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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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희의 역임 직책





조원희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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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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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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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인


파일:FA707F93-0A5B-4D17-B69D-943390A9B436.png

이름
조원희
趙源熙 | Cho Won-Hee
출생
1983년 4월 17일 (40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가족
아내, 아들 조윤준
신체
174cm[1], 73kg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2], 수비수[3] / 은퇴)
축구 해설가
크리에이터
축구 코치
축구 심판[4]
축구 행정가
소속
선수
울산 현대 호랑이 (2002~2004)
광주 상무 (2003~2004 / 군 복무)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5~2008)
위건 애슬레틱 (2009~201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0 / 임대)
광저우 헝다 (2011~2012)
우한 FC (2013~2014)
경남 FC (2014 / 임대)
오미야 아르디자 (2014)
서울 이랜드 FC (2015)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6~2018)
수원 FC (2020)
지도자
수원 FC (2020 / 플레잉 코치)
해설
JTBC3 FOX Sports (2019~2020)
KBS (2021~ )
KBS N SPORTS (2023~ )
행정
대한축구협회 (2023 / 사회공헌위원장)
국가대표
36경기 1골 (대한민국 / 2005~2009)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5]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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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논현초등학교 (졸업)
배재중학교 (졸업)
배재고등학교 (졸업)
프로 입단
2002년 울산 현대 호랑이
종교
개신교[1]


1. 개요
3. 국가대표
4. 플레이 스타일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기록
6. 유튜브
6.1. 조차박 논쟁(?)
7. 논란 및 사건 사고
8. 여담




1. 개요[편집]



우리는 너를 믿는다

빅버드 선수 소개 멘트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現 KBS 축구 해설자. 선수 시절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 수비수.

현역 시절 여러 구단을 거쳤지만,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의 생활이 가장 인상이 깊었다고 평가받으며, 이 곳에서 은퇴식도 했지만, 선수 복귀 후 수원 FC의 플레잉코치[6]를 잠시 맡았다가 2021년 초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대한민국의 수비형 미드필더/우측 수비수이며, JTBC3 FOX Sports 해설위원도 맡았고, 이후 KBS의 해설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2. 선수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조원희/선수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국가대표[편집]


연령별 국가대표 시절인 2002년 AFC U-19 챔피언십, 2003년 FIFA U-20 월드컵에서는 공격수로 뛰었다. 상무 입단 전까지 수비형 미드필더나 윙백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한다.#
1 이운재

C
· 2 김영철 · 3 김동진 · 4 최진철 · 5 김남일 · 6 김진규 · 7 박지성 · 8 김두현
9 안정환 · 10 박주영 · 11 설기현 · 12 이영표 · 13 이을용 · 14 이천수 · 15 백지훈 · 16 정경호
17 이호 · 18 김상식 · 19 조재진 · 20 김용대 · 21 김영광 · 22 송종국 · 23 조원희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1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250E77; font-size: 0.8em"
감독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딕 아드보카트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핌 베어벡
스태프
파일:미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압신 고트비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홍명보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정기동
[각주]



이후 아드보카트 감독 체제인 2005년 10월 12일 이란과의 A매치 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일명 "쓰리쿠션슛", "뮤탈슛"으로 전반 59초 만에 득점에 성공, 국가대표 데뷔전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후 오범석, 차두리와의 경쟁에서 승리해 2006 독일 월드컵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선에서는 송종국과 라이트백으로 전향한 이영표에 밀려 출전하지 못했다.[7]

베어벡호에서는 초반 2경기 출전에 그치고 이후로는 오범석이 대표팀 주전으로 도약하면서 점차 자리에서 밀려나 선발되지 못했다.

그리고 허정무 감독 체제로 넘어오면서 조원희는 윙백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하여 초반 허정무호의 주전급 미드필더로 낙점받아 김정우, 기성용 등의 파트너와 호흡을 맞추며 남아공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꾸준하게 중용받았다. 그러나 2009년 하반기 이후 위건에서 꾸준하게 경기 출전을 하지 못해 경기력이 저하되면서 점차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게 되었고, 월드컵 출전을 위해 다시 수원으로 복귀했지만, 2010 남아공 월드컵 30인 예비 명단에만 선발되고 26인 예비 명단으로 걸러지는 과정에서 결국 탈락하고 말았다. 조원희는 당시 심경이 너무나도 착잡해서 2002년의 이동국처럼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아예 보지 않았다고 한다.#

