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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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셰이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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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Republic of Ireland national football t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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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존 오셰이
John O'Shea

본명
존 프랜시스 오셰이
John Francis O'Shea
출생
1981년 4월 30일 (42세) /
아일랜드 먼스터 워터퍼드주
국적
[[아일랜드|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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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신체
191cm, 75kg
직업
축구선수 (수비수[1], 미드필더[2][3], 골키퍼[4] / 은퇴)
축구코치
소속
선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8~2011)
AFC 본머스 (2000 / 임대)
로열 앤트워프 FC (2001 / 임대)
선덜랜드 AFC (2011~2018)
레딩 FC (2018~2019)
코치
레딩 FC (2019~2021)
아일랜드 U-21 대표팀 (2020~2023)
스토크 시티 FC (2022~2023)
아일랜드 대표팀 (2023~ )
버밍엄 시티 FC (2023~ )
국가대표
118경기 3골 (아일랜드 / 2001~2018)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지도자 경력
6. 기록
6.1. 우승 기록
6.2. 개인 수상
7. 여담



1. 개요[편집]


아일랜드 국적의 축구선수 출신 코치. 그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알려져 있으며 수비적인 포지션은 무엇이든 소화할 수 있다.[5] 주로 왼쪽, 오른쪽 풀백을 비롯하며 중앙 수비의 역할을 맡는다. 그의 슈팅 수 대비 득점력 또한 잘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성인 'O'Shea'를 '오셔'로 잘못 읽은 것이 이미 축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너무 많이 퍼진 상태이지만, 실제 원어중계 발음이나 발음표기 상으로 정확히는 /oʊˈʃeɪ/ (오셰이)에 가깝다.


2. 클럽 경력[편집]



2.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편집]


만 17세였던 1998년 8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계약을 맺은 오셰이는 그 해 아스톤 빌라와의 리그 컵을 통해 데뷔전을 가졌다. 이후 본머스와 벨기에 앤트워프로 임대되며 경험의 폭을 넓힌 오셰이는 2001년 7월 맨체스터로 복귀, 1군 스쿼드 멤버로서 자리를 굳히고 본격적인 활약을 펼치기 시작했다.

2004-05 시즌, 아스날 원정경기에서 아스날 공격의 역습 찬스에서 골키퍼 키를 살짝 넘기는 절묘한 칩킥을 성공시키며 승부에 종지부를 찍었는데 골과 세레머니가 에릭 칸토나를 연상케 해 많은 화제가 되었다.

2005-06 시즌키노게이트 사건과 부상 및 컨디션 난조로 인한 맨유 스쿼드 붕괴로 인해 대부분 사이드 풀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했다. 4-4-2 대형에서 긱스와 조합을 이루며 기적의 9연승을 달렸으나[6] 첼시 원정에서 0-3으로 대패를 당하고 만다. 리그에만 34경기를 출전하며 1골[7]을 기록했는데 모두 선발로 뛰었다. 실수도 많고 수비진 불안요소도 많았지만 EPL 선수 랭킹에서 상당히 오랜시간 상위권에 위치했었다.

2006-07 시즌은 중원 자원으로 스콜스도 부상에서 복귀하고 캐릭도 토튼햄에서 영입하고 사이드 풀백으로 에인세, 브라운의 복귀, 에브라의 기용으로 점점 선발출전에선 밀려나 리그 32번의 출전 중에 선발으로 기용된 경기는 16번이지만 꾸준히 로테이션 멤버로서 여러 포지션에 기용되어 팀내에선 11번째로 출전시간이 많은 선수였다.[8] 그리고 선발로 출장했던 모든 경기에서 풀타임으로 경기를 마쳤다. 그만큼 오셰이의 유틸리티 플레이어 능력이 팀으로선 소중한 재능이였기 때문.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오셰이를 포함해 웨인 루니, 호날두, 대런 플레쳐, 파트리스 에브라, 네마냐 비디치, 박지성을 맨유 미래의 7인으로 뽑기도 했다.[9]

