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호베르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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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호베르투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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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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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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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 VDV 11





브라질의 前 축구 선수


이름
제 호베르투
Zé Roberto

본명
조제 "제" 호베르투 다시우바 주니오르
José "Zé" Roberto da Silva Júnior
출생
1974년 7월 6일 (49세)
브라질 상파울루 주 이피랑가
국적
[[브라질|

브라질
display: none; display: 브라질"
행정구
]]

신체
172cm / 체중 68kg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1], 풀백 / 은퇴)
소속
선수
포르투게자 (1994~1997)
레알 마드리드 CF (1997~1998)
CR 플라멩구 (1998 / 임대)
바이어 04 레버쿠젠 (1998~2002)
FC 바이에른 뮌헨 (2002~2009)
산투스 FC (2006~2007 / 임대)
함부르크 SV (2009~2011)
알 가라파 SC (2011~2012)
그레미우 (2012~2014)
SE 파우메이라스 (2015~2017)
국가대표
84경기 6골 (브라질 / 1995~2006)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4. 플레이 스타일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기타
6.1. 자기 관리
6.2. 인지도



1. 개요[편집]


브라질의 前 축구 선수로,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중후반까지 활약한 선수들 가운데 파트리크 비에라, 클라렌스 세이도르프, 에드가 다비즈, 지우베르투 시우바, 미하엘 발락, 에메르송 등과 함께 전술 이해도가 뛰어난 선수로 꼽힌다. 또한 철인, 자기 관리의 화신, 프로 정신이란 단어 그대로를 현실에 빼다박은 선수다.


2. 클럽 경력[편집]


브라질의 포르투게자에서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로 데뷔했다.


2.1. 레알 마드리드 CF[편집]


포르투게자에서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와 측면 수비를 맡아보며 다재다능함을 앞세운 좋은 활약으로 1996년 브라질 전국 리그 2위를 기록했고, 이후 포르투게자와 국가대표의 활약으로 유럽 무대에서의 영입제의가 왔는데 예상보다는 이르게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영입제의가 왔다. 1998년 1월 이적시장에서 약관 22세의 나이로 파비오 카펠로가 이끌던 레알 마드리드에 긴급 수혈된 제 호베르투는 긴급 영입이다보니 크게 중용되지 않고 15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라리가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다.[2]


2.2. 바이어 04 레버쿠젠[편집]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CR 플라멩구에서 임대 신분으로 뛰다가, 분데스리가바이어 04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 레버쿠젠에서는 중앙 미드필더와 왼쪽 윙어를 겸업하며 미하엘 발락이 이끄는 강력한 중앙 미드필더진의 왼쪽을 책임지며, 키커지가 선정하는 분데스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2차례나 선정되었다. 2001-02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DFB-포칼,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제 호베르투는 레버쿠젠에서 113경기 17골 34어시스트를 기록하였고, 이때의 활약을 눈여겨본 분데스리가의 제왕 FC 바이에른 뮌헨은 1200만 유로를 질러 미하엘 발락과 함께 제 호베르투를 영입한다.


2.3. FC 바이에른 뮌헨[편집]


제 호베르투는 레버쿠젠때처럼 발락의 왼쪽에 서서 바이에른의 미드필드를 책임졌다. 발락과 제 호베르투가 이끄는 중원은 리그 최강이었으며, 2002-03 시즌과 2004-05 시즌에 마이스터샬레를 들어올린다.

2006년 이후에는 파트너 미하엘 발락첼시로 이적하고, 2004년부터 지휘해온 감독 펠릭스 마가트가 자신보다 세바스티안 다이슬러를 중용하려 하자 이에 반발해, 2006-07 시즌 브라질의 산투스로 임대 이적했다. 산투스에서는 놀랍게도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며 48경기 12골을 기록했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무려 7골을 넣으며 준결승까지 이끌었다. 이후 펠릭스 마가트가 성적 부진등을 이유로 사임한뒤 바이에른으로 돌아온 제 호베르투는 2009년까지 뮌헨을 위해 뛰었다. 마르크 판보멀과 함께 중원을 구축하던 제 호베르투는 30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활동량을 보이며 중원을 휩쓸었다. 이 활동량으로 중심을 잡아주는 한편 왼쪽으로도 월드클래스였던 경력을 살려 필립 람, 프랑크 리베리와 함께 왼쪽 라인을 3명이서 공략하기도 하며 상대방에게 큰 어려움을 안겨주곤 했다.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위치상 크게 돋보이지는 못했지만 뮌헨이 여러모로 삐그덕대던 시기 거의 전경기 풀타임 활약하면서도 기복 없는 경기력과 왕성한 활동량으로 팀을 이끌어가던 사실상의 1등 공신이다.[3] 뮌헨에서는 169경기 14골 45어시스트의 기록을 남겼다.

