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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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壽
(89 ~ 168)

후한 말의 인물이며 자는 중오(仲吾)로 장로[1]의 후손.

경학에 통달하고 효렴에 천거되어 낭중, 급사알자를 지내다가 옮겨서 죽읍후상을 지냈으며, 그만두었다가 다시 죽읍후상을 지냈고 후에는 사도부에 벽소되었다가 168년 5월에 8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후한서의 동성제후연표에 따르면 그가 부임한 죽읍후국은 112년에 강릉왕 유공의 아들인 유아노가 죽읍후에 봉해진 것으로 볼 때 유아노 휘하의 재상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후 죽읍후국은 유아노 이후로는 왕을 알 수 없고 죽읍후국은 한나라 말에 초군으로 분리되었고 위나라가 건국되자 죽읍후국을 폐지되어 현으로 바뀌었다.

장수에 대한 기록은 송나라 때 홍적이 금석문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라서 장수에 대해 남아있는 장수잔비에 대한 기록을 남길 수 있었는데, 다만 그가 남긴 것은 탁본을 뜬 것이 아니라 해당 비석의 문장을 해석해서 저서인 예록에 일부 자료로 남긴 것이다. 문장이 온전하지는 않았기에 거효렴등자잔비가 장수잔비의 일부분이라는 기록을 통해 약간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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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張老, 춘추시대 진(晉)의 대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