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폭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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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슈바인푸르트 볼 베어링 생산시설 폭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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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런던 그리니치와 뎁트퍼드 상공을 비행하는 독일 공군He 111 폭격기

1. 개요
2. 방법
3. 전술 폭격과의 구분
4. 테러 폭격
5. 역사
5.1. 1차 대전
5.2. 전간기
5.3. 제2차 세계 대전
5.4. 냉전
5.5. 현대



1. 개요[편집]


총력전에 약방의 감초로 등장하는 개념이다. 즉, 적군(military force)을 격퇴하기 위해 그들의 국가를 붕괴시킨다는 발상으로, 이를 위해서는 적의 군사적인 목표물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능력과 해당 국가의 전쟁 수행 의지를 꺾는 데 주안점을 두게 된다. 이를 위해 전략 폭격기가 동원되는 게 보통이나 비행장으로부터 거리가 짧은 경우 가끔은 전술 폭격기가 뛰기도 하며, 현대에는 폭격기뿐만 아니라 중, 장거리 순항 미사일(V1, V2 등으로 알려진 나치 독일 독일군의 무기들), 핵투발이 가능한 전폭기(미국이 냉전 시대에 개발한 센츄리 시리즈 전폭기) 등이 사용된다는 개념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략과 전술의 개념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전략은 전쟁 그 자체를 전반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장기적인 책략이나 계획 등을 뜻하며 전술은 일선의 전투 또는 작전에서 사용되는 군사적 테크닉 등을 말한다. 즉 적의 주력이 주둔중인 사단본부 및 그 이상급 시설들이나 후방 군사 기지[2], 병력과 군자금을 제공하는 도시, 병기를 생산하는 공장 지역, 항만과 공항 등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각종 시설물이 전략적 목표이며 적의 일선 부대나 적 진지, 적 최전방 사단 예하부대들의 주둔지[3] 등이 전술적 목표이다. 전략 폭격이란 이러한 전략적 목표에 대한 폭격을 실시, 파괴함으로써 적의 전쟁 지속 능력과 의지를 상실하게 하는 것이다.

적국의 전의를 완전히 상실케 해 평화 협정을 강요하거나, 무조건 항복을 하도록 밀어넣는 것이 목적이므로 테러행위에 가까운 폭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대전 말에 영국에서 Terror Bombing 이라는 용어가 처음 쓰이기 시작했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쓰이게 된다. 물론 현재에는 테러의 의미는 퇴색된지 오래다.

최초 개념은 사실상 항공전의 개념과 함께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줄리오 두헤(Giulio Duchet), 영국의 Trenchard School, 그리고 미국의 빌리 미첼(Billy Mitchell)장군이 시작했으며, 이들이 이러한 개념을 가지고 나온 것은 기본적으로 공군이 별도로 결성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뒷받침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1932년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스탠리 볼드윈(Stanley Baldwin)이 폭격기무적론을 주장하기도 했을 정도.

2. 방법[편집]


  • 장거리 전략 폭격기들
가장 많이 사용된 방법으로, 이 때문에 공군을 창설하는 계기가 된다. 우리가 '융단폭격'이라는 용어로 가장 친숙한 바로 그 방법이다. 1차 세계대전때 처음 시도되었으며, 2차 세계대전 당시만 해도 정밀 폭격이 불가능했기에 폭격기들이 대규모 편대를 이루어 폭탄을 떨구는 방법[4]을 많이 사용했으며 베트남전때 까지도 사용되었을 정도다. 그러나 전자장비의 발전으로 정밀 폭격이 가능해짐에 따라 더 이상 폭격기 대편대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무차별 폭격에 의해 민간인들이 희생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던 부작용(다만 애초에 테러 목적으로 폭격을 했으면 해당 사항 무)도 많이 생겨났다.

