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희(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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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희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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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백상예술대상로고(1).png
파일:baeksangartsawards4.png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제21회
(1985년)


제22회
(1986년)


제23회
(1987년)

이미숙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이보희
(어우동)


김지미
(티켓)

제23회
(1987년)


제24회
(1988년)


제25회
(1989년)

김지미
(티켓)

이보희
(접시꽃 당신)


이혜영
(성공시대)






이보희
Lee Bohee


파일:배우 이보희.png

본명
조영숙 (趙英淑[훈음], Jo Youngsook)
출생
1959년 5월 25일 (64세)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대신리[1]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소속사
아이티이엠
자녀
슬하 1남
학력
명지중학교 (졸업)
한강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종교
개신교
데뷔
1979년 MBC 11기 공채 탤런트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
2. 상세
3. 사생활
4. 출연 작품[2]
4.1. 영화
4.2. 드라마
4.3. 광고
6. 그 외 활동
6.1. 홍보대사
7. 수상 경력



1. 개요[편집]




대한민국배우.


2. 상세[편집]



파일:수상한 삼형제_이보희.png

▲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 컨셉 이미지
수상한 삼형제 때부터 이런 푼수 아줌마 이미지가 친숙하지만...


파일:이보희 리즈시절.png

리즈 시절
젊은 시절 한 미모 했던 배우다. 이목구비가 중국 미녀배우 공리와 묘하게 닮았다.


파일:이보희 어린시절.png

이보희의 어린 시절

1990년대 이후 그중 특히 40세 이후 주로 공주병 아줌마나 푼수데기 조연, 비밀을 가진 조연, 사극 조연으로 많이 활약했다. 전성기인 1980년대엔 원미경, 이미숙과 더불어 1980년대 3대 트로이카로 유명했으나, 2010년을 전후로 '멱살잡이를 즐기는 억척아줌마 배우로 유명'하며, '재밌는 배역명도 꽤 갖고 있다.'[3] 한국의 대표적 섹시스타로 유명해서 유명 에로영화였던 '무릎과 무릎 사이'라든지, '어우동'하면 바로 떠오르는 배우였다. 특히 다리가 예쁜 걸로 유명해서, 서양권 여배우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다리라는 찬사를 받았다.[4]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인정받던 이장호 감독의 작품에 고정출연하다시피 했다. 애초에 조진원이라는 예명으로 무명 시절을 보낸 중, 감독 이장호의 눈에 띄어 '일송정 푸른 솔에'(1983)의 조연으로 영화계에 데뷔하였다. 이후 사회고발적인 성격으로 화제작이 된 이장호의 '바보선언(1984)'에서 가짜 여대생 역으로 유명해졌다. 이보희라는 예명도 이장호 감독이 자신의 성을 따서 지어 준 것이다.

아무래도 몸매가 좋다보니 '무릎과 무릎사이', '어우동', '달빛 사냥꾼' 등 여러 영화에서 정사신을 많이 연기했다. 그러다보니 공포의 외인구단을 영화화한 이장호의 외인구단에서 이보희가 엄지 역을 맡은 것에 말이 많았다. 청순한 이미지의 엄지와 어우동 같은 성인영화의 주인공인 이보희의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5] 그래도 접시꽃 당신에서는 현모양처의 주인공 역을 소화하기도 했다.

의외로 사극에 많이 출연하는 배우이다. '용의 눈물'에서도 태종 이방원이 미모를 보고 마음에 들어 새로들인 이후 원경왕후(최명길 역)와 갈등을 일으키는 후궁 선빈 안씨역을 맡기도 했다. '여인천하'에선 중종의 모후 정현왕후(자순대비)역을 맡기도 했었다. '서궁'에선 주인공 격인 인목대비 역, KBS의 2002년작 '장희빈'에서는 장희빈의 어머니 윤씨 역도 맡은 바 있다. 시대극인 '서울 1945'에서도 아메 카오리 역을 맡았다.


