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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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92년
함경남도 북청군 해안면 예원리
사망
1954년 12월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조극은 1892년생이며 함경남도 북청군 해안면 예원리 출신이다. 그는 일찍이 미국으로 이주하여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1916년 9월 대한인국민회 맨티카지방회로 이전했으며, 1917년 동 지방회에서 결정한 한흥학교 유지방침 연구위원으로 선정되었다.

1918년 4월 콜로라도주 푸에블로 한인들과 지방회를 설립하고 북미지방총회에 청원하였다. 같은 해 7월에는 와이오밍주 슈퍼리오에서 김호(金乎) 등과 지방회를 설립하고 총무로 선임되었으며, 1921년 동 지방회 서기, 유타지방회(일명 트레몬트지방회) 서기 등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뉴욕으로 이주한 그는 1929년 2월 국민회 노욕지방회 회장으로 선임된 뒤 국민회·동지회 등과 함께 연합 활동을 할 것을 의결하였다. 그 결과 1930년 3.1절에 뉴욕 한인단체가 합동하여 뉴욕연합경축회를 조직하고 행사를 치렀다. 이때 순서지정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32년 2월 단일당 결성운동의 차원으로 한인공동회를 구성하고 위원으로 선정되었다. 같은 해 6월 뉴욕한인연합회(공동회) 주최로 상해사변 후원을 위한 모금 수전위원(收錢委員)으로 선정되었다. 1933년에도 뉴욕지방회장으로 활동하면서 같은 해 6월 중한민중대동맹 뉴욕지부 설치를 위해 한인측 대표 후보로 참석하였고, 뉴욕 한인단체들과 한국대일전선 통일동맹 뉴욕지부를 설치하고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34년 9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재무부 주미(駐美) 제5행서(行署) 비서로 선임되었다. 1935년 1월에는 대한인국민회 기관지 <신한민보(新韓民報)> 뉴욕통신원, 2월에는 뉴욕한인공동회 교섭위원으로 3.1절 기념식을 준비하였다. 같은 해 5월 대한인국민회 확장을 위해 뉴욕지방회를 다시 조직하고 대의원으로 선정되었다.

1937년 1월 뉴욕지방회관 건축위원으로 선정되어 의연금을 모집하였고, 11월에는 신한민보사 뉴욕지국장 겸 통신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같은 달 중일전쟁이 일어난 것을 계기로 뉴욕한인연합중국후원회를 조직하고 상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38년 뉴욕지방회 재무로 선임되었고, 5월 대한민국임시정부 군사비 후원을 위한 뉴욕지방회 수전위원, 11월 대한인국민회 원동특파원(遠東特派員) 경비모집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37년 7월 흥사단 이사부에서 중일전쟁을 계기로 임시시사연구부를 설치하자 위원으로 선정되었다. 1939~1940년 뉴욕지방회 집행위원장, 1941년 7월 대리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1942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였고, 1944년에는 조선민족혁명당 미주총지부에서 활동하며 미주총지부가 조직한 군사운동촉진위원회 재무로서 임시정부 군무부에 군사비를 송금하였다. 1945년 1월에는 동당(同黨) 미주총지부 집행위원 겸 총무로 선정되어 활동하였다. 또한 1916년부터 1945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1952년 12월경 로스앤젤레스에서 병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조극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