2009년 루이 판할 감독이 부임하자 2년 계약을 원하던 제 호베르투와 당시에도 노장이던 제 호베르투에게 1년 계약을 원하던 팀과 협상에 실패하고 함부르크 SV로 자유이적한다.[4][5]


2.4. 함부르크 SV[편집]


제 호베르투는 함부르크에서 중앙 대신 윙으로 활약하며 레알 마드리드 CF로 이적한 에이스 라파엘 판데르파르트의 이름이 쑥 들어가게 하는 플레이로 끝내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 출장이라는 금자탑을 세우게 된다.[6] 뛰어난 경기력과[7] 성실함으로 팬과 후배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으나 2011-12시즌 재계약 협상에서 합의를 보지 못하고 2시즌간 54경기 7골 15어시스트의 기록을 끝으로 카타르의 알 가라파로 이적한다.

여담으로 2010-11시즌은 손흥민이 처음 1군에 데뷔한 시즌인데 이때 호베르투는 주전이였기 때문에 많지는 않지만 두 선수가 같이 뛴 경기가 제법 있다.


2.5. 이후[편집]


2012시즌 이후부터는 고국 브라질의 그레미우로 돌아와서 3시즌 동안 83경기에 출장해 6골을 기록하였다. 2015 시즌 부터는 SE 파우메이라스에서 뛰면서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2017년 11월 26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편집]


1995년 일약 19세의 나이에 브라질 국가대표가 되는데 그 데뷔전이 바로 대한민국과의 평가전. 이 경기는 둥가의 골로 1-0 브라질의 승리였다.

이후 199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1골을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뛰지 못했으며 덴마크와의 8강전에서 후반 막판에 교체로 투입된게 출전의 전부였다. 브라질은 결승전에서 프랑스에게 3:0으로 대패하며 준우승했지만, 1년 뒤 1999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2연패를 달성하며 아쉬움을 풀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제 호베르투는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해 대회 전 엄청난 논란이 있었지만 정작 브라질은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호나우두 - 호나우지뉴 - 아드리아누 - 카카의 판타스틱 포의 뒤에서 열심히 보좌하는 역할이었다. 가나와의 16강에서 팀의 3번째 골을 넣기도 하였다. 그리고 팀은 8강에서 프랑스에게 패해 그대로 탈락했다. 하지만 뼈 빠지게 뛰었던 제 호베르투만은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있었고, 월드컵 올스타팀에 선정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주 포지션은 미드필더로 중앙과 측면에서 모두 뛸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였다. 보통의 멀티 플레이어들도 그저 그 자리에서 뛸 수 있는 정도로만 활약하는데 비해 제 호베르투는 포지션에 따라서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는 지능적인 선수.

흔하지 않은 왼발잡이로 윙어[8], 윙백, 레프트백[9]까지 왼쪽 전체를 소화할 수 있었고 심지어 중앙 미드필더수비형 미드필더, 측면 미드필더 역할까지 소화했다.[10] 이 정도로 많은 포지션에서 뛰면 혼란을 느껴서 커리어 자체가 무너지는 선수도 많은데 제 호베르투는 적응기도 별로 거치지 않고 뛰어난 기량을 자랑했다.

이런 전술 이해도와 성실함으로 30대 후반이 될 때까지도 강철 같은 체력과 죽지 않은 속도를 자랑하며 필드를 누볐다. 이 정도 나이가 될 때까지 활약하는 노장들이 출장 시간도 짧아지고 떨어지는 피지컬을 경험으로 메꾸는 경향을 무시하는 듯한 퍼포먼스는 가히 아르헨티나와 인테르의 전설적인 라이트백이자, 레프트백이자, 중앙 미드필더였던 하비에르 사네티에 비견될 정도. 사실 이 둘 정도의 연배와 클래스에서 그런 선수는 딱 이 둘뿐이다.

