 혹시나 체면이 손상되거나 악소문이 퍼진다면 대상에게 철저한 보복을 가하는 등, 그야말로 조폭과 별로 다를 바 없었다.

  • 이런 상황에서 신비주의와 허풍이 한 가지 마케팅 전략이 되었다. 이 때문에 자기 문파 권사들의 활약을 저마다 크게 부풀려 소문을 내었다. 그리하여 동시대에 수많은 고수들 이야기가 나돌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고수들은 서로 우열을 가린 사례가 아예 없다. 전설적 권사들이 대결한 역사적 사료가 존재하는 사례는 없다시피하고,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도 '서로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으로 가서 자기들끼리 우열을 가린 후 헤어졌다.'는 식이다. 소위 '전설적인 권사'들이 직접 맞붙은 거의 유일한 사례가 바로 태극권 양로선과 팔괘장 동해천이 한 결투인데, 당연하게도 그 전말은 알려진 바 없고 이 또한 구전에 불과하다. '며칠을 싸워도 승부를 내지 못했다.'고만 알려졌을 뿐이다.

당시 중국 무술계의 밥그릇 싸움은 2015년작 중국 영화인 〈사부: 영춘권 마스터〉[17]에서 적나라하게 묘사되었다.

3.6.1. 비전(秘傳)[편집]


비전이란 비밀스레 전승되는 것을 뜻한다. 과거엔 비밀이 누설된다는 것은 곧 그 무술의 밥줄이 사라짐을 의미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무술들은 자유경쟁을 하지 않았고 잘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전쟁이 잦은 유럽이야 근현대까지 자유경쟁의 여건이 충분했지만, 그나마도 근세, 르네상스 시대에는 요아힘 마이어, 파울루스 헥터마이어 등 검술서 편집자들이 검술학파와 척 질 걸 각오하고 학파별 특징을 무작정 책에 실었기에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중국은 청나라 건국 이후 평화가 도래하자 자유경쟁의 길이 막혔다. 다만 일본은 에도 시대에 호구와 죽도가 개발되고 메이지 유신 이후로 무술의 근대화가 많이 이루어져, 자유 경쟁의 길이 열린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류 시절엔 여전히 각 유파만의 특이한 요령 같은 것들이 있었다.

몇 가지 비전의 예시를 든다면...

  • 고류 검술 유파 야규신카게류의 비전인 '삼각보법'은 발바닥에 삼각형을 그려 발 중심에 중심을 싣는 방식이었다. 허무하지만 원래 비전은 이런 식이다. 만화나 무협지에서는 뭔가 엄청나게 강력하고 화려한 필살기로 묘사되지만, 실제 무술에서 비전은 간단하면서 효과적이라 실전성이 높거나 또는 몸 쓰는 방법의 중요한 원칙 같은 '숨은 요령'인 경우가 많다. 야규의 몸 쓰는 방법을 익히면 칼을 맞대었을 때 체중을 실어 밀어버리기가 쉬워진다.

  • '사나운 호랑이가 산을 할퀸다'는 멋진 이름 덕분에 엄청나게 유명해진 팔극권의 절초 맹호경파산(猛虎硬爬山)도 실제로는 유파마다 모습이 다 다른데, 그냥 타격 동작들로 이루어진 콤비네이션이다.

  • 유도의 '팔방 기울이기(八方崩し)'는 흰띠부터 배우는 원리지만 옛날에는 소수 달인들만 아는 비전이었다. 유도의 창시자 가노 지고로(嘉納治五郎)는 고류 유술을 배우던 시절 기울이기를 깨닫는 데까지 수년이 걸렸다고 한다. 즉, 비전이란 알고나면 대수롭지 않지만 누가 알려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 디테일 같은 것이다.[18]

  • 가노 지고로의 제자로 유명한 사이고 시로(西郷四郎)의 전설적인 메치기 야마아라시(山嵐, 산에서 부는 돌풍)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보통 업어치기와 뭐가 다른지 구분이 안 된다. 상대를 메치는 도중 발을 사용하여 상대를 특이하게 후리는 발동작이 들어갔다는 설명을 미리 듣고 봐야만 알아채는 정도.[19]

  • 이연걸의 영화 <황비홍> 시리즈와 함께 화려한 고속발차기로 유명한 비전의 무영각(無影脚)도 남파 권법 계통 연구자들이 고증한 바에 따르면, 실제로는 쿵후 교본 같은 곳에서도 종종 나오는 낮게 냅다 걷어차는 부인각(斧刃脚) 비슷한 로우킥이다(...). 근거리 펀치 위주 공방이 많고 발차기를 비교적 덜 쓰는 남권에서 서로간의 집중력과 의식이 상체에만 쏠렸을 때 갑자기 하반신을 재빠르게 걷어차서 주의를 분산 시키거나 몸의 균형을 잃게 만드는 체감상 필살기 같은 느낌이다. 낮게 갑자기 쪼인트를 까는 발차기라 안 보인다는 것. 게다가, 황비홍 직계 홍가권문중의 설명에 따르면 청말~민국초 사이 남성용 전통 한푸 복장을 하면 긴 두루마기가 앞섶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두루마기에 다리가 가려져 안 보이니까 공격발동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안 보이는 발차기"라고 불렸다고 한다.[20](....) "이딴 게 무슨 비기야? 그냥 치사한 반칙이잖아?"라고 생각한다면 기-주짓수No기-주짓수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상대방이 입은 옷을 활용하는 기-주짓수가 비겁한 수라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즉, 이런 무영각의 현실 설명이 치사하게 들린다면 그만큼 실전적이라는 말.

  • 유럽의 롱소드 검술 학파들도 각자 선호하는 전술과 거기 맞는 특이한 기술들이 있었다. 독일의 리히테나워 검술에서는 칼과 칼이 엮인 상태에서 모든 공격이 나오며, 자기 몸을 지키며 상대를 이기는 이상적인 전술이라 보았다. 그래서 칼이 꼬인 상태에서, 또는 급속도로 칼을 꼬며 '뒷날'로 공격하는 즈베히하우, 쉴러 같은 중, 근거리용 기술이 나왔다. 반면 이탈리아 쪽 롱소드, 투핸더 검술에서는 검을 원형으로 시원하게 돌려쳐 상대의 무기를 치우고 칼끝으로 확실히 베거나 찌르는 걸 선호했다. 그리고 롱소드뿐만 아니라 각 학파에 맞는 방식으로 여타 무기까지 다루는 걸 지향했다.

  • 풋워크를 치며 상대를 치러 들어가는 것도 전근대 무술에서는 다 이름이 있었다. 이걸 현대에는 잽을 주고 들어가거나, 주다가 슬립하며 파고들거나, 위 때리다가 몸 낮춰서 태클하는 등 직관적인 콤보로 연습한다. 각 격투가나 관장들에게 있는 거리 재고 들어가서 때리고 빠지는 타이밍 싸움 묘수들 하나하나가 다 비기인 것이다. 일본 무도 관련해서 자주 나오는 '선의 선' '후의 선'등 타이밍 관련 용어들도 결국 프리액션이냐 리액션이냐를 멋지게 말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현대 복싱에서 기본기들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기본기'로 간주된다. 그렇기에, 현대 복싱에서는 뭔가 엄청나게 복잡하고 화려한 필살기가 있는 게 아니라 극도로 갈고 닦은 기본기가 곧 필살기이다. 동네 권투장 등록하면 제일 먼저 가르쳐주는 원투 스트레이트도 공들여 연마하면 그게 바로 필살기다. 종합격투도 마찬가지 - 점핑니킥 같은 것만 해도 거의 나오기 힘든 화려한 공격이고, 대부분 상대를 끝장내는 타격은 복싱의 기본펀치인 잽ㆍ스트레이트ㆍ어퍼컷ㆍ훅 중 하나가 압도적으로 많다. 현대 복싱의 원-투 콤비네이션 같은 것이 과거에는 곧 '비전급' 기술이었다. 무술이 대중화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올바른 방법으로 치는 빠르고 효율적인 잽과 스트레이트 공격이니 대충 전광연환추(電光連環錐: 번개 같은 연속펀치) 같은 무협지스러운 초식명을 붙이고 비밀로 하면 그게 바로 '비전'이다. MMA의 '카프킥'도 옛날이었으면 MMA 문파의 비전 기술인 것이다. 기습적으로 옆으로 빠져서 종래에는 잘 건드리지 않던 장딴지를 차는 것이므로 뜬금없는 비밀 기술이나 다름없다.

결국 무술의 비급이라는 것은 대부분 어느 측면에서는 스포츠과학 등이 접목되어 오늘날 무술 수련자들은 기본적으로 다 해주는 기초적 기법, 훈련법, 몸 쓰는 방법의 요령이었다. 이런 것들이 체계적 교육 시스템이 없던 과거에 일반 농민들은 알기 힘든 '각 유파나 가문 내에서만 전해 내려오는 디테일' , '비밀리에 전해지는 기술', 즉 비전(秘傳)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에는 이런 게 곧 밥줄이었다. 당장 현대인만 해도 현대 문물인 인터넷까지 갈 것도 없이 전근대 문물인 출판물이라도 없었다면 그 흔한 팔굽혀펴기라도 제대로 된 방법으로 할 수 있었겠는가?[21]

전통 무술들은 상대방이 몰라야 통하는 체계가 많았다. 즉, '모르면 죽어야지'였던 시대였다. 그래서 옛날에는 각 문파나 유파에서 비전이 유출됨을 극도로 꺼렸다. 알면 대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비전이 곧 목숨줄이자 밥줄이었다. 현대 격투기에는 거의 모든 정보가 개방되어 다들 기술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스포츠 경기가 진행되면서 연구되어 점점 발전한다. 경기에서 누군가에게 패배 한다면, 원인을 분석하고 동영상도 보며 대비책을 만들어 리벤지 매치를 붙어 볼 수 있고, 이러면서 더 수준 높은 파이터들이 탄생한다. 하지만 과거에는, 동영상도 없었고 특히 검술 같은 무기술에서는 패배란 곧 죽음인 경우가 많아서 리벤지 대결이란 별로 의미가 없었다. 상대의 무기에 맞아 죽었는데 상대방의 기술을 분석할 순 없지 않은가. 전통무술들은 비전만 널리 퍼지지 않았다면 정보의 비대칭을 장기로 톡톡히 써먹을 수 있었다.

결국 현대 격투가들은 기술이 다 공개된 상태에서 알아도 못 막는 기술을 연마하거나 셋업을 연구해서 붙고, 전통 무술가들은 상대가 몰라서 못 막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 했다.

정보가 단절된 시대에 기술을 비전으로 삼고 '모르면 당한다'는 개념을 이용함은 그 시대에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론이었다. 지금이야 정보가 넘쳐나지만 사실 UFC 초창기 시절만 해도 주짓수를 모르면 졌다. 지금은 다 주짓수를 배우기 때문에 대처법을 알아서 주짓수 하나만으로는 UFC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22] 하지만 폐쇄적인 시대라 다른 유파와 교류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현대만큼 기술이 발전할 수 없다는 한계가 선명했다.

3.7. 고수 전설?[편집]


중국무술에는 수많은 고수의 전설이 전해지고, 다시 이 전설은 영화나 드라마·만화·소설 등 픽션 소재로 사용된다. 그런 옛 고수들의 전설에 대해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편이 좋다. 원래 사람은 자기 경험을 왜곡해서 기억하고 타인에게 전할 때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착시 현상처럼 실제로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부정확하게 인지하고 믿을 때도 많다. 그 뿐만 아니라 상술됐듯이 아예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실존하지 않는 챔피언을 창조해 중국무술의 모 전설적인 대가가 일방적으로 압도했다 등의 거짓이 많다.

이는 현 시대도 마찬가지이다. 예를들어 유술 기술을 받고 나서 “날았어요, 지금”이라고 말한 수련생은 실제로는 한 발 정도 떠서 움직였을 뿐이다.[23] 또 다른 수련생도 기술을 받았을 때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는데 나중에 영상을 보니 고작 10㎝ 정도 움직였더라고 한다. 기술을 당하는 사람이 체감상 느끼는 일종의 감각 오류 같은 것이다. 현대에는 이렇게 영상으로 실체를 확인하기가 쉬워졌다. 하지만 영상 기록이 없고 비밀 수련이 많았던 과거에는 알아차리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구전으로 전해지는 ‘엄청난 위력’에 대한 묘사들은 믿을 게 못 되는 것이다.[24]

대체로 자신이 겪은 그 감각의 임팩트가 너무 크다 보니 그것이 실제인줄 알고 자기도 모르게 과장된 반응을 하고 기술을 거는 사람조차 거기에 익숙해지면 그런 표현 자체가 형(形)으로 굳어질 때가 많다.

그러면 그것을 보고 배우는 후대의 제자들은 결코 실현될 수 없는 기술을 어떤 ‘경지’로 착각 하게 되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는 인지 부조화를 다시 겪는다. 이것을 또 다른 이에게 전하는 과정이 반복되면 일종의 가짜 뉴스처럼 해롭게 변질될수 있다.

상술된 인지 부조화는 역으로 서양에서 현대 격투기의 방식으로 투로를 해석하려고 하니 실제로 사용 가능한 MMA의 기술처럼 변모하는데 이것은 실제 용법이 아닌 경우가 많다, 가령 타격의 기법을 그래플링으로 풀어나가거나 역으로 솔각의 기법을 타격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일각에서는 현대 중국국가산업을 발전하느라 중국무술의 발전을 저해했고 서양에 남은 것이 진짜 용법이라는 얘기가 나오지만 이는 틀린 것으로 현재 서양에 퍼진 중국무술 문파 대다수가 중국공산당중국이 개혁 개방 이후 퍼진 문파다.

무술뿐만 아니라 옛날 사람들 혹은 동시대라 하더라도 타인이 남긴 것을 받아들일 때는 늘 그것이 진실로 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맥락 자체를 꼼꼼히 따져보고 자신의 기준과 조율을 할 필요가 있다.

4. 현대의 중국무술[편집]



4.1. 도장 등록 가격[편집]


도장에서 수련하는 데에는 당연히 돈이 든다.

과거에는 중국권법의 신비감을 이용해서 자신이 특별하다며 사기를 치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사이비 무술가가 우후죽순 나오는 이유가 되었다. 한 번에 몇십만 원을 받았다고 하니 얼마나 사기가 통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옛말이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무술의 기틀을 잡기 위해 많은 무술인들이 노력했고 이제는 이런 것도 거의 사라졌다. 해외로 나가 직접 중국무술을 배우는 한편 해외에 사범들을 초청해 무술을 시사받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사이비 무술 대부분은 없어지는 상황이다.