특이 사항으로 리그 26R 토트넘 홋스퍼전에서 교체 카드를 다 쓴 상황에서 에드윈 반 데 사르가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자 골키퍼로 잠시 뛰었다.[10] 이 경기에서 그는 유틸리티 플레이어의 기량을 마음껏 보여 주었다. 로비 킨의 득점 찬스를 모두 막아 내었으며 상대 코너킥을 펀칭하고 골문에서 과감히 뛰어나와 상대 침투 패스를 막아내는 등 뛰어난 골키퍼 능력을 보였다.[11] 퍼거슨 감독은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교체해 벤치에 앉아있던 웨인 루니긱스는 오셰이의 선방이 나올 때마다 재밌다는 듯 큰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맨유 팬들이 찬양했던 갓오셰이의 4유효슈팅 4골도 이 06-07 시즌인데, 15R 에버튼전에서 경기 직전 쐐기골을 넣어 3-0승리를 굳혔으며 리그 29R 리버풀전에서는 공격수로써 웨인 루니를 대신해 교체 투입되어 경기 종료 직전에 결승골을 넣었다.[12] 32R 포츠머스 원정에선 0-2로 끌려가던 90분에 만회골을 넣었지만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이후 36R 에버턴과의 경기에서 0-2로 지고있던 와중에 추격골을 넣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4-2 대역전승을 거두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오셰이에겐 가장 다이나믹한 시즌이었다.

2007-08 시즌은 기존 수비진 웨스 브라운과 리오 퍼디난드의 공무원화와 에브라와 비디치의 완벽 적응으로 별 다른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미드필더에서도 견고한 스콜스-캐릭라인과 새로 영입된 하그리브스와 안데르손이 버티고 있어 많은 출전기회를 잡지 못했다. 리그에선 28경기에 출전했지만 10번의 선발출장 밖에 못했고 골도 챔스에서 6경기 중 1골만 기록했다.[13] 비록 에브라, 브라운에 밀려 결승전 선발 라인업에 들어가지 못하고 서브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부족한 출전 시간이지만 팀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 이후 퍼거슨을 찬양하는 인터뷰도 했다.[14]

2008-09 시즌 리그 30경기에 출장 중 선발 경기는 20경기였다. 지난 시즌에 비해 수비진 보강은 유망주 조니 에반스뿐이었지만 안정적인 수비 능력으로 출전 시간을 점차 늘렸다. 챔스에선 팀 내에서 가장 많은 출전시간을 확보해 무려 호날두, 루니보다 많이 뛰었다. 시즌 중반 이후 빡빡한 일정에 더해 주전 수비진의 부상과 출전 정지로 제동이 걸렸을 때 오셰이와 에반스가 꽤나 안정된 수비력으로 잘 견뎌내 리그에선 리버풀을 제치고 단독 1위로 치고 올라가고 챔스에선 인터 밀란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챔스 4강 1차전 아스날과의 대결에선 시즌 유일한 골이자 경기 결승 골까지 집어넣는다. 이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챔스 결승 라인업은 오셰이의 이름부터 쓰고 시작할거라고 립 서비스를 날렸으며 당당히 결승 선발 라인업에 올라 풀 타임을 뛰었지만 아쉽게 FC 바르셀로나에게 석패한다.

비록 챔스 결승에선 패배하긴 했지만 커뮤니티 실드 우승, 칼링 컵 우승, 리그 우승으로 팀 내에서 1군 로테이션 멤버를 넘어 주전으로도 손색없는 스타팅 멤버라는 걸 입증했고 박지성, 대런 플레쳐와 더불어 스타 플레이어들을 잘 보필했다고 평가받았다. #

2009-10 시즌 리그 15경기(선발 12경기)에 출전에 1골을 기록했으며 챔스는 3경기 출전하는 것에 그쳤다. 시즌 초반에는 리오 퍼디난드의 부상으로 에반스와 호흡을 맞추며 주전으로 출장하며 기회를 잡을 수 있었으나 본인의 부상과 견고한 주전 라인, 에반스의 비상으로 점차 출전기회가 줄어들었다. 비단 수비진 뿐만 아니라 미드필더 진영도 캐릭-플레쳐가 너무 건재했다.[15]

2010-11 시즌 리그 20경기 챔스 6경기에 출전했다.[16] 리그에선 비디치, 에브라, 퍼디난드 다음으로 많은 출전 시간을 확보했지만 고질적인 부상과 더불어 스몰링의 영입과 더불어 풀백 자리에는 하파엘, 파비우 브라질리언 쌍둥이 풀백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중이라 점점 설 자리를 잃어 시즌 시작도 전부터 이적설이 솔솔 피어났다. 시즌 내내 백업 자원으로 쏠쏠히 활약해주었지만 해가 갈수록 출전수가 줄어들자 동료인 웨스 브라운과 함께 선덜랜드로 이적한다. 10년 이상을 맨유에서 헌신해온 선수들이었기에 팬들은 아쉬워하며 잘되기를 바랬다.

