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보병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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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보병여단
第十七步兵旅團
The 17th Infantry Brigade
파일:제17보병연대 마크.jpg

창설일
1948년 11월 20일(제17보병연대)
2020년 12월 1일(제17보병여단)
상징명칭
쌍호부대
소속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제12보병사단
규모
여단
역할
제12보병사단 예비 보병여단 작전 담당
여단장
대령 이상철
위치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1. 개요
2. 상세
2.1. 역사
2.1.1. 건군기 및 한국전쟁
2.1.3. 제12보병사단으로 이관
3. 예하부대
3.1. 여단 직할대
3.2. 군수지원대대 (舊 수송대)
3.4. 제2대대 화령장 전승대대
3.5. 제3대대 수도탈환대대
3.6. 과거 편제
4. 출신인물
4.2. 장교/부사관
4.3. 병
5. 기타
5.1. 근무환경
5.2. 부대영상
5.2.1. 여단가[1]
6. 사건 사고
7. 여담


파일:17rgt.jpg
제17보병연대 부대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 육군 제3군단 제12보병사단 예하 제17보병여단. 일반명칭은 쌍호부대.


2. 상세[편집]


2019년 10월 제2보병사단이 재편을 위해 해체됨으로서 그 예하에 있었던 17연대(쌍호부대)가 12사단으로 소속이 변경되었고, 12사단 37연대의 작계지와 인원들을 인계받고 37연대는 해체 수순을 밟았다.

국방개혁 2.0 2020년 12월 1일부로 연대에서 여단으로 개편되었다.


2.1. 역사[편집]



2.1.1. 건군기 및 한국전쟁[편집]


창설 당시엔 육직부대로, 수도경비사령부에 예속되어 있다 육군본부 직할로 옹진반도를 사수하던 독립연대인 18연대와 위치[2]를 맞바꾸고 한국전 발발까지 옹진반도를 사수하였으며, 이후 개전과 함께 벌어진 옹진반도 전투에서 고립지나 다름없는 옹진반도를 사수하기 힘들어 지연전을 펼치며 배로 후퇴했다. 그 후 육군 유일의 예비 독립연대[3]로 소백산맥 부근에서 벌어진 화령장 전투에서 높은 전공을 세우며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했다. 그리고 안강-기계 전투에서 피말리는 방어전을 펼쳤으며, 그러다 인천상륙작전에 대한민국 육군부대 중 유일하게 참여했다.[4] 그러다 50년 11월, 2사단이 재창설될 때 예속됐다.

이러한 역사와 전공을 가졌기에 인천상륙작전, 화령장전투, 수도탈환은 각각 편제된 예하대대의 이명으로 사용하였다. 전후에는 주로 대간첩작전에 투입되어 전과를 올렸고 제3군단의 예비사단-예비대로 인제에 주둔하여 작전을 담당한다.


2.1.2. 제2보병사단 시절[편집]


타 부대와는 다르게 17연대는 연대본부 및 직할대, 예하대대가 모두 하나의 울타리 안에 주둔했다. 그래서 그 면적이 어지간한 지방의 대학교 캠퍼스와 비슷했다. 사단본부와 사격장을 비롯한 주요 시설이 양구에 있다보니 그 어떤 훈련을 참가해도 행군 거리의 격이 달랐다. 각 대대가 미래과학화 전투실험 보병부대를 돌아가면서 맡았는데, 육군 보병부대의 발전을 위해 개발되는 신편제, 신식 교리나 무기체계를 실험하는 부대이다. XX년도에는 2대대가 담당하고 있었는데, XK11의 시험운용부대로 매일 마일즈 장비를 착용하고 KCTC 수준의 실전적 훈련을 시행하는 실험에 참가했다. 이렇다보니 2015년 전반기 마일즈 육군 최우수 중대로 11중대가 뽑혔다. 2, 3, 5, 27사단의 각 대표 중대가 참여한 육군 최강중대 선발대회에서 4강(VS 3사단), 결승(VS 27사단)을 거치며 우승을 차지했다. 해당 인원은 전원 17일에 해당하는 위로휴가를 받았으며, 해당 대대는 출타율을 조정해가며 휴식 여건 보장이 확실히 되었다.

