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급 장갑순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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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함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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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함 진원[1]

1. 개요
1.1. 분류에 관하여
2. 특징
3. 제원
4. 함정 목록
5. 기타
6. 모형화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독일에서 제작하여 청나라에서 운용한 방호순양함이다. 원본은 독일의 작센급 철갑선[2]이었으나 그대로 직수입하지는 않았고 다른 나라의 군함도 일부 참고하여 자체적인 개량을 했다. 북양해군 소속이었고 청일전쟁 당시까지만 해도 아시아에서 가장 큰 군함이었다.

작센급 철갑함이 원본이라 작센급처럼 갑판 위 방들은 가운데에 함미부터 함수까지 세로로 놓여져 있고 현측통로가 매우 넓다. 또한 함수와 함미쪽에 함포가 하나씩 있고 함재선들이 방들 위에 있다.

각 함선에 대한 설명은 정원, 진원 항목 참조.


1.1. 분류에 관하여[편집]


참고로 전함이라고 불리는 일이 잦지만 당시에는 아직 1892년부터 등장하는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에 대한 개념이 아직 완비되지 않았다. 정원급의 도입 배경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한데 대청제국은 1860년대 초부터 근대 해군에 대한 육성에 대한 관심을 가져왔으나 그에 대한 엄청난 재원을 감당하지 못해 소극적으로 대응해왔었다. 그러다가 1869년 일본이 류큐를 점령하지만 원양해군의 부재로 인해 대처를 하지 못하면서 충격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청나라는 1874년 근대 해군 양성에 들어간다. 특히 단순한 항구 방어를 벗어나 유사시에 외해까지 진출할 목적의 군함이 절실했고 이를 위해서는 대형 선박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이에 따라 청조는 여러 검토 끝에 독일에서 작센급 철갑함을 수입하기로 결정한다. 구매 가격은 한 척당 은 160만냥에 달하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는데 당시 청나라 해군 예산이 평균 400만냥 정도였던 것을 감안해보면 청조가 작정하고 뽑아냈다는 것을 알 수있다. 아무튼 정원급 철갑함의 목적은 '외양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함선[3]이기에 '장갑순양함' 이라고 한것이다. 실제로 원본인 작센급 철갑함도 엄밀히 말해서 '장갑 프리깃'인데 얘의 직계 후손이 바로 장갑순양함이다.

그럼 왜 정원급 '전함'이라는 명칭이 퍼졌냐는 것도 설명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청일전쟁에서 2번함 진원을 노획한 일본이 진원을 전노급에 해당하는 다른 전함과 같은 장갑포탑함(裝甲砲搭艦)으로 분류했고 무엇보다 당대 통상적인 전드레드노트급 전함들이 표준처럼 사용하는 305mm 주포를 탑재했기 때문이다. 또한 대청제국 해군이 보유했던 정원급 이하의 순양함들 중 제일 컸던 것은 2,900톤인 경원급 장갑순양함 인데 정원급은 약 7,000톤급이니 경원급 보다 2.5배 커서 전함으로 착각할 크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청제국이 당초 도입한 목적은 순양함이 맞다.

아무튼 당시 기준으로는 굉장히 크고 강력한 함선이었으며 가상적국 일본도 이에 상당한 압박을 받아 영국으로부터 후지급 전함 2척을 도입한다. 다만 후지급 2척은 청일전쟁이 끝난 이후 도입이 완료되어 이후 러일전쟁에서 활약한다.


2. 특징[편집]


도색이 특이하다. 흘수 부분은 다른 나라의 배들처럼 빨간색이지만 갑판을 제외한 함체가 검은색으로 도색 되었고 주포인 2연장 함포 2개, 함재선들은 하얀색 으로 도색 되어있으며 부포인 1연장 함포 2개, 연돌 2개, 돛대 2개는 노란색으로 도색 되었다. 다만 도색은 복원 모형에 따라 다르게 나온다.

주포는 2연장 305mm 함포로 주포를 앞, 뒤에 탑재하고 주포 사이에 함교가 있는 통상적인 전드레드노트급 전함들과는 다르게 주포가 왼쪽 앞과 오른쪽 뒤에 있고 함포 사이의 거리가 가까우며 함교 바로 앞에 있었다.[4] 포각은 당대 함선들처럼 다소 제한되어 있다. 57mm 함포는 후방 보트 아래에 좌우배치했고 47mm 함포는 전방 보트 아래에 좌우배치했다. 57mm 함포와 47mm 함포는 기관총과 비슷하게 생겼고 사람이 직접 기관총으로 조준하듯이 조준하고 발포하는 방식이다. 함수에는 당대 함선들과 같이 충각이 장비되어 있었다.[5]