남아공 월드컵 이후로는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피지컬이 상당히 뛰어났다. 적당히 준수한 신장(177cm)에 꽤 근육이 많아 피지컬로 상대 미드진을 압박하고 활동량을 넓게 가져가 끈질기는 수비를 하는 타입으로 현역 때는 조투소라는 별명이 있었다. 이거해조 원희형에서 본인피셜 풀 스프린트는 그저 그렇지만 10m 순속은 현재의 K리그 내 에서도 본인보다 나은 선수가 많지 않다고 자부할 정도로 신체조건은 나쁘지 않다.[8]

단점은 테크닉이 뛰어난 편이 아니라는 것과 공격전개 감각이 좋지 않다는 것이 있다. 피지컬을 무기로 하는 플레이를 구사하다 보니 수원 시절 강원 전 다이빙 자책골(헤딩감차) 같은 실수를 보이기도 했다.조스카스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5.2. 개인 수상 기록[편집]


  • 올해의 프로축구대상 수비상: 2005
  • 프로축구 골든볼 골든슈 시상식 수비상: 2005
  • K리그1 베스트 일레븐: 2005, 2008
  • K리그2 베스트 일레븐: 2015


6. 유튜브[편집]


'이거해조 원희형'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 은퇴 이후 축구가 늘었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본인의 유튜브 채널인 이거해조 원희형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다. 주된 컨텐츠는 1 vs 1 로 10번 중 조원희를 3번 이상 뚫어내고 골을 넣으면 이기는 컨텐츠다. 초창기에는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주 상대였지만, 대한민국의 레전드 수비수 이영표를 이후로 염기훈, 구자철 등 국가대표를 지냈던 선수들이나 권창훈, 김보경 같은 현역선수들도 나온다. 하지만 2021년 9월 23일 기준으로 수많은 도전자들 중에서 조원희를 3번 이상 뚫어낸 건 황의조 단 한 명 뿐이다.설기현은?[9] 그리고 2023년 1월 10일 오현규에게 무려 5번(!)을 뚫리며 드디어 두번째 패배를 안았다.[10]

  • 일대일 컨텐츠 후에는 상대로 나온 선수의 특기를 배우는 '배워죠 원희형'과 간단하게 담소를 나누는 '힐링해죠 원희형' 컨텐츠를 진행한다.



  • 유튜브 활동이 인기를 얻으면서 카타르 월드컵 조 추첨식에 FIFA가 초청한 세계적인 축구 인플루언서로서 카타르에 방문했고, 심지어 그 40명 중에서 10명만 들어갈 수 있는 조 추첨식 행사장에 들어갔다. 그래서 지상파 3사의 조 추첨식 생중계 때에는 KBS의 특파원 역할을 맡았으며, 위건 시절 감독이었던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벨기에 감독도 13년만에 만났다.


6.1. 조차박 논쟁(?)[편집]


  • 본인이 농담삼아 말했던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 선수 차범근박지성보다 자신이 더 위에 있다'같은 농담조로 '조차박'이라는 명언(?)[11]의 신뢰도를 높여가고(?) 있다. 당연하지만, 말도 안 되는 농담이다. 참고로, 슛포러브에 나왔을 때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이 관심있게 볼 줄 몰랐고 '지성이 형에게는 한 번 혼나고 말지.'[12] '차범근 감독님은 유튜브 안 보시겠지.'라는 심정이었다고 한다. 박지성같은 경우는 무릎의 상태를 잘 알기 때문에 본인도 차마 1:1 신청을 못했다. 물론, 대선배인 차범근에게도 감히 1:1을 신청하자는 말도 못 꺼내고 그저 고개만 숙였다.

  • '이런 축구는 처음이라' 에서도 이에 관한 언급이 나왔는데 같이 앉아있던 이을용은 어이없어하면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고 을용타 5초전 백지훈은 경악하면서 조원희에게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한거냐?" 라고 진지하게 묻기도 했다(...). 결국 "원희도 훌륭한 선수이지만 우리는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에게 안된다" 라는 안정환의 발언으로 나름 훈훈하게 끝났다.해당 영상




7.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7.1. 승부조작 축구인 사면 묵인 논란[편집]


