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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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뱅크스
마이크 러더포드
필 콜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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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멤버 ]

margin:0 -10px -0px"
[ Discography ]
1집
From Genesis to Revelation (1969.03.07)
2집
Trespass (1970.10.23)
3집
Nursery Cryme (1971.11.12)
4집
Foxtrot (1972.10.06)
5집
Selling England by the Pound (1973.10.17)
6집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1974.11.18)
7집
A Trick of the Tail (1976.02.02)
8집
Wind & Wuthering (1976.11.17)
9집
...And Then There Were Three... (1978.03.24)
10집
Duke (1980.03.28)
11집
Abacab (1981.09.18)
12집
Genesis (1983.10.03)
13집
Invisible Touch (1986.06.06)
14집
We Can't Dance (1991.10.28)
15집
Calling All Stations (1997.02.09)




제네시스의 관련 둘러보기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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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5ARYZvK4L2afx8AcWcf6kF-1.jp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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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제네시스
GENESIS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
피터 가브리엘, 마이크 러더포드,
필 콜린스, 토니 뱅크스, 스티브 해킷

입성 연도
2010년
후보자격 연도
1994년
후보선정 연도
2010년












제네시스
Genesis


파일:Genesis Band.jpg

국적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결성
1967년
영국 잉글랜드 서리 주 고덜밍
데뷔
1968년 2월 2일
싱글 "The Silent Sun"[1]
데뷔 앨범
해체
2000년
재결성
2006년 – 2007년, 2020년 – 2022년
리더
피터 가브리엘 / 초대 (1967 – 1974)
필 콜린스 / 제2대 (1975 – 1998)
멤버
마이크 러더포드 (베이스)
토니 뱅크스 (키보드)
필 콜린스 (보컬, 드럼)
구 멤버
피터 가브리엘 (보컬)
스티브 해킷 (기타)

그 외의 멤버는 "멤버" 항목 참조.
장르
196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 사이키델릭 록
19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 아트 록
1980년대 , 팝 록, 아트 팝
레이블
카리스마, 버진, EMI, 데카, 앳코, 런던, 버티고, 애틀랜틱 레코드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상세
3. 멤버
4. 역사
4.1. 결성
4.2. 첫 번째 전성기
4.3. 갈등과 피터 가브리엘의 탈퇴
4.4. 수습기
4.5. 두번째 전성기 : 프로그레시브에서 팝으로
4.6. 현재
5. 영향력
6. 디스코그래피
6.1. 싱글
6.1.1. UK 싱글 차트
6.1.1.1. 3위~10위
6.1.2. 빌보드 핫 100
6.1.2.1. 1위
6.1.2.2. 3위~10위



1. 개요[편집]


영국프로그레시브 록, 팝 록 밴드.


2. 상세[편집]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프로그레시브 록밴드중 하나이며, 음악성 역시 매우 뛰어나 킹 크림슨, 예스, 핑크 플로이드와 함께 세계 4대 프로그레시브 록밴드로 불린다. 1970년대에는 피터 가브리엘이 추구한 다양한 시각적 효과와, 방대한 지식에서 나오는 시적인 가사, 클래식 음악재즈에서 영향을 받은 난해하고 심오한 음악 등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프로그레시브 록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두 팝스타인 피터 가브리엘필 콜린스가 속해있던 밴드로 유명하다. 1980년대 필 콜린스가 주도권을 쥔 이후 아트 음악의 영향력은 점차 줄어들고, 필 콜린스의 취향이었던 팝 음악을 추구하면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총 6곡의 빌보드 핫 100 10위권 싱글과 5장의 UK 차트 1위 앨범을 가지고 있다. 총 음반 판매량은 1억장에 달해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중 핑크 플로이드 다음으로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밴드 명의 유례는 창세기.


3. 멤버[편집]


제네시스는 레드 제플린, 크림, 딥 퍼플과 함께 전 멤버가 엄청난 연주 실력을 가진 밴드로 손꼽힌다. 그러나 팝 스타인 필 콜린스가 너무 부각되기도 하고, 1970년대 진짜로 멤버들이 최고 수준의 역량을 보여주던 때에는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평가받는 감이 있다.