31, 32연대와 달리 인제에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다보니 부조리가 꽤 심했다. 게다가 연대 예하 모든 부대가 하나의 주둔지에 묶여 있으니 연대장의 힘이 매우 막강했다. 무엇보다 2사단 연대들 중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전통이나 명맥 잇는다는 논리로 부조리가 근절되기 힘들었다. 오죽하면 양구에 주둔한 군사경찰대(헌병대)가 즉시 출동하기 위해 17연대 내에 헌병 파견대라 하여 분견대가 위치했다.

후반기 교육을 마쳤어도 바로 자대로 전입하지 않고 다시 쌍호교육대로 들어가 1주일 정도 교육을 받았다. 쌍호교육대는 연대 내 군기교육을 담당하기도 한다. 1990년대 중반에는 연대 전통과 정신 불어넣기, 태권도 교육을 주로 받았는데, 이게 유격기초훈련과 유사해 매우 힘들었던 과정이었다. 2000년대 말에는 프로그램이 완화되었는데, 이전처럼 군사훈련이나 정신교육을 받지는 않고 간단히 연내 내 시설을 돌아보거나 연대장과의 면담 등을 실시하면서 전입 온 신병들의 적응을 돕는 수준으로 완화되었다. 연대 내 전입 온 모든 신병들이 모이는 교육이라, 현재 운용 중인 부대 내에서 이 인원들을 수용할 만한 곳이 없어서 먼지 쌓인 구 1대대 막사와 구 쌍호교회 건물을 열어 사용했다. 2010년에 모종의 사유로 폐지된 적이 있었으나, 그 후 2012년에 다시 부활하여 유지했었다.


2.1.3. 제12보병사단으로 이관[편집]


2019년 10월, 국방개혁에 따라 제2보병사단이 공정사단으로 재편되기 위해 임시 해체되었을 때 17연대는 제12보병사단으로 이관되었고, 이후 37연대의 작전지와 인원들을 인계받았고, 37연대는 해체 수순을 밟았다. 다만 연대 본부와 3대대는 기존 주둔지를, 1대대와 2대대는 37연대 주둔지로 옮겨갔다.

3. 예하부대[편집]



3.1. 여단 직할대[편집]


  • 본부중대
  • 정보중대(GP) - 쌍호연대답게 흉장에도 호랑이 두 마리가 있다. 과거 수색중대는 인제 읍내에 별도로 주둔지가 있었다. 감시자산이 추가되면서 수색중대에서 정보중대로 개편됨.
  • 통신중대
  • 의무중대
  • 17포병대 (구 2사단 633포병대대) - 105mm 견인곡사포를 K105A1(차량탑재형)으로 운용하여 기존 보병연대 전투지원중대의 화력을 뛰어넘는다. 포병대로 군 구조개편이 되면서 보병연대 직할이던 전투지원중대는 편제에서 사라졌다.

현재 주둔지 내에 12사단 직할대대인 방공대대와 보충중대가 같이 주둔하고있다.

  • 방공대대: 17여단 주둔지 내에 있는 독립대대. 원래는 방공'중대'였으나 2022년 12월 1일부로 방공'대대'로 개편되었다.

  • 보충중대: 정보통신대대와 같이 본부대와 함께 사단 사령부 영내에 같이 있었으며 , 과거에는 원통리에서 용대리 가는 방향에 독립적으로 있었으나 현재 17여단 본부로 이전 하였다

  • 방공대대와 보충중대의 편제는 12사단 직할이지만 17보병여단의 주둔지안에 있기때문에 그런지 17여단본부의 명령을 받고 임무한다.


3.2. 군수지원대대 (舊 수송대)[편집]


2020년 12월부로 보병연대에서 여단급으로 격상되면서 군수지원대대가 창설되었다. 대대장은 병기, 병참, 수송 병과 출신의 군수 병과(영관장교부터는 병기, 병참, 수송 병과를 군수 병과로 통합함) 중령이다. 정비중대와 보급수송중대로 편제되었다. 정비중대장은 병기 병과, 보급수송중대장은 병참 또는 수송병과 출신이다. 정비중대는 사단 직할대대인 정비대대의 각 중대가 각 보병여단의 창설 주축이 되었다. 이는 보급수송중대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사단 직할대대인 정비대대와 보급수송대대가 해체되거나 축소되지는 않았고 본연의 임무는 계속해서 수행한다. 기존의 수송대 차량은 군수지원대대와 예하 보병대대에서 운용한다. 참고로 여단 군수과장(보병 병과)은 여단장의 군수참모로서 작전에 필요한 군수 업무를 보좌하는 것이고 군수지원대대장은 말 그대로 군수지원 역할을 담당하는 대대의 장이다.