2.2. 선덜랜드 AFC[편집]


2011-12 시즌을 앞두고 웨스 브라운과 함께 선덜랜드에 합류한다. 주장으로 활약 중이다.

2013-14 시즌 초반 파올로 디 카니오 감독이 경질 당할 당시, 오셰이가 배후에 있었다는 소문이 있었고, 결국 본인이 시인했다. 이후 디 카니오는 오셰이, 리 캐터몰, 필 바슬리을 비난하기도 했다.

2016-17 시즌 종료 후 계약이 만료되며 팀을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계약 만료 당일인 2017년 6월 30일 1년 재계약을 체결하며 강등된 선더랜드에 2018년까지 남게 되었다. 주장직도 캐터몰에게 넘겼다. 그러나 선더랜드는 백투백 강등을 당하며 3부로 내려갔고 팀을 떠났다.


2.3. 레딩 FC[편집]


영국 스카이스포츠는 4일(한국시간) "오셰이가 Press Association Sport를 통해 7년의 선덜랜드 생활을 마치고 레딩에서 경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2019년 2월 16일 기준으로 레딩은 24팀 중 21위로 강등 경쟁 중이다. 만약 레딩이 강등당하면 오셰이로서는 백투백투백 강등을 겪는 셈. 다행히 팀은 20위로 잔류에 성공.

2018-19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할 것임을 밝혔고, 시즌을 마치고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어려서부터 고국 아일랜드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오셰이는 U-15, U-16, U-17, U-18, U-21 대표팀을 거쳤고, 모두 주장을 역임했던 흥미로운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001년 8월 15일 크로아티아와의 경기에서 교체로 투입되며 A매치에 데뷔하였다.[17] 2003년 8월 19일 호주와의 경기에서 데뷔 골을 기록하였다. 2014년 10월 14일 유로 2016 예선 독일과의 경기에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였고, 그 경기에서 추가 시간 골을 넣으며 무승부에 기여하였다.

2018년 5월 10일에 아일랜드 대표 은퇴를 발표하였고, 2018년 6월 2일 미국과의 경기에서 국가대표 은퇴식을 치뤘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센터백, 좌우 풀백, 수비형 미드필더 등 수비적인 포지션이면 어디든 소화 가능했기 때문에 알렉스 퍼거슨의 사랑을 받았다. 스타팅 멤버에 이름을 올리지는 않더라도 벤치 멤버로 자주 출장, 상대팀의 전술에 유연한 대응이 필요할 때에 항상 교체 투입됐다. 퍼거슨의 맨유에서 오셰이는 수비진의 만능이었다.[18] 프리미어 리그는 07-08 시즌까지는 리그 교체 명단이 5명으로 제한되기도 했고 맨유는 한 시즌에 대략 50경기를 치루는 팀이다 보니 존 오셰이의 우수한 유틸리티 플레이어 능력은 스쿼드의 유지에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여담으로 국내 해외축구 커뮤니티에선 베스트 11을 전부 오셔로 채운 밈 같은 것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등장하곤 했었다.

좋은 체격에 비해 플레이가 터프함과는 거리가 멀다. 실제로 선수 생활을 하면서 700경기 이상을 뛰었는데 레드 카드를 받은 적은 단 두 번. 이것도 아일랜드 국가대표[19], 그리고 선덜랜드 시절[20] 받은 것이다. 옐로 카드는 43회. 그 만큼 깔끔하고 간결한 플레이를 선호했다.


5. 지도자 경력[편집]


2019년 7월, 레딩 FC 1군 코치로 임명되었다.

2020년 4월, 아일랜드 U-21 대표팀 코치로 부임했다.