  • 순항 미사일
2차대전 때 나치 독일군이 사용한 V1이 시초인 미사일이다. 대표적으로 함선이나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BGM-109 토마호크가 있다. 공중에서 발사하는 크루즈 미사일들도 여기 속한다.
V-1 로켓은 사실상 무유도의 테러 폭격이나 다름없었으나 현대의 크루즈 미사일은 최소한의 유도기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하단의 정밀유도공격의 일부로 구분할 수 있다.

  • 탄도 미사일
나치 독일군의 V2이 시초로 보이는 미사일이다. 걸프전 당시에도 이라크군이 스커드미사일로 언론에 유명세를 탄 바 있다. 다만 이쪽은 크루즈 미사일과 달리 일정체급 이상은 모두다 아래에 나오는 핵탄두를 사용한다. 그 이유는 탄도미사일의 특성상 추진체가 엄청나게 무게를 차지하여, 실제 탄두가 그만큼 작기 때문이다. 그만큼 값도 비싸서 통상탄두를 사용하기도 아깝고, 한번 핵탄두 운반체로 사용하기 시작하니 다들 고정관념이 박혀서 전술 대륙간탄도탄을 만들어 사용했다가 다른 나라가 핵공격으로 판단하고 핵으로 반격, 핵전쟁으로 이어지면 세상이 진짜 끝장나기 때문.

  • 정밀 유도 폭탄
현대에 많이 사용되는 방법으로, 주로 고속 전폭기들이 행한다. LGB, JDAM등을 사용하는 것으로, 현대전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양상. 앞의 그것과 비슷한 정밀 유도 병기이므로 같이 취급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서 기존의 융단 폭격 방침을 거의 대체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된 이유는 일단 떨구는 폭탄 수가 월등히 적으므로 각각의 비용은 비싸도 총 소요비용이 훨씬 저렴하며 그에 따른 부수적 피해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융단 폭격은 정작 중요한 물건들은 되려 파괴가 안 되고 비교적 쉽게 복구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이는 정확도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정밀 타격 무기들은 높은 위력의 폭탄을 정확히 목표물에 명중시키므로 훨씬 가성비가 좋은 것이다. 또한 대규모 폭격이 필요하다면 요즘에도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예 MOAB 같은 것)

  • 핵공격


3. 전술 폭격과의 구분[편집]


전략 폭격이라는 개념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상당히 포괄적인 내용으로 여러 형태가 존재하지만 전술 폭격(Tactical Bombing)과는 다른 개념이므로 구별하기 위해 붙인 단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댐버스터로 유명한 영국 공군의 루르 댐 공격은 전략 폭격의 한 예로 들어가는데, 이는 적국의 전쟁 수행 능력을 제한하기 위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즉, 보통 전략 폭격이라 하면, 공장, 철도 시설, 정유소, 광산 등이 목표가 되는 것이다.

다만 나무위키에서는 커티스 르메이에 대한 이미지와 국내 밀덕들의 얕은 지식이 합쳐져 뭔가 크고 거대한 폭격기가 크고 거대하고 많은 폭탄을 이용해 도시를 갈아버리는 것이라 인식되는데 상당히 잘못된 개념이다. 목표물이 전략 목표물이면 전략 폭격, 전술 목표물이면 전술 폭격이 된다. 같은 다리를 폭격하더라도 적의 보급을 차단할 목적이면 전략폭격, 전투지로의 충원병력 이동을 막을 목적이라면 전술폭격이다. 다른 예로 적의 레이더와 통신시설을 일거에 무력화시키는 폭격은 그 규모는 전투기 몇대와 수 발의 MK-82로 가능하지만 당연히 전략 폭격이다. 물론 전략 목표물은 주로 안전한 후방에 위치하고, 그걸 타격하려면 수많은 호위 전투기를 덕지덕지 붙여서 가야하며 그런 위협을 무릅쓰고 전략 목표 한두 곳만 타격한다는 건 말이 안 되므로 전략폭격은 대규모의 폭격이 되기 마련이고 폭탄을 다 못쓰면 민간 지역에라도 투하하고 왔을 뿐이다. 요즘은 미사일과 스텔스 기술의 발달로 굳이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어졌다. 이때문에 전략폭격기는 폭장량도 중요하지만 후방까지 침투할 항속거리가 매우 중요하다. 현대로 넘어오며 민간인 주거지에 대한 폭격은 안하느니만 못하게 전략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부담이 되기 때문에 크고 화끈한 폭격과 그걸 위한 전략폭격기는 자취를 감추었고[5], 바늘로 찌르는 듯 목표만 제거하는 핀포인트 폭격인 정밀 폭격이 대세가 되었지만, 전술폭격과 전략폭격이라는 개념은 아직도 유효하다. 왜냐, 전술폭격과 전략폭격은 목표의 종류와 어느 쪽으로 중요하느냐로 구분되는 폭격 방식이고, 정밀폭격은 명중률에 따라 구분되는 방식 중 명중률이 높은 폭격방식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전술폭격과 전략폭격은 중요성으로, 정밀폭격과 융단폭격은 정확도로 구분하는 구분법이다.[6] 따라서 융단폭격을 주로 하는 대형 폭격기가 대부분 사장되었더라도 전략 폭격의 개념은 남는 것은 당연한 일.

