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연출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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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명
2. 사건 정황
3. 특이했던 수사과정
4. 그 외
4.1. 여담
5. 둘러보기


1. 설명[편집]




1982년 12월 14일서울특별시 금천구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으로 '사진작가 죽음 연출 사건'이라고도 불린다.


2. 사건 정황[편집]


1982년 12월 14일 서울특별시 구로구 호암산[1]에서 24세[2]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었다.[3] 조사 결과 사망자는 이발소 여종업원 김경희 씨로 밝혀졌다. 발견 당시의 상태는 일단 독살로 추정되었으나 이상하게도 저항한 흔적이 전혀 없고 시신이 옷을 벗고 바닥에 쓰러져 몸부림치다 사망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그대로 해석하면 김씨는 산에 올라간 후 굳이 자의로 옷을 벗은 뒤 독약을 먹고 바닥에서 몸부림치다 사망했다는 괴상하기 짝이 없는 결과가 나온다.[4]

그런 이유로 한국 경찰 역사상 최초로 프로파일링 기법이 동원되었으며 곧 범인이 잡혔다.

이 사건의 범인은 특수절도 등으로 여러 차례 옥살이를 했던 전과 4범이었고 복역 후 사진작가보일러 배관공으로 살던 이동식(李東植, 당시 42세)이었다. 그는 1940년 경상북도 대구부(지금의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6살 때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 숙부 집으로 보내져 국민학교 과정을 마쳤으며 14세 때 서울로 상경하여 15년 동안 폐지와 고철 등을 주우면서 넝마주이로 살아가다가 몇 차례 특수절도 혐의로 콩밥을 먹고 출소한 후 사진에 취미를 붙여 이것저것 사진을 찍으면서 살았다. 사진가로서의 재능은 출중해서 한국사진작가협회의 회원이 되었고 사진 공모전에서 10여 차례 입상한 경력도 가지고 있으며 개인 전시회까지 열었을 정도였다. 또 배관공 월급이 수십 만원이던 시절에 150만 원짜리 일본제 카메라를 구비하고 있었다. 당시 일반적 SLR 카메라인 Nikon FE가 27만 원 정도로 국립대 한 학기 등록금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줄곧 특별한 아이디어를 고안해내지 못해 사진 공모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되자 그는 고심 끝에 죽음을 비롯한 더욱 자극적인 컨셉을 사진에 담기로 작정했다.[5] 그는 죽음을 가장 극적이고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생각했고 후처[6]를 모델로 네크로필리아적인 요소가 담겨 있는 사진을 몇 번이나 찍었으나 연출된 죽음에 대해 그는 만족하지 못했고[7] 결국 가서는 안 될 길을 걷고 말았다.

어느 날 자신이 다니던 퇴폐 이발소의 직원인 김경희(金敬姬, 당시 24세) 씨[8]에게 출세를 시켜 주겠다며 누드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했다. 그녀가 수락하자 함께 산에 올라갔고, 옷을 벗기 전 김 씨에게 추울 테니 감기약을 준답시고 사이안화 칼륨(청산가리) 약을 건네주었다. 이씨는 독약을 먹은 김 씨가 땅바닥에 쓰러지면서 몸부림치는데도 불구하고 생명을 구하는 일엔 아랑곳하지 않고 그 모습을 21장이나 사진으로 찍는 비정한 행각을 저질렀으며 그걸 숨을 거둔 후에도 계속했다.[9] 검거 후 재판을 거칠 때도 혐의를 극구 부인하다가 아래에 후술할 사진 감정을 담당했던 모 대학 사진과 교수의 증언으로 이동식이 범인이었다는 사실이 완전히 탄로나자 홧김에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결국 범인 이동식은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고 이에 형량이 무겁다면서 항소, 상고를 거듭했지만 모두 기각당한 뒤 1984년 2월 16일에 사형 확정 판결되어 2년 뒤 1986년 5월 27일을 기하여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서기만 당시 수사반장은 주변에서 의문의 실종이 된 여성이 벌써 21명 정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진실 여부는 알 길이 없으나 그가 전처를 살해했다는 심증이 있었다. 전처의 가족들이 강하게 의심했고 심증으로는 살인의 가능성이 충분했다.[10] 사실 추가 피해자들을 조사해서 밝힐 수도 있었지만 이 사건 특유의 엽기적인 모습이 외신에 알려지자 높으신 분들나라 망신 시키지 말고 얼른 끝내라고 경찰에 압력을 넣어서 결국 중간에 끝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게 1986 서울 아시안 게임1988 서울 올림픽을 연달아 개최하게 되면서 국제사회의 관심이 한국에 쏠리는 상황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그가 시신을 암매장한 장소로 지목한 곳에서 추가적인 시신이 발견되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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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1월 21일 동아일보에 실린 범인 이동식의 모습