2021년 7월, 레딩 FC 코치직에서 물러났다.#

2022년 7월 22일, 스토크 시티 FC 1군 코칭 스태프에 합류했다.

2023년 2월 22일, 아일랜드 대표팀 코치로 부임했다.#

2023년 5월 12일, 아일랜드 대표팀에 전념하기 위해 스토크 시티 코치직에서 물러났다.#

2023년 10월 11일, 버밍엄 시티 FC 코치로 부임했다. 아일랜드 대표팀 코치직은 유지한다고 한다.#


6. 기록[편집]



6.1. 우승 기록[편집]





6.2. 개인 수상[편집]


  • 덴질 하룬 올해의 리저브팀 선수: 2001-02
  • 아일랜드 올해의 선수: 2014


7. 여담[편집]


  • 호날두가 알렉스 퍼거슨 감독에게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혔던 스포르팅 리스본과의 챔스 경기에서 호날두를 마크하던 선수가 오셰이였다.

  • 풋볼 매니저 시리즈에서 한때 박지성의 좋아하는 인물란에 존 오셰이가 있었다.

  • 2018 러시아 월드컵 유럽 지역 최종예선 D조 5라운드 아일랜드와 웨일스와의 경기에서 닐 테일러가 왼발로 아일랜드 수비수 셰이머스 콜먼을 부상입힌걸로 모잘라 가레스 베일이 오셰이의 무릎을 박살낼 뻔 했다. 이 경기 이후 웨일스는 깡패 축구로 불렸다.



[1] 센터백, 풀백(좌우 모두 소화 가능)[2]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3] 맨유 시절 땜빵으로 자주 투입되기도 하던 포지션이나 말년에는 거의 수비수로만 출장했다.[4] 06-07시즌, 26라운드 토트넘전 후반전 37분에 주전 골키퍼 반 데 사르의 부상과 교체카드를 모두 다 써서 골키퍼로 뛰었는데 의외로 잘 한 전적이 있다.[5] 과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짧은 시간이지만 골키퍼까지 무실점으로 소화한 적 있다.[6] 9연승 이후 만난 상대가 선덜랜드였는데 0-0으로 비겼다. 이후 토트넘과의 원정 경기에서 승리를 따냈다.[7] 한골은 13R 웨스트햄 전 역전골[8] 골은 7번째로 많은 선수였다. 긱스와 같다.[9] 링크[10] 처음엔 리오 퍼디난드가 골키퍼로 가려고 했으나 부담감때문에 오셰이가 결국 맡게 됐다.[11] 일례로 풋볼 매니저에서 오셔에서 골키퍼 훈련을 시키면 훈련량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12] 이 경기는 정말 시종일관 리버풀의 공세에 경기 막판까지 0대0으로 유지된 것 만으로도 기적이었는데, 경기 막판 단 한번의 찬스, 즉 호날두의 프리킥 찬스에서 프리킥을 골키퍼가 쳐낸 것을 오셰이가 마무리지어서 영웅이 되었다.[13] 28R 풀럼전에서 오셰이의 골로 인정될 수 있었지만 사이먼 데이비스의 자책골로 판정이 났다.[14] 링크[15] 그리고 이 시즌에서 퍼거슨 전설의 라인업 중 하나인 볼프스부르크전이 있다. 보기[16] 모든 컵 대회를 통틀어서 골은 기록하지 못했다.[17] 이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자마자 페널티 킥을 헌납한 것은 덤[18] 05-06 때 중앙 미드필더로 꽤 많은 출전을 했지만, 사실 미드필더 자원이 매우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부상 및 키노게이트 사건으로 팀에서 방출된 로이 킨, 시력 장애로 선수 생활 은퇴까지 고려해야 했던 폴 스콜스, 투쟁력 하나 믿고 미들로 내려가다 활약도 별로고 부상으로 아웃된 앨런 스미스, 아직도 기량이 터지지 않은 다크템플레처가 미들의 전부였다. 그나마도 이 중에 방출 및 부상으로 세 명이 아웃돼서 레프트윙인 라이언 긱스와 함께 중앙 미들을 봐야했다. 그래도 이 조합으로 9연승까지 한 적이 있었다.[19] 폴란드 전 경고누적[20] 크리스탈 팰리스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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