국내에서 수강료는 한 달 기준으로 대부분 십만 원에서 이십만 원 정도다. 물론 싸다고는 할 수 없는 가격이지만 왠만한 격투기 도장도 10만 원에서 15만 원 대임을 감안하면 적당한 수치다. 영 비싸게 느껴지면 문화센터를 알아보자. 4-5만 원 정도다.[25]

비싸게 받는 곳은 삼가는 게 좋다. 그만한 실력이 있어서 받는다면 다행이지만, 그저 장삿속 때문일 공산이 크다. 사이비일 가능성이 높으니 제대로 점검해 보고 여기저기 알아본 다음 결정하거나, 성인반을 운영하는 타 무술 도장에 다니는 것도 괜찮다. 타 무술 도장 역시 사이비도 존재하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월 10~20만원의 수강료를 받는 것과 별도로 1회 참가비만 십 수만원에서 심하게는 수십만원의 '특강'을 여는 도장도 있다. 이 경우 타 무술[26]에 이미 조예가 깊은 사람을 대상으로 중국권법의 요체를 압축해서 알려주는 경우도 있으나, 사이비 도장의 경우엔 "월 10만원짜리 수련을 아무리 해봤자 이 '비법'을 못들으면 헛수고"라는 식으로 사실상 돈 뜯어먹으려는 태도를 보이기도 하니 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일부 무술 유파의 경우 천재성이 드러난 제자 한정으로 공짜로 가르쳐주기도 한다. 이건 문파 차원에서 아까운 인재를 놓치기 싫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문파 차원에서 엄청 뛰어난 인재가 배출되면 그만큼 문하생 모으기도 월등하게 쉬워지고 홍보 효과도 엄청나다. 게다가 그 '천재'라는 제자를 사범으로 키워 놓으면 이것도 홍보 효과가 엄청나다. 하지만 현대 중국권법의 꼬라지를 보면 이런 건 정말 보기 힘들다, 실제로도 중국대륙의 전통권 문파들을 보면 대게 산타 선수를 제자랍시고 내세운다.[27]

4.2. 실전에 적용된 형태[편집]


위에서도 서술된 바와 같이, 낡은 패러다임과 한정된 상황만 상정된 전통무술은 새로이 등장하고 발전한 종합격투기를 비롯한 현대무술과 비교조차 안된다. 다만, 그것과 별개로 '전통무술'이 정확히 어떠한 형태로 싸웠는지 확실한 기록도 많지 않다. 알아보려면 계투 현장이나 국공내전기, 특히 무술가들을 꽤 섭외한 국민당 측 항일대도 백병전을 담은 스너프 필름 비슷한 기록영상이 있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는 형태가 좀 조악할지언정 실제 백병전 및 범죄사건 영상(…)도 음지에서 굴러다니는 칼리, 실랏을 위시한 한손검/정글도 전투술, 아예 문서에 삽화와 사용례를 TMI 수준으로 적어놓고 훈련용품 및 학파 계보가 중국보다 많이 기록된 서유럽, 일본 등지의 전통무술(검술)들이 자료가 조금 더 탄탄한 편이다. 기사/사무라이들의 비교적 깔끔한 결투부터 전장 백병전까지 다소 과장이 있을지언정 기록화가 잔뜩 남아있다.

맨손으로 비교적 안전하게 치르는 레슬링은 서구 유물, 삽화 속 내용을 복원해놓고 보니 현대의 스포츠 레슬링이나 여타 그래플링 무술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는 게 확인되는 실정이다. 그에 비해 중국 무술 특유의 그래플링, 레슬링 전술은 중국 내에서 치러지는 자유추수, 솔각이나 오히려 중국무술 외부 여타 격투가들의 모습을 보고 더듬더듬 대조해봐야 하는, 해석 면에서는 걸음마 단계다.

무술은 결국 단독 훈련, 약속 훈련, 자유대련의 조화를 이뤄야 제대로 기능하는데, 자유대련 부분이 통짜로 소실되고 약속훈련에서의 기술 풀이조차도 계보가 많이 꼬이고 왜곡되었다는 점에서 중국무술 체계에 미심쩍은 점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앞서 서술된 바와 같이, 19세기 즈음에 들어와 수많은 중국 전통무술이 세상에 등장했고 수많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개 카더라 통신, 필담, 무용담 식으로만 전해졌다. 막상 기록영상이 등장하기 시작한 20세기 초중반이 되면 이미 무술의 시대가 종식되고 문화대혁명으로 대표되는 중국 문화의 오랜 암흑기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사실, 어느 측면에서는 이 점이야말로 전통무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커다란 난점이다. 괜히 전통권 관련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를 일본이나 서양ㆍ홍콩대만러시아 등지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현대 무술의 진화와 발전사는 정말로 연구하기가 편하다. 복싱과 레슬링만 해도 서구 문명과 함께 보편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았으므로 적잖이 기록 영상들이 남겨져있고, 그 이후로는 프로 격투 스포츠로 이종격투와 종합격투가 등장했기 때문에 공개적인 연구와 검증이 가능하다. 이는 전통에 근거는 두지만 현대화를 거친 무술[28]들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현대화 이후의 시합, 훈련 경향이나 계보를 따져볼 수는 있다.

반면, 중국무술은 일제히 세상에 나와 고수들이 각지에서 활약하며 전설적 일화를 남기던 시절은 기록 영상매체가 등장하기 직전 시점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손을 맞대고 시작하는 중국식 대련'이 아니라, 실제로 치루었다는 숱한 실전이 어떠하였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이러다 보니 '전설적 고수들의 시대'가 저물고 한두 세대가 지나면 벌써 20세기 초이다. 이 시점에 겨우 기록영상이 등장했는데, 이런 영상들에 남겨진 실전 모습은 아무래도 19세기
베어너클같은 조악한 형태이다.

그나마 있는 것이 영국령 홍콩에서 펼쳐진 백학권(白鶴拳)의 진극부(陳克夫)와 오식태극권의 오공의(吳公儀)가 행한 자선 목적 무술대결이 있는데, 한국에서도 애들처럼 막 싸운다는 조롱을 받으며 꽤 유명해진 영상이다.


중국권법에 아무 사전지식이 없으면 막싸움으로 여겨질 만한 싸움이고 실제로 현대 격투가들도 막싸움으로 여긴다.

현대식 조명과 편집이 들어가지 않은 조악한 영상은 과거의 어떤 스포츠를 막론하고 사전지식이 없으면 시시해 보이는 것과 비슷한 사례다. 축구를 예로 들어도 클래식 월드컵 영상은 편집도 없고 카메라 화질이나 각도도 시시하기 때문에 꽤 축구를 많이 보는 축구 팬들도 시시하게 느끼면서 막축구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그리고 여기서도 많이 얘기되지만 영양이나 몸만들기가 현대만 못하기 때문에 선수들의 움직임이나 활동량 힘,스피드 자체가 현대와 같을 수 없다.격투기나 축구나 마찬가지지만 영양이나 몸만들기뿐만 아니라 합법과 비합법을 불문하고 약물의 영향도 있다. 예를 들어서 잉글랜드 대표선수기도 한 제이미 바디는 경기날 레드불 3캔, 에스프레소 더블샷이라는 합법도핑을 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카페인 엄청 먹는 축구선수들 사례는 많다. 하지만 맥락을 잘 아는 사람들은 상당히 수준 높은 경기라는 것을 알고 해설해 줄 수 있다.

현대 격투기에서 이루어지는 간결한 공방 대신, 팔을 이리저리 휘두르거나 찍으려 드는, 패싸움에선 쓰일 여지가 있지만 격투기 시합 차원에서는 사장된 기법들이 많이 쓰이고 있다. 즉 지금의 격투기 메타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끼리 싸우는 격이고, 복싱조차도 슈가 레이 로빈슨, 무하마드 알리 등의 전설들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일반인의 눈에는 조악해 보였다. 하다 못해 그만한 경기, 대련도 안 이루어 진 전통권에서는 오죽할까.

중국권법도 당연하지만 사람 몸으로 하는 것이므로, 멘탈이 숙련된 선수급이 아닌 이상 영화처럼 기술을 예쁘게 쓰는 것도 아니고, 또한 기본공 수련 때 쓰이는 동작들을 기계적으로 들이받아 쓰는 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다. 고수라는 사람들이 현대 기준으로는 초짜 선수보다 굳어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어 웃음거리가 되었을 따름이다. 사실 움찔움찔대며 졸전한다는 말은 지금의 격투기 선수를 데려다놓아도 아무 쿨찐이나 다 할 수 있다(…).

오히려 중국무술이 대중적으로 퍼진 시대에는, 동시에 사회가 안정을 찾아가면서 무력을 사용한 실전이 발생할 여지가 극도로 줄어들었기에[29] 실전감각이 쇠퇴한 것이다. 있더라도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배우는 입장에서도 딱히 필요가 없다고 여기면 그러한 훈련을 자주 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30] 가라테도 실전성 및 풀컨택트를 주장한 최배달을 중심으로 실전가라테 움직임이 일어났을 때 처음에는 풀컨택트 가라테 유파를 '또라이'로 간주했음을 생각해보자.

어찌됐던 과거, 실전을 벌였다는 중국무술가들이 출몰했던 그 시대에, 그 무술가들은 어떻게 싸웠는지는 앞서 말한 대로 현대인이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의문점은 과거 무술 관련자료가 발굴되고 연구하고 검증하지 않는 한 명쾌하게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위 영상은 쉬샤오둥과 중국 영춘권 고수의 대결 영상이다. [31]영춘권 고수가 초반에는 영춘권 특유의 자세로 대결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영춘권 자세를 버리고 실전에 효율적인 복싱에 가까운 자세를 취한다. 그냥 사람 상대로 스파링한 적도 없고 쫄아서 기수식이 높아진 것이다.


중국 cctv4 채널 <진짜 무술을 찾아간다>에 출연하기도 했던, 중국 10대 무림고수 중 하나이자 태극권의 대가라 불리는 웨이레이(魏雷)가 중국무술의 강함을 입증한다며 쉬샤오둥과 맞대결을 벌인 영상이다. 그러나 쉬샤오둥에게 20초 만에 KO당하고 말았다. 시합 전 웨이레이는 가랑이차기, 눈찌르기 등 어떠한 기술에도 제한을 두지 말고[32] 싸우자고 쉬샤오둥에게 제안했고, 쉬샤오둥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경기가 열리기 전 쉬샤오둥은 웨이레이가 그래도 태극권의 대가인데 자신을 몇 대라도 때리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경기에선 한 대도 때리지 못한 채 쉬샤오둥의 펀치에 KO당했다.

물론 웨이레이가 엉터리 태극권사라는 말도 있고, 웨이레이의 개인사를 보면 자기가 하던 운동을 때려치고 나온 것도 맞다. 더구나 웨이레이 같이 멋대로 창시한 태극권 유파가 아닌 태극권의 정식 유파로 인정받는 무식 태극권을 대표하는 천융(陳勇)도 쉬사오둥과 맞붙었다가 단 10초만에 패했다. 오죽하면 태극권의 한계와 장단을 객관적으로 보려 하는 백상헌 같은 중국권법의 외국 지도자도 저들을 바보 취급했을 정도이다.

그래플링에 집중하는 주짓수유도 기반 무술가들도 종합 무대에 나갈 땐 기반 무술의 한계를 알고 타격기 배우고 타격가와 맞설 수 있는 깡, 실전감각, 정신력 등을 기르기 위해 훈련하듯이, 중국무술 기반으로 타 무술과 맞서려면 저들처럼 아무 것도 못 하고 뻗지는 않게끔 타격전, 체력소모, 정신력 소모 등에 맞서는 훈련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중국무술에선 그 훈련이 소실된 빈틈이 너무 크다.

4.3. 기격, 대련이 활성화된 경우[편집]


사료 상으로 현대적인 보호장구를 갖추고 대련, 대회를 여는 게 기록된 건 대만에서 이른바 ‘국술’이라 정리한 무도 계통이다. 이는 중공에서 우슈라는 이름으로 중국무술 전반을 지칭하는 종목을 정리하고 표연, 산타 등 심사 종목을 나눈 것과 크게 다른 발상은 아니다.

아무래도 역사적 관계 때문인지 근대 일본의 그것과 비슷한 장비, 룰을 채택하기도 했으며, 무기술과 맨몸 모두 대련 종목과 품새 종목을 남겨놓으려 한 시도가 보인다. 쌍팔년도 기사를 보면 한국인 관장, 사범들도 대만 쪽 ‘쿵후’ 대회에서 입상했다는 게 있는데, 이 쪽 계통이다.

아무래도 국내에서 이러한 풍격의 중국 무술을 접하려면 작정하고 중국, 대만 또는 화교 밀집지역의 체육관을 알음알음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대중적인 우슈 체육관에서 기격용으론 그냥 산타 커리큘럼을 따르는 것도 어쩔 수 없다.

4.3.1. 응용 사례[편집]


그래도 시야를 조금만 넓혀보면 중국무술을 포함한 이른바 전통 무술을 깊이 수련했으면서도 실전성을 인정받거나, 무술가로서 존경받는 업적을 이룬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다. 무술인으로 이름난 이소룡, 최배달과 같은 사람들은 스스로의 실전 철학이 담긴 체계를 몸소 개척했고, 군용 CQC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페어번은 상하이에서 동양 전통권들을 접하면서 이를 특수부대나 공작원을 위한 제압술ㆍ단검술ㆍ사격술 등에 응용하는 시도를 했다. 케틀벨의 전설로 알려진 파벨 차졸린은 일반 가라테에서 전해지는 호흡법과 신체 운용법을 바탕으로 군인들을 위한 컨디셔닝 코스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들이 전통무술 전체를 포용하고 받아들여 보완한 것은 아니다. 다만 전통무술을 수련하며 알게 된 몇몇 요령들을 자신이 잘 하는 분야에 접목하여 보완했을 뿐이다. 이소룡은 절권도를 재정립하면서 전통적인 중국무술은 거의 폐기처분하고 복싱과 레슬링을 중심으로 현대적인 무술을 만들고자 했다. 이런 태도는 최영의 역시 마찬가지라 현대적인 웨이트 트레이닝 시스템을 도입하고 무에타이와 교류하는 등 전통적인 무술과는 거리가 있었다.

4.4. 중국권법의 정체성이라는 허상[편집]


한 때 무술평론가나 연구가, 심지어는 전통권사들이 대부분 현실을 인정하고 지금이라도 중국무술을 공개하고 대련, 시합 등에 참가하면서 발전시키면 된다는 발전적 견해에 극도로 부정적이었던 적이 있었다[33].

당장 중국무술과 인연이 있더라도, 이른바 대중들이 생각하는 중국무술의 컨셉이나 전통 따위에 집착하지 않는 무술가나 유파들이 현대에는 무술로서 더 큰 가치를 인정받는다.

“유한한 것으로 무한한 것을 따라갈 수 없다”며 현대적 트레이닝과 개방성을 중시한 이소룡, 참장공으로 몸을 만들면서도 기존 내가권에 대해선 쌍욕을 박고 투로 대신 기본기와 서로를 무자비하게 때리는 추수를 하는 의권(대성권), 중국무술에서 파생된 가라테에서 출발했지만 무지막지한 피지컬 단련과 상호 타격대련으로 유명해진 극진공수도 등, 전통 무술의 컨셉이니 정체성이니 하는 걸 벗어던진 사람들이 더 크게 성공했다. 중국인 격투가이면서도 MMA로 어설픈 전통권사들 패고 정부 돈이나 타먹는 부패한 무술계를 고발한 쉬샤오둥, 해외에 도장들이 하도 많다보니 사기꾼도 많지만 발전적 교류도 꾸준히 이루지는 영춘권 등에 대해선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편견에서 벗어나, 중국무술 특유의 개성이나 컨셉 같은 것에 집착하지 않고 현대적인 트레이닝 방법론과 타 스포츠, 무술과의 상호 교류를 활발히 하면 활로가 보일 것이다. 제일 좋은 건 격투기로서도 혁신을 거듭해 인정받는 것이고, 하다 못해 실전 격투기로서 답이 없다는 회생불가 판정을 받더라도 컨디셔닝 및 재활운동으로 재평가받아서라도 살아남는 게 중국무술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덜 찜찜할 것이다.

당장 고대 그리스 판크라티온에도 격투와 그래플링을 병행한다는 특성상 현대 종합격투기와 유사한 면모가 있고, 한손 칼을 다루는 검술은 일본 고류 검술부터 서양 세이버 검술까지 유사한 점이 있었으며, 양손 칼을 다루는 검술은 서양 롱소드 또한 일본 고류 검술 사이에 유사한 점이 있었다. 사람 신체구조가 같고 쓰는 도구도 어느 정도 같으니, 비슷한 형태로 수렴하는 건 정체성의 상실 같은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절차다.

