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고속도교통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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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고속도교통영단의 심볼마크

帝都高速度交通営団
(ていとこうそくどこうつうえいだん)

1. 개요
2. 상세
3. 역사


1. 개요[편집]


제도고속도교통영단은 과거 일본에 존재했던 철도사업자이다. 해체 당시 재무성 산하의 관공서였으며, 1941년 설립되어 2004년 3월 31일까지 영업했다. 후신은 도쿄메트로이다.

홈페이지 주소는 "www.tokyometro.go.jp"였다. 민영화 이후 관공서용 도메인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www.tokyometro.jp"로 교체되었다.[1] Wayback Machine을 사용하면 지금도 볼 수 있기는 하다.


2. 상세[편집]


현재는 도쿄메트로에서 운영하고 있는 지하철 노선 중 도쿄메트로 출범 이후 개통한 후쿠토신선을 제외한 8개 노선을 운영하던 법인이다. 이름 중 제도라는 부분은 '제국의 수도', 즉 도쿄를 의미한다. 고속이란 부분은 출범 당시 시내 교통의 주류였던 노면전차에 비하면 빠르다는 의미이다.[2]

통칭 영단(営団, えいだん/에이단)이라 불렸는데, 영단이란 경영 재단의 줄임말이다.[3] 영단 자체에 대해서는 해당 항목을 참조. 영단으로는 철도성 산하의 제도고속도교통영단 외에도 후생성 산하의 주택영단, 농림수산성 산하의 농지개발영단 등이 있었으나 1945년 패전 이후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명령으로 해체되거나 공단의 형태로 개편되었다. 제도고속도교통영단은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칼바람을 피하고 전후 일본의[4] 유일한 영단으로 남았는데, 이후 60여 년간 도쿄 시민들이 지하철을 일상적으로 접하면서 전후 세대들에게 영단은 곧 제도고속도교통영단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그래서 제도고속도교통영단을 영단으로, 산하 지하철을 영단 지하철로 줄여 부르게 되었다.[5]

1951년 이래 기업의 지분은 일본국유철도재무성, 도쿄도 등 관 측이 전부 차지하고 있었지만 기업 자체는 사철의 협의체인 일본민영철도협회에 가입하고 내부 노조도 일본사철노조총연합회에 가입하는 등 사철과 비슷한 행보를 걸었다. 하지만 광고 등은 규제되었기 때문에 일체 할 수 없었고, 도쿄메트로 출범 이후에야 광고가 가능해졌다.


3. 역사[편집]


제도고속도교통영단의 전신은 도쿄 지하철도와 도쿄 고속철도라는 회사이다. 이 두 회사는 각각 긴자선신바시역 동쪽과 서쪽 구간을 건설한 회사였다. 이 회사들이 제도고속도교통영단으로 합쳐지게 된 역사는 긴자선의 역사 문단을 참조.

제도고속도교통영단은 1941년 7월 4일 설립되었다. 6천만엔의 자본금 중 정부가 4천만엔, 도쿄 시가 1천만엔, 사철과 국철공제조합이 1천만엔씩 출자했다. 9월 1일 육상교통사업조정법[6]이 적용되어, 도쿄 지하철도와 도쿄 고속철도의 노선과 미성선 등의 노선 통제권과 면허까지 모두 넘겨받았다.

