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철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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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철도국
朝鮮總督府 鐵道局 | Chosen Government Railway

파일:Sentetsulogo.png
국가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설립일
1910년 10월 1일
해체일
1945년 9월 28일
주무기관
조선총독부
운영구간
경인선, 경부선, 경의선, 호남선, 경원선, 경전선, 전라선, 경경선[1], 평원선, 함경선, 동해선, 만포선, 혜산선, 진남포선, 평덕선, 함북선, 황해선
주소
경기도 경성부 용산구
(현재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파일:조선총독부 철도국 청사.jpg

청사[2]
1. 개요
2. 역사
3. 열차 등급
3.1. 특급 아카츠키호(あかつき)[3]
3.2. 급행 히카리호(ひかり)[4]
3.3. 급행 노조미호(のぞみ)[5]
3.4. 급행 타이리쿠호(大陸號,대륙)
3.5. 급행 코아호 (興亞號,흥아)
4. 차량
5. 참고 자료
6. 관련문서



1. 개요[편집]


조선총독부 산하 행정 기구 중 하나로, 일제강점기한반도 철도를 관리하였다. 약칭 센테츠(鮮鐵, 선철). 대한민국 철도청의 전신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에는 조선총독부 철도국 외에도 사철인 조선철도주식회사(약칭 초테츠朝鉄, 조철) 또한 존재했으나 총독부 철도국이 조선철도주식회사의 노선을 서서히 사들였고 패망 직전 조선철도주식회사는 충북선, 경동선(京東線; 수려선, 수인선)만 보유하고 있었다.

2. 역사[편집]


이미 구한말 경부선, 경인선, 경의선 등 철도 부설권을 장악한 일제는 1906년 경인철도합자회사, 경부철도주식회사, 삼마철도, 경의철도 등 4개 철도회사를 국영화 후 통합해 한국통감부 산하에 철도관리국을 두기 시작했다. 1909년 12월 일본제국 철도원으로 조직이 이관됐다가 1910년 8월 한일강제합병이후 통감부가 조선총독부로 개편되면서 이관되어 '철도국'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 환구단에 '조선호텔'을 설립한 후 여객/숙박사업에도 손을 뻗고 1917년에는 남만주철도주식회사에 운영을 맡겼다. 1919년 직제개정으로 '철도부'가 돼 1925년 조선총독부의 직영으로 환원되면서 '철도국'이 됐고, 1933년 청진이북노선을 만철에게 맡기고 1943년 직제개정으로 '교통국'이 됐으나 1945년 8.15 해방이후 미군정 수립으로 해체돼서 모든 업무가 미군정청 교통국으로 이관됐다.

3. 열차 등급[편집]



3.1. 특급 아카츠키호(あかつき)[6][편집]



あかつき
Akatsuki / 아카츠키

파일:특급아카츠키.jpg
열차 정보
운행 지역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조선
열차 종류
특급열차
기점
부산잔교역
종점
경성역
정차역 수
최대 4역
운행개시일
1936년 12월
운행종료일
1943년 11월
운영자
파일:Sentetsulogo.png
조선총독부 철도국

사용 차량
파시형 증기기관차
노선 제원
운행거리
441.7km
궤간
1435mm
최고속도
90km/h




파일:조선총독부철도국특급아카츠키호.jpg

일등전망차 내부[7]

조선총독부 철도국의 유일한 특급열차였으며 1936년부터 1943년까지 경부선에서 운행되었고 운행구간은 부산잔교역 ~ 대구역 ~ 대전역 ~ 경성역이었다. 당시 서울과 부산을 6시간 45분만에 주파하는 경부선 최속달 열차였다.

부관연락선을 통해서 일본본토와 연결돼 있었으며 부관연락선 야간 배편을 통해 바로 환승하였고 주간열차로 운행되었다. 열차 편성으로 일등전망차, 이등차, 삼등차, 식당차, 수하물우편차가 존재하였다.

1943년 운행종료 이후 일본국유철도, JR 서일본의 침대특급이 이 이름을 물려받았고, 재건호, 관광호, 새마을호, KTX 서대동부 열차가 서울-부산 최속달열차임무를 이어받았다.

시간표는 1939년 10월 13일 다이어 기준이다.[8] 일본방향인 부산잔교역을 기준으로 상하행이 분리돼 있어서, 경성행이 하행이다.
조선총독부 철도국 특급 아카츠키호
1939년 10월 13일 시간표
역명
하행
상행
부산잔교
7:05
22:40
대구
9:01
20:50
대전
11:21
18:28
경성
13:45
16:00

3.2. 급행 히카리호(ひかり)[9][편집]


파일:조선총독부철도국급행히카리호.jpg
일등전망침대차 후면[10]
1911년 압록강철교가 완성되면서 한반도와 만주가 이어지게 되었고 경부선 - 경의선 - 만철에 걸쳐 운행하는 열차가 생기게 되었다. 부관연락선 낮 배편과 시간표를 맞추어 밤에 운행하였다. 부산잔교역 ~ 경성역 ~ 평양역 ~ 단둥역 ~ 선양역[11] ~ 창춘역[12] ~ 하얼빈역[13] 구간을 운행하였고, 노조미와 달리 광복직전(1945년)까지 운행했다. 패망 직후에는 규슈 급행열차의 이름으로 사용되다가 1964년, 도카이도-산요 신칸센에 히카리가 등장함으로서 현재까지 신칸센 열차의 이름으로 사용된다. 광복이후 일등전망침대차량 1량이 대통령 전용열차로 개조되었다.