3.3. 제1대대 12사단 신병교육대 (인천상륙진격대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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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 신병교육대 임무를 맡고 있으며 여단 내에서 사용하는 애칭은 '인천상륙 진격대대' 이다.[5]

(구)제37보병연대 당시에는 3사단의 3.7 완전작전으로 유명한 박정인 장군이 초대 대대장을 맡아 '박정인 대대' 라는 애칭을 사용했었다. [6]

3.4. 제2대대 화령장 전승대대[편집]


제17보병여단의 전신인 제17보병연대는 1950. 7. 17.~ 22.간 경북 상주의 화령장 지구 전투에서 대구-부산 방면으로 진출하려던 적 15사단을 궤멸시키는데 성공, 낙동강 방어선 구축 시간을 확보하며 백척간두의 위기 속에서 나라를 구하였고, 이 전투로 연대 전 장병 1계급 특진 하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2대대의 일반명칭을 '화령장 전승대대'로 명명했다.

'19. 9. 30. 국방개혁 일환으로 2사단 해체와 함께 12사단으로 지휘관계 전환되어 기존 37-3대대(백마촌대대) 주둔지로 이동하였으며 사단내 각종 훈련 및 시범식 교육을 집중적으로 전담하고 있다.

백마촌은 제17보병연대의 초대 연대장이었던 백인엽 장군이 휴전 이후 9사단장으로 재직하며 군인마을을 조성하였고 9사단의 애칭인 '백마'를 붙여 백마촌으로 명명한데서 유래한다.[7]

명칭과 관련하여 여전히 사단 간부들 사이에서는 '백마촌'이 혼용되고 있다. 그러나 국방뉴스, 국방일보를 비롯하여 대외적으로는 <화령장 전승대대>라고 명명하고 있다.[8] 과거 백마촌대대가 사단 예비대로서 시범식 교육, KCTC 등을 담당하며 훈련량이 많았듯이 그 임무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3.5. 제3대대 수도탈환대대[편집]


기존 제2보병사단 17보병연대 시절의 편제를 그대로 보존한 대대로 6.25전쟁 당시 17연대가 인천상륙작전에 이어 수도 서울을 탈환하는데 큰 공을 세운 것에서 명칭이 유래되었다.
최근 K-808 차륜형장갑차가 배치되었다.

3.6. 과거 편제[편집]


2020.11.30 기준
* 연대본부 및 직할중대[9]
* 1대대(인천상륙), 2대대(화령장전투), 3대대(수도탈환)

4. 출신인물[편집]



4.1. 여단장[편집]


볼드체대장 진급이 된 연대장 및 여단장.

역대 제17보병여단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000
예) 대령
육사 00기
연대장

00대
백인엽
예) 중장
군영 1기
제6군단장

22대
임관빈
예) 중장
육사 32기
육군참모차장, 국방대학교 총장

00대
이승준
준장
학사 19기[10]
연대장

00대
김성용
대령
육사 00기
여단장


4.2. 장교/부사관[편집]


- 김동석 대령(金東石, 1923년 8월 23일 ~ 2009년 3월 26일)[11] : 6•25전쟁 당시 제17보병연대 11중대장으로 참전, 화령장전투에서 농부인척 적진에 들어가 정보를 수집하여 화령장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공을 세웠다. 이후 인천상륙작전 당시 정보부대원으로 활약하여 인천상륙작전 성공에도 기여하였으며, 국군 정보부대의 기틀을 잡는데 큰 역할을 했다. 2002년 미국 행정부가 선정한 6•25전쟁 4대 영웅 중 1명으로 이름을 올렸다.[12]

- 이홍근 대령(1928년 ~ 2009년)
: 6.25 전쟁 발발 당시 2대대 박격포소대장으로 참전, 옹진지구 전투에 참가하였다. 광복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다.

