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르지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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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르지뉴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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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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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FIFA 월드컵 실버슈
[1]



베스트팀
파일:월드사커 로고.png

1971 · 1972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자이르지뉴의 기타 사항





브라질의 前 축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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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자이르지뉴
Jairzinho
본명
자이르 벤투라 필류
Jair Ventura Filho
출생
1944년 12월 25일 (79세)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국적
[[브라질|

브라질
display: none; display: 브라질"
행정구
]]

신체
173cm, 74kg[1]
직업
축구 선수 (윙어 / 은퇴)
축구 감독 은퇴
소속
선수
보타포구 FR (1959~1974)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1974~1975)
카이저 치프스 FC (1975)
크루제이루 EC (1976)
포르투게자 (1977)
노로에스테 (1978~1979)
파스트 클루베 (1979)
클루브 호르헤 윌스테르만[2] (1980~1981)
보타포구 FR (1981~1982)
클루브 누에베 데 옥투브레 (1982)
감독
칼라마타 FC (1997~1998)
가봉 대표팀 (2003~2005)
국가대표
81경기 33골[3] (브라질 / 1964~1982)

1. 개요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지도자 경력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여담



1. 개요[편집]


"자이르지뉴의 폭발적이고 위험한 움직임은 특별한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자친토 파케티

브라질의 前 축구 선수이자 축구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윙어.

축구 역사상 최고의 팀 중 하나로 칭송받는 1970년 월드컵 브라질 대표팀의 일원이자 월드컵 전 경기 득점자[4]이기도 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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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축구인생을 시작하고 끝맺은 보타포구 시절

15세의 나이에 보타포구 FR에서 스트라이커로 데뷔한 자이르지뉴는 초기에는 그의 우상이자 당시 보타포구의 최고의 에이스 가린샤가 그의 주 포지션이었던 라이트 윙에서 뛰었기 때문에 주로 왼쪽 윙이랑 센터포워드 위치에서 활약했다. 그러나 가린샤가 부상을 당하자 오른쪽 윙어로 그를 대신해 뛰었으며, 이 포지션에서 대활약을 펼쳐 이후 주전을 차지하게 된다. 1974년 올랭피크 마르세유로 이적하기 전까지 413경기에서 186골을 기록하는등 엄청난 활약으로 보타포구 올타임 레전드중 한명으로 칭송받기에 이른다.

마르세유로 이적한 이후 남아공의 카이저 치프스로 이적하기도 했고, 크루제이루 EC로 이적해 한 시즌 뛰면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당시 자이르지뉴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12골을 기록하면서 득점 2위에 랭크되었을 정도로 좋은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이후 자이르지뉴는 한 시즌 만에 크루제이루를 떠나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브라질의 여러 클럽을 전전하고, 보타포구에서 잠시 복귀했다가 1982년 에콰도르의 클루브 누에베 데 옥투브레에서 현역 은퇴를 했다.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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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acão da Copa
월드컵 허리케인

1963년 19세의 나이로 판 아메리칸 게임에 참가한 자이르지뉴는 4경기에서 미국과 칠레를 상대로 득점을 기록해 브라질의 대회 우승에 기여한다.

1년후인 1964년 가린샤의 부상으로 성인 대표팀에 대체 발탁된 자이르지뉴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창설 50주년을 기념하는 대회인 타샤 다 나숑이스에 참가해 포르투갈을 상대로 데뷔전을 치뤘고, 그 경기에서 데뷔골을 득점했다.

이 기세를 몰아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대표팀에도 발탁되는 영광을 누렸고, 조별리그 3경기에 전부 출전을 했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히우두의 골을 어시스트하기도 했으나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이 대회에서 브라질은 조별리그 탈락을 하며 쓸쓸히 퇴장한다.

이후 1968년 우루과이와의 A매치겸 대회인 코파 리오 브랑코에서 재발탁되어 활약했고, 1970 월드컵 예선에서도 파라과이, 콜롬비아를 상대로 득점을 기록하고 팀도 예선에서 전승을 기록해 본선에 진출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아픔을 딛고 다시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한 자이르지뉴는 첫 번째 경기였던 체코슬로바키아와의 대결에서 멀티골을 넣고 4-1 완승을 거두었고, 2번째 잉글랜드와의 대결에서는 바비 무어, 고든 뱅크스 등을 위시한 수비진을 상대로 고전했으나 토스탕의 크로스를 받은 펠레가 자이르지뉴한테 패스했고, 자이르지뉴는 득점을 기록해 이 골이 결승골이 되어 1-0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루마니아, 페루를 상대로 연속으로 골을 기록하고, 마라카낭의 비극을 안겨주었던 우루과이를 상대로도 역시 득점을 거두어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를 만나게 된다.

세계 최고의 창과 방패의 대결이기에 호사가들은 '엄청난 승부가 될것이다'라고 예측했다. 펠레와 보닌세나의 골로 1-1 동점으로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 자이르지뉴는 게르손의 골을 어시스트, 그리고 펠레의 헤딩패스를 받아 브라질의 3번째 득점자가 되었다. 이후 카를루스 아우베르투의 쐐기골로 4-1 대승을 거두어 이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팀은 쥘리메컵을 들어올리게 되고 월드컵 3번째 우승으로 영구 소장하게 된다.

이후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월드컵에 참여했다. 그러나 브라질은 전 대회에 비하면 다소 부진했다. 자이르지뉴는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자이르 과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고 그리고 히벨리누의 골을 어시스트했고 브라질은 자이르에게 3-0으로 이기고 2차 조별리그에 진출했다.

