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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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역사
4. 같이보기


1. 개요[편집]


'가리아'가 아니다!!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지역 북부를 일컫는 말로, 준가리아라고도 부른다. 중가리아 북부에는 천산 산맥알타이 산맥 사이의 중가르 분지가 있으며, 서쪽으로는 일리 강이 흐르고 있다. 카자흐스탄과 가깝고 카자흐족들도 거주하고 있어서 문화적으로 카자흐풍이 많은 지역이다. 북쪽으로는 러시아 알타이 지역과 접하고, 북동쪽으로는 몽골의 호브드 지역과 접하고, 동쪽으로는 중국 간쑤성과 접하며, 남쪽으로는 타림 분지와 접하고 있다. 동쪽의 경우 정확히는 투르판 등 투르판 분지에 해당되는데 중가리아 지역 범위에 들어갈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일반적으로 투르판도 중가리아에 넣는 편이다. 중국에서는 이곳을 북부 신장 지역이라는 뜻의 "북강/베이장(北疆)이라고도 부른다. 북강을 기준으로 할 때 원래 지역은 북강 서부 일대이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중심지인 우루무치도 이곳에 있다. 지리적으로는 중앙아시아지만 북아시아에도 속하기도 한다.

과거 또는 더 넓은 의미의 중가리아는 이식쿨 호를 경계로 한 키르기스 공화국 북부(극히 일부)도 포함되었으며, 때로는 바인골린 지역 북부 또는 북동부 일부도 포함될 때도 있다.

2. 상세[편집]



중가리아 지역의 범위

구성 지역들
노란색 : 중가리아 분지
빨강색 : 투르판 분지

원래는 중가리아 분지 일대만 가리켰으나 이들을 합쳐서 중가리아라고도 부른다.

중가리아의 범위

청나라 시기에 이주해온 위구르족들도 있다. 그 외 몽골족(오이라트), 다우르족들도 거주하며, 소수의 퉁구스계 민족들인 만주족, 시버족, 신장솔론족(옹코르)족들도 거주하고 있으며[1] 다우르족과 솔론족, 시버족은 1758년에 이들을 이주시켰다. 카자흐족과 키르기스족들도 거주하며 그 외 이곳으로 이주해온 한족러시아족들도 있다. 오이라트 몽골족을 제외하면 전부 이주해온 민족들이다.

같은 신강 지역이지만 대부분 문화적으로 이슬람 분위기가 타림 분지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편에 해당되며, 그나마 투르판 분지의 투르판, 쿠물, 이리(일리) 지역이 이슬람풍이 일부분 있는 편인데 카자흐족과 키르기스족의 영향으로 세속적이다보니 이곳 역시 종교적 분위기가 약하거나 심지어 없는 경우도 있다. 신강의 러시아인(러시아족), 중국인(한족)들도 무신론이나 무교인 경우도 있으며(러시아인의 경우는 정교회를 믿기도 하며, 중국 한족들은 유교의 영향을 받거나 도교를 믿는 사람들도 있다), 몽골계 민족들과 퉁구스계 민족들은 텡그리즘이나 샤머니즘, 티베트 불교를 믿는 경우도 있다.

자연적으로 산들이 많은 편인데 천산 산맥과 알타이 산맥처럼 높은 산들은 물론 중가리아 분지와 투루판 분지 등도 있다.

준가르 분지(중가리아 분지)와 많이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개념인데, 중가리아는 지역 이름이라면 중가리아 지역의 분지를 중가리아 분지라고 부른다.

가장 대중적인 햄스터 가운데 하나인 준가리안 햄스터[2]가 여기서 처음 발견되었다.


