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프 코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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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조제프 코틴, 간혹 조제프 코친이라고도 한다. 전간기부터 냉전기에 이르기까지 소련 중전차 개발사의 아버지로 키로프 공장 SKB-2 수석 설계자 및 국방공업부 차관을 역임했다. KV-1 등 전차 설계와 생산을 통해 2차대전 당시 기여한 공로로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노력영웅 칭호를 받았으며 스탈린 훈장도 4번 받은 바 있다.
2. 생애[편집]
코틴은 1908년 러시아 제국령 파블로그라드(현재는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태어났다. 1927년 하리코프 기술대학 졸업을 시작으로 1931년 소련 공산당에 입당하고, 1932년에 제르진스키 군사기술학교를 졸업했다. 그후 1937년 5월 키로프 공장 SKB-2(2번 특별설계국) 국장 및 수석 설계자로 임명되어 당시 키로프 공장에서 양산되던 T-28 개량 프로젝트 T-29(미국 프로토타입 중전차 T29와는 다르다) 개발을 진행했다.
1939년 무렵에 소련군 기계화 및 차량화 사무국 소속 엔지니어였던 나탈리아 포클로노바와 결혼했고 이 당시부터 SMK와 그의 일생의 역작 KV-1 중전차 등을 설계해 내놓았다. 1941년에 첼랴빈스크 트랙터 공장로 대피하여 부설계수석으로 있으면서 니콜라이 듀호프 합작으로 IS-2와 IS-3 설계에 관여했다. IS-3 설계가 끝나고 키로프 공장(코친 설계팀)은 신형 전차인 IS-6을, 첼랴빈스크(듀호프 설계팀)는 기존 IS-2를 개량한 IS-4로 경쟁했고, 도중인 1944년에 다시 키로프 공장으로 복귀했다.
이후 IS-6 개발팀은 키로프 공장의 수석 설계자 니콜라이 샤쉬무린을 위시로 IS-7을 내놓지만[2] 너무 무거운 중량 때문에 이것도 채택을 거부당했고, 이후 코틴이 직접 소련군의 요구사항을 맞춰 오비옉트 730을 설계해 1953년 11월 28일에 T-10이라는 이름으로 채택되었다.
상장 계급이 달린 정복을 입은 말년의 코틴. 1968년까지 키로프 공장 SKB-2 국장으로 있다가 퇴임하고, 곧바로 소련 국방공업부(Министерство оборонной промышленности СССР) 차관을 72년까지 역임했으며, 79년 모스크바에서 71세로 타계했다.
3. 여담[편집]
SMK를 개발했다가 스탈린에게 물먹고 KV-1을 만들긴 했지만 그 후에도 개인적으로 KV-5같은 설계도를 작성한 것으로 볼 때 다포탑 전차에 대한 미련을 완벽하게 떨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독소전쟁 기간동안 다포탑 전차가 힘을 못 쓰고 KV-1이 좋은 전과를 올리는 것을 목격한 후 다포탑 전차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접은 듯.
클리멘트 보로실로프를 후원자로 두었기 때문에 다른 설계자처럼 숙청당하지도 않았다. 다만 코틴이 보로실로프의 사위라는 낭설의 경우, 윗 문단의 설명과 같이 코틴은 소련군 소속 엔지니어였던 나탈리아 포클로노바와 결혼했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다. 유력했던 후원자 보로실로프가 2차대전을 전후해 스탈린의 입김으로 뒷전으로 밀려날 때는 라브렌티 베리야가 후원해줌으로써 살아 남아 근 20년 간 키로프 공장에 머물며 전차 개발을 지속할 수 있었다. 다만 베리야를 후원자로 둔 것은 후에 베리야의 적인
4. 참고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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