클래식 라인업
  • 피터 가브리엘(보컬) - 초대 리더로 프로그레시브 록 시기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1975년 탈퇴하여 솔로 활동을 시작해 상업적, 비평적으로 제네시스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 필 콜린스(보컬, 드럼) - 본래 드러머였고 결성 멤버도 아니었지만, 수준 높은 드럼/보컬 실력으로 인하여 1975년 피터 가브리엘 탈퇴 이후 2대 리더가 되었다. 1980년대 제네시스의 팝 노선 전환을 이끈 사람이다. 동시에 1980년대 솔로 활동으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 스티브 해킷 (기타) - 대중음악사상 가장 저평가된 기타리스트 중 한명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에디 밴 헤일런보다 몇년 앞서 태핑 기법을 록 음악에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이다. 잉베이 말름스틴, 에디 밴 헤일런 등이 스티브 해킷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제네시스가 본격적으로 유명해지기 전인 1977년 밴드를 탈퇴한지라 대중적으로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2021년 재결성 투어에서도 피터 가브리엘과 함께 불참했다.
  • 토니 뱅크스 (키보드) - 릭 웨이크먼, 릭 라이트, 키스 에머슨과 함께 프로그레시브 록의 가장 대표적인 키보디스트로 꼽힌다.
  • 마이크 러더포드 (베이스) 베이시스트 아니랄까 봐 밴드 멤버 중 가장 존재감이 없지만 Mike + The Mechanics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1위를 한 The Living Years라는 곡을 남기기도 하였으며 지금까지 꾸준히 밴드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4. 역사[편집]



4.1. 결성[편집]


1967년 명문 사립 고등학교인 차터하우스 스쿨의 학생이었던 피터 가브리엘토니 뱅크스가 주축이 되어 결성했다. 당시의 멤버는 보컬의 피터 가브리엘, 키보드의 토니 뱅크스, 기타의 안소니 필립스, 베이스, 12현 기타의 마이크 러더포드, 드럼의 크리스 스튜어트였다.

1969년 학교를 졸업하고 그들은 데카 레코드를 통해서 <From Genesis to Revelation>을 발매한다. 앨범을 녹음할 당시에 결성멤버 중에 크리스 스튜어트는 빠지고 존 실버가 대신 들어온다. 이들의 데뷔앨범은 프로그레시브 앨범이라 하기에는 다소 팝적인 성향이 짙고 완성도도 많이 떨어졌다. 이후 제네시스 멤버들은 조금 더 복잡한 음악을 하기로 결심했다.


4.2. 첫 번째 전성기[편집]


그들은 1970년에 2집 "Trespass" 앨범을 발매한 이후에 멤버를 소폭 교체한다. 안소니[2] 필립스가 무대 공포증을 이유로 밴드에서 탈퇴하게 되고[3] 그 뒤를 이어 프로그레시브 록계의 두 스티브[4] 중의 한 명인 스티브 해킷, 그리고 아역배우 출신의 천재 드러머 필 콜린스가 들어오게 된다. 그들의 가입과 더불어 피터 가브리엘의 음악적 천재성이 빛을 서서히 발휘하기 시작한다.

제네시스는 멤버 전원이 작사, 작편곡에 참여해서 음악적으로 매우 질적인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보컬을 제외한 멤버 모두 최상의 연주 실력을 지닌 명인[5]이자 뛰어난 작곡능력을 갖고 있었고 각자의 개성을 포용하는 수용능력이 남달랐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피터 가브리엘은 밴드 이름에서도 알수 있듯 성경과 방대한 정치, 사회, 역사 등에 대한 지식에 바탕을 둔 묵시적이고 난해한 작사가 특기였다. 또한 작곡에 있어서도 다른 멤버들에 비해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 시기의 제네시스의 음악은 클래식에 바탕을 둔 심포닉 록이었다. 게다가 이러한 그들의 음악은 라이브 시 스티브 해킷필 콜린스로 대표할 수 있는 멤버들의 뛰어난 연주력과, 가사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변장하는 것으로 대변되는[6] 피터 가브리엘의 다양한 퍼포먼스로 대중들에게 강하게 어필할 수 있었고 이는 시에트리컬 록 혹은 오페라틱 록의 원형으로 자리잡게 된다. 또한 다양한 무대 조명과 장비들은 아레나 록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4.3. 갈등과 피터 가브리엘의 탈퇴[편집]


