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니스 조플린

덤프버전 :


재니스 조플린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펼치기 · 접기 ]

파일:5ARYZvK4L2afx8AcWcf6kF-1.jp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 펼치기 · 접기 ]
이름
재니스 조플린
JANIS JOPLIN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
(개인자격)
입성 연도
1995년
후보자격 연도
1995년
후보선정 연도
1995년














재니스 조플린
Janis Joplin


본명
재니스 린 조플린
Janis Lyn Joplin

출생
1943년 1월 19일
미국 텍사스 주 포트아서
사망
1970년 10월 4일 (향년 27세)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직업
싱어송라이터
서명
파일:Janis_Joplin_Signature.svg.png

[ 펼치기 · 접기 ]
부모님
세스 조플린 (1910-1987)
도로시 조플린 (1913-1998)
학력
메모리얼 하이스쿨
라마 대학교
텍사스 대학교
신체
165cm, 61kg
혈통
스코틀랜드계 미국인
별명
Pearl
종교
기독교 (복음주의)
활동
1962년1970년
사용 악기
보컬, 기타
장르
사이키델릭 록, 소울, 블루스, 블루스 록
레이블
파일:컬럼비아 레코드 로고.svg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
2. 생애
3. 디스코그래피
4. 대표곡
5. 미디어믹스
6. 기타



1. 개요[편집]



파일:liveddd.jpg

이런 표현이 뭐하지만... 재니스 조플린이야말로 모든 것을 불태우고 떠났다는 말이 가장 맞는 가수인 거 같습니다.

- 배철수


미국의 여성 블루스, 사이키델릭 록 싱어송라이터다.

1960년대 말 히피 문화를 대표한 인물들 중 하나로, 대중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블루스, 록 보컬리스트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빅 브라더 앤드 홀딩 컴퍼니에서 활동하며 인기를 얻었고 이후 자신의 밴드를 조직하여 활동했다. 거침없는 음악 스타일과 '여가수'라는 관습적 제약에서 벗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앨범 《치프 스릴스》 등이 유명하다.

27세에 요절하였기에 27세에 요절한 음악인 클럽인 27세 클럽의 멤버 중 한 명이며, 동 나이인 27세에 사망한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 도어즈의 보컬 짐 모리슨과 더불어서 '3J'라고 불린다.[1]


2. 생애[편집]


그녀는 1943년 1월 19일에 미국 텍사스주 포트아서 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세스 워드 조플린의 딸로 태어났다.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은 좋지 않은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전해진다.[2] 이러한 성장 과정이 재니스 특유의 사람의 애정에 굶주려하는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가수에 대한 꿈은 토머스 제퍼슨 고등학교에 재학하던 중 친구를 통해 블루스포크 음악을 알게 되면서 가지게 되었다. 1960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보몬트에 위치한 라마 대학교에 입학하였지만 2년 후 1962년 학교를 떠나 당시 사이키델릭 록의 중심이었던 샌프란시스코로 가게 되었다. 거기에서 사이키델릭 록 밴드 "Big Brothers & The Holding Company"의 보컬을 맡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재니스 조플린의 데뷔 이전까지 비비 킹이나 머디 워터스흑인 블루스의 대가들은 백인은 완벽한 블루스를 할 수 없을 것이다고 믿었으나, 그녀가 데뷔한 후 백인 블루스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만큼 그녀가 당대에는 비교 가능한 상대가 없는 독보적인 백인 여성 블루스 싱어였던 것이다. 1967년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의 최고 스타는 지미 헨드릭스와 재니스 조플린이었다. 재니스는 무대에서 지금까지 쌓아왔던 한을 토해내려는 것처럼 신들린 듯이 노래를 불렀으며, 그것은 마치 이제 새로운 여성 락커의 시대가 열렸음을 선포하는 듯한 포효와도 같았다.[3]

1968년까지 Big Brothers & The Holding Company 멤버로 활동을 하던 그녀는 1969년 새로운 백 밴드인 Kozmic Blues Band를 구성하여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 1969년에는 우드스톡 페스티벌에 참여하였는데, 여기서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 더 후 등과 함께 공연한다. 특히 같은 시간대에 공연을 했던 더 후의 기타리스트 피트 타운젠드는 이후 그녀의 공연이 엄청났다는 후일담을 남기기도 하였다. 1970년 8월 12일, 그녀는 보스턴 소재 하버드 대학교 스타디움에서 열린 단독 공연에서 마지막 콘서트를 가졌다.