- 조영환 하사(1928년 ~ 1950년 8월)
: 1928년 경기도 화성군 반월면에서 4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1949년 1월, 22세에 육군에 자원입대하여 육군직할 제17연대로 배치되었다. 1950년 6·25전쟁 발발 당시 옹진지구 전투에 참가했으며, 7월 오산전투와 진천-청주 전투, 상주 화령장 전투, 함양-거창 전투에 이어 8월초 낙동강 방어 전투까지 참전했다.

낙동강 방어 전투에서 당시 17연대는 북한군 12사단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기계 안강전투에 참가하고 있었는데 1950년 8월 13일부터 30일 사이 북한군 12사단과 치열한 교전 도중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유해는 2009년 3월 경상북도 포항시 기북면 대곡리 무명 380고지에서 야전삽, 수통 등의 유품과 함께 발굴되었고, 2017년에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갔다.

4.3. 병[편집]


- 김용식(1931~1950) : 17연대 9중대 3소대 일원으로 안강-기계전투에 참가하여 유공을 세워 1951년 10월 15일에 병 최초로 태극무공훈장이 수여[13]되었고, 1954년 10월 15일에 화랑무공훈장을 추가로 수여받았다.

- 홍재근(1928~1950) : 김용식 일병과 함께 안강-기계전투 유공으로 1951년 10월 15일 병 최초로 태극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 황석윤(??~1953) : 17연대 2대대 5중대 소속으로 저격능선전투에서 적 진지로 진격이 제한되자. 수류탄을 들고 적 진지를 격파하고 장렬히 산화하였다. 이 공로를 인정 받아 병 최초로 을지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전사 당시 이등병으로 후에 일병으로 추서되었다.

- 신규진 : 코미디언

- 센서스튜디오 : 정보 및 역사, 정치 컨텐츠로 활동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지식정보 유튜버다.

5. 기타[편집]



5.1. 근무환경[편집]


사단을 구성하는 주요 보병연대와는 다르게 17연대는 모든 대대가 연대본부와 그 직할대와 같은 주둔지로 묶여있다. 어지간한 지방의 대학교 캠퍼스 크기의 주둔지를 갖고 있다. 재미있게도 사단 사령부와 사격장을 비롯한 중요 시설은 양구에 있는데, 17연대만 단독으로 인제에 있다보니 그 어떤 훈련을 참가해도 행군 거리가 격이 다르다. 신교대 조교에게 17연대 걸리면 전투화 한 켤레 더 준다는 농담을 듣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이야 강원도의 도로 사정이 좋아졌지만 예전에는 양구로 가는 길 조차 변변치 않았다. 1970년대까지 17연대에 자대배치를 받는 병사는 양구의 사단 본부에서 군용 보트를 타고 소양강을 줄기를 따라 연대로 왔다고 한다.

주둔지 상태는 2대대를 제외하고는 신막사를 사용중이다. 과거에는 좀 상황이 달랐는데, 12년도까지 1대대(신막사)와 2대대(목조는 아니지만 그나마 신막사)를 제외한 3대대 또는 직할중대들은 모두 목조막사를 사용했었다. 이 목조막사의 건축년도는 1960년대며, 건물 해체시 프레임을 이루고 있는 나무 기둥에서 US ARMY마크가 발견되었다. 지형적인 특징으로는, 연대 바로 앞을 지나가는 내린천의 존재로 인해 여름엔 달궈진 내린천의 후끈한 공기가 주변 고지들에 막혀 못 빠져나가면서 연대를 삶아버린다. 겨울엔? 연대 자체가 고지대에 위치한데다가 산 중턱이라 끝장나게 춥다. 진짜 오지게 춥다. 추운 것도 추운 거지만, 주 초소 근처의 풍속 또한 굉장히 빠르니, 죽을 맛이 따로 없다. 모 년도 혹한기 훈련 당시 주둔지 근처 고지에서 숙영을 했는데, 온도가 상상 이상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장비도 제대로 못 챙기고 일단 철수한 적이 있다고 카더라. 여기 떨어진 병사들의 무운을 빈다