그리고 2차 조별리그에서 브라질은 동독,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이겼고 자이르지뉴는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역전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브라질은 요한 크루이프가 이끄는 네덜란드를 상대로 2대0으로 패해 결승진출이 무산되고 3·4위전 폴란드를 상대로 패배해 4위로 대회를 마감한다. 1974년 월드컵 이후 국가대표에서 잠정은퇴를 했고, 8년후 1982년 3월 3일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경기에서 은퇴식을 치루었다.

월드컵 출전기록
1966년 월드컵 3경기 0골 1어시스트
1970년 월드컵 6경기 7골 1어시스트
1974년 월드컵 7경기 2골 1어시스트

종합 16경기 9골 3어시스트


3. 플레이 스타일[편집]


마리우 자갈루가 "중원 어떤 포지션에서든 통할 신체 능력을 가졌는데, 득점력까지 좋다"라고 직접 격찬했을 정도로 기라성같은 스타가 즐비한 브라질 축구 역사에서도 손에 꼽히는 실력을 갖췄던 선수.

키는 크지 않았지만 디에고 마라도나와 비슷하게 다부진 상체를 가진 체형에다가 브라질 국가대표 멤버 22명중 50미터 스프린트 기록이 가장 좋을 정도로 축복받은 피지컬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체형과 반대쪽 윙의 가린샤처럼 폭발적인 가속력, 뛰어난 드리블 실력으로 "허리케인"이라는 별명처럼 상대팀의 왼쪽 측면을 파괴했고, 공격수에게 연결하는 크로스와 패스는 기가 막힐 정도로 뛰어났다.

월드컵 전경기 득점자라는 타이틀에서 볼수 있다시피 현대 축구에서나 많이 보일법한 득점형 윙어이기도 했는데, 특히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7골을 넣는 등 중앙으로의 침투도 많이 가져가면서 득점을 쌓아올리던 대단한 윙어였다. 잉글랜드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던 감독인 알프 램지는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펠레를 막을 때보다 자이르지뉴를 막을 때가 더 어려웠다고 한다. 잉글랜드는 이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명승부를 펼치다 자이르지뉴의 결승골로 1:0으로 석패한다. 펠레의 골이나 다름없는 헤딩을 고든 뱅크스가 막아낸 골키퍼 스페셜에 단골로 들어가는 이 장면이 바로 이 경기에서 나왔다.

이처럼 이미 축구 선수로서 굉장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자이르지뉴의 진정한 장기는 다재다능함이었는데, 주 포지션은 우측 윙어였지만 딱히 커리어 내내 어느 한 포지션에 국한되지 않고 어느 위치에서든 잘했다. 1959년 보타포구에서는 스트라이커로 프로 데뷔를 했고, 전성기를 우측 윙어 포지션에서 보내면서도 국가대표팀에서는 프로 초반시절의 경험을 살려 왼쪽 윙어로 나와 다득점을 기록한적도 있으며 커리어 말년은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보냈다. 한마디로 축구 역사상 손에 꼽힐 만한 전설인데, 공격 어디에 갖다놔도 만능 땜빵이 가능했다.


4. 지도자 경력[편집]


선수시절과는 다르게 감독으로서의 자이르지뉴는 별로 활약한게 없다. 1997-98 시즌 그리스의 칼라마타 FC에서 감독을 맡았지만 성적부진으로 경질됐고, 2003년 가봉의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2006년 독일 월드컵 예선에서 앙골라를 상대로 패배한 이후 월드컵 진출에 실패하자 경질되었다.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5.2. 개인 수상[편집]


  • FIFA 월드컵 실버슈: 1970
  • 월드 사커 올해의 팀: 1971, 1972
  •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 발롱도르 드림팀 후보: 2020 (RW 5위)
  • IFFHS 올타임 남아메리카 드림팀[5]: 2021


6. 여담[편집]


  • 상크리스토방 코치 재직 시절 호나우두를 발견해 그의 후견인이자 에이전트로 나섰고, 호나우두를 세계 최고의 선수로 기르는데 큰 활약을 펼쳤다.

  • 그의 아들 자이르 벤투라는 산투스의 감독을 맡은 적이 있다.

  • 풋챔에 첫발을 내딛는 뉴비들에겐 가장 큰 적이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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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공격수 5인을 선정했는데, 1970년대 공격수들 중 3위에 이름을 올렸다.

  • 2022년 월드컵 전 경기 득점이라는 기록을 인정 받아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

  • 게임 FC 온라인에서도 나오는데 워낙 옛날 선수라 그런지 쓰는 사람은 별로 없다.낭만 브라질 스쿼드 정도에서나 넣는 정도.
[1] 현역 시절 기준[2] 볼리비아 최초의 파일럿 호르헤 윌스테르만의 이름을 따옴.[3] 대표팀 역대 득점 공동 8위.[4] 월드컵 전 경기 득점 선수는 헝가리 대표팀(준우승)의 샤로시 죄르지(4경기 5골), 우루과이 대표팀(우승)의 알시데스 기지아(4경기 4골), 프랑스 대표팀(3위)의 쥐스트 퐁텐(6경기 13골), 브라질 대표팀(우승)의 자이르지뉴(6경기 7골) 총 4명이다. 아르헨티나 대표팀리오넬 메시도 여기 포함될 뻔 했으나 조별리그 3차전에서 PK를 실패하면서 불발되었다.[5] B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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