솔로 앨범 작업을 하며 공연을 다니던 그녀는 1970년 10월 4일, 공연에 나타나지 않은 그녀를 찾아온 프로듀서와 매니저에게 헐리우드의 한 호텔방 바닥에 쓰러져 사망한 채 발견된다. 이후 공식 발표에서는 헤로인 과다 투여로 사망한 것으로 나왔으나, 원래 사용하던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을 투여한 것을 보고 여러가지 의혹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전술한 것처럼 그녀는 성장과정에서 많은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했으며 이 때문에 평생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살았다. 그 콤플렉스를 이겨내기 위해 택한 것이 음악과(특히 블루스) 더불어 무절제한 사생활로, 수많은 남자들과 잠자리를 함께 하였으며 늘 술과 마약 등에 취한 상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주변의 질타 및 충고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늘 "못난 나에게 가장 걸맞는 행위는 향락"이라고 말하곤 했다. 죽기 몇 개월 전에는 세스 모건이라는 대학생과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새 앨범 <Pearl>의 발매도 눈앞에 두고 있는 등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결국 결실을 맺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으니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재니스의 장례식은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치러졌고 그녀의 시신은 화장후 캘리포니아 해변에 뿌려졌다.

1971년 1월 11일, 재니스의 첫 솔로 앨범이자 유작이며 시대의 명반으로 꼽히는 Pearl이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발매 후 미국 내에서만 400만장이 넘게 팔리며 4x플래티넘을 기록하였으며, 빌보드 200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재니스는 이 앨범의 녹음 세션이 아직 남아 있는 상태에서 사망했기 때문에 앨범 수록곡 중 "Buried Alive in the Blues"는 보컬이 없는 연주곡으로 실려있다.

3. 디스코그래피[편집]


  • Big Brother and the Holding Company (1967)
  • Cheap Thrills (1968)
  • I Got Dem Ol' Kozmic Blues Again Mama! (1969)
  • Pearl (1971)


4. 대표곡[편집]




Janis Joplin - Me And Bobby McGee
1971년 빌보드 HOT100 1위.[4][5]



JANIS JOPLIN "Summertime"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곡 148위.



Janis Joplin - Ball & Chain - Monterey Pop"
그녀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준 Monterey Rock Festival에서 부른 Ball and Chain.


5. 미디어믹스[편집]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 더 머펫 쇼일렉트릭 메이헴의 홍일점 재니스는 그녀에게서 이름을 따왔다.
  • 1979년에 그녀를 모델로 한 영화인 로즈가 만들어져 개봉했다. 원래는 전기 영화로 기획했으나, 유족의 반대로 인해 로즈라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운 픽션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 로즈가 순박한 택시 운전 기사와 사랑에 빠져 그와 행복한 가정을 꾸릴 생각까지 하지만, 업계에선 이를 반대했고, 결국 로즈는 무대 위에서 열창하다 쓰러져 죽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가수이자 배우인 베트 미들러가 로즈로 열연했는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명연기를 보였다. 수상은 실패했지만, 골든글러브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황금 연못 감독인 마크 라이델이 감독해, 평과 흥행을 다 잡은 수작으로 평가된다.
  • 영화 소울메이트에서 주인공 하은과 미소가 제니스 조플린의 'Me and Bobby McGee'를 듣는 장면이 나온다. 미소는 제니스 조플린을 일종의 인생의 롤모델로 삼았는지, 그 후에 자신의 이름을 가명을 댈 때나, 심지어 페이스북에서의 가명도 제니스 조플린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녀가 27세에 죽었다는 사실은 이 영화의 굉장히 중요한 복선이 된다.


6. 기타[편집]


  • 그녀의 인생에서 늘 함께한 술이 있었는데 바로 서던 컴포트다. 지금은 여러가지 이유로 도수가 낮아졌지만 재니스가 살아있던 시절에 이 술은 50도가 넘는 독주였는데 늘 이 술을 끼고 살았다고 한다.
[1] 물론 세계 3대 어쩌구를 좋아하는 일본에서 만든 말이다. 그래도 이들 셋은 동시기에 활동하고 사망해서 그런지 27세 클럽 중에서도 자주 엮인다. 헨드릭스와 조플린은 실제로 만난 적도 있으며 헨드릭스가 사진을 찍어준 적도 있다.[2] 이 시절 에피소드로 학교에서 학생들이 재니스를 가장 못 생긴 남자로 꼽았다던 에피소드가 있다.[3]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보컬 그레이스 슬릭은 재니스가 유명세를 얻은 뒤로 "재니스 이후에 등장할 여성 락커들은 모두 예외 없이 재니스와 비교될 운명이 됐다"고 여러 차례 말한 바 있다.[4] 컨트리 장르다, 자기 장르가 아닌 장르가 최고 대표곡이 된 셈이다.[5] 이 노래는 가수 겸 영화배우인 크리스 크리스토퍼슨(Kris Kristofferson)이 작곡한 곡으로 컨트리 가수인 로저 밀러(Roger Miller)가 1969년에 처음 불렀다. 다만 히트한 버전은 재니스의 버전이기에 커버곡이 원곡보다 유명해진 케이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5 15:03:50에 나무위키 재니스 조플린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