2023년 3월 28일, 클린스만호의 두번째 평가전인 대한민국과 우루과이의 경기 시작 직전 대한축구협회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과 축구 통합을 명분으로 승부조작범 48인 포함 징계 중이던 축구인 100명을 전격 사면한다는 결정을 내릴 때 회의에 이영표, 이동국, 이임생, 박경훈 등과 함께 협회 임원으로 참여하였으나,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을 내지 않고 안건 가결에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축구팬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2023년 4월 3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커뮤니티를 통해 사과문과 함께 대한축구협회 사회공헌위원장 직에서 사퇴했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승부조작범 사면' 등의 표현이 아닌 '사면 번복'이라는 표현만 쓰면서, '비겁하게 도망간다', '유튜브 채널 삭제하라'는 여론은 물론이고, '차라리 사퇴하지 말고 쓴소리를 하며 안에서 싸우지 그랬냐?', '이사진들에게 그 날 회의록에서 무슨 내용이 오갔는지 진상규명 요구나 제대로 된 해명이나 소명도 없이 도망치는거 아니냐?' 라면서 너무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조원희는 다른 직책도 아니고 사회공헌위원장인데도 승부조작범을 사면한다는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더더욱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조원희는 최소한 변명거리는 있는데, 우선 나이가 너무 어리고[13] 행정가를 맡은지 얼마 안 되어서 발언권이 거의 없었던 데다가, 대한축구협회가 여론조작이나 언플에 능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람 한 명 이미지 악화시키는건 일도 아니다. 문제는 조원희는 방송 일도 많이 하기에 이미지가 대단히 중요하므로,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을 바에는 차라리 축구협회와 사이를 덜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간 것으로 보인다. 만일 반대했다간, 선배들이 대부분 찬성하는 상황이라 당연히 불화가 생길 수밖에 없고 최악의 경우는 더 이상 축구계로 발 들이기는 어려울 수 있으니 부당함에 굴복한 것이다.

8. 여담[편집]


  • 목소리가 약간 BJ 감스트와 닮았다.

  • 과거 한국 마라톤의 전설이자 1936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생과 젊었을 때 모습이 흡사해서 꽤 화제가 됐다.

  • 선수들을 훈련시킬 때, 자꾸 무언가를 추가한다고 한다.

  • 실제로 보면 몸이 정말 좋다. 이영표, 등과 함께 러닝만 아니라 철인 3종까지 하고 있으며 이를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리고 있다. 심지어 은퇴 후에는 몸이 더 좋아졌다.

  • 프로 데뷔 전까지 공격수였다고 한다. 2003년 청소년 대회 종료 뒤 상무에 들어가고 나서 상무의 이강조 감독이 3-5-2의 오른쪽 백을 보라고 해 처음으로 수비를 봤다고 한다. 원래 공을 잡아야 수비수를 제치는 스타일에서 살아남기 위해 뛰고 태클하다보니 지금의 스타일이 됐다고 한다. 위건 애슬레틱 FC에서 셰도우 스트라이커 포지션을 제안받았으나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기 위해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남아공 월드컵 엔트리에 드는 건 실패했다.

  • 초등학생 때 학생회장을 했으며 축구를 하기 전에 쇼트트랙을 8년 했다고 한다. # #

  • AS 모나코에 합류해 훈련하고 있었으나 프레디 아두가 잔류하면서 외국인 쿼터가 비지 않아 입단에 실패했고 급한 마음에 위건 애슬레틱 FC로 입단테스트를 보러 갔다고 한다. 연습 경기 15분 만에 합격점을 받아 합류했으나 인종차별과 음식 때문에 고생했다고 한다.

  • 위건 애슬레틱 FC 시절 감독이었던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휴대전화 번호를 지금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두 사람은 2022 카타르 월드컵 조 추첨식에서 벨기에 국가대표팀 감독과 FIFA가 초청한 세계적인 축구 인플루언서 자격으로 13년만에 재회했다. 이 때 백제 금관 기념품을 선물로 건네며, 떠나지 말라던 마르티네스 감독의 말을 듣지 않고 떠난걸 후회한다고 했다. 마르티네스 감독에게 위로를 받은건 덤. 영상

  • 파브레가스를 좋아한다고 한다. 아스날 FC와의 경기에서 파브레가스와 유니폼을 교환하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 청담동에서 저스트풋볼아카데미를 운영중이며 즐겁게 아들과 훈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팬 서비스가 좋다. 그리고 하이텐션 역시 자주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 2020년 상반기에 황의조의 추천을 받고 리그가 조기종료되어 귀국한 이승우의 트레이닝을 도왔다. 이승우의 약점인 피지컬과 밸런스를 집중적으로 보강시켜주면서 팬들이 가진 오해를 이영표와의 콘텐츠 촬영으로 직접 나서서 풀기도 하는 등 좋은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시즌 개막 후 이승우가 소속팀에서 좀 더 좋아진 모습을 보여주자, 조원희를 찬양하는 팬들이 늘어났다.[14]

  • 텐션 가득한 "가야돼 가야돼" 세레모니로 가야대학교 홍보대사 제안을 받은 바 있다. 학교 가야돼


  • 가족들이 전주 출신이라고 한다. #

  • 아들 조윤준도 축구선수다. 아버지를 닮아 축구 재능이 뛰어나다고 하며 벌써 프로축구 유스팀들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 조원희와 같이 예능에 나와 김민경의 슈팅을 보고 자세교정을 해주어 발전을 이끌어 낼 정도의 실력.

