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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臧憙 | 장희
작호
시흥현오등후(始興縣五等侯)

장(臧)
이름
희(熹)

의화(義和)
생몰연도
375년 ~ 413년
출신
동완군(東莞郡) 거현(莒縣)
부친
장준(臧儁)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동진 말기의 인물로 자는 의화(義和)이다. 장희 본인의 열전은 없으나, 송서 장실전과 남사 장도전에서 장희의 행적을 소개하고 있다.


2. 생애[편집]


동관군(東莞郡) 거현(莒縣) 출신으로 장준(臧儁)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유송을 건국한 무제 유유의 본처인 무경황후 장애친의 동생이다. 장희는 형인 장도와 함께 고전을 즐겼다.

융안 연간 동진이 여러 차례의 전쟁으로 혼란에 빠지자, 장희는 전공을 세우고자 기마와 궁술을 배웠다. 율양현(溧陽縣)에 이르러 현령인 완숭(阮崇)과 함께 사냥을 할 때 호랑이 한 마리가 돌진해오자 같이 사냥을 하던 사람들은 달아났으나 장희는 바로 앞에서 화살을 쏘았다.

유유가 거병했을 때 장희는 유유에게 종군하였으며, 유유가 건강으로 입성할 때 장희의 일족인 장목(臧穆)이 환수를 죽였다. 장희는 유유의 명으로 입궁하여 궁내의 도서와 도구를 접수하고 창고를 봉쇄하였다. 장희는 유유의 휘하에서 참군을 역임했으며, 원외산기시랑으로 제수되고 동해군 태수를 겸하였다. 환현을 토벌한 뒤 시흥현오등후에 봉해졌다.

유유가 조정에 남연 정벌을 건의할 때 동진의 많은 신하들이 이에 반대했으나 장희는 유유에게 찬동하였다. 또한 유유에게 종군을 청했으나 유유는 장희의 요청을 허락하지 않았고 고 건위장군(建威將軍), 임해군 태수로 삼았다. 노순의 난을 진압하고자 손계고(孫季高)가 해로를 경유하여 광주로 진군하며 임해군을 경유할 때 장희는 손계고를 지원했다. 산기상시로 임명되었으나 모친상을 당하여 벼슬에서 물러났다.

유의를 토벌할 때 영삭장군으로 임명되어 유유에게 종군하였다. 유유가 주령석에게 초종 정벌을 명할 때, 장희는 주령석의 지휘를 받아 수군을 이끌며 종군하였고 건평파동 태수를 겸하였다. 당시 초종이 초무지(譙撫之)에게 1만의 군대를 주어 우비성(牛脾城)으로 파견했고 초수구(譙小苟)를 타비성(打鼻城)으로 파견했다. 장희는 우비성을 함락시키고 초무지를 추격하여 죽였다. 초종이 멸망하고 얼마 안 있어, 장희는 우비현에서 사망하여 광록훈으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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