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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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문제점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마음에 안 드는 대상이나 집단을 애써 바꾸려 하지 말고 본인이 관심을 끊고 떠나라는 의미의 속담.

설명과 같이 본래 승려가 부패한 을 개혁하려다가 잘되지 않아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라고 체념하는 투의 혼잣말의 개념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승려(개혁자)에게 "꼬우면 떠나라"는 식으로 윽박지르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 따라서 변질되게 사용되는 만큼 아래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 사용하면 논리적인 오류가 발생한다.

"절이 싫어도 주지스님은 떠날 수 없다"는 블랙 코미디부조리 코미디가 언급되기도 한다.

가끔 쫓아오기도 하는 모양이다.


2. 문제점[편집]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문장 자체가 혼잣말로 쓸 수도 있고 상대방에게 할 수도 있다. 다만 혼잣말로 쓰면 문제가 없지만 상대방에게 쓰면 문제점이 발생한다. 문제의 해결보다는 문제를 제기한 측을 논의에서 배제하는 행동이 되므로 교묘하게 논점을 흐리는 데에 많이 이용되기도 하는 말이다. 또한 이 말에는 "절은 언제나 옳다."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당연히 절도 틀린 결정을 내릴 수 있으므로, 이 속담의 논리 자체가 매듭 자르기의 오류일 뿐이다.

이 속담을 부적절하게 사용하는 상황은 이런 경우가 있다.

  • 구성원 의견 묵살: 자신의 의견만을 내세우고 다른 구성원들의 의견을 묵살하는 데에 사용되곤 한다. 기업체, 정당 같은 대규모 조직은 물론 작게는 그룹 스터디 같은 곳에서도 자주 보이는 유형이다. 특히 내부고발을 비난하는데 쓰이기도 한다.

  • 억지 실드: 각종 방송 프로그램, 연예 활동, 유튜브나 인터넷 방송, 웹툰 등에서 과한 실더들이 주로 쓰는 방식. 일부 사용자들의 단순한 의견제시 또는 정당한 비판을 차단하는 데에 이 속담을 사용한다. 'BGM이 안 어울린다', '편집이 너무 정신없다', '가독성이 떨어진다' 등 충분히 제시할 수 있는 의견에 싫으면 보지 말라는 식으로 응수하는 빠들이 정말 많다. 심지어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문제 있는 행동을 한 인물에게 실드를 칠 때 이런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불호나 비판을 자기가 보는 앞에서 원천봉쇄하고 싶은 사람들도 주로 이런 짓을 한다.

  • 절을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경우: 중이 절을 떠날 수 있는 선택권이 없거나, 다른 현실적인 대안이 없거나, 오랜 세월을 함께해서 떠나기가 심리적으로 크게 부담이 되는 상황에서도 이런 말을 악용한다. 작게는 부모자식의 관계, 크게는 군대라는 사례도 있고, 주변에 상가가 없는 대학이나 직장의 구내식당에서 음식의 질이 매우 떨어져 이에 항변했더니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고 대응하면, 상대방의 절박한 처지를 악용해서 사실상 갑질 또는 폭리를 얻는다.

  • 자국 탈출의 어려움: 절에서 떠날 수 없는 경우 가운데서도 현실적으로 대안이 없는 극명한 사례에 속한다. 애초에 타국에서 사는 것 자체가 문화 차이, 언어 문제 등 다양한 문제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자국 혐오에 젖어 있는 청년들이 정작 자국을 탈출할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은 여기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예시에 속하는데, 북한 주민들 가운데 어느정도 정보를 접한 이들은 대부분 북한을 좋아하지 않지만, 자국 내에서도 마음대로 못 돌아다니는 마당에, 북한을 실제로 떠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이자 화중지병(, 그림의 떡)이기 때문이다.

  • 절을 떠났더니 절이 따라오는 경우: 꼬우면 떠나라고해서 정말 떠났는데 끝까지 추적해서 보복을 하는 경우를 말한다.

  • 중이 싫어서 절이 떠나는 경우: 이 경우에는 중의 범위가 주지로 한정되며, 이 때문에 주로 인터넷 독재 같이 권력이 집중된 경우에 국한된다. 이 경우에는 독재에 경을 치던 커뮤니티 회원들이 대피소를 마련하기도 하고, 탄핵 같은 절차로 주지를 내쫓기도 한다.

  •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하는 경우: 생각보다 꽤 있는 경우. 사실 무언가를 파헤치기 위해서 대상의 이야기를 알아보자고 하면 오히려 절이 싫으니 더 세세하게 단점을 파낸다면 더 난처해진다.

  • 절이 싫어서 절을 불태우는 경우: 누구 좋으라고 순순히 떠나겠느냐며 절을 불태워버리는 경우. 주로 절에 원한관계나 감정이 쌓인 경우가 많으며, 실제 사례도 있다. # 이 사건 이후 절이 싫으면 태워야 한다는 말이 일부 영역에 한해[1] 공감을 얻고 있다.


  • 그 절이 불의 투성인 경우: 알고보니 누군가가 불의를 저지른 것을 싫으면 보지마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면 불의를 보고 그냥 쉬쉬하는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 섬노예가 대표적이다.


인벤에는 이 속담과 관련해 이런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

게다가 절이 싫어서 중이 진짜로 떠나는 경우는 그 절 자체가 막장인 상황이라는 방증이 된다. 본래 의미를 생각하면 이 쪽이 오히려 들어맞는다. 그러니까 이런 소리가 나오는 것 자체가 꼰대임을 증명하는 것이니 평소 행실에 매우 주의해야 한다. 실제로 대한민국 국회에 처음 입성한 초선의원들이 의외로 재선에 도전하지 않는 경우가 꽤 생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직업에서 인지도가 높았던 사람일수록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이주일[2]도 재선을 포기한 바 있고 표창원[3], 조훈현[4] 역시 재선을 포기했다.

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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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극단적인 방법이 최선의 해결책이 되는 경우는 상당히 적다. 또한 이런 일을 눈뜨고 당해줄 바보는 없으므로 밑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되려 본인이 불타버릴 수 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함부로 행하지 말자.[2] "정치를 종합예술이라고 하지만 코미디라는 생각밖에는 안듭니다. 여기에는 나보다 더 코미디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4년동안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 라는 나름 명언을 남겼다.[3] 정권 교체이후 여러가지로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특히 당 지도부와도 갈등이 제법 심했던 모양.[4] 20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영입되었는데 하필 새누리당이 탄핵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겪었던데다가 본인역시 탄핵반대파에 들어가는등 비호감적인 면이 보이면서 정치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후로 정치에 깊은 회의감을 느꼈던지 바둑관련법령을 통과시킨후 정계은퇴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