무엇보다도 무술로 실전이 벌어졌던 임진왜란, 일본 전국시대, 중국 왕조 교체기 등의 고전 무술들은 중국 고유의 무술, 조선 고유의 무술 같은 걸 따지지 않고, 이민족 전투술 중에 위협적인 게 있으면 그걸 분석, 역설계하고 받아들였다. 명나라 무술체계 내에도 일본의 검술을 받아들이고 개량한 묘도[34], 일본의 검술 그 자체인 왜도, 이런 식으로 섞어들인 게 많으며, 조선 역시 일본 검술, 조총, 중국 검술, 진법 등등은 받아들였다. 그나마 전국시대 일본은 장기간 자기네끼리 무수히 많이 싸우면서 집대성, 발전 시키고 섬나라인 특성상 외래무술의 영향을 제일 적게 받았다.

조선 사람들이 명나라 창술, 일본 검술을 받아들이며 조선 검술의 정체성이 사라질까봐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조선은 활을 잘 쏘고 중국은 창을 잘 쓰고 일본은 칼을 잘 쓰니까 이 모두를 혼합하면 보병들이 더 강해질 거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화약 무기가 들어오자 화약 무기 운용 전술을 추가한 것도 마찬가지다. 총통, 조총 때문에 무예가 밀려난다고 쓸데없이 징징대는 대신, 총통, 조총을 더 잘 쓰는 방법을 고민했다.

이들은 '중국무술이 현대무술들과 교류하면서 계속 진화하고 발전하면 어디로 나아갈까?' 하는 질문에 결국에는 종합격투로 수렴된다는 결론을 내린 사람들이다. 이종격투의 시대에 비밀주의 뒤에 숨지 않고 양지로 나와 자존심을 걸고 대결을 했던 무술가들과 그들이 대표한 무술은 결국 무수한 대결 속에서 각자 무술의 단점, 허황된 이론 등을 포기하고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기술들을 받아들이였다. 즉, 생물학적 진화와 다를 바 없이 '격투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한 결과, 역시 생물학적 진화와 마찬가지로 수렴진화에 비유할 만한 현상이 발생한 것.

그 결과, 백그라운드에 전통무술의 비중이 상당히 많은 성공적인 무술가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실제 링에서 사용하는 기술을 보면서 당장 그것이 어느 전통무술에서 비롯되었는지 알기는 힘들다. 상당히 특이한 방식으로 자신의 가라테 배경을 종합격투에 반영했다고 평가받는 료토 마치다의 경기를 보아도, 격투기나 무술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봐도 현대 종합격투기랑 뭐가 다른지 알아차릴 수가 없다. 중국권법 배경이 있으면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둔 쿵 리의 경기 역시 일반인은 두 눈 부릅뜨고 열심히 관찰해도 '저기의 어디에 중국권법 스타일이 섞였다는 거냐.'는 생각밖에 안 든다.

즉, 외형적으로는 사실상 '전통적' 분위기는 남은 바가 전혀 없고, 기술적으로도 일부 기법의 성향, 용법, 자세나 무게중심 등에서 일반적 MMA 스타일과 조금 차이가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그러한 특이성도 근본적인 전제는 MMA에서 통용될 수 있는 효율성을 전제하고, 전체적인 비율로 따지면 '전통권법의 성향이 짙은' 격투가들 중에서 성공적인 사람들은 매우 적다.

물론 후술하는 것처럼 중국 무술 또한 투로에 있는 동작들을 흉내만 내지 않고 실전성이 있게끔 그걸 스파링 상황에 넣어서 적용해보며 경험을 늘리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막상 그렇게 하면 중국무술의 기술들이 화려한 모습이 아니라 현대의 mma와 심히 흡사한데 이를테면, 태극권에서 정식으로 존재하는 추수 경기를 보면 그레코로만 레슬링 공방과 흡사하고 팔극권에 엄연히 존재하는 팔꿈치 기술인 이문정주, 외문정주는 무에타이의 쏙 공격과 흡사하다. 상대방의 정강이나 무릎을 향해 낮은 발차기를 날리는 부인각(斧刃脚)은 MMA에서 쓰이는 오블리크 킥과 똑같은 기술이다.

이를 보고 MMA 팬들은 "저게 무슨 중국권법이냐? MMA 짝퉁이지" 라고 트집을 잡고 심지어 중국무술을 좋아하는 사람조차도 "저건 중국권법이 아니다" 라고 부정한다. 즉 중국무술에 대해 냉소적인 사람이든 긍정적인 사람이든 영화에서나 보던, 딱 각잡힌 초식의 동작으로 멋지게 적을 제압하는 것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즉, 현대 종합격투에서도 유용할듯한 유사한 기술을 보여줘도 이미 MMA에 있는 것 아니냐면서 딴지를 건다는 것.[35]

어지간하면 현대 종합격투에서 파이터들은 자신의 격투스타일을 어느 '유파'로 규정하지 않고 대개는 소속된 단체나 도장으로 기록한다. 즉, 이미 특정한 유파를 논하기에는 어폐가 생길 정도로 격투기법은 보편화되었고, 대개는 격투의 사상이나 성향 등에서 조금씩 차이가 나는 서로 다른 도장, 단체로 구분해야 하는 정도가 되었다.

따라서, 중국권법의 권사들과 장문인들이 허황된 신비주의에서 벗어나 지속적으로 시합에 나오고 교류를 해나가며 실전성을 갖추는 방향으로 자기 무술을 발전시킨다면, 그 과정에서 통용되지 않는 허구적인 사상과 기술들이 버려지고, 확실히 효과적인 타무술의 기법들을 받아들이고 반영하는 현상이 일어남은 필연이다.

세대를 거치면서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필요한 것을 받아들이며 진화가 반복되어 실전적으로 발전한 중국권법의 모습은 과연 지금 존재하는 종합격투기의 모습과 다를까?

어느 측면에서, 현대 종합격투기는 SF 만화나 영화 등에서 '끔찍하게 강하고 위험한 것'으로 종종 묘사되는 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공상과학에서 서로 다른 생물의 유전적 특질을 합치고 짬뽕해가면서 원본이 거의 남지 않고 모든 '강한' 면모만 합쳐진, 무지막지하게 강해진 혼종 생물병기와 비슷하다. 그리고 실제로 전통무술가들 중 일부는 이런 식으로 종합격투기를 깐다

하지만 실전을 기준으로 편견 없이 바라본다면 강한 특질을 결합시켜 만들어진 무술이 매우 실전적임은 부정할 수 없다. 또한 그런 방향으로 발전하면 원본의 '전통적' 모습은 거의 남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중국권법뿐만 아니라 '전통무술'을 내세우는 어느 나라의 어느 무술가라도 공유하는 매우 심각한 딜레마가 있다.

1. 원래 무술은 싸우기 위한 기술이므로, 당연히 싸워서 이기는 강한 능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2. 무술은 지역적, 시대적 차이로 인하여 서로 다른 곳, 다른 시대에서 각자 특징과 차이를 갖고 별도로 발전하였다. (물론, 싸워서 이기기 위한 기술이라는 것이 전제임은 변함이 없다)

3. 그렇게 별개의 무술로 분화하고 성장하면서 점차 고유의 이상, 사상, 관념 등이 자리잡으며 '싸움의 기술'인 동시에 각 지역의 문화적 차이를 반영하는 형태로 자리잡았다.

4. 그러나, 현대로 들어와 세계화가 이루어지면서 그 어떤 무술이라 해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만나 겨룰 수 있게 되었으니, 시공의 한계가 극복되었고, 그 결과 벌어진 실전대결에서 무술 본연의 전제인 武의 측면에서 세계 각지의 전통무술의 허실이 무자비하게 드러났다.

5. 이 현실을 인정하여, 다시금 武를 강조하며 적응하고 발전하며 진화한다면, 2와 3의 과정을 거치면서 성립된 문화적 특질, 전통성은 붕괴된다. '더 이상 전통무술은 없다.'는 결론이 나올 뿐이다.

6. 그러나, 전통무술의 문화성,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고 싶다면 결국 武의 측면에서는 더 이상 의미없는 도태된 기술과 체계를, 쓸모가 없음을 알면서도 유지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7. 결국 武라는 본연의 전제를 한 수 접고 文의 가치를 유지하게 된다는 점에서 '전통'을 남기고 '무술'을 포기한다는 소리이기에, 사실상 전통무술을 '무술이 아니라 춤이나 무용'이라고 까는 비판론을 그대로 긍정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 된다. 더 이상 전통무술이 아니라, 전통예술, 전통문화라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딜레마는 중국권법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든 '전통'을 강조하는 무예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모두 당면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택견이나 씨름 같은 일부 무술은 상황이 낫다. 택견은 비록 여러 단체가 있지만 일관적인 룰을 정립하고 스포츠화 하였을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전통문화'라는 명분을 들었기 때문에 조선의 무술인 동시에 '놀이'로서 택견의 지위를 강조하면서 그러한 압박에서 상당히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택견 전수관에서 실전성 있냐고 물어보면 허허 웃으면서 MMA 체육관 찾아가 보라고 깔끔하게 얘기해준다 그 택견마저도 송덕기 등의 증언에 따르면, 그 옛날 택견이라고 하는 것의 본질은 중인들의 길거리 싸움이었다고 한다. 택견이 길거리 싸움에서 사용되었다는 말은 실제로 길거리에서 주먹패들이 싸울 때 사용했다는 실전성의 근거이기도 하다. 길거리 싸움패들이 현대 MMA 무술가들처럼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훈련하고 가장 효율적인 움직임을 냉철하게 연구하지는 않았겠지만, 어쨌든 주먹패들이 실제로 싸우면서 주먹구구식으로나마 실전성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씨름부흐, 유술, 레슬링 등과 마찬가지로 냉병기 시대의 군대에서도 써먹을수 있었고 실제로 택견은 대게 서울 지역에 한정 된 반면 씨름조선시대에도 전국구의 시합이 있었다.

반면, '전통과 비전의 강함'을 내세운 무술일수록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고, 그야말로 전통무술은 강하다는 신비주의 마케팅에 올인을 해온 중국권법은 총체적 난국이다.

결국, 그에 대응하는 대부분 중국권법들은 지금까지 해온 대로 종합격투의 존재를 무시하고, 공개시합과 교류를 금지하는 방침을 고수한다. 그리고 쉬샤오둥 같은 도전자들에게 신나게 박살나고 있다

중국권법을 세계에 알린 것으로 유명한 이소룡 역시도 전통 무술에 부정적이었고 위와 견해가 비슷했다고 한다.

4.5. 단상: 척계광의 지적[편집]


위에 길고 자세하게 서술된 중국무술의 문제점을 두고 과연 중국인들 스스로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을까?

적어도 정말로 실전이 무엇인지 아는 전문군인이나 장수들은 분명하게, 정확하게, 그리고 오늘날 비판자들의 분석과도 일치하게 이미 해답을 내렸던 모양이다. 위 서술들에서 볼 수 있는 중국무술의 문제는 고질적이라 16세기 명나라 시대 사람도 지적했단 바였다.

척계광(1528-1588)은 명나라 중후기 무신으로 임진왜란 직전 세대 사람이다. 당시 중국을 노략하던 왜구들을 상대로 숱하게 실전을 겪으며 왜구들보다 무술실력이 약한 장병들을 데리고 왜구를 이기기 위한 전법을 개발하여 절강지역을 지켜낸 명장이다. 임진왜란 이전, 대규모 전쟁이 없었던 시절을 살았던 무인이면서도 중국 통사상 명장을 꼽을 때면 반드시 포함되는 사람으로 실전이 무엇인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식이 가득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그가 남긴 <기효신서>에는 오늘날 지적되는 바와 같은 중국무술의 문제점이 짧지만 매우 분명하게 언급되었다.

물론, <기효신서>에서 척계광이 무술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무술을 배움에 있어서는 "무엇인가를 배우면 반드시 실전대련을 통해 시험을 해봐야 한다(旣得藝, 必試敵)" 하는 철칙을 언급한다.

以啓後學. 旣得藝, 必試敵, 切不可以勝負爲愧爲奇. 當思何以勝之, 何以敗之. 勉以久試, 怯敵還是藝淺, 善戰必定藝精. 古云“藝高人膽大”, 信不誣矣.

후학을 지도함에 있어, 이미 기예(技藝)를 얻었으면 반드시 대적하여 시험해보아야 하는데, 절대로 승부에 있어 남을 책망하거나 함부로 칭찬하면 안 된다. 어찌해서 이겼는지, 어찌해서 졌는지를 그때그때 생각하게 하라. 오랫동안 부지런히 대련을 시키면, 기예가 서툴러서 적을 겁내던 것에서 돌이켜져서, 기예가 반드시 정밀하게 되니 잘 싸우게 되는 것이니라. 예부터 일컬어지기를“기예가 높은 사람은 담대하다”고 한 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기효신서>, 권법해 편


무술을 오래동안 익히면 강해짐을 얘기하고 있지만, 보다시피, 오로지 철저하게 실전대련을 통해서 해봐야만 강해질 수 있다는 얘기이며, 특히 대련의 결과에서 이기거나 졌다고 해서 남을 책망하지 말라는 지시, 그리고 이겼으면 왜 이겼는지, 졌으면 왜 졌는지를 생각하게 하라는 것은 실전대련, 스파링의 목적 그 자체다. 이미 500년 전 중국사람도 실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당연하게 내리고 있는 결론이며, 앞선 항목에서 체면치레, 체통을 중시하는 중국권법 문파시스템에서 주로 시키는 투로, 형 위주의 수련 및 비현실적/비실전적 약속대련이 왜 쓸모없는지 정확히 꿰뚫는 지적이다.

이런 척계광의 말을 곱씹으면서 쉬샤오둥이나 다른 격투가들에게 개박살나는 중국 무술인들의 영상들을 잘 보자. 그리고, 그런 싸움과 MMA 격투 등지에서의 싸움을 비교 감상을 해보자. 그러면 당장 눈에 띄는 것은 현대 격투기에서 실전경험을 쌓은 파이터들은 공세를 적극적으로 취하려 하는 점, 그리고 심지어는 방어를 하기 위해서도 주먹을 내지른다는 점이다. [36]

반면, 개박살나는 전통권사들은 하나같이, 만화나 애니에서 나오는 장면처럼 상대의 공격이 자기가 상상하는 대로 나와주면 그것을 막든 흘리든 틀어쥐든 방어해낸 후에 뭔가 수를 쓰려고 하다가 아무 것도 못하고 그대로 털리는 모습을 되풀이한다.

실전에서 '공격을 막고 반격한다.'거나 '카운터를 친다.'는 것은 중국 전통권법과 같은 형태와는 전혀 다른 식으로 이루어짐은 MMA 경기 좀 본 사람이면 누가나 잘 알 것이다. 즉, 전통권법에서 말하는 식으로 멋지게 공격 막아내고 반격하는 것은 실전이 아니라 무예쇼로 돈 버는 장사꾼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척계광은 실제로 그런 언급을 했다.

舊法, 鈀, 棍, 大刀, 俱手握在柄中, 其手去鋒頭 不及二尺長.却又雙使倒用, 遠身縱橫, 此遊方敎師 單人對擊, 飾觀者之目則可. 彼之長槍 閃閃而進, 疾如流星, 短器就, 習精熟, 膽大敢當, 只能格得彼槍不中入我身耳.