  • 뭉쳐야 찬다 2에서 해설위원으로 출연하다가 30회부터 수비 전담 코치를 맡게 되었다.

  • 어렸을 때는 야구를 2년 정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박찬호랑 만났을 때도 기쁜 모습을 지었다. 조원희의 모교인 배재중고등학교는 야구부로도 유명하고 프로야구 선수도 여럿 배출한 학교다.[15] 그 영향 때문인지 키움 히어로즈의 유니폼을 입고 시구를 한적이 있다.네이버 클립 참고로 시구했을 때 등번호는 현역 시절 등번호가 아닌 이정후의 등번호인 51번이다. 이전에도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포수로 김병현의 공을 안정적으로 잡는 모습을 보고 허구연이종범이 모두 극찬을 했다. 해당영상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7 04:03:12에 나무위키 조원희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이거해조 원희형에 출연한 이동경(176cm)보다 살짝 작아서 실제 신장은 174~175cm 추정할 수 있다.[2] 수비형 미드필더[3] 라이트백[4] 2015년 3급 자격증을 취득했다.[5] 구독자 38.5만명 (2023.05.25 기준)[6] 선수 겸 코치다. 수원 FC에 측면 수비 자원과 2군 코치가 모두 없는데(측면 수비는 최종환의 부상이 컸다.), 조원희에게 그 둘을 모두 맡겼다.[7] 당시 라이트백 송종국은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에서 실패하고 국내에 복귀해서 예전 만큼의 폼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김동진이란 신예 레프트백이 등장하였는데, 조 본프레레딕 아드보카트는 왼쪽에 김동진을 배치하고 기존 레프트백인 이영표가 오른발잡이임을 감안하여 오른쪽으로 보냈다. 본선에서 지역예선 최종전에서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한 김동진이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아 토고전에서 이영표-송종국 라인을 출전시켰으며 이후 프랑스전과 스위스전에서는 김동진-이영표 라인을 배치했다. 즉 조원희는 라이트백 3옵션이었다.[8] 참고로, 말왕과 합방했던 NFL 컴바인 체험 편 40야드 대시에서 최고 기록이 4.8초가 나왔다. 이 정도면 미식축구 포지션에서 인사이드 라인배커, 디펜시브 엔드, 풀백 등 힘을 쓰는 포지션에서 나오는 기록이다. 다만, 조원희가 현역복귀를 한 후라 전성기에 비해 어느 정도 스피드가 떨어졌다는 것은 예상해 볼 수 있다.[9] 다만 룰 자체가 공격수가 페널티 박스 밖에서는 슈팅을 못하거나 프로 골키퍼를 쓰는 등 조원희에게 너무 유리한 룰을 적용시키고 반칙도 공식 경기에서 파울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해서 비판이 좀 있다. 그런데 지면 이 컨텐츠 안하기로 공약을 걸은 지라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10] 실점만 5번이지 사실 10라운드 내내 조원희가 일방적으로 계속 돌파를 허용했다.[11] 해당 발언은 아프리카 TV BJ 감스트의 컨텐츠였던 '' 중 누가 더 위대한 선수인가? 편에서 나왔다. 해당 영상[12] 참고로 박지성과 조원희는 절친한 사이다. 조원희가 위건 시절 인종차별 문제로 힘들었을 때 박지성 집에 놀러가서 울기도 하고 게임도 많이 했다고.[13] 예전이야 아니었지만 요새는 현역으로 남은 선수들도 꽤 있는 나잇대이다. 지도자로 치면 코치 정도의 나이로 더군다나 체육계는 연공서열이 상당히 강한 편이다.[14] 이승우도 데뷔골을 터뜨린 후 가야돼 세레모니를 하여 감사의 표시를 보였다.[15]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축구선수와 야구선수를 겸업한 이영민 타격상의 주인공 이영민이 배재고등학교의 전신인 배재고보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