3. 특이했던 수사과정[편집]


처음 이동식을 검거했을 때 범행을 부인했고 경찰은 유력한 증거인 피해자 사진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도, 이동식이 거주한 보일러 현장 소장실에서도 결국 발견하지 못했는데 한 담당 형사가 그 소장실의 일부분만 도배되어 있는 걸 보고 벽을 두들기니 합판이 있다는 걸 발견해 합판을 뜯어내 사진이 들어 있는 필름을 발견했다. 그러자 이번엔 이동식이 '본인은 이미 죽은 이후에 피해자를 찍은 것일 뿐 본인이 죽이지 않았다'고 발뺌하기 시작했고 형사들이 사진 작가를 비롯해 전문가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신구전문대(현, 신구대학교) 사진과 홍순태 교수가 한 가지 조언을 형사들에게 해 주었는데 그 조언은 '사진을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솜털이 서 있으면 살아 있었다는 것을, 솜털이 누워 있으면 이미 사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였다. 경찰이 이를 바탕으로 검증한 결과 솜털이 서 있는 사진부터 점점 누워가는 흔적들을 발견했고 결국 살아 있을 때부터 죽어가는 사람을 찍었다는 것이 입증되면서 증거로 채택되었다.

이동식의 입장에서는 결국 자승자박한 꼴이 되었는데 본인이 사진작가였기 때문에 1980년대 일반인들이 거의 쓰지 않는 고급 카메라를 사용한 덕분에 현미경 확대가 가능해 땀구멍이나 솜털을 확인해 증거로 채택될 수 있었다.


4. 그 외[편집]


굉장히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라 이 사건은 수사반장[11], 실화극장 죄와 벌[12], 경찰청 사람들[13], 기막힌 이야기 실제상황[14], 신비한 TV 서프라이즈[15], 심야괴담회[16]까지 범죄 관련 프로그램에서 쭉 단골 소재로 쓰였다. 수사반장에서는 종결 이후 10대 사건 시리즈 범죄라는 재현극에서 2부로 방영했다. 다만 심의 때문에 얌전한 속옷 촬영 사진으로 대체했지만.

아래의 사진은 그나마 순화된 것이고 실제 전라 시체 사진도 있다. 윗 사진의 테이블에 있는 사진들이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문제는 경찰에서 수사 결과 발표할 때 그것이 버젓이 신문에 실렸고 선데이 서울류의 잡지에서는 한 장 한 장 분석까지 실어주었다.[17]

범인이 이 사진을 전시했는데 연출된 사진이라고 둘러댔으나 우연히 사진을 본 의사가 사진 속 인물의 동공이 풀려 있는 것을 보고 실제 죽음을 찍은 것이라고 판단해 경찰에 신고했다는 설도 있지만 사실무근이다. 참고로 기막힌 이야기 실제상황에서는 이 설을 반영했으며 극적인 효과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동식의 사형 집행은 서울구치소의 서대문 시절의 마지막 사형 집행이었으며 그는 이곳에서 집행된 마지막 사형수다. 이후 서울구치소는 이듬해에 시흥군 의왕면(현 경기도 의왕시)으로 이전했으며 현재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동식은 서울구치소에서 복역 중 가톨릭에 귀의해 '바오로'라는 세례명을 받았으며 사형 집행 후 천주교 종로성당이 관리하는 나자렛 묘원에 묻혔다.