유튜브의 대한 뉴스 일부를 보면 이승만 대통령기 시절 위 사진의 후면 발코니에서 연설을 하는 영상과 내부에서 기자들과 기자회견을 하는 영상이 남아있다.
조선총독부 철도국 급행 히카리
1939년 10월 13일 주요 역 시간표
역명
하행
상행
부산잔교
19:00
11:05
삼랑진
19:47

대구
21:15

김천
22:21

대전
23:56

천안
1:00

경성
2:30
3:30
개성

2:06
신막

0:40
평양
7:31
22:35
정주

20:27
신의주

18:37
안동
11:20
18:30
봉천
17:59

신경
21:45


3.3. 급행 노조미호(のぞみ)[14][편집]


1934년부터 경부선 - 경의선 - 만철에 걸쳐서 운행하였다. 부관연락선 밤 배편과 시간표를 맞추어 낮에 운행하였다. 운행구간은 부산잔교역 ~ 경성역 ~ 평양역 ~ 단둥역 ~ 선양역[15] ~ 창춘역[16]이었으며 히카리보다 낮은 등급이었다. 1944년 폐지되었고 이후 시간이 한참 흐른 1992년, 도카이도-산요 신칸센에 노조미가 등장함으로서 이름이 다시금 사용된다. 광복이후 일등전망침대차 몇 량이 미8군사령관 전용차를 포함한 귀빈용 객차로 개조되었다.
조선총독부 철도국 급행 노조미
1939년 10월 13일 주요 역 시간표
역명
하행
상행
부산잔교
7:50
22:10
삼랑진
8:43

대구
10:13

대전
12:56

경성
15:28
14:30
신막

11:46
평양
20:38
9:38
정주

7:38
신의주

5:49
안동
0:40
5:43
봉천
7:05

신경
11:42


조선총독부 철도국 급행 노조미(단축)
1939년 10월 13일 주요 역 시간표
역명
하행
상행
부산잔교
22:10
11:05
삼랑진
21:24
10:19
대구
19:57
9:03
김천

7:52
대전
17:17
6:19
천안

5:09
경성
14:40
3:40

3.4. 급행 타이리쿠호(大陸號,대륙)[편집]


1938년부터 경부선 - 경의선을 통해서 중국의 북경까지 운행했던 열차이다. 운행구간은 부산잔교역 ~ 서울역 ~ 평양역 ~ 단둥역 ~ 선양역 ~ 산해관 ~ 베이징역(정양문 동역)이었던 국제열차이다. 부관연락선을 통해 일본과 중국내륙일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부관연락선 밤 배편과 시간표를 맞추어 낮에 운행하였다. 3국[17]에 걸쳐 운행했다. 1944년 폐지되었다.

3.5. 급행 코아호 (興亞號,흥아)[편집]


1939년부터 운행되었고 타이리쿠호와 같은 운행노선이였다. 정차역은 부산잔교역 ~ 서울역 ~ 평양역 ~ 단둥역 ~ 선양역 ~ 산해관 ~ 베이징역(정양문 동역)이었던 국제열차이다. 부관연락선 낮 배편과 시간표를 맞추어 밤에 운행하였다. 1945년 폐지.


4. 차량[편집]






5. 참고 자료[편집]



6. 관련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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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중앙선[2] 용산역 바로 앞에 있었다.[3] 당시 한글 표기는 '아까쓰끼'. #[4] 1933년부터 붙여졌다. 당시 한글 표기는 '히까리'. #[5] 당시 한글 표기는 '노소미'였던 것으로 보인다. # 오늘날의 청취 감각으로는 의아할 수 있으나, 한국어의 /ㅈ/은 치경구개음이므로, 일본어의 치조음 /z/와 조음 위치가 다르다. 일본어 화자가 한국어 발음 [노조미\]를 들으면 'ノジョミ(nojomi)'로 들린다. 오히려 무성음이긴 해도 /ㅅ/이 /z/와 조음 위치가 치조(잇몸)로서 같다. 그런데 해당 기사의 복수 표기 중 '노조미'도 있는 것을 보면 표기가 혼용되었던 모양.[6] 당시 한글 표기는 '아까쓰끼'. #[7] 현 시대와 비교하자면 KTX 특실에 대응하는 객실이다.[8] 조선일보 보도기준. 당시 석간 2면에 고시.[9] 1933년부터 붙여졌다. 당시 한글 표기는 '히까리'. #[10] 열차에 "ひかり"(히카리)라고 써있다.[11] 1911년부터[12] 1934년부터[13] 1942년부터[14] 당시 한글 표기는 '노소미'였던 것으로 보인다. # 오늘날의 청취 감각으로는 의아할 수 있으나, 한국어의 /ㅈ/은 치경구개음이므로, 일본어의 치조음 /z/와 조음 위치가 다르다. 일본어 화자가 한국어 발음 [노조미\]를 들으면 'ノジョミ(nojomi)'로 들린다. 오히려 무성음이긴 해도 /ㅅ/이 /z/와 조음 위치가 치조(잇몸)로서 같다. 그런데 해당 기사의 복수 표기 중 '노조미'도 있는 것을 보면 표기가 혼용되었던 모양.[15] 1934년부터[16] 1938년부터[17] 조선, 만주국, 중화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