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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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초대 대표이사 사장
정상희
鄭商熙|Chung Sang-hee


파일:external/rokps.or.kr/576.jpg

출생
1907년 8월 7일
충청북도 충주군
사망
1981년 3월 7일 (향년 73세)
본관
온양 정씨[1]
학력
양정고등보통학교 (졸업)
메이지대학 법과대학 (법학 / 학사)
의원 선수
2
의원 대수
4, 5
자녀
장남 정재덕(1931년~2004년)
차남 정재은(1939년~)
삼남 정재환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기업인, 정치인. 정재은 신세계그룹 명예회장의 아버지이다.


2. 생애[편집]


1907년 충청북도 충주군에서 태어났다. 경성부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중국 상하이교통대학에 입학하였다가 1년을 수료하고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1974년 모교 메이지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제강점기 말기인 1939년부터 협신산업상사 대표이사, 삼호방직 부사장, 대한방직협회 이사, 삼호무역 부사장, 동화통신사 부사장, 제일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 사장, 삼호방직무역주식회사 회장, 삼성그룹에서 삼성전자 초대 대표이사 사장, 삼성물산 사장, 동방생명보험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1919년 결성된 조선체육협회는 조선총독부 학무국장이 당연직 회장을 맡고 협회 본부를 학무국 사회체육과에 둘 만큼 총독부 산하 기구 성격이 짙은데, 정상희는 1940년 조선체육회를 사임하고 만주에 있는 대련만주 기계유공업주식회사로 적을 옮기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조선총독부가 송별회를 열어줄 정도로 정상희를 각별히 챙겼다. 이를 근거로 1949년 쓰인 <민족정기의 심판>에서는 정상희를 부일 행위자로 규정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충청북도 중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9년 자유당 충청북도당 위원장이 되었다.

1960년에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부정선거라는 이유로 소송을 당했다. 1961년 3.15 부정선거 가담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중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당 이희승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 공천에서 이종근에 밀려 탈락하였다.

한편 체육계에서도 활동하였다. 대한체육회 이사장, 대한육상경기연맹 이사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슬하 3남을 두었는데 차남인 정재은 신세계그룹 명예회장이 삼성그룹 초대회장 이병철의 5녀 이명희와 결혼했다. 이병철과 사돈관계이며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시아버지, 그리고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 부문 총괄사장의 할아버지다.

[1] 31세손 희(熙)자 항렬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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