4.1. 여담[편집]


당시 해외토픽으로도 나왔을 정도로 쇼킹한 사건이었다. 한국에 번역된 일본의 모 유명 사진작가의 에세이집에도 이 사건이 언급되어 있다. 비뚤어진 미학을 경계하자는 의미로 예를 들었다고 한다.

신의 퀴즈 3기 5화 데스 마스크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며 작중에서 이 사건이 직접 언급되었다.

수사9단의 Pain 사건의 모티브가 된 듯하다.

용감한 기자들에도 이 사건이 나왔다.#

팟캐스트 프로파일러 배상훈의 CRIME - 죽어가는 모습을 찍는 싸이코패스 이동식

김복준 배상훈 김윤희의 사건의뢰 - 이동식 사진작가 사건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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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5년 구로구에서 금천구가 분구되어 현재는 금천구다.[2] 1958년생[3] 어린이들이 군인 놀이(병정 놀이)를 하다가 발견했다고 하며 그 어린이들의 말로는 처음에는 마네킹인 줄 알았다고.[4] 실제로는 벗고 죽은 게 아니라 죽은 뒤 벗겼다.[5] 그가 모 대회에서 은상을 받은 작품도 죽어가는 을 소재로 한 것이었다.[6] 2남 1녀를 둠[7] 이것 때문에 후처와도 자주 다투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8] 1958년생. 5년 전 대구광역시에서 결혼해서 아이도 둘 낳았지만 남편의 주벽을 견디지 못해 가출한 후 홀로 상경한 터였다.[9] 죽은 뒤 손을 묶거나 옷을 벗기고 촬영을 계속했다.[10] 실화극장 죄와 벌 참조.[11] 80년대 후반 실제 사건을 재현한 에피소드. 여기서 범인을 연기한 배우는 심문하던 형사에게 예술을 위해 죽였다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며 형사들이 멍때리는 장면이 나왔다.[12] 2003년 10월 13일 37회 방송분 "죽음의 포즈" 편. 참고로 이 에피소드에서 범인 이동식의 이름은 '한동수'로 바뀌었으며 한동수를 연기한 배우는 야인시대에서 장도영 역을 맡았던 이경영이다. 또 2심 담당 검사인 박남용이 나와서 증언했는데 당시 1심 담당 검사였던 이종백 검사가 고위직에 있었던 탓에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13] 1997년 "죽음의 미학" 편[14] 2015년 11월 12일 112회 방송분 "완벽한 작품의 비밀" 편. 여기서는 이동식의 이름이 이재석으로 바뀌었으며 2010년대의 사회상을 반영해서 일부 각색되었다. 가령 범인이 이발소가 아닌 미용실을 방문한다든가, 범인이 인터넷으로 청산가리를 구입한다든가.[15] 2012년 1월 1일 498회 방송분 "언빌리버블 스토리 - 미치도록 찍고 싶었다" 편. 여기서는 실제 사건보다 상당히 순화되었는데 실제 사건은 누드 사진이었으나 당연히 아이도 보는 예능인 서프라이즈에서는 그냥 사진으로 제안되어서 옷을 벗지 않으며 피해자의 어두운 가정사도 나오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야기가 실제 사건을 자세히 다루기보다는 범인의 시점으로 순정 드라마마냥 피해자와 썸을 타는 식으로 진행되다가 마지막에 반전을 치는 형식으로 다뤄졌다. 드라마를 위해 정보를 희생한 셈.[16] 2021년 6월 24일 15회 방송분. 원래는 제목 그대로 괴담을 다루는 프로지만 해당 방영분은 예외적으로 '귀신보다 무서운 사람 특집'이라는 제하에 이 사건을 포함해 실제로 일어난 범죄 사건들을 소개했다. 해당 방영분에서는 이 사건과 함께 대순진리성도회 사건과 김선자 연쇄 독살사건도 소개되었다.[17] 물론 신체의 민감한 부위 등은 모자이크로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