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영(삼국지)

덤프버전 :

張琪瑛
(196년 ~ 217년)
1. 개요
2. 행적
3. 야사 및 전설
4. 기타
5. 창작물에서


1. 개요[편집]


후한 말의 여성이자 장로의 딸로 기영은 라는 설도 있다. 예주 패국 풍현 사람.


2. 행적[편집]


마초가 장로에게 의탁했을 때, 장로는 딸을 마초에게 시집보내려고 했지만 주변에서 마초가 가족을 아끼지 않는다고 반대하자 그만두었다.[1] 215년, 장로는 가족을 데리고 조조에게 항복했고 장로의 딸은 조조의 아들 조우와 결혼했다.[2] 장로의 딸이 몇명이 있는지 알 수 없고 장기영이 정말 조우와 결혼했는지도 알 수 없거니와 장기영은 2년만에 죽었고 조우의 아들 조환은 246년생이기에 설령 두 사람이 결혼했다고 해도 장기영이 조환의 친모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3. 야사 및 전설[편집]


전설에 따르면 장기영은 마초가 그리워 조우에게 시집가기 싫어 결혼을 거절했으며 장로가 조조에 따라서 북쪽으로 옮길 때에도 따르지 않고[3] 면양(면현)에 머물며 관자산에서 오두미도를 이어왔다고 한다.

도가잡기(道家雜記)의 기록에 따르면 장로의 딸은 산 아래 옷을 다 입고 흰 안개에 끼어 임신한 적이 있다. 당시 장기영은 시집을 가기도 전에 임신이 너무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에 자살했다. 죽기 전에 여종에게 배를 가르게 하니, 2명의 용이 있었다. 장기영이 묻힌 후 두 용이 장기영의 묘소 앞까지 왔다는데, 그 무덤 앞에는 한 줄기 개울이 형성돼 한수에 흐른다고 한다. 여랑사에는 장기영이 낳은 청룡태자, 황룡태자가 문 옆에 그려져 있다.


4. 기타[편집]


파일:장기영무덤.jpg

면현에서 동남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관자산 정상에는 옛 묘(廟) 30여 칸과 소상(塑像), 벽돌탑, 비갈(碑褐) 등이 있다. 중국 정부는 1985년에 장기영의 무덤을 문화재로 지정했다. 한중시는 2000년 묘를 시급 1차 중점문화재 보호단위로 확정하고 보호표지를 세웠다. 2001년, 면현 온천진 정부, 면현 박물관은 산 정상에 묘정을 짓고 묘비를 세웠다.

장로의 딸의 이름은 정사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중국 섬서성 면현 온천진 광명촌에 현존하고 있는 2001년에 세워진 장로의 딸 무덤의 묘비 기록에 따르면, 그녀의 이름은 장기영(張琪瑛), 건안 원년인 196년 출생, 건안 22년인 217년 사망했고 죽은후 한중으로 돌아와 묻혔다고 적혀있다.

장기영 묘는 '여랑사(女郎祠)'라고도 불리며, 묘장 주소가 있는 산을 '여랑산'이라 하고, 산 아래 도로를 '여랑도'라고 한다. 장기영이 장로 딸의 본래 이름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랑'이라는 단어는 엄연히 장로 딸의 것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마초는 한수 북쪽 기슭, 한중 면현의 뇌공산 아래에 묻혔는데 마초 묘는 장기영 묘와 한수를 사이에 두고 10여 리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고 한다.


5. 창작물에서[편집]


'백화요란 대전란!! 삼국지 배틀', 삼국지대전에서 등장했다.

삼국지: 한말패업에서 등장해 군사 55, 무용 34, 지모 48, 정무 49, 인사 67, 외교 57의 능력치로 195년생으로 나온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5 12:46:33에 나무위키 장기영(삼국지)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출처: 마초전 주석 전략.[2] 출처: 장로전.[3] 혹은 북쪽에서 한중으로 돌아와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