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사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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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한국에서
3. 기타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正宗

한국에선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 가문의 비전으로 만들어졌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정종(正宗)은 1840년 일본의 효고현에서 한 술도가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술로 그 이름은 불교경전인 임제정종(臨濟正宗)에서 따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종(正宗)에 딱히 종교적인 의미를 내포된 것은 아니고, 그저 청주(淸酒)와 정종(正宗)이 '세이슈'로 같은 발음이라는 것에서 착안한 일종의 말장난.[1]

문제는 전국시대 무장인 마사무네(政宗) 쪽이 너무 유명했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한자도 비슷한데다가 正宗도, 政宗도 모두 마사무네로 읽을 수 있던 탓에 결국 주조장인이 처음 의도했던 바와는 달리, 正宗은 세이슈가 아닌 마사무네로 불리게 됐다.

이후 정종(正宗)이 크게 히트하면서 같은 사케를 주조하는 곳이 늘어났는데, 1884년 처음 상표조례가 제정되고 상표등록 신청을 받기 시작하자 이 정종(正宗)이란 이름의 상표 신청이 온갖 곳에서 쇄도했다고 한다. 이에 곤란해진 등록청은 할 수 없이 정종(正宗)을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로 지정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에 유독 正宗이란 이름이 붙은 사케 상표가 많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2. 한국에서[편집]


조선총독부는 1909년 주세법을 시행한 이후로 1916년 주세령을 시행하며 자가용 술에 대한 면허제도를 실시한다. 하지만 도매용 주조에 비해 고율의 주세를 부과하여 만들어 먹는 것보다 사 먹는게 더 싸게 만듦으로써 식민지 조선에 진출한 양조장이나 자신들의 관리 하에 있는 양조 업체들의 술을 사서 마시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가양주를 타인에게 판매할 수 없도록 하고, 면허자가 사망하면 상속인이 면허를 이어받을 수 없도록 했다. 사실상 가양주 주조를 막으려는 정책이었다. 면허제 시행 초기 자가용 면허를 받은 사람이 30만명이 넘었으나 이러한 말살 정책으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면허자는 급감하였고 1932년에는 오직 1명만이 남았으며 사망 후인 1934년에는 단 한명도 면허자가 남지 않았다. 술 수요는 여전히 탁주, 소주가 80%를 차지하였으나 부산, 인천과 같은 초기 개항장과 경성과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재조 일본인이 점차 증가하였고 사케 공장들도 많이 생겨나면서 사케들도 유통되었다.

이 때 유명했던 여러 청주 브랜드가 ○○正宗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청주를 지칭할 때 정종(正宗)이라고 마치 일반명사처럼 부르게 됐다. 이 때문에 일부 집안에서는 "제사에는 절대 정종을 올리는 게 아니다."라는 말도 한다. 왜냐면 정종은 일본식 청주(사케)이지 한국 청주가 아니기 때문.


3. 기타[편집]


  • 진짜 정종(正宗)은 사케 중에서도 비싼 축에 드는 술이다.

  • 1994년에 나온 금성 말하는 전자레인지 요리안내에 정종을 데우는 방법이 적혀있었다.


4. 관련 문서[편집]




[1] 또한 다테 마사무네는 혼슈 북쪽 지방 사람이고, 정종이 처음 만들어진 효고현은 정 반대편인 혼슈 남쪽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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