KBO 리그와 얽힌 흑역사가 하나 있다. 김재박이 선수 시절인 1986년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시상자인 이보희[6]김재박을 유격수 수상자 김재전이라고 부른 해프닝. '(넓을 박)'자를 '(전할 전)'자로 잘못 읽었다. 김재박() 항목 참조. 사실 21세기 현재는 전(傳)이든 박(博)이든 한자 자체를 못 읽는 사람이 태반인 데다 손으로 갈겨적은 한자 고유명사를 잘못 읽는 것이야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긴 한데, 그렇게 퉁치기에는 당시의 김재박은 너무나, 너무나 유명했다는 게 문제. 훗날의 인물로 비교해보면 손흥민을 '송홍민'으로, Yuna Kim을 국내 행사에서 '김유나' 내지 '김윤아'로 읽은 셈. 여성들이 비교적 스포츠에 관심이 적다지만 아무리 스포츠에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김재박은 그러기엔 너무 전국적으로 유명한 스타였기에 졸지에 상식이 부족한 사람 취급을 받은 것. 사실 1980년대 당대의 전국구 스타였던 김재박을 몰랐다는 것은 신문 한 자, 뉴스 한 번 안 봤다는 뜻이나 다름없어서...현대에도 스포츠를 안 보는 사람도 김연아, 박지성, 류현진의 이름 석 자를 모른다면 상식이 부족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결국 이날 이후 같은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수상자 명단은 철저히 한글로 표기되고 있다.#

1980년대 활동한 여성 연기자들 중에서 보면 최전성기 기준으로 당대 최고로 평가받았으나, 탑 여배우로서 전성기가 짧은 편이다. 1984년 무릎과 무릎 사이에서 주연을 맡아 영화 흥행을 이끌어 낸 후 1985년에 어우동에서 원탑 주연을 맡아 그해 깊고 푸른 밤 다음으로 한국영화 최고 흥행을 이루면서 전성기를 맞았고, 그 뒤 1988년 초반까지 영화 흥행에도 성공을 거두면서 백상예술대상을 비롯한 주요 영화제 상도 휩쓸면서 흥행과 연기력 양쪽으로 인정을 받았으나, 1988년에 결혼 후 잠정 은퇴하면서 전성기가 순식간에 꺾였다. 전성기라고 해도 영화에 한정되어 있다 보니 당시 한국 영화보다 인기가 더 높고, 대중성이 좋은 드라마까지 흥행시킨 원미경이나 이미숙, 드라마만 흥행시킨 정애리보다는 인기의 대중성이 떨어지고, 인기 편향도가 남성들에게 집중됐다. 함께 1980년대 트로이카 여배우 소리를 들은 원미경이나 이미숙[7]이 1980년대 후반 이후에도 꾸준한 활동을 하고 3~40대 들어서도 주연 작품을 흥행시킨데 비해, 이보희는 잠정 은퇴하고 복귀 이후에는 주연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중장년 조연급으로 밀려났다. 다만 중장년 조연급으로 활동하면서 연기의 폭은 더 넓어졌고, 따라서 나이가 들어서도 드라마 등에서 활발히 방송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미모는 당시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았었다. 하지만 사실 연기력은 동시대 배우 중에서 뛰어난 편이 아니었고, 가끔 발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는 이보희가 전성기 때 영화만 했기 때문에 생긴 오해일 수 있다. 연극, 영화, 드라마의 연기는 각각 개성이 뚜렷하고 차이가 있다. 물론 영화도 드라마 같은 스타일의 영화가 있어서 차태현 같은 배우가 그런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만 일반적으로 드라마의 경우 마치 마라톤을 전력으로 질주하면 지치듯 긴 호흡으로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움을 특징으로 하고, 반면에 연극은 과장되어 보이는 특징이 있고, 영화는 드라마와 연극의 중간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전성기 때는 미모와 더불어 말로 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와 섹시한 분위기로 인기를 끌었던 배우이다.

같은 완도 출신 여성 중견 탤런트로는 배우 김창숙이 있으며, 완도누나로 통한다.

문영남 사단에서 인간쓰레기로 주로 출연했지만, 그중 세 작품은 올바른 개념인으로 출연했다.[8]

관리하고 살아서인지 주로 결혼 안 한 극중 부모의 여동생으로 자주 출연한 바 있다.


3. 사생활[편집]


1984년 '무릎과 무릎사이'의 흥행으로 영화제작사로부터 현대 스텔라를 선물받았다. 1986년에도 차를 몰았다는 기사가 있다.