2차 대전 후반기에는 민간인이 휘말려도 어쩔 수 없다 정도로 밀어붙였는데, 특히 일본처럼 거주지역과 산업지역이 구분되지 않고 뒤섞여 있는 경우에는 더더욱 어쩔 수 없다고 주장했다. 커티스 르메이 항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적어도 연합국에서는 군수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민간인까지 쓸어버린다는 발상을 끄집어내려면 르메이 같은 과감한(...) 지휘관이 필요했다.

한편 그 일본 제국은 대놓고 민간인을 폭격하여 공포로 적국을 붕괴시키려고 했다. 일본의 중국대륙 무차별 폭격 참조. 당연히 국제사회는 이를 비난했고, 일본 역시 엄중하게 군사시설만 공격하고 있다고 변명했지만 충칭 대공습을 보면 뭐...


4. 테러 폭격[편집]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적국의 사기를 저해하는 것도 한 방법이며, 이를 위해서 일부러 민간인 지역을 폭격하는 것 또한 전략에 해당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1차 대전 종전 후 2차대전이 벌어지기 전에 공군을 창설하기 위한 주장으로부터 나왔으며 1930년대에 벌어진 스페인 내전중일전쟁에서 시도되었지만 이 때는 크게 효과가 나지 않았다. 이들이 큰 영향을 못 끼쳤던 이유는 이들의 공군이 주로 육군의 진격을 지원하기 위한 편제 때문이라고 평가되고 있었다.

한편, 이 '테러 폭격'이라는 용어는 요제프 괴벨스에 의해 최초 언급된 것이다. 당시 나치 독일은 연합군에 의해 자국령에 쑥이 재배되고 있는 상황이었고, 이를 비난하기 위한 프로파간다에서 'terrorangriffe' 라고 최초로 언급한 것이었다. 반면, 연합군의 경우 영국군은 '지역 폭격'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었고, 미국은 '정밀 폭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드레스덴 폭격이후 영국 장성 콜린 맥케이 그리어슨(Colin McKay Grierson)이 폭격의 목적은 군수시설 파괴를 위한 것이라 하면서 최종적으로 남은 독일의 전쟁 수행 의지를 꺾어버린다고 답변했을 때, AP 통신에서 이걸 인용하면서 서방에서도 사용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게 단어 실수였다는 것이다.

Allied air bosses have made the long awaited decision to adopt deliberate terror bombing of great German population centres as a ruthless expedient to hasten Hitler's doom.


즉, 'terror' 라는 단어 하나만 빠졌어도 큰 문제 없는 전형적인 연합군 프로파간다 문장이었으나 이 단어 하나로 각종 스캔들에 휘말리게 되었다. 이 때문에 윈스턴 처칠도 군부 장성들을 불러 '너네들 폭격을 전략적 효과를 위해 하냐, 아님 테러하려는 거냐?'이라고 질의할 정도였다. 어쨋든 이 덕분에 이후, 테러 폭격이라는 단어가 많이 언급되게 됐다.

