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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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연천 전곡리 유적 주먹도끼.jpg

연천 전곡리에서 출토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
1. 개요
2. 등장시기
3. 제작방법
4. 용도
5. 종류
6. 시대적 의미
7. 모비우스 설
7.1. 한반도의 주먹도끼



1. 개요[편집]



파일:외날찍개 주먹도끼.jpg

외날찍개 주먹도끼

Hand axe

주먹에 쥐고 쓸 수 있는 도끼 형태의 뗀석기. 전기 구석기시대[1]의 대표적인 석기이다. 원시인들은 이것을 손에 들고 다용도 도구로 사용했다.

2. 등장시기[편집]


주먹도끼와 같은 고도의 석기를 제작하기 시작한 때는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에 이르러서였다. 그 이전까지의 인류 조상들은 아프리카에서만 살았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약 160만 년 전쯤에 출현한 호모 에렉투스들은 불을 능숙하게 다룸으로써 비로소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럽아시아로까지 영역을 확대시킬 수 있었다.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 출토 범위와 주먹도끼가 발견되는 지역의 범위는 대체로 일치한다. ‘곧선사람’이라는 학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완벽하게 두 발로 설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자유로워진 그들의 두 손은 더욱 정교하게 진화되었고, 그로 인해 석기 제작 기술도 그 이전의 어떤 인류보다도 월등하게 뛰어났다. 주먹도끼는 이러한 인류의 진화를 배경으로 하여 탄생한 도구이다.


3. 제작방법[편집]


유튜브 뗀석기 만드는 법 (9:20 구간을 보면 날카로운 돌칼이 떼어져 나온다.)


정교한 돌창 만드는 유튜브


주먹도끼의 재료는 주로 규암·석영·사암 등을 사용하고 있으나 현무암 같은 다른 종류의 돌도 이용하였다.

주먹도끼를 만들 때에는 이러한 석재로부터 일차적으로 큰 박편을 떼어낸 다음 박편의 아랫 부분과 윗 부분, 즉 박편의 양면을 주위로 돌아가면서 엇갈리게 타격을 가하여 작은 박편을 떼어내면서 처음부터 만들고자 하는 주먹도끼의 형태로 다듬어 나간다.

4. 용도[편집]


주먹도끼는 구석기시대에 사용된 대표적인 도구이다. 한 손에 쥐고 쓸 수 있어서 짐승을 사냥하고 가죽을 벗기며, 땅을 파서 풀이나 나무를 캐는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즉 오늘날의 멀티툴과 같았다고 보면된다.

최근에는 이런 도구로서의 용도 이외에 마치 오늘날의 명품이나 외제차처럼 수컷으로서의 힘과 재력을 과시하며 많은 암컷과 교미해서 더 많은 번식에 성공하기 위한 성적 매력을 불러 일으키는 매개체였다는 급진적 주장도 진화 인류학계에서 등장하였다.

5. 종류[편집]


주먹도끼의 형태는 약 20종류가 있으며 시대에 따라 각각 특징적인 것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형태로는

  • 아베빌식(Abbevillian; 프랑스 솜므강변의 유적, 아주 조잡한 초기형)
  • 창끝형(lanceolate; 중세 기사가 쓰던 랜스와 비슷한 모습)
  • 타원형(ovate; 첨두부가 미약해서 계란형에 가까움)
  • 행인형(amygdaloid; 두꺼운 주먹도끼로 아몬드처럼 생김)
  • 넙치형(limande; 다소 길고 광어와 흡사하지만 측면날 부위가 평행에 가까움)
  • 긴심장형(elongated cordiform; 최대폭이 중간 높이보다 살짝 아랫부위에 위치하는 얇은 주먹도끼)
  • 미코크식(Micoquian; 프랑스 서남부 Le Micoq 유적에서 유래, 측면날 부위가 오목하게 파여서 어깨가 발달한 두꺼운 주먹도끼)

* 그 밖에 보트형(naviform), 피크론형(ficron; 솜므강 유역 뱃사공이 쓰는 막대기의 끄트머리), 라겐형(lageniform; 라겐은 지중해 지역의 물주전자를 말함), 삼각형(triangular)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주먹도끼는 프랑스 북부를 비롯한 유럽이나 아프리카에만 있고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는 아주 두껍고 거칠게 만들다 만 형태만 발견된다.


6. 시대적 의미[편집]





7. 모비우스 설[편집]


뗀석기 중 주먹도끼류,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형태인 아슐리안형 뗀석기는 북아프리카, 유럽, 중동, 인도 등지에서는 널기 발견되어 왔으나, 꽤 오랫동안 히말라야 산맥 너머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지리적 이유로 문화가 갈린 것으로 여겨젔으며, 이에 따라 아슐리안형 뗀석기 문화와 찍개형 뗀석기 문화를 나눠 구분한 설이 미국의 고고학자인 H.모비우스가 제창한 모비우스 설이다. 이렇게 두 문화를 가르는 경계를 주창자의 이름을 따 모비우스 라인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1978년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동아시아 최초로 아슐리안형 뗀석기(주먹도끼)가 발견되면서 모비우스 설은 존재 가치를 상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본래 그저 지리적 영향에 따른 문화 구분 학설이었지만, 결국 유라시아 전역에서 아슐리안 형 석기가 발견됨에 따라, 지금은 거의 안 쓰는 구닥다리 견해가 되었다. 다만 전곡리 유적을 포함한 동아시아 유적에서는 주먹도끼의 가공 수준이 높지 않고 그 수효도 많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서반구의 아슐리안과는 다른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가 대부분이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나오는 주먹도끼는 10만년도 채 안되는 어린 것들이다.

7.1. 한반도의 주먹도끼[편집]


경도가 높고 입자가 거친 변성암 계통 암석들이 많은 지역에서는 아슐리안 형 뗀석기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그나마 만들기 쉬운 찍개형 뗀석기들이 훨씬 더 흔하다. 이 때문에 상당히 오랫동안 아슐리안 형 석기가 히말라야 너머에서 잘 발견되지 않았고, 한반도에서는 아예 발견되지 못했었다.

그런데 1978년, 주한미군 공군 기상 관측병이자 고고학도였던 '그렉 보웬'이 우연히 경기도 연천군에서 한국인 여자친구 이상미[2]한탄강을 산책하던 중, 이상미씨가 특이한 모양의 돌을 하나 발견하여 조사한 결과, 그것이 바로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발견되는 주먹도끼와 유사한 구석기였음이 밝혀졌다. 연천 전곡리 유적 참조.

이 발견으로 인해 이미 타당성을 의심받고 있던 모비우스 학설은 완전 폐기되었다. 에렉투스 시절에도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험준한 지형을 잘만 뚫고 교류했고, 사람 생각하는 것이 어딜 가든 다 비슷해서 뗀석기들이 결국 아슐리안 형 뗀석기로 수렴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현재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발견된 주먹도끼는 몇 십만년까지 올라가는 수준으로 연대가 측정되지는 않지만, 한반도에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거주하기 이전에 독자적으로 개발된 고유한 석기인 것은 분명하다. 최근 충남대학교 고고학과 유용욱 교수의 코리아헤럴드 영문기사 참조..[* 2022년 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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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먹도끼는 양면 뗀석기로 뗀석기 중에서도 상당히 발전한 단계이다. 나타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음에도 석기 시대가 매우 길기에 구석기 전기에 해당된다.[2] 훗날 그렉 보웬과 결혼해 '상미 보웬'이 되었다. 보웬 부부는 1녀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