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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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화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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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화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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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 반지
2006 여름
(감독)








대한민국의 농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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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정덕화
鄭德和

출생
1963년 2월 27일 (61세)
인천직할시[1]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88cm, 82kg
직업
농구 선수 (스몰 포워드 / 은퇴)
농구 감독
학력
부평초 -부평중- 송도고 - 연세대
실업 입단
1986년 기아자동차 농구단
소속
선수
기아자동차 농구단 (1986~1992)
코치
대전고등학교 농구부 (1992~1994)
국민은행 여자 농구단 (1994)
창원 LG 세이커스 (1997~2000)
감독
성균관대학교 농구부 (1995~1996)
청주 현대 하이페리온 (2001~2002)
안양 SBS 스타즈 (2002~2004)
용인 삼성생명 비추미 (2004~2008)
대한민국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 (2008)
천안 KB 세이버스-청주 KB 스타즈 (2009~2013)

1. 개요
2.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농구인.


2. 선수 경력[편집]


인천 송도고등학교, 연세대학교를 졸업하였고 1986년부터 1992년까지 기아자동차 실업 농구단 수비수로 명성을 날렸으며 1990~1991 시즌 농구대잔치 최우수 선수로 뽑히기도 했으나[2] 1992년 무릎 부상으로 더 이상 선수 생활이 어렵게 되자 은퇴를 결심했다.


3. 지도자 경력[편집]


은퇴 후 대전고등학교 코치로 부임하여 제18회 협회장기 전국남녀농구선수권대회에서 1988년 이후 대전고를 5년만에 정상에 올려놓았고 이후 국민은행 여자농구단 코치, 성균관대학교 농구부 감독, 창원 LG 세이커스 코치 등을 역임하였다.

2001년 3월부터 2002년 3월까지 청주 현대 하이페리온 감독직을 맡았다.

김인건 전 감독이 태릉선수촌장으로 부임하는 바람에 급작스레 사임을 하게 되면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안양 SBS 스타즈 감독을 역임하였다. 다만 이 시기 SBS의 성적은 두 시즌 모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감독 역임 중이던 2003~2004 시즌에는 몰수패를 경험하였다.[3]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용인 삼성생명 비추미 감독을 역임하였다. 이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여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하였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청주 KB국민은행 세이버스 감독을 역임하였다.

팀을 결승까지 올렸지만 선전하면서 5년간 지휘를 했지만 당시 왕조였던 안산 신한은행 에스버드를 넘지 못하면서 우승실패와 함께 팀을 떠나게 된다.

여기서 충격적인 사건이 나오게 된다. 김영옥에 의해 폭언과 술 강요를 했다고 지적되었다. 일단 2013년 건강상 이유로 사퇴하였다.

후임으로 KBL이든 WKBL이든 준비된 지도자라는 평이 있는 서동철 감독이 맡게 된다.[4]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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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천광역시[2] 사실 이 때 정덕화는 이충희를 전담 마크하면서 이충희가 파이널에서 부진하게 만들었는데 이게 결정적으로 작용해서 된 것이라 하겠다. 하지만 그보다도 유력한 최우수선수 후보인 허재가 2차전 경기 도중 임달식, 김성욱과 난투극을 벌여실제로는 허재가 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았지만 퇴장 당했고 김유택마저도 김성욱과 신경전을 벌이는 등 분위기가 매우 험악해진 상태에서 사실상 어부지리로 받았다는 의견이 당시에는 있었다.[3] 다만 이 몰수패 사건은 정덕화가 아닌 당시 코치였던 이상범이 주도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당시 이 몰수패 사건이 일어난 원인은 전주 KCC 이지스와의 홈 경기에서 당시 심판들이 극단적으로 KCC에게 유리하게 판정을 하는 것에 정덕화 감독과 이상범 코치가 항의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대한 대응으로 선수단을 철수시키며 발생한 사건인데, 정덕화가 당시 벌금 300만원이라는 가장 가벼운 징계만 받았던 것에 비해 이 당시 이상범은 3시즌 출장 정지의 중징계를 받았었다는 것이 그 증거. 하지만 상벌위의 결과가 너무 가혹하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아 2004년 1월 31일 농구연맹에서 이상범 코치에 대한 징계를 2004년 10월까지로 경감시켜줬고 SBS 농구단이 냈던 제재금 3천만원도 다시 돌려 주었다. 여하튼 이 사건으로 이상범은 농구인 커리어 자체가 끝날 뻔했었다. 실제로 이 당시의 판정은 거의 SBS가 이기지 말라는 수준이었으니 그럴 만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KBL은 심판이 문제다[4] 여기서 KB 전성 시대를 열게 된다. 서동철 감독은 비록 챔피언에 실패를 했지만 은행장의 신뢰를 얻으면서 제자들의 신뢰를 얻었고 주역들은 후임인 안덕수 감독과 박지수 선수와 함께 마침내 한을 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