체력, 속도, 육체적 강인함, 전술 이해도, 성실함. 거기에 측면으로 뛸 때는 그 스피드와 브라질리언다운 테크닉으로 상대방의 측면을 유린하고 날카로운 크로스로 어시스트를 쌓는 분데스리가 최고의 왼쪽 미드필더였다.[11] 중앙 미드필더로서는 기본적으로 경기 내내 보여주는 꾸준함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하는 살림꾼이었으며 여기에 남부럽지 않은 전진 능력과 패스를 갖췄다. 그리고 준수한 득점 능력까지. 제 호베르투는 시즌 내내 이 능력을 꾸준히 안정적으로 발휘하는 믿음직한 선수였다.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5.2. 개인 수상[편집]




6. 기타[편집]



6.1. 자기 관리[편집]


제 호베르투란 플레이어의 기본 얼개를 이루는 것은 엄청난 성실함과 엄격한 자기관리이다. 브라질로 돌아가기 직전의 사진을 봐도 30대 후반인 아저씨가 군살도 없는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마르셀 얀센도 자기관리에 있어 제 호베르투처럼 완벽한 선수를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매일매일 근육 트레이닝을 거르지 않으며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패스트푸드와 술을 입에 댄 적이 없는 그야말로 프로정신의 화신이라고 할 정도. 타고난 재능은 최고지만 선수 커리어 초기의 대성공을 이어가지 못 하고 나태하고 방탕하고 문란한 사생활로 안 좋은 모습을 보이며 몰락한 스타 선수들이 즐비한 브라질 축구 대표팀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인물[1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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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호베르투가 권유하는 자기 관리 비법

1. 술 마시지 마세요.
2. 담배 피지 마세요.
3. 섹스 조금만 하세요.

"전 결혼 18년 차지만, 와이프와 함께 한 시간이 길지 않았어요. 뭐, 제 자택이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서 그런 거지만요."[13]

은퇴한지 3년 정도 넘은 46세인 지금도 근육질 몸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현역시절처럼 웨이트를 조절할 필요가 없어서인지 더욱 더 근육질을 뽐내고 있다.[14]


6.2. 인지도[편집]


아쉬운 점이 있다면 최고의 실력을 갖췄음에도 많지 않은 국가대표 경력과 한국에서의 낮은 인지도. 95년 21세의 나이로 데뷔해 97년과 99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 98년 월드컵 준우승을 차지했지만[15] 레버쿠젠으로 옮기고 나서 측면 미드필더로 뛰었는데 이 시절 브라질은 측면 미드필더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02년 월드컵 우승 멤버[16]로 선발될 수 없었다. 그러나 06 월드컵에서 소위 황금 4중주라는 개막장 포메이션[17]의 브라질이 8강까지라도 올라간 건 중원에서 제 호베르투가 엄청난 활동량과 성실함으로 상대편 중원에 맞섬은 물론 전진과 패스까지 도맡아 하는 실로 눈이 부실 만한 활약상에 힘입은 것이나 다름없다. 전성기 시절에 포지션 문제로 빠지고, 산토스에서 뮌헨으로 복귀 이후는 아예 계약으로 대표팀 복귀 불가로 묶어 놨는데도 브라질 대표팀으로 84경기나 출전하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18] 그러나 충분한 실력을 갖췄음에도 02년 월드컵 멤버로 선발되지 못한 건 아쉬움이다. 에메르송이 부상으로 빠졌기 때문에 더욱.

한국에서의 낮은 인지도도 아쉽다. 브라질 대표팀에서 뛸 때는 눈에 잘 뛰기 어려운 중앙 미드필더로 다른 선수들의 후광에 가려졌고 그나마도 2006 월드컵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06 월드컵 브라질은 전세계에서 판타스틱 4 개개인의 후덜덜함을 찬양하는 걸로 시작해 프랑스에게 깨진 후로 지네딘 지단과 대비되며 지단을 찬양하거나 판타스틱 4를 비웃는 그야말로 판타스틱 4로 시작해서 판타스틱 4로 끝난다. 그런데 이 와중에 수수하게 제일 잘한 제 호베르투 위주로 보자면 브라질을 칭찬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제 호베르투를 욕하는 건 말도 안 되는데 남들 다 브라질 비웃는데 브라질 선수 개인을 칭찬하자니 그 개인에 대한 관심이 없다.