1945년 일본의 패전 이후, 연합군 최고사령부 체제 하에서 영단은 모두 해체 및 공단으로 개편되었으나 제도고속도교통영단은 해체를 면할 수 있었다. 전후 연합군 최고사령부 체제 하의 일본 경제는 대체로 통제 경제에 가까웠는데, 제도고속도교통영단은 전쟁을 위한 국가 통제 기관이 아니라 교통난 해결을 목적으로 한 공기업에 가깝다는 점을 강조하며 연합군 최고사령부와 협상한 결과 그대로 남았다. 그 대신 1951년 지분이 재조정되어 사철의 출자분은 배제되고 도쿄도가 최대주주로, (구)일본국유철도가 2대 주주로 출자하는 형태가 되어 정부 산하 기관으로 전환되었다. (구)일본국유철도의 지분은 1987년 4월 1일 JR그룹 출범 후 대장성(현 재무성)이 이관받았다. 제도고속도교통영단 이후, 사철이 건설한 긴자선과 도쿄메트로 출범 이후 개통한 후쿠토신선을 제외한 7개 노선이 제도고속도교통영단에 의해 개통되었다. 단 후쿠토신선의 경우 착공 시기는 제도고속도교통영단 시기인 2001년이었다.


4월 1일, 제도고속도교통영단이 도쿄메트로로
새로 출발함을 알리는 광고.
그러다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내각 당시 국무회의에서 난보쿠선이나 한조몬선이 완공된 뒤에 제도고속도교통영단을 특수회사로 전환하는 것을 결정했다.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 의해 특수법인개혁기본법이 의결되었는데, 이 법안의 대상에는 제도고속도교통영단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법안에 의해 제도고속도교통영단은 한조몬선이 완전 개통된 이듬해인 2004년에 특수회사로 전환되는 것이 결정되었다.

제도고속도교통영단의 해체와 도쿄메트로의 설립은 (구)일본국유철도와 JR그룹과는 약간 다른데, (구)일본국유철도는 경영파탄에 이르렀지만 국가 인프라의 근간을 운영하는 기업체를 아예 없애버릴 수는 없어서 내린 극약처방에 가깝다면, 제도고속도교통영단의 해체는 경영에 문제는 없었지만 행정개혁의 일환으로 실행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조몬선 개통 이후 계획대로 2004년 4월 1일 제도고속도교통영단은 해체되고, 모든 업무와 자산은 후신으로 설립된 도쿄메트로에 이관되었다. 이 날을 마지막으로 일본에서 영단이란 이름의 법인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영단 최후의 유산이라고 볼 수 있는 특유의 승강촉진 방송은 토요 고속철도[7], 이가 철도, 니시키가와 철도(키하 40계)의 차량에서, 급정차 방송은 도쿄메트로의 구형 차량에서 들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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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슷하게 건설교통부 산하 관공서였던 대한민국 철도청도 관공서용 도메인인 "www.korail.go.kr"을 사용했다. 철도청도 한국철도공사로 공사화된 이후 "www.korail.com"으로 도메인을 교체했다.[2]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면전차보다 빠르다는 이유로 '고속'이란 말이 들어가는 도시광역철도가 종종 있다. 서양쪽의 대표주자는 독일의 Stadtschnellbahn(도시고속철도), 줄여서 S-Bahn. [3] 다만 어원이 그렇다는 것이고, 정식 법적명칭은 경영재단이 아니라 영단이다.[4] 영단은 한국에서도 광복 후 1962년까지 주택영단으로 남아있었다.[5] 따지고보면 영단이라는 형태도 그렇지만, 제도(帝都)라는 명칭도 어쩐지 제국주의의 잔재 같은 느낌이 드는 단어라서 한국인에게는 불쾌감이 들 수도 있긴 했다. 민간기업 중에서는 여전히 이 명칭을 쓰는 곳이 있다. 게이세이 그룹 산하의 택시회사인 제도자동차교통 등. 물론 현대 일본인들은 대부분 딱히 뭔가를 의식하고 쓰는 명칭은 아니다.[6] 중일전쟁의 개전으로 일본 내 육상교통 일체의 통제를 원활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제정한 법률. 저 유명한 다이도큐 시대가 이 법에 의해 열렸고, 그 외에도 킨키 일본 철도서일본 철도 등 오늘날 존재하는 여러 대형 사철을 탄생시켰다.[7] 도쿄메트로 도자이선 구간에서도 송출되었으나, 2023년부터 도쿄메트로 사양으로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