2사단에서 자대배치 받을 때 조교들이 칠연대, 꽃필연대라고 가르쳐주지만 사실 조교들도 자기 부대 빼고는 제대로 알리가 없으므로 쫄지 말자. 이 정도로 사단내의 다른 연대들에 비해서 유독 악명이 높은 부대다. 민간사회에서도 유명한지 부대의 멸칭이자 악명인 좆칠연대를 포털에 검색하면 검색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특징으로는 각 대대가 미래과학화 전투실험 보병부대 를 돌아가면서 맡는다는 것인데, 국군 보병부대의 발전을 위해 개발되는 신편제, 신식 교리나 무기체계를 실험하는 부대이다. 정작 그러면서 신형 장구류 보급은 요원하다. 국방개혁 기본계획(2014~2030)에 공개된 바로는 예비사단은 2016년부터 신형 장구류 패키지를 보급하기로 되어있다. xx년도엔 2대대가 담당하고 있었는데, XK11의 시험운용부대로 매일매일 마일즈 장비를 착용하고 KCTC 수준의 실전적 훈련을 시행하는 실험에 참가했다.

부조리가 꽤 심한 연대다. 제2보병사단 내에서는 따로 분리되어 있는 포병대를 제외한다면 사단 내에서 사단 본부-연대 간 거리가 제일 멀어서 연대장이 사단장급의 권력을 가지는지라 사단 본부의 명령따위 씹어버려도 알 방도가 없어 연대 자체적인 전통이니 뭐니 하는 것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헌병대가 즉각 출동하기 어려워 헌병 파견대라 하여 분견대가 연대 내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부조리는 보통 '전통'을 내세워 합리화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워낙 오래된지라 각종 부조리가 성행했다.

이 부조리에 대해서는 상당히 굵직한 일이 많았다. 2009년도엔 2대대에서 초소 성군기 위반으로 헌병과 경찰이 동시에 부대 내에서 수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2011년도에는 사단 감찰부가 실시한 마음의 편지 수거 후 모 중대가 거의 해체 수준으로 갈려나갔다. 조사에 따르면 간부에 의한 내리갈굼 지시가 있었다고 하며, 어느 중대는 깔깔이를 못 입게 하는 부조리도 있었다고 한다.

후반기 교육까지 다 마치고 와도 자대로 전입하지 않고, 다시 쌍호교육대로 들어가 1주일 정도 교육을 받았다. 쌍호교육대는 연대 내 군기교육을 담당하기도 한다. 1990년대 중반에는 연대 전통과 정신 불어넣기, 태권도 교육을 주로 받았는데, 이게 유격기초훈련과 유사해 매우 힘들었던 과정이었다. 2000년대 말에는 프로그램이 완화되었는데, 이전처럼 군사훈련이나 정신교육을 받지는 않고 간단히 연내 내 시설을 돌아보거나 연대장과의 면담 등을 실시하면서 전입 온 신병들의 적응을 돕는 수준으로 완화되었다. 연대 내 전입 온 모든 신병들이 모이는 교육이라, 현재 운용 중인 부대 내에서 이 인원들을 수용할 만한 곳이 없어서 먼지 쌓인 구 1대대 막사와 구 쌍호교회 건물을 열어 사용한다. 1980년대 군대 체험판 2010년에 모종의 사유로 폐지된 적이 있었으나, 그 후 2012년에 다시 부활하여 현재까지 유지 중이다.

연대 입구 바로 안쪽 로터리에는 쌍호상이 있고 그 아래에는 연대가가 적혀있다. 연대 직할중대 PX로 가는 길에 있으니 감상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주로 구보 코스의 반환점으로 쓰이는데, 지나가면서 쌍호상의 성기를 만지면 무사전역한다는 소문이 있다.