그리고 클럽팀 커리어도 당시 국내에선 별 관심이 없던 분데스리가에서만 뛴 거나 다름없기 때문에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바가 사실이다. 손흥민과 함께 뛰었더라면 멋진 경기력으로 노익장을 과시하는 손흥민 도우미로 알려졌을 텐데 마침 그 시즌에 카타르로 이적했다. 2015년에도 손흥민이 가장 존경하고 영향받은 선수로 제 호베르투를 꼽기도 했다. 사실 손흥민만 특별한 게 아니라 그 시절 함부르크 유망주들은 죄다 제 호베르투를 존경하는 선수로 꼽는다.

피파 온라인 3에서는 스피드와 스태미너, 벨런스, 민첩성 등의 능력치가 고루 높았기에 작은 신장에도 불구하고 FC 바이에른 뮌헨 케미를 맞추는 유저라면 만능 서브로 매우 사랑받는 선수였다. 양쪽 풀백, 수미, 중미, 공격 여러 지역까지 주축선수의 컨디션이 죽었을 때 어디든 다 메울 수 있었다. 그러나 2015년 경 로스터패치로 브라질리그 선수들이 없어지면서 갑작스럽게 이별을 고하더니[19] 2017년, 결국 제 호베르투가 은퇴하면서 피파 온라인 시리즈에서는 더 만날 수 없게 되었다.