테러 폭격이라는 단어는 전략 폭격의 전쟁범죄적, 윤리적 논제에 대해 논할 때 자주 등장한다.

5. 역사[편집]



5.1. 1차 대전[편집]


전략 폭격의 시작은 공군이 처음 시작된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돌아간다. 사실 그 당시에는 이런 개념 자체가 없었으나, 현재는 1914년 8월에 벌어진 앤트워프 폭격을 시초로 보고 있다. 즉, 최초 시작은 독일군의 비행정이었다. 사실, 이 비행정들도 본디 목적은 전선 교착 상태를 풀어보기 위한 시도 중 하나였으나 그 개념이 점차 확장되어 결국 적군의 병참선 및 생산 시설까지 파괴해 간접적으로도 손해를 입힌다는 개념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1차 대전 당시 가장 주목할만한 전략 폭격은 역시나 독일군의 비행선들이 전쟁 중 영국 민간인들을 지속적으로 폭격한 것이다. 최초의 폭격은 1915년 1월 영국 노퍽주의 그레이트야머스가 당했다. 독일 비행선이 도시의 중앙도로 상공을 따라가며 폭격을 가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사상자는 20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현재 시점에서는 우스운 수치일지 몰라도, 그 당시까지 유럽에서도 전쟁은 전쟁터에서 군인들이나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으니 충격과 공포는 맞았다. 이외에 러시아 제국의 라트비아도 같은 방식으로 민간인 희생자가 나온다. 또한, 당시 독일 황제의 명령으로 적국의 도심 폭격이 용인됨에 따라 영국에서 1916년 한해에는 거의 1000명 정도의 민간인 사상자가 나오게 되었다. 다만, 17~18년에는 대공시설과 방공호가 증설되는 등 등 방공전력이 전반적으로 크게 강화되었고, 이에 따라 폭격 빈도수가 줄어들어 전술적인 성과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7]. 이후 프랑스도 지지 않고 비슷한 폭격을 감행하여 독일측 민간인 사상자가 나오게 되었으며, 특히 1916년 6월 22일에는 잘못된 지도 때문에 발생한 오폭으로 서커스 텐트가 폭격당해[8] 거기 숨어있던 120명의 민간인[9] 피해가 나기도 했다.

다만 사전적인 의미의 전략 폭격[10]은 영국 공군이 행했다. 1914년 9월과 10월에 영국 해군에 의해 감행된 쾰른, 뒤셀도르프 폭격이 그것. 이 때 목표물은 비행선 생산 공장이었다.


5.2. 전간기[편집]


이러한 폭격의 공포 효과는 상당히 심해서,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그 공포 효과가 남게 된다. 실제로 이 당시 피해 조사에 따르면 거의 냉전 시대의 핵전쟁 피해 예상도와 비슷할 정도의 계산이 나오고 있었을 정도였으니...

이 당시 공중 전략에 관해 대략 두 가지 설이 대두되고 있었는데, 하나는 전술적인 측면이 강조된 전술 공군론으로, 육해군의 작전을 근접 지원하는 공중 포대로서의 역할이 그것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나치 독일 공군이 이 쪽 방면으로 가장 발전된 형태였고, 이것과 기동전 개념 덕분에 제2차 세계 대전초반의 승승장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일어난 방어선의 함락 과정와 빠른 종심돌파를 통해 적의 국토를 마음껏 유린하던 일련의 현상을 후일에는 전격전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The bomber will always get through.

