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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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정배근(鄭培根)
생몰
1885년 7월 20일 ~ ?
출생지
황해도 연백군 해성면 일신리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정배근은 1885년 7월 20일 황해도 연백군 해성면 일신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경신학교를 졸업한 뒤 황해도청의 관원으로 근무하다 해임되었다. 이후 1912년 11월, 그는 경성부 중부 교동에 사는 자작 민영휘를 찾아가 독립운동자금을 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또한 11월 9일과 13일에는 경성 중부 수표교 대립동에 사는 상업은행 취체역 홍충현(洪忠鉉)에게 자신이 한국보(韓國輔)[1]라고 소개하며 독립운동 자금으로 쓸 1,000원을 달라고 하였다.

이 일이 발각되면서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13년 2월 1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공갈 미수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14년 3월 1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옥했다. 이어 1919년 3.1 운동이 발발하자, 정배근은 연백군 해성면에서 주민들을 설득한 뒤 3월 18일 해성면사무소 앞에서 주민들을 인솔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했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평화회의가 열러 타국에 점령당한 약소국은 빠짐없이 독립하고 있다. 우리 조선도 독립이 달성되는 이 마당에 어찌 기쁘지 않으리오. 그러므로 면장과 직원 일동은 마땅히 우리와 같이 이를 환영하는 뜻에서 조선의 독립만세를 부르자."고 소리쳤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7월 1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9월 13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정배근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한국보와 관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