옛법에는 파(鈀), 곤(棍), 대도(大刀) 모두 손잡는 곳이 병(柄)의 중간에 있으니 손에서 봉두(鋒頭)까지가 두자(二尺)에 못 미친다. 게다가 쌍사도용(雙使倒用)하고 원신종횡(遠身縱橫)하니, 이는 유방교사(遊方敎師)가 한명을 대격(對擊)할때 구경하는 사람의 눈에 볼거리를 만드는 데에나 가능한 것이다. 상대의 장창(長槍)이 번득이며 나아감이 유성같이 빠르다면, 단병기(短兵器)를 매우 익숙하도록 연습(수련)하고 담이 큰이가 용기를 내어 상대하더라도, 단지 상대의 창이 자신을 찌르지 못하게 막아내는 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기효신서>, 단기장용 편


위의 대목은 '옛법', 즉, 척계광이 제시하는 짧은 병기의 활용법과는 달리 지금까지 통용되오던 병기술의 용법을 비판하고 있는데, 실전을 기준으로 실용적인 용법을 보이는 것이 아님을 문제로 지적한다. 특히, 소위 무술팔이를 하면서 구경꾼들에게서 돈을 모으거나 제자를 모집하는 교습자들의 행태가 화려하기만하고 실용성이 없음을 지적하였다.

물론, 앞서 얘기한 것처럼 척계광은 중국무술 자체가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다만, 실전경험이 있고 실제로 목숨을 건 전투를 수없이 한 장군으로서 어떤 식으로 무술을 수련해야 도움이 되는지 설명하고, 세간에 퍼진 중국 무술가들의 방식은 전장의 전투에서든, 개인간 시합에서든 통하지 않음을 이야기하였다. 또한 왜 그것이 안 통하는지를 짧지만 분명하게, 각 병기와 권법에 대한 해설에서 다루었다.

척계광이 '무술 따위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말했다고 알려졌지만 이는 와전이다. 정확히는 '개개인의 무술 따위 전쟁에선 아무런 쓸모가 없다.'정도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격투기술인 무술은 군대 단위 전장에서는 쓰임새가 매우 한정적이고, 그나마 제대로 된 무술이라고 할지라도 눈요기용 화려함만을 추구하고 실제로 맞붙어 실전성을 가리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음을 강조했을 따름이다.

拳法似無預於大戰之技, 然活動手足, 慣勤肢體, 此爲初學入藝之門也. 故存于後, 以備一家.

권법은 큰 전쟁의 기예와는 연관이 없다. 그러나, 수족을 활동시키고 지체를 단련하니, 이것은 초보자들이 기예를 갖추는 문이 된다. 그래서 기록하여 한 권법을 소개해뒀다.

<기효신서>, 권법해 도입부


개인간 싸움에서도 무술이 아무런 의미 없다고 하지는 않았다. 군대 단위 전장에서는 용도가 없으나 심신을 단련하여 전쟁에서 쓸 수 있는 기술들을 익히기 위한 기초로서 연마해두는 편이 좋기 때문에 한 가지 권법을 소개했다는 것이다. 즉, 척계광은 태조장권이 실전성이 있어서 소개한 것이 아니라, 체조용으로 쓸 만하다고 소개한 것

이 외에도 <기효신서>에는 수많은 자잘한 비판들이 여기저기 나오므로 이 주제에 관심있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보도록 하자. 오늘날 중국무술에 대한 비판지점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는 부분들이 놀랍도록 많다. 즉, 지금 중국권법은 척계광이 하지 말라는 것들만 골라서 하고 있는 셈

마치 현대의 종합격투의 등장을 예고하기라도 한 듯한 글귀를 소개한다.[37]

雖各有所長, 各傳有上而無下, 有下而無上, 就可取勝于人, 此不過偏於一隅. 若以各家拳法兼而習之, 正如常山蛇陣法, 擊首則尾應, 擊尾則首應, 擊其身而首尾相應, 此謂上下周全, 無有不勝, 大抵拳棍刀槍叉鈀劍戟弓矢鉤鎌牌之類, 莫不先由拳法活動身手其拳也爲武藝之源. 今繪之以勢, 註之以訣.

(세상에 있는 여러 권법들이) 비록 각기 장점이 있지만, 각기 전해진 것에 상은 있으나 하가 없기도 하고, 하는 있으나 상은 없기도 한데, 곧 상대에게서 승리를 거둘 수는 있지만, 이는 한쪽에 치우친 것에 불과하다. 만약 각 일파의 권법을 겸해서 익힌다면, 바로 상산사진법과 같이 머리를 공격하면 꼬리가 응하고, 꼬리를 공격하면 머리가 응하고, 그 몸을 공격하면 수미가 서로 응하게 될 것이니, 이를 일러 상하가 두루 갖추어져서 이기지 못 함이 없다고 할 것이다.

대저 권, 곤, 도, 창, 차, 파, 검, 극, 궁시, 구겸, 애패 등은 먼저 권법으로 몸을 움직임에서부터 유래하지 않는 경우가 없으매, 권이란 것은 무예의 근원이 된다. 여기에 세를 그리고 결로 주를 다노라.

<기효신서>, 권법해 편


재미있는 것은, 이 앞부분에는 명나라 중후기 당시에 유명했던 권법의 이름을 척계광이 열거하는데, 거기에는 오늘날에 '중국권법'으로 유명한 문파는 태조장권과 소림사 곤법을 제외하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38]. 또한 권법에는 각자 장단점이 있으니 하나만 알아둬서는 안 됨을 분명히 하였다, 현대에 유명하다는 중국권법들은 전부 근대의 산물로, '중국권법 4000년'은 고사하고 200년 된 것들도 드물다. 그나마 현대 시점에서 역사가 길기로 알려진 태극권이 1700년대 후반에 등장한 것으로 300년이 채 안 된다[39]

마지막 줄의 "먼저 권법으로 몸을 움직임에서부터 유래하지 않는 경우가 없으매, 권이란 것은 무예의 근원이 된다"의 경우 먼저 몸을 활동하고 무기술을 익히는 것을 가리키며 결고 "특정 권법에서 특정 무기술이 나왔다"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전술한 "拳法似無預於大戰之技(권법은 큰 전쟁의 기예와는 연관이 없다)"의 "권법"이 특정 권법을 가리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

이미 500년 전 사람인 척계광의 이러한 지적이야말로 지금까지도 중국권법의 환상을 팔고 있는 중국무술계와 국뽕에 물든 중국 국민들이 스스로 돌아봐야 할 것이다.

4.6. 중국의 무술 어그로꾼과 쇼 비즈니스[편집]


근래에 들어 전통무술에 회의적인 쉬샤오둥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널리 퍼지면서 '전통무술'과 '가짜무술'의 개념이 점차 흐려지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즉, 한 눈에 봐도 평생 싸움은 커녕 스파링조차도 안해본 것이 너무나도 뻔한 사람들이 "전통무술가"를 자칭하면서 각종 대결에 나섰다가 호되게 당하는 모습이 동영상으로 나돌고 있는데, 그러한 명백한 가짜들과 전통무술인을 혼동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는 일리는 있는 주장이다.

중국의 전통무술이 그 기본적인 구조에 있어 고도로 발전하고 있는, MMA로 대표되는 현대격투기를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무술연구자들, 현대무술가들, 그리고 (중국 바깥의) 전통무술가들 삼자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통무술을 베이스로 하는 종합격투가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며, 종합격투기에서 주력 타격기의 베이스를 구성하고 있는 무술의 성분에 가라테나 태권도, 무에타이, 쿵후의 비중이 높은 선수들 또한 충분히 많이 있다.[40]

더구나, 중국 내에서 중국무술의 현대화를 어느정도는 노리고 있는 산타선수들과 그들의 경기를 참고하더라도 전통무술의 비중이 높은 파이팅 스타일이라고 해서 쉬샤우둥과의 대결이나 소위 "~참교육 동영상" 등에 나오는 것처럼 한심한 수준은 분명 아니기 때문이다.

위의 경우들을 "이미 현대화된 무술체계를 받아들이고 일부 기법만 전통무술에도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면, 전통무술의 실전화를 위한 연구에 매진하는 서양쪽 전통무술가들의 소규모 경기나 시합, 스파링 동영상 등을 참고할 수가 있을 것이다. 중국에는 그런 고민하는 문파가 아예 없기 때문에 참고할 자료가 안나온다 그와 같은 영상들에서 등장하는 시합의 형태는 종합격투화나 산타와 같은 현대화를 시도하는 무술경기보다 확실히 부족한 점이 많이 있지만 (따라서, 그 형태 그대로 링에 올라간다면 이기기가 힘들 것이 확실하지만) 적어도 꾸준한 스파링 및 압박실험의 경험을 통해 실전에 가까운 상황, 대결의 압박감, 그리고 공격당하는 고통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에 쉬샤우둥이 상대하는 무술가들이나 "~참교육 동영상"들에 나오는 것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런 수준미달의 자칭 권법가들은 어느 분야에나 나타날 수 있다. 주짓수 벨트 사기를 치는 자칭 관장이 블랙벨트에게 털리거나, 자기가 복싱 몇 달 했다고 으스대다가 진지하게 운동하는 선수한테 떡이 되도록 얻어맞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시스템이 검증된 무술에서도 '가짜 무술가'와 '진짜 무술가'가 갈리는 건 흔히 볼 수 있다. 따라서 웨이레이가 진짜냐 가짜냐 따지는 것은 중국권법 자체에 대해 논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역으로, 지금 가짜들을 배출한다 까지는 중국권법 문파도 한 때에는 싸움을 꽤 하는 사람('진짜 무술가')을 배출했을 수 있고, 그런 문파들의 문제점은 현재로서는 더 이상 그런 진짜들을 배출하지 못한다는 데 있을 따름이다.

중국에서 쉬샤우둥이 싸워온 "무술의 대가"라는 둥, "~의 달인", "~정통 문파"라는 등등으로 알려진 권사들의 경우 대부분이 자칭이거나, 근거나 유래가 불분명하거나, 언제 그 문파에 몸담았는지, 누구에게서 사사하고 수련했는지 등등이 거의 없이 "독학으로 수련하여 창시"했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술을 독학으로 익히고 창시했다고 자칭하는 경우는 대부분 무술가로서의 기본의 의심되는 상태이다. 당연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는 기술이 무술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웃음벨 취급받는 내가권 계통, 또는 현대인이 보기에 지나치게 투박한 무술체계에 있어서도, 창시자들에 관한 거품과 전설을 걷어내고 보더라도 "누구에선가 배웠건, 아니면 독학을 했던 간에 어쨌든 스스로 무술을 창시했다"라는 점은 추론할 수 있다. 오늘날 크게 이름을 남긴 전통권법의 시조들은 (과장이 되었든 어쨌든간에) 완전히 만들어 낸 허구가 아니라면 최소한은 (과장되고 미화된 형태일지언정) 지금까지도 전설이 남고, 그러한 유명세를 통해 오늘날까지도 문파가 지속되고 남아있을 정도로 싸워서 이긴 전적이 있다고 추측할 수는 있다. 단지 그들의 시스템에 그 싸워서 이기는 법이 제대로 전승되지 않았기에 '실전적이지 못한' 시스템으로 지탄받는 것이며, 그들만큼 직접 맞짱을 떠보지도 않은 사람들이나, 그들의 시스템 속에서 실전적이지 못한 이름있는 전통권사들이나 운동 제대로 못 하면 현대 격투기 배운 사람한테 얻어맞는 것은 다를 바가 없다.

결국, 무술에 있어서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를 가릴 수있는 유일한 유의미한 기준은 어떠한 형식도, 역사도, 전통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무술이 주장하는 기능적 역할을 실제로 수행해낼 수 있느냐 없느냐에 의한 기능적 기준(functional standard)에 따른다.

예를 들어 타이의 무에타이는 여타 중국 전통권만큼 역사가 오래되기도 했지만, 무아이 보란 시절과는 다르게 현대 격투기에서도 이빨이 먹히는 형태로 발달했다. 무에타이의 시스템 자체가 맞고 때리고 피하고 잡는 실전에 숙달된 '권법가'를 키우는 방향으로 발달했기 때문이다. 숙련된 낙무아이는 타 격투기 수련자와의 입식 타격 대회에서 건들건들하는 전통적인 스탠스로도 접근 허용 안 하고 킥으로 상대를 발라버리거나, 턱 맞고도 피지컬 빨로 버티고 니킥으로 상대를 찍어버리는 묘기를 부리기도 한다. 즉 무에타이는 기능적으로 싸울 수 있는 파이터를 양성하는 권법인 동시에, 그 기술체계나 동작도 꽤 합리적이고, 역사 역시 오래되어 전통 관련해서도 내세울 게 있는 무술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현대에도 무에타이와는 다르게 실전 파이터 양성 없이도 "우리는 실전을 추구하지 않는 무술이오" 하면서 운영되는 도장들은 있다. 단지 이런 도장들이 처음부터 정직하게 실전 욕심을 안 냈다면 문제가 안 생겼겠지만, 쉬샤오둥한테 얻어맞은 중국의 자칭 무술가들은 그러한 욕심을 낸 게 근본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오히려 돈벌이의 관점에서 보자면 괜한 노이즈 마케팅을 해서 프로레슬링마냥 예능 컨텐츠(!)를 창조해낸 거라고도 볼 수 있다.물론 쿵푸 예능매치가 흥행할수록 실전성은 더더욱 물 건너간다

그나마 현대에도 '진짜 무술가'소리를 들을만한 전통권 병행 수련자들은 전통권 하나만을 파지 않는다. 그들의 운동 경력을 보면 오히려 전통권의 비중은 말 그대로 몸풀기 체조 수준으로 잔잔하게 깔려있을 뿐이다. 산타, 킥복싱, 무에타이, 쿠도 등 풀컨택트 격투기를 병행 수련하고, 아예 펜싱 마스크 쓰고 무기술을 하거나 HEMA, 칼리, 검도, 일본 고류 등등 여타 다른 무술 단체와 교류하는 등 절대 다른 무술들을 함부로 까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SNS로 별별 시비를 걸고 타 무술계와 싸움을 해대는 중국의 환경이 병신같은 이상한 것이다(...). 애초에 저기는 격투기와는 아예 상관없는 피트니스 트레이너가 힘으로 주짓수를 이길 수 있다며 주짓떼로에게 덤볐다 털리는 영상을 찍어 오히려 돈을 버는(!) 구조이다.

4.7. 중국 무술 내 무기술의 퇴보[편집]


중국무술(특히 청조 이후의 민간 무술)들은 신유도법, 단도법선, 무예도보통지 등의 병서 속 무술이나 세계 각지의 고류 무술, 종합 무술처럼 무기술과의 관계가 잘 정리된 것도 아니고, 나름의 모순점들이 있다. 이 항목은 그러한 모순점들에 대한 비판론이다.

근대화에 성공한 무술들은 무기술와 격투술을 분리하면서 전문화될 수 있었다는 게 일반론이나, 중국은 역사 자체가 다사다난했던 관계로, 근대에 가까워질수록 둘 다 퇴보해버리는 비극을 겪었다. 서구는 복싱과 펜싱과 레슬링을 분리해서, 일본은 검도와 유도와 가라테를 분리해서 셋 다 발달하는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중국 무술은 이도저도 아닌 상태가 되었다. 아싸리 중세처럼 칼싸움이 판치는 막장(...)이 지속되어 거친 고전무술 원형이라도 유지한 동남아시아와도 환경이 달랐다. 이 모순점들은 결국 무술 자체의 퇴보를 피하지 못한 결과물들이다.

