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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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영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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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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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조병영
趙炳瑛 / Cho Byung-Young

생년월일
1966년 1월 22일 (58세)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79cm
직업
축구선수 (풀백 / 은퇴)
축구 감독
학력
안동대학교
소속
선수
럭키금성 황소/안양 LG 치타스 (1988~1997)
감독
안산화랑초등학교 (2000~2002)
안산부곡중학교 (2002~2012)
경기안성맞춤 FC (2013~)

1. 개요
2. 선수 시절
3. 플레이 스타일
4. 지도자 경력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축구선수. 현재 안산 부곡중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재직중이다. 선수 시절에는 10년동안 LG에서만 뛰면서 수비를 책임졌던 원클럽맨이다.


2. 선수 시절[편집]


1988년 드래프트에서 우선지명된 3명과 별도로 1순위로 지명된 조병영 선수는, 1992년 K리그 최종전에서 포항제철 아톰즈의 우승을 저지시킬 뻔한, 동점골을 터뜨렸던 주인공으로도 올드 포항팬들에게 기억되는 선수이기도 하다. 조선수는 10년이라는 세월동안 한 팀에서 줄곧 뛰었지만 입단 동기인 윤상철이나, 럭키금성 전력의 핵심이었던 이영진, 이영익, 구상범 등 일세를 풍미했던 이들에게 밀려 데뷔 시즌의 반짝 활약 이후, 오랜 기간을 서브 멤버로 머물었다. 그러다 93년 시즌 종료 후, 고재욱 감독이 사임하고, 조영증 감독이 취임하면서 조병영 선수는 기회를 얻어 대활약했다. 당시 조감독은 구상범 선수의 이적 공백을 조병영 선수의 기용으로 메우려했던 것.

하지만 결과적으로 LG는 구상범의 공백을 메우는데 실패하며 수비 조직력이 와해되고 말았고 하위권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후 LG 치타스는 90년대 중반 긴 암흑기를 거쳤는데, 역설적으로 LG의 암흑기가 짙어질수록 조병영 선수에게 오는 출장기회는 늘어났다. 96년 개인 최다 리그 출장인 33경기를 기록했고, 97 시즌에는 안양 LG 치타스의 주장을 맡아 팀의 수비 라인을 진두지휘했던 것. 하지만 96년, 97년 연속 9위를 기록하는등 팀의 상황은 점점 더 안좋아져만 갔다. 이에 주장의 책임감으로 조선수는 삭발을 감행하기도 했을 정도였는데.. 조선수의 투혼에도 불구하고, 97시즌 윤상철, 이영익 등 노장 선수들의 부진으로 안양 LG는 10개 팀 중 9위를 기록했고, 안양 LG는 이에 선수단 쇄신을 주장하며, 윤상철, 이영익, 김판근, 조병영 등 총 5명의 노장 선수를 은퇴시켰다. 결국 조병영 선수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10년만에 선수 생활을 정리하게 된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상당히 터프한 플레이로 상대 팀 에이스를 밀착 마크하는 수비수였고, 카드도 무척 많이 받았던 선수였다.


4. 지도자 경력[편집]


2000년부터 안산 화랑 초등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재직하다 2002년 5월, 안산 부곡중학교 축구부가 창단되자 창단 감독으로 부임하여 활동하였다. 안산 부곡중은 창단한지 8년밖에 안된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전국 대회 2회 우승과 2009년 맨체스터 컵 우승등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팀으로 유명하며, 덕분에 조감독은 중등축구 부문에서 우승 제조기로 불리며 뛰어난 지도자로 조명을 받았다. 2014년 현재는 안성맞춤 F.C U-18팀을 이끌고 고교축구 무대에 도전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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