영국 수상 스탠리 볼드윈이 제창했던 폭격기무적론의 모토

반면, 전략 폭격을 강조한 이론은 공중 폭격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었는데, 여기 포함된 내용이 바로 적군을 직접적으로 파괴하는 것 보다는 적군을 뒷받침하는 시설들, 군수 공장, 보급로, 교통 시설 등을 제압함으로써 적국이 고자가 되도록 기능 상실을 하게 만들어 항복을 강요하는 이론을 설파했다. 이 때 나온 것이 폭격기 무적론으로, 그 당시에도 이런 장거리 폭격기들을 엄호할 전투기가 필요할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으나, 일단 다중 포탑으로 중무장한 폭격기들이 편대를 이루고 들어가면 우주방어가 가능할 것이라는 것 때문에 무적론이 나오게 된 것이다.[11] 즉, 이렇게 공군력을 위주로 운용함으로써 '참호전'같은 곤란한 상황을 만들지 않고 최소한의 피해로 적국을 패퇴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로써는 매우 그럴듯한 의견이었고, 실제로 참호전으로 발생된 가중된 피해를 경험한 참전국들은 이 의견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긴다. 여기 따르면 애초에 지상전 혹은 해상전을 크게 벌이지 않고[12], 공군력으로 삽시간에 적국의 산업기반을 조져버리면 전쟁이 금방 끝난다는 의미도 되기 때문이니까. 그리고 이 무적론은 다른 만능주의가 그렇듯이 피를 본다. 폭격기 만능주의로 해석해도 될 듯.

여담이지만, 당시 조종사 모집 프로파간다나 각종 영상 매체에서도 전투기 조종사보다 폭격기 조종사가 더 멋진 역할로 그려지고 있었다. 또한, 이러한 폭격 만능 신조 덕분에 당시 쓰여진 Sci-Fi 소설들은 전략 폭격과 화학 무기로 폐허가 된 설정을 가지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러니까 폴아웃 1930년대 버젼은 핵전쟁이 아니라 전략 폭격으로 세계가 멸망했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독일 공군도 대전 초반부에는 폭격기 조종사들을 더 우수한 평가를 받은 생도들로 구성했고 우대했다[13].

이러한 의견 덕분에 몇몇 국가에서는 폭격기를 위주로 한 공군을 편성하는 데 박차를 기했는데, 미국이 가장 대표적인 예시였다. 이 당시 미국(을 비롯한 전략 폭격 우위를 받아들인 나라들)은 중무장한 중폭격기를 우선으로 개발하고 있었으며, 전투기는 영토 순찰 및 정찰 용도로나 사용될 물건이었고, 중무장한 폭격기들 상대로 쉽게 무너질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 민간인 폭격에 관한 내용도 있었는데, 군수 제반 시설 폭격 뿐만이 아니라 민간인에 대한 폭격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1차대전때 당했던 그것처럼 민간인 폭격 또한 사기를 낮추고 공포심을 조성함으로써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적국의 전쟁 수행 능력을 제한하는 게 골자이므로 이것 또한 좋은 방법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폭격을 함으로써 전쟁을 빠르게 끝낼 수 있기에 희생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가 반영되었다. 즉, 공포심 조성 → 민간인들의 불만이 폭발 → 혁명을 일으켜 정부를 무너뜨림 → 점령이라는 공식이었다. 1차 대전때도 대공포화나 전투기들로 폭격기들을 요격할 수 있다고 밝혀졌으나, 큰 요소는 안 되고, 일단 민간인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되면, 이 정도 손실은 입어도 전쟁이 충분히 빨리 끝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다만 민간인들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경우, 같은 방식으로 보복당할 것이라는 사실 또한 인지되고 있었다. 즉, 전략 폭격을 핵전쟁의 그것과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 민간 폭격의 효용성은 전간기동안 영국이 예멘을 폭격한 사건에 의해 더욱 공고해진다. 당시 영국은 중동 지역의 반란을 제압하기 위해 전략 폭격으로 민간인 피해를 유발하는 공포 정책을 벌였던 것이다. 이 때 민간인 사망자는 12명이었으나 그 선전 효과는 상당했고, 같은 효과를 보기 위해 육군을 투입하는 것 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기 때문.