3. 역사[편집]


중가리아의 역사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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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이곳은 월지오손 같은 민족들이 거주했으며 흉노, 튀르크족들과 몽골족들이 뒤를 이어 들어왔다. 중세에는 당항족서하가 전성시절에 진출하여 일부분 점령하기도 했으며, 훗날 서요, 몽골 서부에 걸쳐진 투르크계 나이만이 있었지만 칭기즈칸의 몽골 제국에 병합되었고, 오고타이 칸국, 차가타이 칸국원나라 이후 북원에서 갈라진 서부 몽골 부족들은 오이라트로 독립했고 여기서 토르구트부는 서쪽으로 이주하여 칼미크 칸국을 건국하고, 중가리아에 잔류한 자들은 준가르가 되었다. 중가리아의 명칭은 중가르(준가르)족에서 유래되었다. 중가르는 주변 중앙아시아 국가들 및 지역 민족들을 침략하여 약탈이나 복속을 가하여 중앙아시아 내륙 일대에서 강력한 최후의 유목제국이 되었으며, 청나라도 침공해 청나라가 이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건륭제 시기에 이곳을 점령하여 청나라의 영토가 되었고, 옛 중가르 영토와 중가르가 지배했던 남부 위구르스탄, 투르크계 제족들이 거주하는 지역들을 합쳐서 새로운 영역이라는 의미의 "신장(신강, 新疆)"이라고 불렸다. 중가르가 멸망하자 청나라군에게 학살과 박해를 당했고, 일부 살아남은 오이라트계 주민들도 청나라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

청나라가 지배했던 신강성의 범위는 지금의 키르기스스탄 동부와 카자흐스탄 남동부 발하슈 호 유역, 타지키스탄 동부 파미르 고원, 아프가니스탄 제일 동부의 바다흐샨 지역까지 차지했었으며, 중가리아의 영역은 발하슈 호 인근까지 다다랐다.

그러나 건륭제 후기에 수많은 소수민족들(특히 이슬람을 믿었던 소수민족들)의 봉기는 물론 러시아 제국의 간섭과 침략으로 불안정해지기도 했으며, 특히 신강성 인근에서 코칸트 칸국 멸망 이후 타지크인 출신의 코칸트 칸국 군인이었던 야쿱 벡이 신강으로 달아나면서 이곳에 야쿱 벡 정권을 세우면서 신강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청나라에 대항했지만 지나친 종교적 중심주의로 인한 탄압은 위구르인들에게조차 비호감을 샀으며, 결국 위구르인들을 비롯한 신강 지역 소수민족들의 내부반란과 청나라, 제정 러시아의 협공으로 야쿱 벡의 반란을 진압하였고, 이 사건을 계기로 러시아의 신강 지역에 대한 간섭은 더욱 심해져갔다. 결국 1881년 러시아와 일리 조약을 맺음으로써 발하슈 호, 추이 강(추 강)과 일리 강 유역 일부 등 일리 지역 서쪽 반을 러시아에게 줘야 했다. 중국에서는 이곳을 "외서북/와이시베이(外西北)"이라고 부른다.[3]

1911년 청나라 멸망 이후 중화민국 북양정부국민당 시기에도 대부분 중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동시에 중국에 대한 저항은 계속되었으며, 1933년부터 1934년까지 신강 남부에 존재했었던 동튀르키스탄 제1공화국 이후 두번째로 사실상 제1공화국을 계승했던 동튀르키스탄 제2공화국이 1944년 소련의 도움으로 신강 북서부 굴자에서 독립되어 1949년까지 유지되었다. 그러나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화인민공화국에 의해 1949년 합병되어 다시 중국의 영역이 되었고, 다른 중가리아 지역들도 중국령이 되었다.


4. 같이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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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래 솔론족들은 만주 지역에 사는 퉁구스 민족인데 청나라에 의해 일부 솔론 부족들이 신강으로 이주해오기도 했으며 이들을 '신장 솔론족'이라고 부른다. 시버족과 비슷한 사례이다. 시버족과 솔론 부족 뿐 아니라 신강 등 서부 지역으로 이주해온 일부 만주족들과 한족들도 여기에 해당되었다.[2] 국내에서는 발음이 왜곡되어 정글리안이라고 불리곤 한다.[3] 또한 중국 입장에서는 러시아 제국주의의 간섭으로 비합리적으로 빼앗긴 곳으로 여겨 외서북이라 불리는 이곳을 되찾아야 할 영토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러시아가 아닌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영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