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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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중국의 해적들. "화구(華寇)"라고도 불렸다.


2. 상세[편집]


옛날부터 중국에서 혼란스럽고 백성들이 고달프고 먹고살기 힘들어지면 도적이 되었는데, 그 중 바닷가에 있었던 사람들은 해적이 되기도 했었다. 후한 말 및 삼국시대가 가장 유명한 케이스이다(특히 손책과 손권에 들어온 장수들 중 반은 해적출신이었다). 그 외 남중국해에서도 해적들이 많았다. 또한 수나라, 당나라에서도 해적들이 기승을 부리기도 했었는데, 수나라의 경우, 고구려의 녹족부인이 수나라 해적들로부터 빼앗긴 아홉 명들의 아들들을 되찾는 이야기가 있으며, 당나라 해적들은 신라 해안에 들어와서 신라인들을 대상으로 납치, 약탈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소년들을 많이 납치하기도 했었다. 장보고가 해적을 물리치는 해군이 된 이유도 그 배경에 있었다.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하여 중개 무역에 도움을 주었으며, 일본의 유명한 승려였던 엔닌 역시 장보고의 도움을 받기도 했었다. 발해의 경우 장군 장문휴를 시켜 해적들에게 충동시켜서 해적도 거느려서 산둥 반도의 등주성을 침략했는데, 여기에 나오는 해적들 중에서 당나라 해적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나라 후기와 오대십국 시기에도 해적들이 나타났으나 후주북송 시기 중국이 안정되어가면서 중국 해적들은 많이 줄어들게 된다. 이후 명나라 말기에 다시 언급되는 경우도 있다. 임봉이 대표적이고 정성공의 아버지도 해적 출신이었으며, 정성공 역시 동중국해의 해적이기도 했다. 청나라는 대표적인 여성 해적인 정일수가 있다. 그 외 장보자정을이 있다.


3. 같이 보기[편집]


  • 신라구
  • 왜구
  • 여진족(도이)[1]
  • 중국의 해외 불법 조업: 원래 해적은 아니고 평범한 불법 어선이었으나 점점 세력이 커져 근처 한국 어선들과 한국 해경을 공격하는등 사실상의 해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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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을 침공해서 도이의 입구를 일으켰고, 한국의 경우 고려시대에 울릉도가 피해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