인터넷에서 흔히 전근대 무술의 무기-권법 연계를 설명하기 위해 쓰던 '권병일치(拳兵一致)'라는 표현은 특별한 레퍼런스가 있는 표현은 아니고, 개인 블로거 등이 떠올린 표현에 가깝고 그 원본은 아이키도에서 말하는 '검체일치(劍体一致)'로 추정된다. 또한 중국의 병서에서는 애초에 무기를 일컫는 글자를 "병 兵"을 쓰지 않고 "기 器" 내지는 "장 仗"을 사용한다 예컨대, 오늘날엔 누구라도 원문을 찾아볼 수 있는 척계광의 <기효신서> 상에서도 "무기"를 지칭할 때 일괄적으로 "器" 자를 사용하고 있다.[41] '병기'라 하면 '병'(군대와 관련된 이들)이 쓰는 '기'(도구, 기계)라는 의미이며, 창, 칼 등의 도구를 지칭한다면 '기'라 지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기효신서>의 "단기장용해"라는 소제목에서 "병기"라는 두 글자 단어를 한 글자로 줄일 때 "병"자를 취한 것이 아니라 "기" 자를 취한 것이다.

4.7.1. 무기를 건드릴 수 없었던 청 말기 민간무술[편집]


중국권법 중 본 문서에서 다루는 민간 문파들은 어디까지나 민간 무술이며, 그 역사적 근원을 따져도 청조 이전으로 가는 경우가 잘 없다. 이들은 전쟁을 위한 훈련법과는 거리가 있는 문파들이며, 자체적으로도 무기를 그렇게 열심히 내세우지 않았다. 이들의 창시 전설부터 맨몸에 관한 것이다.[42]무술의 창시자가 이런저런 무기를 잘 썼다던가, 이런저런 무기를 잘 쓰던 군인 출신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수는 있어도, 구체적으로 무기를 쓰는 이치를 통달하여 그것으로 무술로 만들었다는 서술은 거의 없다. 즉, "이 무술은 본래 무기술에 나왔다"는 것도 적극적으로 칼싸움이 오가던 서양이나 동남아시아, 또는 병서의 군용 무술을 볼 때는 나름 유효하지만, 중국 민간 권법들에 적용하기엔 성급한 명제다.

더구나, 최근 동아시아에서야 특정한 매체[43]를 통하여 팔극권이 유명세를 타고, 그 유명세 덕분에 해당 매체의 원작 만화가 인기를 끌고, 다시 또 그 만화에 등장한 주요 권법들이 인기를 타면서 팔극권, 형의권, 진식태극권, 심의파 등의 중국무술들이 인기를 누리게 되었지만, 만화와는 달리 현실에서는 중국 공산당의 탄압이 시작되기 전까지 소위 '북파권법' 중에서 가장 널리 퍼지고 메이저했던 것은 장권 계통과 당랑권 계통, 광동 등 남쪽에서 가장 널리 퍼진 것은 채리불권이었다. 그 외에 백학권이나 홍가권 등도 나름 지분이 있었던 편. 영춘권은 오히려 팔극권처럼 매우 마이너한 무술이다, 까놓고 말해서 오로지 이소룡 덕분에 유명해졌고, 이소룡의 스승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엽문이 조명을 받아 현대 매체를 타고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장권은 중국에서 군용 PT체조로 취급 받으면서 보편적으로 널리 퍼질 수 있었고, 오히려 장권의 맨몸액션을 표현하기 위해 우슈화되면서 가볍게 만든 무기들을 추가한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지금의 우슈 장권 종목이 송태조장권을 얼마나 충실하고 담고 있나 물어보면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쓰는 병기가 가벼워지고 채점 기준도 야시꾸리해졌기 때문이다.

당랑권은 전형적인 상형권(象形拳)으로 동물의 움직임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고, 채리불권은 아예 "진향(陳享)"이라는 구체적인 창시자가 1836년에 창시했다고 알려져있는 근대 권법이며 적어도 전쟁용 무기술을 지향하는 건 아님을 알기 쉽다.[44] 백학권도 상형권, 홍가권도 문파별 무기를 다루기는 하지만 진정한 장기는 강맹한 주먹질에 있다고 평가받는 권법이다. 이 권법들은 좋게 치면 계투 같은 곳에서야 잘 쓸만했겠지만, 군용 전투술로서 종합무술 성격을 갖추기에는 좀 모자라다 비판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맨손을 잘 쓰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서(...) 현대에 까이고 있다.

그리고 현대에는 태극권이 가장 널리 보급되어 있는데, 중공 성립 이후 서서히 개방을 추구하면서 타국의 무술 애호가들에게 태극권 신비주의가 널리 먹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래로 엄청나게 보급을 위한 노력을 한 덕분이다.[45][46] 이러한 태극권 또한 무기술에서 나왔다기보다는 오히려 태극권 특유의 체조들이 나온 다음 그 플로우에 어울리는 무기들을 나중에 추가한 것에 가깝다. 언젠가 최초 단계에는 창을 돌리고 걷어내고 오른손 검과 왼손 검 균형을 잡는 동작들을 창안해서 만들었겠지만, 애초에 싸움보다는 양생 쪽에 집중해서 무예로서 무기 다루는 쪽을 고려를 하지 않고 동작들이 발달하는 쪽으로 갔다.

우리가 아는 중국 "전통권법"들 대부분이 세상에 나온 것도 19세기부터이고, 그 전통권법들 중에서도 대중매체로 알려진 유명한 무술들은 19세기 나온 이후에도 내내 마이너한 특정 지방의 권법[47]이었다가 근 30~40년에 들어와서야 갑자기 유명해진 것들이다. 그 이전까지의 중국인들 수련자가 가장 많았던 메이저한 권법들부터가 애초에 무기술, 특히 전쟁용 무기술을 뿌리삼아 발달하기보다, 민간에서 따로 논 세월이 더 길다. 청조에 민간에서 실전 무기술을 했다간 반청복명 역모로 목이 날아갔을 것이다.

이를 검술 복원가 OldSwordPlayer도 농담삼아 언급했는데, 신유도법은 수련하면 주민들에게 신고당하지만 검경을 봉술로 풀어 연습하면 신고당하지는 않는다는 드립을 쳤다(...). 다시 말해 민간무술화가 거의 다 된 신유도법조차도 어디 감히 민간에서 흉악한 칼 쓰는 기법을 연습하냐고 까이기에 충분했다는 것이다. 반면 유대유의 검경은 원리상으로는 형초장검술이되, 도검 대신 봉으로도 동일 검리를 수련할 수 있게 해놓아 적어도 대놓고 칼 휘두르는 것보다는 어그로가 덜 끌렸을 수 있다. 아무튼 가드가 작은 양날검은 구조상 뒤집어 잡은 곤과도 유사성이 있기 떄문이다. 그래서 동시대 소림곤법과도 경쟁했다는 이야기도 나올 수 있다. 곤과 봉은 아무튼 나무 막대기일 뿐이다.

절강성의 묘도술 및 그 조상격인 신유도법, 단도법선 속 왜도술이 유명해질 수 있었던 건 국민당의 항일대도술 개발 요청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일본도 및 총검과 싸워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 때문에 중국 도검으로 일본 도검과 싸우는 기술이 일시적 붐을 탄 것이다.쌍수도 vs 노다치 대결 500년만의 리메이크 다시 말해 일본군이 반자이 돌격을 일삼지만 않았고, 당시 국민당 군대가 부유했다면 여전히 묘도술을 빛을 못 봤을 것이다(...). 특히 일본군의 단순한 총검술이 특성상 창술과 유사했기에, 대도로 창을 상대하는 고전 무술 엑기스가 유용한 상황이었다.

민간에서 고여버린 역사가 긴 중국권법에서는 무기술과 권법이 분리되며 둘이 따로 발달하는 대신, 둘 다 퇴보하는 비극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무기술의 계보는 아예 민간 단위에서도 목숨 건 칼싸움이 횡행했거나, 군용 검술 교범도 기록이 많은 지역에서는 그 실체를 파악하기 쉬운 편이다. 예컨대 권병일치 이야기를 할 때 주로 언급되는 수파리(守破離)도 일본 검도에서 쓰는 개념이다. 중세 검술로 유명한 독일과 이탈리아는 르네상스 시대 당시에는 수많은 전란을 거치며 통일되지도 않았지만, 많은 시민 계급 수련자들이 책을 열심히 펴내서 그 근거를 찾아보기가 쉽다.

오히려 중국의 역사적 맥락상 일종의 퇴보가 이루어지며중국 무술 전반에 무기술-권법 연계가 허술해지기만 했다고 봐야 할 지경이다. 애초에 소위 내가삼권이라 일컫는 팔괘장의 시조 동해천, 형의권의 시조 이낙능, 태극권 중시조 양로선 세명 전부 모두 군대와 연이 없는 사람들이며 그들이 살던 시대는 진작에 화약무기가 주류가 되어 권법이라는 것은 기효신서가 저술된 명나라 때보다 더더욱 쓸모 없게 되었다. 중국무술 여러 문파 중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상형권 계통은 애초에 원리, 유래 자체를 인간이 아닌 동물에서 찾고 있는데, 이는 도교 신비주의에 가까운 자세이다.

4.7.2. 군용 무술, 민간용 무술, 그리고 쇼 비즈니스 유사무술[편집]


보통 나라 꼴이 멀쩡하면 군용 무술은 투박하고 단순하되 효율성은 있는 형태가 되고, 민간용 무술은 조금 어려울지언정 1:1 결투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에 대처 가능한 예술적인 형태가 된다. 이는 지금의 군용 CQC 도수격투술과 MMA의 관계, 일반 훈련소에서 배우는 각개전투술과 특수부대 전문 CQB 전술 등의 관계를 생각해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군 생활에 많은 시간을 활용하는 군인보다는 효율적인 격투 그 자체에 매진하는 전문 격투가가 무술에서의 공방과 실전감각은 뛰어나겠지만, 반대로 다소 투박할지언정 바로 상대방 목에 대검을 꽂거나 앞차기로 밀어내고 모잠비크 드릴로 벌집을 만들 수 있는 기세는 군인 쪽이 조금 더 나을 것이다. 전근대로 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무술 전문가들은 용병단이나 군대를 훈련시키고, 귀족 계급의 검술 스승 노릇을 할 수 있었지만, 대규모 군대가 맞붙는 상황에서는 거시적인 전술, 전략이 더욱 중요했다.

문제는 청의 국운이 기울 때 중국에서는 그냥 군대부터 맛이 갔다는 것이고(...), 당장 명 말기 이후로는 화약병기의 비중이 커져서 군대의 전투술은 간소화될 수 밖에 없었다. 여기까지는 전열보병 시대 서양의 검술이 르네상스 시대의 바인딩, 레슬링 등을 포함한 종합무술에서 간소화된 세이버 검술로 단순화된 것과 비슷할 수 있다. 문제는 무술가들이 군대를 교육할만한 여지도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고, 민간에서 마구잡이 계투 같은 게 성행하는 동안 거기에 각종 권법가들이 제대로 끼어들었다는 근거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즉 무협지에서 말하듯이 "관과 무림은 관계하지 않는" 상황이 되긴 했는데, 관군은 관군대로 약체화되고 그 무림조차 싸움에 대해 문외한 수준이었다는 것이다(...).총체적 난국

현대 국가로 비유하자면 어느 나라 군대 훈련소 사격술은 전진무의탁 수준이고, 이걸 개선하자고 모셔온 자칭 특수부대 예비역 민간 PMC '전문가'는 알고보니 군대 문턱도 밟아본 적 없는 사짜더라 싶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그게 청 말기 상황이었다.탄약 떨어진 세포이 방진도 못 뚫은 팔기군의 후예 괜히 청 말기에 상승군 등 신식 군대를 일으킨 개별 무관들이 칭송받고 그 기세를 이어 군벌이 일어난 게 아니다. 관군이 워낙 막장이었기 떄문이다.

역으로 민간 무술 중 괜찮은 것이 발굴되고 민간인 마스터가 군대를 제대로 교육하게 된 건 청나라 다 망하고 난 중일전쟁 때였다. 이런 시도를 한 국민당조차 결국 공산당에 밀려서 대만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여타 국가에서 볼 수 있는 무술의 전문화와 발전이 좀 늦게 나타났다 볼 수 있다.

아무튼 이렇게 민간무술조차 실전과 멀어지며 퇴보할 때 나타난 건 무술 쇼비즈니스다. 이건 일본 및 서양 근대에서도 한 때 반짝했던 모습이지만[48], 중국에서는 저 반짝하는 모습이 21세기까지 가고 있어서 웃음벨이 되는 실정이다.

당장 중국 내에서도 척계광이 민간 무술을 "유랑극단에서 푼돈이나 모으려고 벌이는 쇼에서나 나오는 것"이라고 얼마나 한심하게 봤는지, 무장 유대유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소림사의 실태를 보고 검경 봉술로 소림곤법을 죄다 논파한 건 무장들이 몸소 쇼 비즈니스 무술의 허실을 비판한 역사 그 자체다.

쇼 비즈니스 무술은 결국 인기를 끌고 돈을 벌어야 장땡이기 때문에, 종교, 미신, 정치 등의 영향을 받으며 전투술과 관계없는, 동작을 위한 동작들을 추가하는 경향이 생긴다. 싸움을 위한 동작 대신 동작을 위한 동작이 만들어진다는 게 핵심적이다.

그 허울만 좋은 동작의 예시가 바로 앞서도 언급 되었던 <기효신서> 권 4, 단기장용해편에서 척계광이 비판한 "무기 가운데를 잡는 기법"이다. (즉, 애초에 해당 편의 제목부터가 "'단기'로 분류되는 무기들[49]을 '길게 잡고' 쓰는 방법에 대한 해설"이라는 뜻이며, 앞서 언급 된 세간의 '쇼비즈니스용 민간무술'들이 무기를 쥐는 자세부터가 기본에 어긋나있음을 비판하면서 화두를 뗀다.)

봉(두깨가 일정한 막대기)이나 곤(한 쪽이 더 굵은 막대기)이나 사람 손으로 잡자면 결국 창이나 검을 잡는 것처럼 잡게 된다. 즉 두 손으로 무기의 한쪽 끝(검으로 치면 손잡이)을 몰아서 잡거나, 밸런스를 위해 넓게 잡는다면 두 손 간격을 또 넓게 띄워서(소총과 비슷하게) 잡게 된다. 이는 동서양 가리지 않고 보편적이다. 넓게 잡으면 하프 소딩 식으로 섬세하게 컨트롤하거나 끄트머리로 빠르게 찍고 몸을 막으며 돌입하거나 반대편으로도 힘있게 적을 돌려칠 수 있고, 좁게 끝을 잡으면 당연히 제대로 휘두르고 찍고 찌를 수 있다.

애초에 봉이나 곤에 촉만 단 게 창/모/극 등의 장병기다. 검은 금속의 비중이 더 크고 날이 서 있다는 점에서 용법이 달라지고, 철퇴나 편곤은 머리가 무거워져서 용법이 달라지지만, 그래도 사람이 잡고 휘두르는 막대기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즉 창/모/극 등은 조금 더 자유롭게 끝을 잡거나 넓게 잡으며 변칙적으로 다룰 수 있었고, 검은 한 쪽 끝을 잡되 유사시에는 날이 덜 날카로운 부분을 잡거나(쌍수도, 서양의 하프 소딩과 같은 개념이며 서양 투핸더 역시 리캇소를 잡았다.), 칼등을 받치는 형태로 변칙 운용이 가능했다. 편곤, 철퇴 등은 멀리서는 도리깨처럼 제대로 후려까고, 혹시나 접근당하면 넓게 잡아 조금 무거운 봉처럼 저항이라도 할 수 있다.

두 기법 모두 봉의 가운데를, 두 손을 몰아 잡을 이유가 거의 없다. 잠깐 가운데를 잡더라도 나머지 한 손은 무기 끝에 가 있어야 하프소딩식 운용이 되고, 아예 몰아 잡을 거라면 끝을 몰아잡는 게 상식적이다. 두 손을 몰아잡는 건 오로지 퍼포먼스를 위해 봉을 돌리기 위함이다. 한 손으로 붕붕 돌리는 것은 세이버 검술의 물리네처럼 거쳐가는 동작 의의라도 있지, 아예 한 손 손등을 넘어 반대손으로 넘겨받는 두 손 돌리기는 퍼포먼스 전용이다.

