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메멘토 모리)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커다란 손의 감촉.
그것뿐이다.

아버지는 군인이었고
내가 어렸을 때 전사했다고 할머니가 그러셨다.

그래.
이 나라는 내가 태어났을 때 이미
전쟁이 한참이었다.

마녀가 개척했다고 여겨지는
국경 근처의 작은 마을.
나는 태어나자마자 친할머니에 맡겨져
그곳에서 자랐다.

병약했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쓰러져, 쭉 수도의 병원에 있었다.

내가 만나러 갈 수 있는 것은 1년에 몇 번뿐.

그런데도 내가 외로움에 짓눌리지 않았던 것은
그 아이들 덕분이었다.

나에게는 세 명의 소꿉친구가 있었다.

똑 닮은 분홍색 머리의 두 사람.
밝고 사내아이처럼 활발한 린과
얌전하고 다정한 프리실라.
그리고 마을 밖에서 온 조금 연상인 스쿨드.

박식한 스쿨드에게
프리실라와 같이 공부를 배우거나,
린과는 매일같이 술래잡기를 하거나.

넷이서 함께 숲속을 탐험하다가
스쿨드의 언니에게 야단을 맞기도 했다.

겨우 몇 년에 불과했지만...
우리는 마치 자매처럼
언제나 함께였다.

스쿨드가 마을을 떠나고 수 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어머니와 할머니가 잇따라 돌아가셨고,
나에게는 이제 두 소꿉친구뿐.

아직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언젠가 전쟁의 불길이 이곳까지 뻗쳐왔을 때...
두 사람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되살아난 기억은 커다란 손의 감촉이었다.
...아버지.

그래서 나는 사관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나는 이것 외에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훈련을 마친 나는
귀족 직속 정예 부대에 배속되었다.

아무래도 나는
이 일이 적성에 맞는 것 같았다.

그날 나는 지휘관에게,
부대를 이끄는 귀족 남자에게 불려가 사령부에
있었다.

'자네의 출신지에 내려오는 이야기는 없나?'

나는 이상한 질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가벼운 기분으로 대답해 버렸다.

'내 고향은 마녀가 개척했다고 여겨지고 있다'
라고.

우리 마을이 부대에 공격당한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맞다. 그때의 이야기...

깨달았을 때는 모든 것이 늦은 뒤였다.
마을로 달려간 내가 본 것은
피어오르는 연기와 불기둥, 쌓인 시체 더미,
천박하게 웃는 병사들.

내 모습을 보고 그들은 무기를 겨누어 온다.
이제는 내가 이곳의 마지막 생존자일 것이다.

아아...
결국 나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는 건가...!

분노와 회한.
피가 끓어오른다.

베고, 베고, 베고, 또 베고.
모든 병사를 도륙낼 때까지 나는 계속 칼을
휘둘렀다.

마지막으로 남은 지휘관.
그 귀족의 숨통을 끊기 전에 나는 물었다.

'왜 내 고향을 습격한 것이냐'라고.

놈은...
신앙하는 '마녀님'을 위해서라고.
나도 없앨 생각이었다고도 대답했다.

그 귀족은 마녀를 광신하는 결사단의 일원이었다.
그들은 그 옛날, 신앙하는 마녀를 데리고 도망친
자들을 아직도 원망하며,
그들의 자손이 사는 마을을 찾고 있었다.

...그 마을이 바로 내 고향이었다.

시체 더미에 린과 프리실라의 모습은 없었다.

숨통을 끊기 전에 심문했던 지휘관.
그 귀족 남자도 둘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그 두 사람을...
아니, 모두를 찾기로 했다.

마을을 지키지 못한 것을 사과하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그 이상으로...
모두 다시 한번 만나고 싶었으니까.

스쿨드, 린, 프리실라.
나에게는 이제 그 친구들밖에 없어.
나를 용서해주지 않아도 돼.
그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