부대가 통째로 인제에 떨어져 있다보니 외진을 사단의무대로 가지 않고 바로 국군홍천병원으로 간다. 사단의무대로 가려면 광치령을 넘어가야하기 때문인데, 일단 외진만 받으면 99%가 홍천병원으로 떨어지니 유난히 외진율이 높다고 카더라. 여기서 1%는 국군수도병원. 그도 그럴 것이, 완전 구멍가게만한 PX가 달랑 하나 있는 사단의무대는 그야말로 치료받는 것 빼고 아무것도 할 게 없는 곳인데, 홍천병원은 중대형 PX도 있고 위병소 옆에 치킨과 피자를 파는 휴게소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치료를 받고 나면, 출발 대기 중인 셔틀버스 안에서 의자 젖히고 누워 잘 수 도 있고 병원 안에서 출발 시간까지 하루종일 전화해도 아무도 뭐라고 안한다(...)

2000년대 예비군제도개편 전까지는 예비군편성 부대분류시 보병부대중 유일하게 공수특전대, 해병대, 특공대와 함께 모자부대 목록으로 분류되어 있었다(전쟁발생시 해당 부대로 복귀하는 것으로 추정)

2015년 전반기 마일즈 육군 최우수 중대로 11중대가 뽑혔다. 2, 3, 5, 27사단의 각 대표 중대가 참여한 육군 최강중대 선발대회에서 4강 3사단, 결승 27사단을 이기고 우승을 차지한 것. 그 후 해당 인원들은 전부 17일에 해당하는 위로휴가를 받았으며, 해당 대대는 출타율을 조정해가며 한동안 휴식여건 보장이 확실히 되었다. #

5.2. 부대영상[편집]



5.2.1. 여단가[14][편집]



작사, 작곡 : 미상[15]

-1절-
설악의 정기받은 쌍호의 용사
산악을 주름잡는 민족의 초병
화령장전투에서 적을 쳐부수고 수도를 탈환했던 친위의 부대
용맹한 쌍호용사 17여단[16]

-2절-
노도의 물결같은 씩씩한 용사
평화통일 선도하는 정의의 사자
포탄이 빗발치던 저격능선에서 투혼을 불살랐던 민족의 방패
대한의 천하무적 17여단[17]


6. 사건 사고[편집]


  • 독수리 유격대 사건 - 1950년 말에서 1951년 초 32연대 3대대와의 다툼으로 17연대 1대대가 독수리 유격대원들을 총살하거나 적지로 추방한 사건.


7.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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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육군에서는 장성급 이상 부대의 부대가만 공식적으로 인정되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2] 임무교대 및 소속.[3] 여기서 예비대란 기동성을 확보, 주요 전황에서 투입하여 유용하게 사용한다는 교리에서의 예비대이다. 그렇기에 경험이 많은 정예병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정예부대란 인식이 강했다.[4] 그리고 17연대 모두가 간 건 아닌지 9월 19일 안강면을 완전히 탈환하기 위한 시가전이 벌어져 이 과정에서 17연대 김용식 일병 등이 전사했다.[5] 다만, 신병교육대 임무가 워낙 명확하다보니 사용할 일이 적어 많이 사용되고 있지 않다.[6] 때문에 박정인 장군의 유품과 '박정인 대대'라는 현판이 부대에 남아있다.[7] 뿐만아니라 백인엽 장군은 지역 주민들을 위한 식량이나 교육을 지원하였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당시 인제군 서화리 주민들이 백인엽 장군 송덕비를 세우기도 했다. 현재 송덕비는 서화면 어울림 휴식공간 주차장에 위치해 있다.[8] # ## ###[9] 본부중대, 수색중대, 수송대, 의무중대, 전투지원중대, 통신중대[10] 전주대[11] 진미령의 아버지로도 알려져 있다.[12] 다른 3명은 맥아더 장군, 리지웨이 장군, 백선엽 장군으로 장군들 가운데 대령으로 전쟁영웅에 이름을 올린 것을 보아 엄청난 활약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13] 사병 최초는 3사단의 이명수 상사가 맞다. 하지만 여기서 사병은 부사관과 병사를 합친 말로 이명수 상사는 부사관 최초, 김용식, 홍재근 일병은 병사 최초로 보면 된다.[14] 육군에서는 장성급 이상 부대의 부대가만 공식적으로 인정되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15] '설악의 정기받은'이란 가사가 들어간 것으로 보아 17연대가 인제에 주둔한 1964년 3월 14일 이후 작사된 것으로 보인다.[16] 본래 가사는 17연대[17] 본래 가사는 17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