1971년부터 제네시스의 초기 명반인 "Nursery Cryme"(1971), "Foxtrot"(1972), "Selling England by the Pound"(1973),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1974) 등을 통해서 그들은 대중성과 음악성 양쪽으로 수준급 밴드가 되었고, 핑크 플로이드, 예스,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제쓰로 툴 등과 함께 당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중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멤버들 사이에는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구성원 모두가 뛰어난 작사/작곡 능력을 갖고 있는 뮤지션에다가 테크닉도 충만한 실력파인 가운데 작사를 도맡아서 하고 라이브에서도 가사와 어울리는 분장을 한 채 노래를 부르는 피터 가브리엘이 혼자 주목받는 현상이 심해져 갔고, 그 때문에 다른 멤버들은 불만이 쌓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1974년에 발매된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에 이르러서 절정에 달한다.[7]

결국, 이 앨범이 발매되고 투어를 돈 후 피터 가브리엘은 1975년에 밴드를 탈퇴한다. 이것도 사실 탈퇴 통보는 1974년 브로드웨이 앨범 투어 이전에 멤버들에게 했지만, 투어에 영향을 미칠까봐 이를 대중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족하고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려는[8] 가브리엘과 밴드가 우선이라고 보았던[9] 콜린스 사이의 의견 불일치가 낳은 결과였다. 또한 음악성과 대중성 부분에서 피터 가브리엘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제네시스가 보스턴과 같은 상업적인 요소를 받아들인 프로그레시브 록밴드가 되기를 바란 반면, 피터 가브리엘은 이에 동의하지 않고 계속해서 예술적인 면모가 강한 음악을 하고 싶어했는데 이런 음악에 대한 관점 차이도 피터 가브리엘이 탈퇴하는 계기가 되었다. 후술하겠지만, 실제로 피터 가브리엘이 탈퇴한 이후 제네시스는 필 콜린스의 주도로 상업화 노선을 걷게 된다.[10][11]

4.4. 수습기[편집]


밴드의 보컬이자 리더인 피터 가브리엘이 떠나고 멤버들은 피터 가브리엘의 대체자를 찾아야 했다. 그들은 먼저 오디션을 통해 보컬을 구해보려고 했으나 약 600명에 가까운 인원을 만나 보았음에도 그들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은 상의 끝에 드러머인 필 콜린스에게 보컬을 같이 맡기기로 하고 라이브 시에는 필 콜린스를 대신한 세션 드러머를 쓰기로 결정한다.[12]

그렇게 피터 가브리엘이 밴드를 떠난 이후에 1976년 4인 구성의 첫 앨범인 <A Trick Of The Tail>을 발매한다. 필 콜린스는 이 앨범에서 피터 가브리엘의 음악적인 공백을 메울 수 없다고 여겼던 사람들의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킬 만큼 완벽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앨범 이후 바로 그 해 12월에 발매된 <Wind & Wuthering>을 끝으로 스티브 해킷도 솔로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탈퇴하고 마이크 러더포드가 기타까지 전담하게 되면서 3인조로 개편하게 된다.


4.5. 두번째 전성기 : 프로그레시브에서 팝으로[편집]


3인조로 개편한 뒤 제네시스는 프로그레시브의 색채는 유지하고 있었지만, 1981년에 발매한 <Abacab>을 시작으로 팝밴드로 변신을 시작한다. 동명의 타이틀 곡은 팝이나 다름없는 멜로디에 전자음이 들어가 그들의 골수팬들을 당황시켰다. 그리고 이 해에 필 콜린스는 솔로로 데뷔하게 되는데, 사람들은 제네시스의 그 드러머가 맞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프로그레시브한 요소는 남아있었지만 제네시스와는 너무나도 다른 미성의, 상업적으로 세련된 팝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1983년에 발매한 <Genesis> 앨범은 프로그레시브 밴드에서 팝밴드로 새출발을 선언하는 이정표와 같은 앨범이었다. 목가적인 분위기의 클래시컬한 곡은 더 이상 없었고 드럼머신과 전자음으로 상징되는 팝음악의 요소로 가득찬 앨범이었다.[13] 그리고 멤버들은 제네시스가 아닌 각자 솔로로서 활동에 치중하기 시작하여 앨범을 발매하는 횟수가 확연히 줄어들게 된다.

1986년에는 싱글 <Invisible Touch>, <Tonight, Tonight, Tonight>을 통해 빌보드 핫 100에서 각각 1위와 3위에 등극하고, 영국 축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4일간 콘서트를 개최하여 75000석 매진을 기록, 당대 최고의 팝밴드로 등극했음을 알린다. 이후 1991년에 필 콜린스는 <We Can't Dance>를 끝으로 밴드를 떠나고 남은 두 명의 멤버는 레이 윌슨이라는 보컬을 영입해 앨범 <Calling All Stations>을 발매하지만 평론가, 팬 모두에게 혹평을 받으며 이들의 흑역사로 남게 되었다.