3. 제원[편집]


목록
1번함 정원함
2번함 진원함
진수
1881년 12월 28일
1882년 11월 18일
취역
1885년 10월 29일
1885년 3월 1일
기준배수량
7144톤
7220톤
만재배수량
7355톤
7355톤
전장
94.5m
91.0m
전폭
13.4m
18.3m
흘수
5.94m
6.1m
최대속력
14.5노트
15.4노트
항속거리
4500해리(10노트)
4500해리(10노트)
승조원
363명
363명
무장
2연장 305mm 함포 x2
단장 150mm 함포 x2
57mm 속사포 ×2
47mm 속사포 ×2
5연장 37mm 개틀링포 ×8
어뢰발사관 ×3

2연장 305mm 함포 ×2
단장 150mm 함포 ×2
57mm 속사포 ×2
47mm 속사포 ×2
5연장 37mm 개틀링포 ×8
어뢰발사관 ×3
함재선
어뢰정 2척, 소형 보트 4척
어뢰정 2척, 소형 보트 4척


4. 함정 목록[편집]


번호
함명
비고
1번함
정원
청일전쟁때 어뢰에 맞아 격침.
2번함
진원
청일전쟁일본제국에게 나포. 이후 일본 해군함 진원함으로서 러일전쟁 등에서 사용되다가 선체 노후화 등으로 1908년부터는 훈련함으로 쓰다 1911년 퇴역 후 표적함으로 사용되었고 1912년 완전 해체된다.


5. 기타[편집]


정원급 방호순양함은 1번함과 2번함 모두 남아있지 않지만 1번함의 일부 부재가 후쿠오카현 다자이후에 정원관이라는 기념관 건설에 사용되었으며 해체된 이후 2번함의 닻 등은 일본이 가지고 있다가 1947년 중화민국의 반환 요구에 반환되어 지금까지 베이징시중국인민혁명군사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2004년 중국에서 비슷하게 복원한 함상공원이 공개되었다.

참고로 북양해군에서 두번째로 큰 배는 2900톤급인 경원급 장갑순양함이다.

철갑선 문서에 정원급 전함 1번함 정원함의 사진과 설계도가 있다.

치원급 방호순양함 2번함 정원함과 한국식 발음이 같지만 한자로 쓰면 전함 정원함은 定遠, 순양함 정원함은 靖遠 이고 중국식 발음도 전함 정원함은 딩위앤(DingYuan), 순양함 정원함은 징위앤(JingYuan)이다.

3번함도 계획 했었지만 예산 문제 때문에 크기를 축소해서 만든것이 제원급 방호순양함이다.


6. 모형화[편집]


예나 지금이나 과도기적인 위치에 있는 19세기 후반 철갑함들은 마이너하고 동양의 것은 특히 더하지만 근래 중국 모형 제조사들이 급성장하며 예전이라면 상상하기 힘들었던 북양함대 함선들의 모형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당연히 주력함인 정원과 진원의 모형화가 먼저 이루어졌다.

  • 1/300
    • Zhengdefu
1990년대 제품이며 정원과 진원이 모두 출시되었다.

  • 1/350
    • 브롱코
2010년 정원을 출시하고 2012년 진원을 출시하였다. 디테일과 조립성 등 품질이 상당히 좋으면서도 가격이 저렴해 철갑함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물론 함선 입문자들에게도 추천되고는 한다. 물론 옛날 함선이라 스케일 대비 크기가 작은 것은 감안해야 한다. 플라이호크, KA 모델, 아트웍스, 오렌지하비 등에서 디테일 업 세트를 출시해 더욱 디테일하게도 제작할 수 있다.

  • 1/700
    • S-Model
2011년 정원, 2012년 진원을 출시했다.
  • Modelkrak
2010년대 제품이다.


7.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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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함수에 일장기가 꽂혀 있어서 일제에게 나포당한 이후에 촬영한 사진으로 추정된다.[2] 이후 나사우급 전함 라인란트포젠에 의해 대체된다.[3] 청조의 나머지 함선이 2~3천톤 수준인것도 철저히 정원급의 보조함대로 맞추어졌기 때문이었다. 청조는 이 정도면 정원급이 역할을 해내기에는 문제 없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해전계의 죽창이자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사이 세계의 해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어뢰가 중국에 알려진 것은 청불전쟁 때였기 때문에 제조를 의뢰했을 때에는 딱히 문제가 있는 판단은 아니었다.[4] 이렇게 배치되어 있다.[5] 주력함에서 충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1차대전 중반기부터이다. 그 이전에는 조파저항을 최소화하는 형태로라도 달려 있는 일이 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