놓았다가 도로 잡는 과정에서 봉, 곤을 놓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거니와, 무기를 돌리듯이 허리, 골반을 틀면서 후려치는 건 당연히 손을 튼튼하게 잡은 채로 취할 때에도 이상 없이 된다! 애초에 중국 무기술 내에서 '제료무화곤'등 곤을 감으며 연타하는 기법들은 원래 월도로 상대 대가리를 제대로 쪼개는 동작에서 왔지, 그 기법에도 봉 가운데 잡고 돌려먹는 것은 원래 없었다.

현대에도 정확히 척계광의 지적대로 공연용으로 무기를 돌리는 사례를 볼 수 있는데, 공연용 쌍절곤, 카람빗, 발리송이다. 쌍절곤은 쌍절곤을 스타덤으로 끌어올린 이소룡조차도 곤 끝을 잡고 후려치는 데 사용했고, 오키나와 테나 강유류 수련자, 댄 이노산토 모두 곤 끝을 잡고 사용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공연용으로 돌리는 사람들은 손등에 감아 돌리는 걸 한답시고 사슬(끈) 쪽을 잡는다. 원리상 곤/봉 중간을 잡는 것과 똑같다. 카람빗과 발리송은 애초에 생활 공구이며, 그나마 해당 공구를 쓰는 지역 동남아시아 무술에서 호신용 무구로 대접을 하지만, 역시 인터넷에서 돌리고 노는 사람들은 동남아 무술과는 관계가 없는 미국 잼민이 마술사, 트릭킹 공연가 같은 사람들이다. 척계광의 말대로 정말 구경꾼 모으는 서커스나 다름없는데, 이 양반들은 적어도 본인들이 공연용 동작만 한다고 밝히기에 사정이 나은 편이다(...).

쉽게 말해 서양 무술에서도 스턴트맨용 액션, "스테이지 컴뱃"과 서로를 물리치는 게 목적이었던 근대 세이버, 스몰소드 검술(+격투 스포츠화된 무술) 등을 비교할 수 있다. 스몰소드, 세이버가 아무리 중세보다는 작아지고 결투를 위해 의례화되었다지만, 명백히 내 몸은 안 찔리고 상대를 찔러 승부를 내는 걸 위해 발달했다. 이는 맨몸 격투기도 마찬가지이다. 복싱은 룰을 준수하는 스포츠이지만, 아무튼 두 주먹으로 상대를 때려 승부를 내기 위해 최적화되었다.

하지만 매체 연출용 액션(스테이지 컴뱃)은 배우끼리 서로를 때려 물리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에 가장 예쁘게 잡히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대 무술, 격투술, 사격술을 참조해 '실감나는' 방향으로 연출을 개선할 수는 있지만, 연출을 위해서라면 비현실적이거나 일부러 질질 끄는 동작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연출용 무술은 아예 스스로 "우리는 영화 촬영을 위해 무술에서 영감을 받은 동작을 한다"고 밝히니까 깔끔하다. "우리는 쇼 비즈니스요"라고 선을 그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오랜 시간 중국 '민간무술'은 사실상 제대로 된 민간 결투 무술도 아니고, 쇼 비즈니스 무술인 주제에 결투 무술인 척을 하는 무술이었다. 그게 지금까지 문제가 되는 지점이다.

4.7.3. 중국 무기술의 현주소[편집]


아래 "새로운 시대에서의 가능성"에 하술된 바와 같이, 여러가지로 실험이 되고 성과를 보이는 최근 중국의 무기술은 정작 '특정 문파에서 가르치는 무기술과 그냥 별 관계가 없다. 예컨대 민간 무술 문파는 시간이 지나고 고이며 "이 묘도라는 칼을 어떻게 다루는 게 합리적인가?"보다 "우리 문파의 컨셉과 철학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무기를 쓸까?"하고 기기묘묘한 무기를 찾아, 문파에 무기를 끼워맞추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효신서의 송태조장권 권법과 무기술의 예를 들자면, 송태조장권 익힌 장병들이 배운 병기술도 '송태조장권의 무기술'이 아니다. 사람 몸의 특성상 송태조장법에서 표현하는 체육 원리들이 무기술과 겹치는 면도 있겠지만, 송태조장권 고유의 무기술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위에 언급 된 기효신서라든지, 유대유의 기록들이라든지 등 병서에 해설된 진짜 군용무술, 실전용 무기술을 복원하고, 이미 수 십년 전 부터 동양보다 일찍 고무술 복원 및 실전시험을 거쳐 온 서양쪽 무기술과 붙어보면서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배울 것은 배우면서 좋은 상호교류를 하고 있는 결과다. 우슈 공연용 병기들은 전통권사들도 "이건 싸움용 무기와 다르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경량화되었다.

즉 지금 태극검이라고 전승되는 태극권에서의 검법은, 검을 이용한 공방과 흐름('전투의 기예')을 표현하고 있지도 않으며, 태극권 특유의 흐름을 위해 일부러 가라 공연용 검을 가져다 넣은 것이다. 오히려 이 특징 때문에 문외한들에게 과도하게 까이는 지점도 있는데, 중국 검이 상대적으로 가늘다 한들 진짜로 우슈 공연용 낭창거리는 검을 실전에 쓰겠다 한 미친놈은 없다(...). 오히려 전통권사들은 거들떠도 안 본 병기 가지고 실전 하겠다 무모하게 선언한 틱톡 무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중일전쟁 시절 병장기 유물을 봐도 다 튼튼하고 투박한 게 여타 도검들과 똑같다.

설령 실전에 먹히는 수준의 검, 도, 창을 가져와도 일단 민간 환경에 맞춰진 이형병기라는 점에서 전쟁용 병기와 붙으면 내구도와 리치부터가 문제가 된다. 당장 서양에서도 레이피어는 민간 결투를 위한 무기였지, 전쟁용 할버드나 투핸더, 장창과 겨룰 것도 없이 쿼터스태프 쓰는 선원에게 털린 적도 있다. 사이드 소드, 레이피어같은 세검으로 무작정 장병기를 상대하면 칼이 토막날 수 있으므로 하지 말라는 건 당시에도 상식이었다. 애초에 투핸더나 할버드에 능수능란한 정예병을 만나면 장창을 들어도 양민은 죽기 딱 좋았고, 이는 동양에서도 쌍수도, 오오타치, 나기나타, 월도 같은 걸 든 정예무사 만나면 농민병은 보통 죽은 목숨이라는 점에서 그게 그거였다. 즉 중국 무술의 무기술도 군용 병기술을 빼면, 계투에서 쓸만하지 전쟁술 축에는 못 낀다. 이건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결투 무술과 군용 전투술의 차이라는 점에서 참작할 수 있다. 현대 중국무술의 문제점은 그 결투 무술에도 못 낀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중국권법의 요령이 그대로 무기술에도 사용되어, 표현되는 그 형태 그대로 싸우는 무기술의 실전성"은 최소 임진왜란 이후로는 찾아보기 힘들다. 말하자면 그 당시에 싸움에 쓰이는 무기술 및 무예 자체는 있었겠지만, 그게 민간 중국권법 문파와는 거리가 있다. 김은충 항일대도술이 이른바 민국시대 파봉팔도술에서, 파봉팔도는 넓게 보면 단도법선 묘도술 내지는 유대유 검경에서, 단도법선의 묘도(단도)술은 기효신서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고 추적은 가능한데, 이건 순 민간 문파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묘도도 일단 왜구와 교전하다보니 노다치를 중국 식으로 어레인지한 물건이며, 신유도법과 단도법선이 민간 무예 비전서일지언정 군용 무예를 제대로 보존하려 노력한 기록물에 가깝다.

재미있게도 저 묘도를 주인공 격으로 다룬 무협 영화는 주제의식부터가 공연용 쇼비즈니스로 전락한 무술 문파들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여타 기묘한 병기들을 쓰는 무술 문파들은 "왜놈의 칼"인 묘도를 쓰는 주인공을 경시하는데, 사실 묘도술이야말로 왜구와의 치열한 실전을 겪으면서 발달한 검술이고, 묘도술 과외를 받은 여성이 여타 고매한 무술가들을 두드려패서 이기기도 한다.

중국 무술은 양생공이나 품새를 위한 품새로 전락한 맨몸 권법 부분을 제하고 봐도, 역사적 흐름으로 인해 전반적인 싸움의 기예(이게 무예, 그리고 '마셜 아츠'의 정의이다.)를 다루는 데에도 소홀해졌고, 민간 계투에서 사람 패기 좋은 파이터를 양성하는 데에도(경찰, 호신, 경호 무술로서의 성격), 군대의 백병전에서 쓸만한 체계를 만드는 데에도(군용무술, 훈련체계로서의 성격), 공격과 방어의 기술을 단련하는 스포츠를 만드는 데에도(격투기로서의 성격) 성과가 시원치는 않다. 지금까지 이렇게 시원치 않았다는 걸 인정하는 게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될 것이다.

전통권사들 중에는 싸움의 기예에 집중하지 않고, 그저 싸움을 위한 '몸을 만드는 행위'가 동양 무술의 본질이라는 궤변을 펼치는 이들도 있지만, 같은 전통권사들 중에도 전통권은 그저 대련, 스파링, 실전검증이 더럽게 부족했을 뿐임을 인정하고 타 무술과의 교류를 활발히 하는 사람들도 있다. 당연히 후자와 같은 태도가 더욱 건강할 것이다.

5. 새로운 시대에서의 가능성[편집]



5.1. 맨손[편집]


맨손만으로 싸울 때 전통적인 중국무술은 현대의 격투기에 비해서는 상당히 떨어진다. 맨손 격투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무술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는 한계이지만, 그래도 중국무술을 수련한 누군가가 격투기 무대에 뛰어들어서 선수로서 뛰어난 성적을 내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동영상이 영감을 줄 수도 있다.


태극권 출신의 중국 킥복서 한페이롱(韩飞龙).

태극권 선수권 대회에서 5연패 했으며 킥복싱 전적 33전 29승 4패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슈산타도 수련을 하여 이를 순수한 태극권사라고 보기는 힘들다. 또한 하이라이트 영상에 나오는 뒤후려차기, 가위치기[50], 몸통돌려회전차기[51] 등의 기술들은 명백히 태권도, 유도, 가라테 등 무술이 개발한 기술로 태극권의 투로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기술들이며 영상초반에 나오는 킥캐치 또한 우슈산타에서 개량된 모습의 킥캐치이지 태극권이 선보이는 킥캐치가 아니다.


영춘권크라브 마가처럼 전술 격투로 훈련하는 사례

그 밖에 현대적인 스파링을 도입하고 현대 격투기의 전술에 적응하면서 전통적인 권법의 기술을 개선시키고, 더불어 세계적인 대회를 열어 발전하는 중국무술로 산타가 있고, 1990년대부터 국제대회등으로 크게 대두되면서 인기를 끌고있다. 단, 현대화를 거부하고 전통방식을 고집하는 관계자가 아직 많으며, 또한 일각에서는 도복과 옷을 입지 않고, 손가락을 봉쇄하는 복싱글러브 등을 사용하여, 옷깃을 활용하는 소매잡기를 비롯 전통 중국 씨름인 솔각이나 다른 여느 권법의 기술들을 쓰지 못하여 중국권법만의 개성과 색채를 잘 살리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최근 영춘권팔극권에서는 현대적인 보호구와 규칙을 도입하여 자유대련을 실시하는데, 아직 어설프지만 초창기이고, 종합격투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귀추가 주목된다. 영춘권사들은 죽쑤는 경우도 좀 있지만(…) 팔극권 측은 평시 수련이 빡센 영향이 있는건지, 산타 교차수련을 통해 타무술 교류대련에서도 나름 잘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장 룽이라는 영춘권사가 MMA와 렛웨이, 킥복싱 등에서 활동하며 주목받았다. 다만 주목에 비해 좋은 성적은 내지 못하고 있는 중. 또한 천즈황이란 대만의 종합격투기 선수가 영춘권을 베이스로 하고 있는데, 그라운드 기술이 안 좋아서 실적이 좋지는 않다.

5.2. 무기술[편집]








최근 여러 검술 대회에서 중국 무술가들이 신체 능력이나 대련 능력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바로 서양 검술(Historical European Martial Arts, 통칭 HEMA) 동호인들 덕분이다. HEMA 측에서 유럽 중세 검술을 복원하던 장비 및 연구방법론을 참고해 병서를 복원하기도 하고, 마스크 및 가검으로 활발히 대련을 벌이기도 한다. 상기 영상처럼 아예 롱소드와 이종격검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복원무술은 <기효신서>, <무비지>, <검경> 등 서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실전 사용을 염두에 두었다고 명시된 무술들이다. 한국으로 치면 현재 중국에서 주로 하고 있는 무기술은 무예도보통지의 무기술 복원과 매우 비슷하다. 실제로 국내 단체(Gesellschaft Schwertmann 등)에서는 문헌 고증 및 기술 복원, 스파링 등을 통해 유럽 검술, 일본 검술, 중국 검술, 조선 검술 연구를 동시에 하기도 한다.

5.2.1. 서양에서의 해법[편집]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통무술," 특히 중국권법의 전통권 문파들은 대부분 지금까지와 별 차이가 없는 폐쇄적인 상황에 안주하며 대체로 자유로운 교류를 금지하고 있다. 물론, 종합격투의 등장과 함께 연일 중국무술의 망신살이 뻗치고있는 만큼 과거에 비해서는 그나마 "무술교류회"나 "연구회" 등 형식의 제한적인 교류가 좀 더 늘어나고, 중국 정부에서도 밀어주고 있는 산타쪽에 약간은 더 협조적으로 나오고 있긴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어떠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이 많은 편.

전통권법의 미래를 걱정하고 그 실전성을 어떻게 검증할 수 있으며, 전통무술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면서도 어떻게 실전성을 강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현재로서는 "본가"인 중국에서보다도 오히려 서양에서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특히 현재 시점에서는 그와 같은 방법론의 기초가 어느 정도 쌓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화의 바람과 인터넷이라는 상호 정보공유의 수단이 퍼진 지 이제 벌써 한 세대가 가는 시점이고, 서양인임에도 불구하고 동양의 전통권법, 중국의 권법에 관심을 두고 20세기 말에 직접 동양의 권법가, 도장 등을 찾아다니며 배운 사람들이 벌써 다음 세대의 제자들을 배출하기 시작한지 꽤 되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그레이시 가문의 그레이시유술의 경우에는 벌써 3~4세대가 나온 상황이고, 믿기 어렵겠지만 한국에서도 도장 찾기 쉽지 않은 대부분의 쿵후 문파들의 도장이 서양에는 의외로 존재하고 있다. 에컨대, 수련자의 인구를 조사해본다면 중국 바로 옆에 있는 한국보다 오히려 미국 내의 남권, 홍권, 영춘권 등 수련자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복싱, 레슬링등의 경기화된 실전격투기의 고향인 동시에 남미의 발리투도를 거쳐 퍼져나간 종합격투기의 본고장이기도 한, 통칭 "서양"은 동양에서 많은 전통권 문파들이 처한 사회적 분위기, 예절과는 달리 "우리 무술이 쎕니다"하면 당장 돌아오는 대답이 "그래? 그럼 겨뤄보자"라는 풍토여서 그런지, 오히려 이 서양에 자리잡기 시작한 중국권법 수련자들에서 유의미한 어프로치, 연구가 많이 진행되는 중이다. 다만 그게 중국권법을 실제 개파조사들이 사용한 용례로 쓰는 것보다 현대 격투기스러운 용법으로 풀이하는 경우가 대다수라 실제 권법의 시조가 쓰는 용법이 이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광활한 서양의 환경에서는 동양에서처럼 그 무술 전체를 대표하는 "태권도협회" "중국무술협회" "아이키도회" ... 뭐 이런 식의 총회, 종가, 본가의 간섭이 덜하다보니 과거에 링 위에서 벌어졌던 것과 같은 이종격투의 양상이 이제는 각 지역의 소규모 도장 등지로 퍼져나가면서 서로 진지하게 겨루어 각 무술의 내부적 문제점 등을 검토하고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각 동네 소규모 도장마다 이종격투대회를 여는 그런 수준은 아니고, 정기적인 수련회, 교류회를 갖되 그러한 교류의 장에서 대련이나 시합을 하는 경우 분명하게 승패를 가리고 서로 봐주거나 하는 것이 없이 제대로 붙어보는 경험을 자주 한다는 것이다.