[1] 중앙과 측면, 수비형 미드필더 전 포지션을 소화한다.[2] 레알 마드리드에서 들어올린 빅 이어가 제 호베르투의 유일한 빅 이어였다.[3] 루시우 페헤이라, 다니엘 반 바이텐, 마르틴 데미첼리스 등의 불안한 수비력과 왕성하게 카드를 수집하며 경기력도 기복이 있던 판보멀을 고려하면 중앙의 기둥은 2년 동안 제 호베르투였다고 할 수 있다. 거기다 왼쪽 풀백이나 왼쪽 미드필더에 빈 자리가 꽤 자주 생겼는데 그때마다 땜빵으로 들어가는 등 없었으면 리그 운영 못했다.[4] 필립 람은 이 이적에 대해서 큰 아쉬움을 표했다.[5] 거기다 브라질 회사의 소유권 문제 때문에 제 호베르투가 자유로이 계약할 수 있는 것과는 별도로 적지는 않은 금액도 매년 가외로 지출하고 있었다.[6] 바이에른과의 경기에서 1:0 경기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비수를 꽂기도 했다.[7] 함부르크 최고 레전드 우베 젤러마저도 볼프강 오베라트 이후 이런 미드필더는 처음이라고 찬사를 바쳤다. 볼프강 오베라트는 70년대 쾰른 원클럽맨 레전드로 월드컵 우승멤버.[8] 주로 좌측에서 뛰었지만, 우측 윙어 모두 소화했다.[9] 04/05 시즌 비셴테 리사라수가 변덕을 부려 6개월 동안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서 뛰었을 때 바이에른 뮌헨에서 왼쪽 수비수 자리를 메꾼 건 제 호베르투였다.[10] 04/05 시즌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왼쪽 미드필더로 자리를 잡자 오른쪽 미드필더로 뛰었고, 이듬해인 06/07 시즌에 이적한 산토스에선 공격형 미드필더였고, 07/08 시즌에 뮌헨에 복귀해선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다가 09/10 시즌부터 10/11 시즌까지 뛴 함부르크에선 다시 왼쪽 미드필더로 뛰었다.[11] 리베리가 오고 나서는 자리를 내 주긴 했으나 리베리가 워낙 분데스레가 내 넘사벽급 윙어여서 그렇지, 결코 못한다고 볼 수는 없었다.[12] 당장 우리가 금방 떠올릴수 있는 호마리우,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아드리아누, 호비뉴, 마이콘 등등의 면모를 뜯어보더라도 브라질 대표팀엔 유독 썩은 멘탈을 뽐내는 게으른 천재 내지 악마의 재능들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히바우두, 카카처럼 성실하고 사생활도 깨끗한 편인 선수만 보더라도 사실 전성기가 그리 길진 않았다. 물론 이는 브라질에 워낙 스타급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빚어진 편견일 수도 있는데, 제 호베르투를 비롯해 카를로스, 카푸, 알다이르, 둥가, 주니뉴 페르남부카누, 루시우, 아우베스, 치아구 시우바 등등 성실하고 롱런한 선수들도 많이 있고, 밥티스타처럼 축구 실력은 그저 그렇지만 착하고 성실한 선수들도 많기 때문이다. 다만 카를로스는 축구 선수로서 성실했던 것과는 별개로 사생활은 매우 문란했다. 6~7명 여성 사이에서 8명의 아이가 있다고.#[13] 자기 관리 비법으로 밝힌 것 중 하나가 아내와의 성생활을 참는 것이다. 굳이 신체가 아니더라도 정신적인 자가 관리가 뛰어나다는 증거이다. 사실 성생활을 참는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절제력이 필요한 것이고 이러한 절제력의 유무는 선수생활동안의 성실함과 연결되며 이것은 당연하게도 선수생활의 성공과도 연관된다. 문란하고 방탕한 밤문화와 성생활을 즐기던 브라질 선수들이 수없이 망가져왔던걸 생각하면 제 호베르투의 인내심은 경이로울 정도. 사실 이 얘기는 세계 곳곳에 퍼져 있던 이야기로, 현재 이것은 비과학적인 얘기라고 결론이 났지만 개인마다 다를 수도 있고 특히 개인의 심리상태에 영향을 끼친다면 근거가 없다고 할 수 없다. 분명 제 호베르투도 비과학적인 이야기라는 것을 들었을텐데도 성생활을 조절했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14] 웨이트를 과도하게 하면 상하체 밸런스가 무너지고 근육량 증가로 인해 무거워진 몸무게때문에 주력이 감소한다. 이에 대한 적절한 예시로 아데바요 아킨펜와가 있다. [15]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충분히 주전으로 뛸 만했는데 마리오 자갈로가 몽니를 부리며 삼파이우 - 둥가 노장 라인을 가동시켰다. 사실 그 시점 기량이라면 과감히 제 호베르투 - 에메르손 신예 라인을 가동시켜도 별 무리가 없었지만, 자갈로는 중원 라인의 세대교체를 다음으로 미루고 말았다. 삼파이오는 슛팅력과 공격가담이 좋은 선수지만, 사실 스타 선수들이 즐비했던 98 월드컵 당시 브라질 정도 되는 팀에서 주전을 차지하기엔 클래스가 많이 부족한 선수였다. 이 선수의 문제는 지나친 공격가담 성향에 따른 수비력 부족인데 실제로 98 월드컵에서 3골을 넣는 등 공격으론 출중했지만 수비에서 많은 허점을 노출했다. 그리고 둥가는 그 시점엔 전성기에서 내려온 노장이었다.[16] 물론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의 02 브라질이 3-5-2 전술을 채택하는 바람에 제 호베르투의 입지가 애매해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윙백과 중미로도 충분히 출중한 기량을 선보일 수 있는 제 호베르투를 선발하지 않은 건 역시 의문스러운 점이 많다. 사실 02 한일 월드컵에서 브라질 대표팀은 98 프랑스 월드컵 이상으로 대표팀 선수 선발로 잡음이 많았다. 이 당시 브라질 대표팀의 면면을 본다면 정말로 의외의 선수들이 많이 선발된 걸 알 수 있다.[17] 수비를 절대 하지도 않고 내려와서 운반도 잘 안 하는 4인방 - 카카, 호나우두, 아드리아누, 호나우지뉴. 그나마 카카가 짬에서 밀려서 좀 내려오는 편이었다. 이 넷의 플레이스타일을 보면 알겠지만 본인들이 드리블 치면서 골까지 노리는 스타일이라 이런 선수들이 공격진에 4명이나 동시에 포진되어있으면 합이 맞춰질수가 없다.[18] 사실 계속 중앙 미드필더로 뛰었다면 10년 월드컵에도 뛰었던 지우베르투 시우바와 충분히 경쟁할 만했으나 함부르크에서 다시 윙으로 뛰었기 때문이다.[19] 이 당시 다니엘 판바위턴루시우 등이 은퇴와 브라질 리그 삭제 등의 이유로 한꺼번에 사라져버리며 뮌헨 팬들은 센터백으로 쓸 믿을만한 선수가 제롬 보아텡밖에 없어 경악을 했던 시절이었다. 홀거 바트슈투버단테가 있기는 있으나 이 둘은 기동력이 심각하게 부족한데 판바위턴 수준의 신체능력을 가진것도 아니라 스탯 대비 평가가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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