4.6. 현재[편집]


필 콜린스는 2006년에 제네시스에 다시 복귀했다. 새로운 앨범은 발매하지 않았지만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콘서트 위주로 활동을 했으나, 필 콜린스가 척추수술의 후유증으로 인해 드럼 연주가 불가능해지면서 이들의 활동도 휴지기에 들어갔다. 2010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지만 헌정식에 피터 가브리엘은 오지 않았다. 현재 필 콜린스가 드러머 뿐만 아니라 솔로로서도 완전히 은퇴를 선언했기에 활동 재개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2020년 1월 23일, 제네시스의 세 멤버가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농구 경기에서 만난 장면이 포착되었고 이는 곧 제네시스 재결합의 소문이 되었다. 그 후 3월 4일, BBC2 라디오에서 공식 재결합을 발표했으며 11월이나 12월까지 The Last Domino? 투어를 진행한다고 한다. 참고로 드럼은 필의 건강상태 때문에 아들 니콜라스가 맡아 연주한다. 해당 투어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2021년 4월 24일로 연기되었고 마지막 콘서트를 열었다. 가브리엘은 참석했지만 무대에서 밴드에 합류하지 않았다.

2022년 9월 29일. 콩코드 뮤직그룹에 음악 저작권을 매각했다.#

5. 영향력[편집]


처음에 서술한 것 처럼 이들은 프로그레시브 록에 극적인 요소를 도입하였다. 보컬 피터 가브리엘은 라이브 시 극적인 요소를 강조하고자 다양한 분장[14]을 보여주고 1인칭 모노드라마처럼 가사에 연극 대사를 넣어 혼자서 연기하는 것 처럼 노래를 불렀다. 이런 그들의 특성은 특히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고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프로그레시브 록 계열에서 이들은 시조로 대접받는다.[15] 그 외에도 네오 프로그레시브라 할 수 있는 마릴리온[16]이나 대표적인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인 드림 시어터도 제네시스에게 영향을 받았음을 언급하고 있다.


6. 디스코그래피[편집]



파일:제네시스 음반 판매량 표.png

제네시스의 음반 판매량을 정리한 표[17]


피터 가브리엘 체제

필 콜린스 체제
  • A Trick of the Tail (1976)
  • Wind & Wuthering (1976)
  • ...And Then There Were Three... (1978) - 제네시스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100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한 음반이다.
  • Duke (1980) - 팝 음악을 어느정도 받아들이기 시작한 음반이다.
  • Abacab (1981) - 이 앨범부터 본격적으로 팝 음악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아트 음악의 색체가 많이 줄어든다.
  • Genesis (1983)
  • Invisible Touch (1986) - 영국 차트 1위, 미국 차트 3위를 기록하고 싱글로는 5곡이 모두 빌보드 핫 100 10위권 안에 들어갔으며 총 판매량만 830만장에 육박하는, 제네시스 사상 최대의 히트작이다. 이 시기는 필 콜린스의 전성기와 맞닿아있으므로 필 콜린스빨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We Can't Dance (1991) - 전작보다 더 성공한 음반이다. 영국 1위, 미국 4위를 기록하고 총 판매량은 무려 1,100만장에 달했다.

레이 윌슨 체제
  • Calling All Stations (1997) - 보컬을 바꾸고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지만 폭망해서 월드와이드 판매량이 60만장에 불과했다.


6.1. 싱글[편집]


  • 총 1곡의 빌보드 핫 100 1위 곡을 가지고 있다.[18]

6.1.1. UK 싱글 차트[편집]



6.1.1.1. 3위~10위[편집]

  • Follow You Follow Me (1978, 7위)
  • Turn It On Again (1980, 8위)
  • Abacab (1981, 9위)
  • Mama (1983, 4위)
  • No Son of Mine (1991, 6위)
  • I Can't Dance (1991, 7위)
  • Invisible Touch (Live) (1992, 7위)

6.1.2. 빌보드 핫 100[편집]



6.1.2.1. 1위[편집]


6.1.2.2. 3위~10위[편집]

  • Throwing It All Away (1986, 3위)
  • In Too Deep (1986, 4위)
  • Land of Confusion (1986, 5위)
  • Tonight, Tonight, Tonight (1987, 3위)
  • I Can't Dance (1991, 7위)