채리불권 스파링 영상


영춘권 스파링 영상


홍가권 스파링 영상

호구 착용 스파링을 실시하는 사례이다. 결국 사람의 몸은 다 같은 양팔과 양다리를 가졌기에 타격계 무술들은 문화적 배경이 다른 것을 제외하면 기술적으로는 결국 킥복싱같은 형태로 수렴진화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에타이나 가라테처럼 특유의 전술이나 개성을 남겨두려면 경기 룰 제정이나 수련방식 설계에 상당히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마저도 일반인이 보면 예컨대 무에타이식 킥 운용과 여타 무술의 킥 운용 사이 차이를 알아보기 힘들다.

5.2.1.1. 실전을 추구하는 파[편집]

압박실험(Pressure testing)과 실전 스파링(Live Sparring)에 의거하여 중국권법의 실전성을 찾으려는 방법이다, 압박실험 이론은 중국권법을 배운 서양인들은 물론, 소위 "스탠딩 유술"의 비중이 매우 높은 일본 아이키도, 한국 합기도 계열을 배운 서양인들을 통해서 정립된 이론이다. 이와 같은 이론의 시작은 "동양의 도장의 분위기"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목적에서 정립되었는데, 즉, 중국권법, 전통무술 도장에서는 동양 특유의 "눈치보기" "체면 깎지 않기" "스승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기" 등 사회적, 내부정치적 압박이 너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무술기법의 "실전적 교육"을 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별로 실전적이 아니라는 지적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동기간 압박(peer pressure)이 너무 큰 폐단이 만연해 있다는 것.

이와 같은 경험담은 특히나 복잡하고 유려한 기법을 뽑내는 무술들을 배운 서양인 수련생들에서 자주 나오는데, 스승이 시범을 보인다면서 제자인 자기에게 "이 그립을 풀어봐라"라든지 "나를 공격해봐라"라고 했을 때, "그렇게 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갑분싸해지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에 당혹했다는 것. 결국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면 도장 내에서 자신이 분위기 파악 못하는 못난 제자로 낙인이 찍히거나, 눈치가 있는 사람은 점점 주위의 따가운 눈총(...)에 점점 더 스승이 보이는 시범에 "협조적"으로 나갈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런데 이런 상황이 야매도장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어느 문파의 "종가"라고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만한 그런 큰 정통 도장에서조차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결국 스승도, 제자도 지금 가르치고 배우는 것들이 정말로 효과가 있다는 환상에 빠져들게 되는데, 달리 말해 많은 전통권 도장, 특히 중국권법 도장들은 이미 그러한 행태를 몇 십년, 몇 세대는 넘도록 반복해온 결과가 오늘날 중국권법의 위기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서양의 전통무술계"에서는 "압박실험" -- 해당 무술의 기법을 연습하고 실전성을 검증할 때 "적당히 맞춰주거나" "적당히 실전상황 흉내내는" 것으론 안되고, 호신술을 배운다면 상대하는 사람이 진짜로 죽일듯이 험하게 덤벼들어야 하고, 스탠딩유술을 배운다면 잡힌 상대가 정말로 발악을 하면서 저항하고, 손을 빼려고 하고, 기술을 걸려고 하는 사람에게 "전혀 협조하지 않는 압박(pressure)"에서 그 기법이 얼마나 효용성이 있는지를 시험해봐야 한다는 것. 칼을 쥔 사람을 상대하는 기법을 실험한다면 적당히 하다가 중간에 멈추고 해설하고 하는 그런 것 없이 장난감 칼 든 사람은 진짜로 칼 쥔 손을 이리저리 돌리고 휘둘러대고, 안 잡히려고 기를 쓰고, 날 기울이거나 심지어는 던져대는 등 상대에게 "전혀 협조할 마음이 없이" 시험을 해봐야 되는 것이지, 칼을 들이밀면 한 손으로 손목잡고 다른 손으로 팔을 잡고, 이 부분을 어떻게 꽉 압박하면서 손목을 꺾고 자시고 하는 그런 과정에 일일이 다 당해주거나 '협조" 해주는 식의 실전훈련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5.2.1.2. 실전을 추구하지 않는 파[편집]

캐나다 기하학"(Canadian Geometry) 이론이라는 용어에 입각하여 중국권법의 실전성을 애시당초 추구하지 않는 형식이다, 이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기반 무술단체 스트레이트 블래스트 짐(Straight Blast Gym)의 맷 손튼이 만든 용어로, 그 근간이 되는 이론은 맷 손튼만의 독자적인 이론은 아니다. 벌써 오랜 시간동안 전통권법의 실전성 문제를 고민하던 많은 무술가, 무술연구가들이 어떤 식으로든 감을 잡고, 각자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그런 내용에 처음으로 "캐나다 기하학"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손튼인 것.

이 이론은 전통권법, 중국무술을 옹호하는 논리 중 "그래도 중국권법이나 여타 전통권법을 베이스로 MMA 등에서도 효과를 보는 선수들이 무시할만큼 적은 것은 아니잖은가? (= 그러니 전통권의 형태, 가르치는 방법을 고수하면서도 분명 실전성을 담보할 수 있다)"라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으로 나온 것이다.

산수나 역학, 기하학 등은 세계 각지의 문명을 이룬 곳에선 거의 어디서나 발견되는 학문이다. 그 학문은 상호교류가 없는 상황에서 각자 별도로 발전한 것임에도 그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모두 동일한데, 그것은 각 지역적 문화에 영향을 받으며 다소간의 차이를 보인다고 할지라도 결국에는 오늘날에 우리가 수학, 기하학으로 배우는 그 근본적인 수리적 이치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각형의 내각을 재는 방법이라든지, 어떤 도형의 면적을 구하는 방법은 그것이 고대 이집트의 방식이든, 그리스의 방식이든, 중국의 산학이 쓰는 방식이든... 그 방법을 미국에서 배우던 영국에서 배우던 캐나다에서 배우던 모두 똑같은 기하학이지, "이것은 미국 기하학, 저것은 캐나다 기하학"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즉, 손튼의 견해에 의하면 "무술"이라는 것은 결곡 그 기능성이 중요한 것이며, 모든 무술은 사람과 사람이 싸울 때 "어떻게 하면 이기는가"라는 그 이치를 공부하고 규명하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 무술의 시스템, 체계가 위의 1, 2의 과정의 부재로 인해서든 뭔가 다른 이유로 인해서든간에 그 이치에서 벗어나있다면 그만큼 무술의 기능적 목적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

달리 말하자면, 손튼의 위와 같은 주장은 "어떤 무술이 약하고 세고가 아니라 그냥 강한 사람은 강하다" 내지는 "어떤 무술도 그 사람이 깊이 수련하고 많은 경험을 쌓는다면 강한 것이다"라는 통념을 반박하고자 한다. 즉, 달리 말하자면 결국 어떤 이유에서이든 그 "이치"에서 멀어진 중국무술, 전통권법은 개인이 아무리 열심히 수련한다고 할지라도 그 근본적인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

이는 어찌보면 전통권법의 정체성 효용성 그 자체를 부정하는 논지일텐데 왜 서양무술계에서 그와 같은 주장을 널리 참고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냐면, 서양무술계는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에 맞춰 전통권법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쪽으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중국무술 베이스를 지녔으면서도 MMA를 뛰면서 그럭저럭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선수들의 경우, 그 중국무술의 실전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통권법이 대체로 실전성을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치"를 제대로 담고있는 몇몇 기법은 통한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것. 이는 전통권, 중국무술 베이스 선수라고 할지라도 자세, 풋워크, 권투기법 등 거의 대부분 중요한 기법은 오늘날 종합격투에서 통하는 '표준적'인 것을 쓰면서도 일부 특수한 공격이나 자신만의 기습적 기술로 중국무술의 기법을 쓰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52][53][54]

바꿔 말한다면, 위와 같은 "캐나다 기하학"이론을 받아들인 서양의 중국무술가, 전통권사들은 현재 중국에서 전승되는 전통권의 체계나 원리 등이 대부분 실전성을 상실한 채 이상화되고 미화되어 전래된 것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따라서:

(1) 현재 습득하고 있는 전통권의 기법이 "이치"를 회복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복원, 혹은 개조하고
(2) 전래 된 형태 그대로임에도 "이치"를 꽤 제대로 담고 있는 기법들을 위주로 집중훈련을 하며
(3) 자기 전통무술로는 온전히 현대무술이나 여타 무술에 대적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그 무술 이외에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다른 무술도 널리 섭렵하는 것을 수련생들에게 권장하는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

쉽게 말해서, "오늘날 내가 배운 이 무술은 대체로 실전에서 안 통하는 게 맞다"라며 매우 솔직담백하게 인정하고, "하지만 그 중에서 요런요런 기법은 요렇게 좀 바꿔 사용하면 통하기도 한다"라는 것을 연구하며, "그러니까 강해지고 싶다면 표준적인 그라운드 기술, 권투의 손기술, 무에타이 발차기 등 모두 배워두는 건 당연한 거고, 그 대신 특별히 애착을 가진 중국무술이 있으면 그 기법 몇개 정도는 간간히 섞어쓰는 것을 시도해보자" 라는 게 현재 "서양무술계"의 지배적인 흐름이다.

