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석(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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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정헌(鄭憲)·정재익(鄭在益)

운강(雲岡)
본관
동래 정씨[1]
출생
1885년 8월 4일
경상도 대구도호부 동상면 신암동
(현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사망
1968년 12월 16일
묘소
국립신암선열공원 제3묘역-15호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정동석은 1885년 8월 4일 경상도 대구도호부 동상면 신암동(현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에서 아버지 정기갑(鄭基甲)과 어머니 경주 이씨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9월 중,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을 위해 경상북도 대구부를 중심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추진하던 송두환으로부터 권총 2정 및 실탄 100여발을 보관해줄 것을 의뢰받아 자신의 집에 숨겼다.

1920년 1월 중 달성군 수성면 신암동 구장(區長)으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다시 송두환으로부터 권총 3정 및 실탄 300여발을 받아 자신의 집에 보관하고 있다가, 중국 동삼성내의 독립단체를 지원하기 위한 군자금을 모집하고자 활동하는 최윤동·이수영(李遂榮)·노기용 등의 일본인 순사 갑비(甲斐) 사살 건이 발각됨에 따라, 1923년 11월 27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는 1년간 구금되었으며 1924년 11월 6일 대구지방법원 형사부에서 소위 총포화약류취체령(銃砲火藥類取締令) 시행규칙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미결 구류일수 중 90일 본형에 산입),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곧 출옥하였다.

출옥 후 조용히 지내다가 1968년 12월 16일 별세하였다.

199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그의 유해는 사후 국립신암선열공원 제3묘역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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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0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