1987년 8월에 LA 앙드레김 패션쇼에서 만난 재미교포 함윤식[9]과 1988년에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다. 그리고 1993년에는 아들을 데리고 영화활동에 복귀하였으나 아들은 다시 미국에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함윤식과는 이혼하고 한의사와 건설업체를 겸직하는 사람과 결혼하였다. 전 남편의 사업이 망한 것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현재 남편은 동료 영화배우 나영희[10]가 소개해준 것이라고 한다. 이보희는 이혜숙, 이상숙, 전인화, 나영희 등 동료 여배우들과 골프 동호회 활동을 했는데, 골프를 통해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달려라 울엄마' 촬영 시절에 촬영에 여유가 생기자 당시 신혼여행으로 남편과 파타야에 갔다고 한다.


4. 출연 작품[11] [편집]



4.1. 영화[편집]


개봉 연도
제목
배역
관객 수
비고
1983년
일송정 푸른 솔은
참모장

조연
1984년
과부춤
홍말숙

주연
바보선언
혜영
106,423명
무릎과 무릎사이
자영
263,334명
1985년
추억의 빛
소연

아가다
아가다

어우동
어우동
479,225명
1986년
이장호의 외인구단
엄지
287,712명
1987년
달빛 사냥꾼
인옥
73,943명
Y의 체험
X

1988년
접시꽃 당신
수경
237,744명
깜동
깜동

아메리카 아메리카
수잔
127,449명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미세스 최
7,435명
1994년
장미의 나날
지현

49일의 남자
하영

2010년
식객: 김치전쟁
수향
462,714명
조연
2011년
써니
과거 사진 특별출연
7,453,586명
특별출연
2017년
아들에게 가는 길
친정 어머니
6,822명
조연


4.2. 드라마[편집]


방영 연도
방송사
제목
배역
1979년
파일:MBC 로고(1974-1981).svg
안국동 아씨

1981년
포옹

1982년
파일:MBC 로고(1981-1985).svg
여인열전 - 서궁마마

1994년
파일:SBS 로고(1991-1994).svg
성냥갑 속의 여자
오지영
1995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서궁
인목대비
1996년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용의 눈물
선빈 안씨
1997년
파일:MBC 로고(1986-2005).svg
내가 사는 이유
배 간호사
1998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맨발의 청춘
한수림
파일:SBS 로고(1994-2000).svg
로맨스
이수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사랑해서 미안해

1999년
파일:MBC 로고(1986-2005).svg
아름다운 선택
은희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우리는 길 잃은 작은새를 보았다
김영화
2001년
푸른 안개
오영희
파일:SBS 로고.svg
여인천하
자순대비
피아노
이은심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여자는 왜
이보희
2002년
언제나 두근두근
장 교수
장희빈
윤씨
파일:MBC 로고(1986-2005).svg
부엌데기
강옥
2003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달려라 울엄마
이보희
2004년
애정의 조건
나진득
파일:SBS 로고.svg
형수님은 열아홉
박영란
남자가 사랑할 때
박화영
2005년
세잎클로버
조윤숙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어여쁜 당신
조옥자
파일:SBS 로고.svg
하늘이시여
김미향
2006년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서울 1945
아메 카오리
파일:MBC 로고(2005-2011).svg
넌 어느 별에서 왔니
안진희
2007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꽃피는 봄이 오면
김부선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하늘만큼 땅만큼
영민 모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마왕
여순옥
파일:MBC 로고(2005-2011).svg
아현동 마님
사비나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착한여자 백일홍
천덕희
2008년
파일:MBC 로고(2005-2011).svg
내 여자
하신애
2009년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집으로 가는 길
오선영
파일:MBC 로고(2005-2011).svg
멈출 수 없어
구효선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수상한 삼형제
계솔이
2010년
파일:MBC 로고(2005-2011).svg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한수라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드라마 스페셜 - 이유
김지수
파일:MBC 로고(2005-2011).svg
욕망의 불꽃
차순자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웃어라 동해야
계선옥
2011년
광개토태왕
고야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드라마 스페셜 - 올레길 그 여자
오 여사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당신뿐이야
이선영
파일:JTBC 로고.svg
청담동 살아요
김보희
2012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난폭한 로맨스
양선희
드라마 스페셜 - 아트
고정아
파일:SBS 로고.svg
내사랑 나비부인
배신자
2013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아이리스 2
정수민
왕가네 식구들
박살라
2014년
파일:MBC 로고.svg
모두 다 김치
지선영
파일:tvN 로고(2012-2021).svg
연애 말고 결혼
훈동 모
파일:MBC 로고.svg
압구정 백야
서은하
2015년
위대한 조강지처
홍금숙
내일도 승리
지영선
2016년
파일:SBS 로고.svg
우리 갑순이
남기자
2017년
달콤한 원수
윤이란
파일:MBC 로고.svg
전생에 웬수들
우양숙
2019년
파일:KBS 2TV 로고.svg
왜그래 풍상씨
노양심
파일:MBC 로고.svg
모두 다 쿵따리
조순자
2021년
파일:KBS 2TV 로고.svg
오케이 광자매
오봉자
2022년
파일:TV CHOSUN 로고.svg
빨간풍선
양반숙