[1] Peter Gabriel and Genesis라는 밴드 명으로 발매했다.[2] 실제 발음은 "앤서니"에 가깝다.[3] 의사가 권했다고 한다. 안소니 필립스가 탈퇴한 이후로도 초기 제네시스 앨범들인 Nursery Cryme부터 Selling England By The Pound 까지의 앨범들은 그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 따라서 이 앨범들을 좋아한다면 안소니 필립스의 솔로 앨범도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4] 예스의 스티브 하우와 스티브 해킷[5] 필 콜린스는 전체 록 역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드러머 중 한 사람으로 거론되는 인물이며 싱어송라이터로서도 인정을 받았다. 스티브 해킷은 어렸을 때부터 블루스록에 심취해있었으며 연주 실력도 매우 뛰어났다. 그리고 제네시스 탈퇴 이후에도 클래시컬, 록, 재즈, 일렉트로닉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소화하며 왕성하게 솔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마이크 러더포드는 마이크와 메카닉스라는 밴드를 결성해 어느 정도 상업적 성과를 얻었고, 토니 뱅크스는 상업적으로는 저조할지 몰라도 밴드 활동과 동시에 꾸준히 솔로 앨범도 발표하였다. 멤버 전원이 비틀즈처럼 밴드와 솔로 활동에서 전부 빼어난 업적을 남긴 록 역사를 통틀어봐도 매우 보기 드문 사례이다.[6] 이 때문에 당시 피터 가브리엘은 대중들에게 약간 또라이같은 뮤지션 취급을 받았다.[7] 그러나 피터 가브리엘이 제네시스 활동 시절 로저 워터스 수준의 독재자였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피터 가브리엘의 입김이 가장 많이 들어갔다는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앨범 역시 작사만 피터 가브리엘이 혼자서 딤당했고 작곡은 다른 멤버들과 같이 했다. 이 때문에 40년째 서로 으르렁거리는 길모어-워터스의 관계와 달리, 필 콜린스와 피터 가브리엘은 1980년대 초에 일찍 화해하고 서로의 앨범에 레코딩으로 참여하기도 했을 정도로 친해졌다.[8] 당시 가브리엘의 아내가 막 첫째를 출산한 상태라 더욱 그러하였다.[9] 이 때문인지 1980년 필 콜린스는 아내와 파경을 맞이하고 이혼하게 되는 비극을 겪게 된다. 이때 나온 곡이 필 콜린스 최고의 명곡이라 불리는 In the Air Tonight이다.[10] 다만 피터 가브리엘필 콜린스가 솔로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1980년대 중후반 대중적인 팝 음악의 영향력을 받아들였고, 이 과정에서 나온 앨범이 그 유명한 So이다.[11] 피터 가브리엘은 이때 느낀 감정들을 담아서 2년간의 휴식 기간 이후 1977년에 "Solsbury Hill"이라는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12] 1976~77년에는 예스의 빌 브루포드, 이후에는 웨더 리포트와 프랭크 자파 밴드의 드러머인 체스터 톰슨이 라이브 세션드러머를 맡게 된다.[13] 물론 장르를 프로그레시브가 아닌 팝으로 보았을땐 음반 자체의 평가는 높은 편이다. 또한 이것이 프로그레시브 록의 요소를 완전히 지웠다는 의미는 아니다. Mama, Home by the Sea같은 곡 등에서는 여전히 프록적인 요소가 남아있었다.[14] 피터 가브리엘이 분장을 한 캐릭터들은 굉장히 다양하다. 몇 개 예를 들자면 The Musical Box의 노인, Foxtrot 앨범 표지의 여우, Supper's Ready 후반부의 악마, 꽃A Flower?, 그리고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앨범의 주인공인 Rael.[15] 대표적인 밴드로는 이탈리아의 라떼 에 밀레.[16] 제네시스의 86년 곡인 'Land Of Confusion'을 리메이크를 할 정도로 밴드원들이 좋아한다. 공연중에 분장을 하는 등의 퍼포먼스도 모방했다.[17] 검정은 피터 가브리엘 체제를, 파랑은 필 콜린스 체제를, 초록은 레이 윌슨 체제를 의미한다.[18] 멤버들의 솔로 활동까지 포함할 경우 필 콜린스 7곡, 피터 가브리엘 1곡을 추가해 9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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