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창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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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창파
點蒼派


무협 속 점창파가 위치한 윈난성 창산
소속
정파
중심지
운남성 창산

1. 개요
2. 특징
4. 작품별 모습




1. 개요[편집]


파일:중국 창산 중화사.jpg[1]

點蒼派

무협소설에 나오는 구파일방의 하나. 창산(蒼山)이라고도 불리는 운남의 점창산을 기반으로 한 도교 문파. 점창파를 검색하면 점창파가 사천성에 있다는 정보가 많이 퍼져있는데 점창산은 운남성에 있다. 간혹 작품에 따라 일반 문파로 등장할 때도 있다.[2]


2. 특징[편집]


새매와 같은 움직임과 태양도 꿰뚫을 듯한 쾌검으로 유명한 문파.

주로 사일검법이 문파의 진산절기로 취급되며 이밖에도 분광삼십육검, 회풍무류검법, 기봉검법 등이 있으나 지리적으로 먼 운남성에 있음에도 오로지 사일검법[3] 하나만으로 종남, 공동, 청성보다 나은, 곤륜이나 아미에 준하는 취급을 받는다.

천하제일쾌검을 자랑하는 문파로 표홀한 신법에 더해 섬전처럼 쾌속하면서도 무겁고 강맹한 위력의 검법을 자랑한다. 극쾌의 묘리를 살리기 위해 베기는 다 집어치우고 오직 찌르기에만 목숨을 건다는 묘사와 점창파의 고수가 한번 손을 쓰면 그 검이 어찌나 빠른지 일격에 수십 번을 찔러 격검 소리가 따다다당하며 기관총처럼 난다는 묘사가 자주 나온다. 찌른다는 특성 때문에 점혈법 즉, 지법이나 선법(扇法), 판관필이나 점혈궐(点穴橛) 등을 이용하는 필법(筆法)에 능통하다는 설정이 드물게 나온다.

가지고 있는 무공중에 대표급이 되는 것이 주로 사일검법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적당한 보법을 하나 쥐어주고 히트 앤 런 스타일의 캐릭터를 만드는데 자주 사용된다.

김용무협의 영향으로 작품따라 점창파가 대리국이나 불교에 관련이 전무한 경우에도 일양지를 사용하기도 한다.

여담으로 점창파의 상징은 주로 매로 표현되며 검에는 주로 응안문(鷹眼紋)을 새긴다.


3. 무공[편집]


자주 나오는 점창파의 주요무공을 다룬다.
사일검법의 기수식이자 쾌속무비한 점창파 독문의 암기수법. 순간적으로 인지 영역을 초월하는 속도로 암기를 직사하여 상대를 격살한다.
  • 후예사일(后羿射日)
사일검법의 극의.
  • 분광삼십육검(分光三十六劍) 혹은 분광십팔수검(分光十八手劍)
  • 기봉검법(起鳳劍法)
  • 회풍무류검법(廻風無留劍法)
  • 섬광분운검(閃光分雲劍)
  • 일양지(一陽指)
  • 낙일도법(落日刀法)
  • 관일창법(貫日槍法)


4. 작품별 모습[편집]


직접 나오지는 않지만, 가끔 언급이 된다. 절묘한 검법으로 세상에 명성을 얻은지 오래였으나, 남쪽 외진 곳인 운남(雲南)성에 위치하고 있어서 중원 무림계 인사들과는 왕래가 드물다고 한다. 공동파의 공동오로가 공견대사가 살해당할 때 점창파의 유(劉)대협의 초청을 받고 운남(雲南)에 가 있었다는 언급이 나온다. 그리고 수남산성곤이 주최한 도사 영웅대회의 영웅첩을 돌릴 때, 점창파의 원로검객인 부진자(浮塵子), 고송자(古松子), 귀장자(歸藏子) 등에게 초대장을 돌렸다는 언급이 나온다.





  • 영화 선학신침
주인공 마군무가 점창파 장문인인 사부를 둔 제자로 나온다. 작중 점창파의 입지는 매우 좁아서 한 때 명검객을 다수 배출했지만 현재는 몰락하여 문파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내세울 깃발조차 없는 시골 문파 대접을 받는다. 영화 엔딩에서는 주인공이 이런 점창파를 다시 부흥할 계책으로 사부에게 깃발을 만들어서 강호에 팔고 다니자고 농담을 할 정도.

문화대혁명 시기에 중원에서 쫓겨나 서울에 자리잡았다는 설정으로, 오대신군에 포함되는 청운산인 은위평이 장문인이었으나 독인 이현에게 살해당하고 나서는 다시 언급되지 않는다. 은위평을 보좌하는 일대제자가 제법 기개 있는 캐릭터로 묘사되고 은위평 본인도 무림수사대의 무공을 고평가하는 등 현기 있는 모습을 보이지만, 실력으로는 보여줄 것이 없다는 식으로 그려지며 실제로도 구대문파의 이름에 값하는 무위가 전혀 나오지 않는 안습한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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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진은 실제 중국의 창산에 위치한 중화사다.[2] 남송 시대까지 대리국이 점창산을 끼고 있었고, 대리국은 불교가 국교인 나라였기에 무작정 도교문파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3] 심지어 사일검법에 대한 독자적인 문서가 존재할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