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준(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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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명준.jpg
성명
정명준(鄭明俊)
이명
정흑도(鄭黑陶, 鄭黑濤)
생몰
1900년 7월 26일 ~ 1959년 8월 22일
출생지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
사망지
경상북도 대구부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정명준은 1900년 7월 26일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에서 태어났따. 그는 1924년 7월 뜻을 같이하는 청년 동지를 모아 <혁조(革潮)>라는 잡지 발행을 계획했다. 그러나 내용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총독부에 의해 인가되지 않았다. 이후 노동공제회에서 활동하던 그는 그곳에서 함께 활동하던 서동성, 신재모, 방한상(方漢相) 등과 함께 진우연맹(眞友聯盟)을 조직했다. 진우연맹은 일제의 탄압에 맞선 국내 아나키스트들의 대표적 항일 독립운동 단체로 이들은 대구노동친목회를 지도하면서, 일본의 무정부주의 단체와 연계를 강구하는 등 다양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한편 진우동맹은 별동대로 파괴단을 조직하여 일제의 교관을 암살하고 주요 기관을 파괴하려 했다. 1926년 4월 12~13일 정명준 등은 신재모의 집에서 모임을 갖고 2년 안에 대구 부내의 도청·경찰서·우체국·법원을 비롯하여 일본인 점포를 파괴하는 한편 지사·경찰부장·관아 수뇌부를 암살할 것을 계획했다. 이들은 폭탄을 입수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의 아나키스트 유림으로부터 폭탄을 받아내려 했지만, 연맹원이 경찰에 검거되면서 전모가 드러나고 말았다.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27년 7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함경북도의 청진에서 상업에 종사하던 그는 8.15 광복 후 대구로 이동하여 경북신문 편집국장, 매일신문 편집국장 및 주필, 대구일보 편집국장 및 주필, 영남일보 편집국장 및 주필 등을 역임했다. 19958년 제3회 경북 문화상(언론부문)을 수상했으며, 1959년 8월 22일 대구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정명준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