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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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미지_임회춘.jpg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원로 코미디언, 배우이다.
2. 생애[편집]
1933년 8월 25일, 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에서 태어났다. 17살 때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가족들과 함께 피난 도중 부모형제와 헤어지면서 고아나 다름없는 유년기를 보냈고, 구두닦이나 냉차 장수 등으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전쟁이 끝난 후 서울로 올라온 임희춘은 뒤늦게 용산중학교를 졸업한 후 일자리를 찾던 중 우연히 길거리에서 피어버린 역사라는 연극 포스터에서 배우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하여 1952년 극단 동협 단원으로 연예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그 뒤에 배우이자 희극인 김희갑의 주선으로 구봉서를 만나 코미디계에 입문하였다.
이후 웃으면 복이 와요, 부부만세, 고전유머극장, 명랑극장, 유머 1번지, 탈선 춘향전 등 각종 TV 코미디 프로그램 에서 감초 역할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7인의 말괄량이, 아니 벌써, 신혼 소동, 축! 총각졸업 등 영화에도 출연하며[1] 상당한 연기력을 보이기도 했다. 임희춘은 주로 하인이나 노비 등의 역할로 우스꽝스러운 바보 또는 인정많고 어리숙한 아저씨 연기를 많이 했다. 또한 맛동산과 꿀떡바 등의 CF 모델로도 출연했고 배삼룡, 구봉서, 서영춘, 곽규석 등과 1970~1980년대를 대표하는 코미디언으로 이름을 남겼다. 대표적인 유행어는 어이구야~였으며 1977년 TBC 남자 코미디 연기상과 최우수 연기상, 1989년 KBS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다.
1992년 연예계에서 은퇴를 했고 노인복지 사업가로 변신, 1995년 사단법인 대한노인복지후원회를 창립하여 회장으로서 노인들을 위한 무료 공연 등 봉사활동을 전개하였다. 2010년 대중문화 예술상 보관문화훈장을 수상하고 2011년에는 뮤지컬에도 출연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유지했지만, 이후 노령으로 인하여 외부 활동을 줄이고 조용히 여생을 보내던 중 2020년 2월 2일 노환으로 인하여 향년 8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3. 여담[편집]
- 나무위키에도 따로 항목이 있는 한국 코미디계의 레전설 서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담벼락에 서생원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가 바로 이 사람이다.
- 부산 대아호텔 화재 사건이 일어났을 때 변을 당할뻔한 적이 있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날인 13일 저녁 임희춘은 대아호텔 나이트클럽 행사에 출연한 뒤 호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서 부랴부랴 서울행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그 다음날인 15일 오후 KBS 코미디 쇼 생방송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대본을 서울의 집에 놓고 와서 사전 연습을 위해 빨리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희춘이 떠난 뒤 얼마 후에 화재가 발생한 것이었다. 서울로 돌아온 후 뉴스로 호텔 화재 소식을 접한 임희춘은 당연히 가슴을 쓸어내렸고 동료 코미디언들도 그가 무사히 돌아온 것을 환영했다고 한다.
- 가족관계로는 부인 김제화 여사와 1남 2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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