달리 말한다면, 앞서 "전통무술계의 딜레마"라고 소개한 것을 완전한 콜럼버스의 달걀 역발상으로 깔끔하게 해결해버린 것인데, "당신은 왜 그 무술을 배웠습니까? 그 무술의 무엇이 매력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 "좋아서 배웠습니다."라고 대답해도 되며, 그 무술에 무슨 대단한 국뽕적, 민족주의적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에 자존심을 올인하여 감정이입한 것도 아닌지라 그것으로 인해 별로 구겨질 자존심이나 체면도 없는 것이다. 무술은 싸우기 위해 만들어진 인간의 도구이며, 낡은 도구가 최신 도구보다 구린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래도 낡은 도구를 애지중지한다면 그 이유는 "그래도 이 낡은 도구가 통한다!"라는 인지부조화에서 찾을 게 아니라 걍 그 도구에 대한 정서적, 감정적 애착이 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것. 그리고, "그냥 좋으니까 배운다"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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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을 쓴 사람은 무술인 한병철의 동생 한병기다.[2]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예외로는 레슬링 정도가 있다, 다만 레슬링의 경우 현대 올림픽에서 채택된 근대 이후의 레슬링이 하도 전문화되다보니 고대, 중세 세계 각지의 레슬링 및 씨름 종목들과 운동역학적으로 비슷하게 수렴하는 양상이지, 정말로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까지 단일한 레슬링 하나가 있던 게 아니다. 현대 레슬링의 계보를 따지자면 근대 올림픽이나 영미권 학교레슬링, 캐치레슬링 등을 봐야 한다.[3] 물론 이는 아이키도가 검술의 기법에서 나온 것과 실제 아이키도를 비롯한 고류유술들이 탄생했을때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이해 못하여 나온 오해다, 일본 고류 무술 중 유술 대다수는 어디까지나 도검, 그것도 일본도 같은 쌍수검을 든 상대를 가정하며 나온 기술들이다.[4] 태권도또한 봉착한 문제로, 태권도 선수가 펀치나 하단차기로 시합에서 이기면 태권도의 이름을 쓰는 킥복서라고 깐다.[5] 물론 우연의 일치 또는 진작에 무에타이가 독자적으로 개발하거나 개량된 기술이므로 중국권법이 이를 참고할수는 있을지언정 이것이 중국권법이다라고 하면 안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중화사상에 빠진 중국인 중국권법 수련자들 중 상당수는 이를두고 "좡족의 중국권법 중 하나인 쫭권(壯拳) 또는 앙권(昻拳)이 태국으로 넘어가서 무에타이가 된 것"이라 주장하는 것이 중국 틱톡인 더우인에 널리고 널렸다.[6] 고대 권투는 진짜 무기가 없어서 세스터스만으로 싸우는 이들 때문에 발달했다는 주장도 있다. 게다가 중장보병들은 대체로 갑옷을 잘 갖추다보니 결국 진형 붕괴된 난전에서는 레슬링 및 막싸움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7] 한국택견도 "태질"이라는 그래플링 기술이 있고 일본유도를 포함한 고류유술들도 품새에 해당하는 "유도의 본(本)"에 아테미(當身技)라는 타격기가 있으며 반대로 가라테에도 카타(型)를 보면 유술의 흔적이 있다, 이런 유술기는 가라테의 영향을 받은 태권도에도 존재한다, 또한 태국무에타이도 기존의 타격 외에 빰 클린치를 이용해 상대를 넘기는 기술이 있다.[8] 권투글러브 참조. 그렇다고 맨손격투에서 전통무술이 유리하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글러브의 도입이 안면 타격 기술들을 발달시켰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9] 절대로 독자적인 기술 이름이 아니다. 추수를 단독 기술이라고 하는 건 주로 서양 쪽에서 약 팔기 위한 MCdojo라 불리는 패스트푸드형 동양무술도장들의 장삿속이다. 태권도로 치면 '겨루기'가 '돌려차기'와 같은 단일 기술이라 부르는 격이다(...). 서양 스포츠로 치면 '레슬링'이 '싱글렉 테이크다운'이라는 기술과 같다고 부르는 소리이다,[10] 단, 절권도는 전통적인 의미의 중국권법이라고 보기는 애매하다, 영국령 홍콩에서 태어난 미국 국적의 이소룡이 미국에서 만들어내고 중국권법 외에도 다양한 격투기도 섭렵했기 때문. 이에 이소룡인 중국계였다는 이유만으로 절권도를 중국권법이라고 칭하는 것은 극진공수도를 한국계 일본인인 최영의가 만들었으니 한국무술이라고 칭하는 것과 같다.[11] 다만 청나라 말기부터 계산하면 못해도 100년은 넘는 세월인데, 그런 시기에 해외에 퍼진 중국무술들은 제대로 도장을 세우기보다는 영화 액션 스턴트 등으로 더 넓게 퍼졌다. 수련 도장들은 중공 성립 이후에 더 잘 퍼진 편이다.[12] 중국권법은 고대에 맨손무술 또는 그래플링을 총칭했던 각력(角力), 상박(相撲) 등을 제외하면 "xx권"이라 하나의 무명(武名)을 가진 무술이 나오는 것들은 대다수가 청나라 말기이며 이러한 기록들 또한 그 어느 것도 수련법이나 싸우는 양상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13] 단, 중국무술 역시 진식 태극권처럼 명말청초에 생긴 무술 등 사료가 남아있는 것들은 추적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 사이에서 주로 유행하는 중국무술들은 옛날 서적에 나온 무술들이 아니다. [14] 물론 이 고수의 전설 중 9할이 넘는 전설들은 실제 고증을 따지고 들어가면 허무맹랑한 것들 뿐이다, 아래 후술될 내용도 있지만 구체적인 거짓전설을 하나 예시로 들면 손식태극권의 개파조사인 손록당의 전설 속에 출연하며 다이쇼 덴노가 직접 지명한 일본 최고의 무술가이자 "대정천황특급훈장"을 수여 받았지만 늙은 손록당에게 일방적으로 구타 당하고 손록당에게 2만 엔을 주며 일본에서 중국권법을 교습해달라고 얘기한 판원일웅(板垣一雄)이라는 일본 가라테 챔피언은 바이두 백과와 같은 중화권 위키에만 존재하며 위키피디아 중국어판 및 일본 위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당시 일본은 맨손무술 중 유도를 최고로 쳤고 가라테는 식민지 격인 오키나와의 싸움패 주먹질 무술이라며 천시하였으니 만약 이 판원일웅이 진짜 덴노가 직접 지명한 일본 최고의 무술가라면 최소한 유도가였을 것이지 결코 가라테 챔피언 같은 것이 아닐 것이다, 당연히 그 정도의 무술가라면 무명일리도 없다.[15] 진식태극권을 간화시키고 천천히 가르치는 체계가 바로 양로선(楊露蟬)의 손자 양징보(楊澄浦)가 창안한 양식태극권이다, 양로선은 진식태극권을 했고 그 양로선에게 기술을 전해받은 양징보가 진식태극권의 기술들을 큼직하게 분해조립해서 현재의 느릿느릿한 양식태극권을 만들고 양로선을 조사로 추대한 것.[16] 비슷한 사례로 한 때의 한국 권투 체육관들도 정신수양 운운하면서 권투는 안 가르쳐주고 몇 개월씩 줄넘기만 시키곤 했다. 2020년 기준으로 이런 권투장들은 많이 도태된 상태.[17] 원제목은 師父. 영문제목 The Final Master.[18] 가노 지고로는 유도를 창시 한 후 다른 유술 유파에서 비전에 해당하는 것들을 지도 과정 앞부분에 전진 배치하였다. 이런 파격적인 커리큘럼 덕에 처음에 관원이 고작 9명이었던 유도는 일본 유술계를 제패하며 급속도로 규모가 커졌다.[19] 원래 야마아라시는 자신의 발목으로 상대 발목을 채는 기술인데, 사이고 시로는 발가락이 문어발과 같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반인에 비해 매우 긴 체형이라 상대의 도복 하의를 발가락으로 꽉 움켜쥐고 넘기기가 가능했다고 한다.#, # 즉, 어떤 의미로는 토머스 헌즈의 플리커 잽과 비슷하다. 플리커 잽 자체는 평범한 기술이지만 팔이 매우 긴 헌즈가 사용할 때면 굉장히 위력적으로 변하는 것과 같다.[20] 심지어 원래 기술명은 "무영각"도 아니고 "군저각"(옷자락 아래에서 나오는 발차기)인데, 황비홍이 그냥 더 멋지게 "무영각"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이라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황비홍(무술인) 문서의 관련내용 참조[21] 고대 단련법 중에 달리기나 무거운 것 들어올리기의 비중이 높았는데 괜히 그런 게 아니다. 아무런 설명 없이도 직접 해보면 그냥 힘들고 딱 보기에도 뭔가 힘든 것을 해내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22] 다른 예로 상기된 가노 지고로의 팔방 기울이기 사례만 해도 나름대로 개화기 평화시대니까 먼저 가르치고 발전했지, 전국시대 같았으면 그거 배워서 다른 데로 갈까봐 먼저 가르치지도 못할 것이다. 그 이치를 깨우치지 못했던 몇 년간 자기보다 윗급의 유술가를 만났다면 가노는 유도의 개파조사가 되기 전에 그냥 죽었을 것이다.[23] 갑자기 중심이 무너지면 자신이 날라 간다고 느낄수도 있다.[24] 정확히 말하자면 체험자나 관람자의 주관적인 묘사가 진실일 수 있다. 체험자가 날았다고 느꼈으면 느낀 것이지 어쩌겠는가. 관람자가 엄청난 임팩트를 느꼈으면 그것도 느낀 것이다. 하지만 단어의 범용적인 용례를 생각해 보면 한 발 정도 떠서 움직인 것은 날았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체험자나 관람자의 주관이나 감상으로 다시 돌아가보자면 그 체험이나 감상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이야기나 감상을 전달할 때 무슨 사관처럼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사람 거의 없고 오히려 화자의 목적은 주로 체험이나 감상의 효과적이고 과장된 전달에 있다. 이런 간극이 있다는 것이다.[25] 단 문화센터에서 배우는 중국권법은 실전과는 아무런 관계 없는 체조용 태극권인 간화 태극권만 배울수 있다. [26] 중국권법 안에서의 타 무술이거나, 아예 중국권법이 아닌 권투나 유술 등[27] 아래 나오는 킥복서 한 페이롱이 그 예시.[28] 유도, 무에타이[29] 덤으로 극소수의 해당 실전을 치를만한 사람들은 총, 칼로 담가 버리거나 그냥 여타 격투가와 어깨를 나란히 할만큼 수렴진화했기에[30] 한국 택견도 보면 구한말에 태어난 전수자의 마음대로 가르치고 싶은 부분만을 가르쳐주거나 위험한 기술들은 별로 가르치고 싶어하지 않는 등 모든 것을 남겨야 한다는 현대인의 감각과는 다를 수 있다.[31] 단 해당 대결은 그라운드 및 레슬링을 금지한 완전 타격 룰이었으며 경기를 보면 알 수 있듯 쉬샤오둥이 상대를 어느 정도 봐주며 경기를 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보자.[32] 참고로 전통 무술의 실전성에 대하여 쉴드치는 주장들 중에서 '전통 무술은 진짜로 목숨을 건 싸움을 전제로 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는 실전성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에서처럼 급소를 공격하는 기술을 금지하는 경기에서 활약하기 어렵다.'는 믿음이 상당히 퍼졌다. 축구선수들은 잘도 쓰더구먼 당연하지만 힘과 스피드, 멘탈 상태의 넘사벽 차이를 단순히 기습적인 기술만으로 극복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실제 저런 급소 공격 기술들은 애초에 전통무술 도장에서 가르치거나 수련시키지도 않는다. 또한 격투기 선수도 경기에 나서기 위해서는 무엇이 반칙인지 명확히 알아야 하기에, 자기들 룰 아래서 사용할 수 있는 반칙기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막는지를 철저하게-하다못해 지나가는 말로라도- 가르친다. 좀 야료를 부리자면 잘 들어간 반칙기 하나에 승패의 향방이 바뀔수 있기 때문이고, 스포츠맨십을 철저하게 지키는 모범적인 경우 해도 일단 반칙기는 쓰다 걸리면 무조건 패배인만큼 기왕 안쓸거면 절대 쓰지 못하도록 철저히 교육해야 하기 때문. 바꿔말하면 규칙이 사라진 상태에서는 여차하면 급소 공격 등 반칙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급소 공격은 결코 중국 무술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리고 급소 공격 금지 룰이 존재한다는 건 뒤집어서 해석하면, 룰이 없을 경우엔 격투가들이 급소 공격으로 인명사고를 낼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통 무술 옹호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격투기가 '급소 공격이 없는 룰에 특화된 싸움'이 아니라는 것.[33] 이는 21세기 현대에 들어서 쉬샤오둥에게 대판 깨진 이후에도 정치적 이유로 발전을 꺼리고 있다, 당장 쉬샤오둥에게 깨진 웨이레이는 중국의 국가 기간방송이자 연출되는 모든 프로그램이 중국 공산당의 의사에 반하지 않게 조작이 가능하고 그만큼 큰 영향을 받는 중국 중앙 텔레비전에서 엄청난 고수로 띄워준 거짓 대가이다.[34] 일전에 해당 문서에선 묘족의 검술 운운하였지만 묘도는 묘족과는 아무런 관계 없는 중국식 일본검술이다.[35] 물론 실제로 MMA시합에서 나오는 기술들은 MMA에서 수렴진화하며 개발된 기술로 중국권법과 연은 없다.[36] 이는 무기술도 마찬가지인데 강하기로 이름 높았던 이화창이나 각종 일본 고류 무술, 서양 검술 모두 방어는 상책이 아니니 기회가 보이면 공격하고 끊임없이 몰아치며 대치 중에는 반드시 날끝을 상대에게 향해 견재를 유지할것을 요구한다. 이는 권투로 치면 잽을 계속 툭툭 던져주는 것이다. 검끝을 뒤로 빼고 상대를 유인하는 자세는 모두 쓰기 어려운 고등기술이다.[37] 척계광은 징집병들에게 각각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무기술을 6~70점짜리 숙련도로 익히게 하여 일본검술의 숙련도가 높은 왜구를 격파하는 원앙진을 개발한 인물이다.[38] 다만 여기 등장하는 소림사 곤법과 현존하는 소림사 곤법은 직접적인 계승 연관성이 없다, 왜냐면 척계광과 같은 시대를 살던 유대유(兪大猷) 장군이 소림사의 무승들을 이겨내고 그들의 무술이 헛짓거리라고 비판한뒤 군대에서 사용하는 곤법을 다시 가르쳤기 때문.[39] 이마저도 20세기 가서야 비로소 양로선(楊露蟬)에 의해 대중 보급이 되며 그 전까지는 진가구(陳家溝)라는 작은 진씨(陳氏) 집성촌 내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가전무술이었다.[40] 다만 무에타이는 종합격투기의 중요 요소로 격투기 시합에 안가리고 나오지만 나머지의 경우 가라테의 료토 마치다, 태권도의 야이르 로드리게스 정도를 제외하면 가라테와 태권도 베이스인 선수는 대체로 중소단체 또는 국가내 아마추어 시합에서 나오는 편이며 쿵후 베이스의 격투기 선수는 중국의 시합을 제외하면 거의 나오지 않는다. 단일무술의 기법을 따로 수련하는 것은 코너 맥그리거처럼 태권도의 빠른 발차기 정도며 가라테나 쿵후를 어떠한 기법을 따로 연습하는 것은 더더욱 찾기 힘들다.[41] 기효신서 권4, "단병기를 길게 쓰는 방법" --> "短器長用解"[42] 양로선의 일화는 누군가를 주먹으로 날렸다는 것이고, 창에서 나왔다고 주장하는 형의권의 경우 형의권 고수로 여겨지는 곽운심 또한 '반보붕권 타편천하'라며 권법을 강조한다, 팔극권 대가 신창 이서문 관련 일화는 교차검증되는 명확한 사실이라기보다 주변인의 회고록 등에서 등장하는 '일화'에 가깝다.[43] 권아, 버추어 파이터, 일대종사, 코토미네 키레이, 이서문(Fate 시리즈)[44] "창시자인 진향이 태평천국 운동에 뛰어 든 장수니까 무기술일 수 있지 않은가?"라는 반론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진향이 태평천국의 난에 투신한 것은 채리불권 창시 이후다.[45] 양생의 효능 운운하지만 결국 여타 체조와 비슷하며, 자연과학을 뛰어넘는 뭔가 이상한 것을 할 수는 없다.[46] 태극권의 보급은 중국 정부에서 건강체조로 개조해 제정한 우슈간화 태극권이 주축이 되었고 주역이라는 동양 철학고전에서 따온 현학적인 요소가 신비주의와 오리엔탈리즘에 융합되어 퍼진 것이다, 결코 극진공수도주짓수처럼 실전으로 증명하거나 태권도처럼 올림픽과 스포츠성, 체계성으로 증명해낸 것이 아니다. [47] 팔극권은 하북성 창주, 영춘권은 광둥성 불산, 당랑권은 산둥성, 태극권은 하남성 진가구 등 [48] 계급 철폐 이후 일본에서는 구 무사계급이 길거리 격검쇼를 벌이며 생계를 잇기도 했고, 서양은 애초에 모든 분야에서 freak show를 한 게 서커스의 시초였다.[49] 대략 3미터 정도 길이 아래의 병장기들[50] 蟹挟(카니바사미)[51] 胴廻し回転蹴り(도마와시카이텐게리)[52] 이것은 비단 중국권법만의 상황이 아니라, 실전성에 대한 논란이 오래동안 이어져온 태권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된다. 프라이드, K-1 같은 입식타격 종목은 물론 UFC등 각종 MMA 시합들이 대중화되면서 지난 20년 간 실전적 무술로서 태권도의 위상은 그야말로 처참한 지경으로 떨어졌었는데, 신기하게도 최근 몇 년간에는 일부 격투가들이 MMA 시합에서 태권도를 베이스로 한 다양한 발차기를 통해 의외의 승리를 일궈내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면서 (전반적인 평가는 여전히 낮지만) 부분적으로는 재평가를 받은 추세이다. 심지어는 태권도를 전문적으로 수련한 UFC의 죠 로건 같은 인사들도 여전히 태권도 그 자체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면서도 그 무술에 대해서는 기대를 갖지 않지만, 그 무술의 일부 기법은 활용의 여부에 따라 큰 효과를 볼 수 있음을 인정하고 거기에서 긍정적인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즉, 이미 전체 무술적 체계는 실전성을 상실해버렸지만, 아직 실전성이 상실되기 이전에 사용되었던 이런저런 개별 기법들은 여전히 중국무술에도, 태권도에도 어느 정도 남아 있다는 것.[53] 사실 이러한 양상은 요즘와서 갑작스럽게 주목을 받기는 해도 시합화 된 격투기 세계에서는 벌써 오래 전 부터 인지되어 왔던 현상이다. 종합무술의 격투도 마치 군비경쟁과 같아서, 시대에 따라 어떤 기법들이 득세하고, 그것에 대항하는 카운터법들이 생겨나고, 그것들이 전부 MMA에 녹아들어 그것이 새로운 표준이 되는 과정이 반복된다는 것. 그리고 최근에 들어와서 다시 일정한 행태가 정형화 된 추세에서, 의외로 기존에는 무시받던 일부 무술들의 고유한 어프로치나 기법들이 해당 격투가의 "키트(kit)"에 포함되면서 상대방을 공략할 새로운 옵션, 가능성을 열 수도 있다는 것이다.[54] 죠 로건이나 한국의 김동현과 같은 격투가들에 의하면, 요즘에는 공방의 밸런스가 우수하고 입식, 그라운드 양쪽 모두 능한 웰-라운디드 스타일이 너무나 당연한 표준이 되다보니까 근본이 그래플러라고 해서 예전처럼 무작정 달려들어 그라운드로 끌고 들어가는 것도 힘들어졌고, 근거리 타격전에 능한 스트라이커라고 할지라도 이미 모두들 스트라이킹에 똑같이 능하다보니까 쉽사리 투신하기 힘든 전법이 되다보니 다시 상호간의 디펜스 전략의 핵심이 일단은 스트라이킹과 그래플링/테이크다운 양쪽 모두에서 벗어나 있는 중거리 이상으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것. 그런데 즉각적인 반격이 힘들어지는 중거리 이상으로 '간합'이 벌어지기 시작하면 그 거리는 오히려 지금까지 무시당하던 태권도 등이 가장 자신있게 공격을 낼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에 태권도를 전혀 접해보지 않은 격투가는 그 중거리 이상에서의 급작스럽게 튀어나올 수 있는 태권도의 발차기에 대해 옛날과 같은 "모르면 죽어여지"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즉, 한정적인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그 무술의 기법들이 활용될 수 있는 조건들이 마련되기 시작하면 부분적으로, 일부 기법들은 실전성을 보일 수 있는 것이고, 태권도가 그에 해당된다는 주장들이 가끔씩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