다만 스페인 내전에서 폭격기 무적론에 약간 금이 가게 된다. 실제로 이 당시에 폭격기들은 전투기들이 상대가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으로, 미국에서도 이러한 점을 인지하고는 있었다. P-47이 고공 폭격기 호위기로 개발된 것이 그 때문. 또한, 민간인 폭격의 공포 효과도 도리어 복수심을 부추기는 결과가 나온다는 것도 여기서 발견되었고, 이 때 폭격을 감행한 것은 다름아닌 히틀러나치 독일 공군 이었다.


5.3. 제2차 세계 대전[편집]


전략 폭격/2차 대전 문서 참조.


5.4. 냉전[편집]


냉전 시기의 전략 폭격은 핵 만능주의로 귀결된다. 즉, 핵무기 하나로 융단폭격보다 훨씬 효과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게 되자 대규모 폭격기 편대를 운용할 이유가 사라져버린 것. 때문에, 적국의 폭격 편대를 사전 정찰 및 포착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이 중요시된다. 또한, 매스 미디어의 발전으로 대규모 폭격에 대한 효과적인 피해자 행세 프로파간다가 가능해졌기에 도리어 폭격에 성공한 측의 여론이 악화되는 효과가 우려되었기도 하였다.

베트남 전쟁 당시 롤링썬더 작전을 감행했던 미국 여론은 매우 좋지 않았고 중국이 참전 명분을 얻을 정도까지 갔으며(이게 실패의 주된 이유였다. 공산권 주력 국가들의 참전이 두려운 나머지 제대로 폭격을 못 했기 때문이다.) 반전 시위 열풍이 일어나기도 했을 정도였다. 라인배커 작전도 그와 다르지 않았기에 본격적인 전략 폭격으로 보기에 무리가 있었고 당시 전장 자체가 융단 폭격이 먹히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밀 폭격 장비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민간인 피해를 줄여 언론의 입김도 적게 하고, 적은 폭장으로도 정밀하게 파괴할 물건만 파괴하는 기술이 필요해진 시점이었다. LGB 및 TV유도 폭탄이 처음 등장한 것도 이 당시였다.


5.5. 현대[편집]


현대에 들어서는 정밀 유도 화기들이 기존의 융단 폭격을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걸프전항목에 나오듯이 정밀 유도 화기가 거의 전장의 백미로 불리우게 되었을 정도. 다만, 걸프전때 떨어뜨린 폭탄들도 93%가 유도 장치 없는 폭탄이었으나, 이 당시에는 폭격 장치가 발달해 2차대전 및 베트남전때와는 차원이 다른 명중률을 자랑했다.[15] 덕분에 기존의 융단 폭격에 비하면 민간인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었다.