4.3. 광고[편집]


방영 연도
기업
브랜드
비고
1983년
해태제과
해태 뷰티 알로에껌
[12]
1986년
성도어패럴
톰보이

피죤
VOS 샴푸

1986년 ~ 1988년
가양 나드리 코티 화장품
에쿠아 리브레

SB-3

나드리 버태니컬즈 - 이보희편

그레이스 - 숙녀

나드리 에스비쓰리 메이크업 - 색

나드리 에스비쓰리 메이크업 - 신선한 칼라

나드리 에스비쓰리 레몬 - 여자의 봄

나드리 에스비쓰리 - 창가

나드리 코티버태니컬즈 - 물보라

오버나잇 썩세스 - 밤



5. 가족오락관[편집]


  • 1985년 12월 24일
  • 2003년 12월 27일


6. 그 외 활동[편집]



6.1. 홍보대사[편집]


역임 연도
기업/기관
직함
2009년
전라남도 광양시
홍보대사

7. 수상 경력[편집]


수상 연도
시상식
부문
작품
1983년
제22회 대종상
특별상
일송정 푸른 솔은
제1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신인연기상
바보선언
1984년
제4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
1986년
제21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어우동
1988년
제23회 백상예술대상
접시꽃 당신
제8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
2010년
KBS 연기대상
여자 조연상
수상한 삼형제
2015년
MBC 연기대상
연속극부문 베스트 조연상
압구정 백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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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음] 꽃부리 맑을 [1] 출처[2] 당시에는 하나의 서울 영화관 관객수만 기록하였으므로 표의 기록수의 10배 정도로 보면 현재의 관객수랑 얼추 비슷해진다고 한다.[3] 이는 배역명 막 짓는 걸로 유명한 문영남 작가의 작품에 자주 나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4] 참고로 '무릎과 무릎사이'는 단순 에로영화가 아닌 여성이 性을 극복하는 과정을 잘 묘사했다는 평을 받는 수작이다.[5]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남주인공인 오혜성역의 최재성과의 나이 차이였다. 최재성은 1964년생으로, 해당 항목의 영상을 보면, 반항기 있는 고등학생처럼 보여서 이보희와는 아무리 봐도 작품상의 동갑내기로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도 이보희가 5살이나 연상이기도 하다.[6] 여담으로 이때 이보희 씨 패션과 외모가 요즘 aespa윈터를 닮았다(...)[7] 단 이미숙은 결혼으로 1987년부터 1990년대까지 잠시 은퇴했다.[8] 애정의 조건, 수상한 삼형제, 오케이 광자매[9] 당시 뉴욕을 중심으로 자동차 판매업에 전념했다고 한다.[10] 1982년에 '낮은 데로 임하소서', 1988년에 '매춘'으로 흥행하였다. 그리고 남편이 치과의사라고 한다.[11] 당시에는 하나의 서울 영화관 관객수만 기록하였으므로 표의 기록수의 10배 정도로 보면 현재의 관객수랑 얼추 비슷해진다고 한다.[12] with 서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