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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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하 표현


1. 비하 표현[편집]


'배 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인간이고 싶다'[1]라는 말에서 '배 부른 돼지' 부분을 뜯어 내 변형한 표현으로, 이 '배 부른 돼지'의 의미는 어떤 시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지만 대개는 다음의 셋 정도로 간추려진다. '자본주의 광신자'라고도 한다.

  • 문제점을 알고도 당장 잃을 것들이 두려워 개선할 의지가 없는 돼지같이 나태한 존재
  • 문제점을 이용해 자기 잇속만 챙기는 돼지같이 탐욕스러운 존재
  • 문제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돼지같이 어리석은 존재

즉 '문제 개선의 의지라곤 없고 거기서 생길 이득만 추구하는 자'[2], 이른바 참을 수 없이 무거운 자유의 짐을 벗어버리려는 심리를 가진 어리석은 자다. 자본주의의 돼지라는 표현은 이렇게 돼지처럼 순응하며 스스로 노예를 자처하는 사람들[3]을 비꼬기 위해 탄생했다.

서구권 국가에선 보통 '돼지새끼(Pig)'[4]라는 욕을 사용할 때 다양한 수식어를 붙여 사용하는 편인데, 당연하지만 앞에 자본주의자(Capitalist)를 붙이면 이 문서대로의 뜻이 된다.[5]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공산권에서 연합국을 까내리기 위해 애용한 표현들 중 하나였지만 지금도 잘 쓰이냐면 잘 안 쓰인다. 소련이 공중분해되어 사라진 데다 다른 공산권 국가들도 나락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별 문서로 분리해 놓은 표현 치고는 공석에서나 사석에서나 2천년대 이후로 그냥 존재감이 없다. 정치인이 반대 진영을 떠볼 때 쓰는 어그로용 단어로 사용되냐면 딱히 그런 일도 없고 인터넷에서도 사용되는 일이 드물다. 애당초 인터넷 욕설의 유구한(?) 역사를 생각하면 돼지라는 표현보다 더 자극적이고 효율적으로 상대 속을 뒤집는 어휘가 많기 때문에 쓸 이유가 없다. 그나마 북한에서 미국을 비판할 때 종종 '부르죠아 문화'라는 것을 언급하며 자기네 인민을 타락시킨다고 불평하는데, 이것이 그나마 '자본주의의 돼지'에 부합하는 편이다. #

밸브 코퍼레이션이 2015년 스팀 모드 유료화를 시도하면서 이용자들과 격돌했을 때, 창립자 겸 사장에 해당하는 게이브 뉴웰의 모습이 자본주의 국가 출신 = 자본주의, 살찐 체격 = 돼지라는 연상작용을 일으켜서 잠시 게이브 뉴웰을 욕하는 용도로 사용된 적은 있다.

2.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의 등장 인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자본주의의 돼지(디트로이트 메탈 시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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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문은 존 스튜어트 밀공리주의(Utilitarianism, 1863)에 나오는 '배 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인간이 되는 것이 더 낫고 만족한 바보보다 만족하지 못하는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더 낫다'이다. 문제는 이게 일부 곡해되어 전달된 탓에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전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2] 에리히 프롬은 이러한 심리를 '자유로부터의 도피'라 명명했다. 예를 들어 사람은 나치처럼 압도적으로 강한 권력 앞에서는 맞서려 하기보다는 복종하려는 심리가 생기는데,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나치에게 맞서는 것은 고난과 죽음만 불러올게 뻔하므로 고통스럽게 자유를 추구하느니 차라리 자유를 포기해 버린다는 것.[3] 이원복은 이런 사람을 비판할 때 '황금철창 속의 파란새'라는 표현을 사용했다.[4] 한국과 달리 서구권에서 돼지는 단순히 살찐 사람을 놀리는 표현에서 그치지 않고,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 혹은 탐욕스러운 사람을 비꼬는 멸칭으로도 사용된다.[5] 사실 이쪽도 자본주의의 돼지라는 담담한 표현과는 거리가 멀고 '이 비열한 자본주의자 돼지새끼들' 같은 느낌으로 내뱉는 것이라 다소 어색한 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