또한, 현재는 더 이상 대형 중폭격기가 필요 없게 되었다. 일단 한 번 폭격시 들어가는 폭탄 량이 줄어들었기에 전투기들만으로 효과적인 전략 폭격이 수행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F-16F-15가 대표적인 예. 때문에 Strategic Interdiction이라는 용어가 새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민간인 밀집 지역에 대규모 폭탄 혹은 핵무기를 투사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거기다 서방 전투기들이 사용하는 항공폭탄의 평균적인 발당중량이 증가하면서 전투기들의 대당 폭장중량이 대전기 폭격기들을 넘어선 것도 한몫 한다. 한발 한발도 살짝 빗나가도 위력이 강해 목표가 충분히 무력화될 위력인데 정확하게 떨어지고, 거기다가 전투기에 탑재 가능한 발수도 웬만한 대전기 중폭격기 뺨치니 굳이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전략폭격용 폭격기를 가질 필요가 없어진 것. 심지어 구식 폭탄에 탈착식 유도장치를 단 물건이나 장거리 활공 유도폭탄, 장거리 유도폭탄에 로켓엔진이나 제트엔진을 장착한 물건들까지 나와 판을 치고 있기에, 적국과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전제 조건 하에서라면 굳이 호위를 붙여서 폭탄을 많이 싣고 적 영공 깊숙히까지 가는 짓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우리 영공 안에서 아군 방공망의 보호 하에 적을 폭격하는게 가능해졌기 때문. 적 영공 깊숙히 가야하는 일이라면 바다나 대륙을 건너야 하는 거리인데 이 경우라면 대륙간 탄도미사일에서 핵탄두를 떼고 재래식 탄두를 달아서 날린다는 방법도 있다. 다만 ICBM은 폭격기가 가는 것보다 정치적으로 훨씬 위험한 행동이라 대개 이정도쯤 되면 그냥 폭격기를 보낸다. 이를위해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해두는 것이 근처의 우방국에 공군기지와 미사일 기지를 세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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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볼 베어링은 전차의 포탑과 변속기, 구동축 수밀구조에도 들어가고, 각종 군함의 구동축 수밀구조와 대공기총 회전포탑/회전 마운트 등에도 들어가는 주요 부품이다. 그래서 볼 베어링 공장을 군수공장으로 간주하고 폭격하는 것이다.[2] 비행장이나 미사일 시설, 훈련소나 경비부대, 지역방어부대 등이 그 예.[3] 한반도의 경우가 이런 양상이다. 최전방 전선 전체에 양군의 사단 이하급 주둔지가 쫙 깔린 형식. 이런 주둔지들은 일반적인 곡사포의 사정거리에도 일부 들어가 있는 만큼 당연하게도 전술 폭격의 범위에 들어간다.[4] 이걸 보고 세간에선 융단 폭격이라 한다.[5] 완전히 감추진 않았고, B-52B-1 랜서, B-2, Tu-22, Tu-95, Tu-160등 냉전의 양대 대표국가의 폭격기가 아직 현역이다. 또한 이들이 노후화한데 따른 대체 의지도 완전히 저버리지는 않았다. B-52의 경우처럼 대체기종들의 대당 생산비용이 워낙 비싸서 다 대체하지 못하고 최소 한세기의 기간동안 굴리는 대참사가 벌어졌을 뿐.[6] 융단폭격이 나온 이유도 정확도가 낮다 보니 그냥 주변까지 싸그리 쓸어버리면 목표도 박살나겠지 하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다. 다만 그 효용성에는 상당한 의구심이 들어, 광범위한 파괴는 하였으나 정작 중요 목표물은 반파되거나 일부만 파괴되어 재가동이 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예를들면 정유시설 같은 경우 정유탑을 부수지 못하면 부차적인 건물은 아무리 부숴봐야 소용없다. 다만 육중한 전략폭격기의 덩치로 그게 가능할 정도로 접근하면 대공포에 벌집이 되는건 당연지사.[7] 그러나 이러한 폭격은 전반적으로 민간에 충격과 공포를 가져다주는 데 성공했으므로, 결과적으로는 성공적인 작전이었다.[8] 폭격 당시에는 기차역으로 생각되고 있었다.[9] 대다수가 아이들이었다.[10] 앞의 예제는 사실 테러 폭격에 가깝다.[11] 이 뿐만 아니라, 이 당시에는 폭격기가 전투기보다 더 높이, 더 빠르게 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도쿄 대공습때는 사실이었다는 게 함정...[12] 방어전에 국한.[13] 다만, 이는 폭격기 만능주의 때문이라기 보다는 독일 공군의 공격 위주 교리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14] 필리핀이 FA-50 투입 이전까지 마라위에서 보여준 것이 바로 이 급강하 폭격이다.[15] 베트남전 시기에도 초음속 전투기들이 가끔 슈투카마냥 중고고도에서 강하하기 시작하는 방식으로 수직 급강하 폭격을 날려대야 했다. 웬만한 선진국들 한정으로 이짓이 필요없어진 것은 베트남전이 거의 끝나갈 때의 얘기로 다시말해 냉전말 즈음이나 돼서야 우리가 아는 정밀폭격 방식이 사용가능한 기종들이 하나둘씩 완성되었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일부 국가들은 유도장치의 부재로 급강하 폭격을 해대고 있고.[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