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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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일제 코흐(Ilse Koch)
출생
1906년 9월 22일
독일 드레스덴
사망
1967년 9월 1일 (향년 60세)
독일 아이샤흐 형무소

1. 개요
2. 일생
3. 온갖 소문과 부정
4. 미디어


1. 개요[편집]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부헨발트 수용소 및 마이다네크 수용소의 수용소장이었던 카를 오토 코흐의 아내이자 슈츠슈타펠 여성보조요원 및 여간수. 그 악명 탓에 대외적으로는 '부헨발트의 붉은 마녀'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이르마 그레제와 같은 행보를 보였다.


2. 일생[편집]


드레스덴 출신으로 아버지는 농부였는데, 초등학교 시절에는 얌전하고 착한 아이였다고 한다. 집이 가난해서 15살 때 학교를 나와 공장에 취업하고 나중에는 도서관 사서로 근무했다. 그런 와중에 나치즘에 관심을 가져 몇몇 SA 대원들과 친하게 지내다가 나치에 가입했다.

1936년 베를린 근처의 소도시 오라니엔부르크의 작센하우젠 수용소에서 비서 겸 경비원으로 일하다가 수용소장 카를 오토 코흐(1897~1945)를 만나 결혼했다. 1937년 부헨발트에서 수용소장 아내라는 권력을 이용하여 마음껏 수감자들을 고문했다. 남녀 가리지 않고 성적 학대를 가했는데 그야말로 별별 짓을 다했다고 한다. 승마용 채찍으로 자신이 지칠 때까지 때리는 짓에서부터 섹스 파티라든지 별별 추악한 일을 마음껏 즐겼다. 이 짓으로 성불구가 되던 수감자들도 많았다고 한다. 또한 사육하던 맹견에게 여죄수를 던져주는 등 포로학대를 했다는 증언도 무지하게 많이 나왔다.

이 시절에 발데마르 호펜(Waldemar Hoven, 1903~1948)[1]이라는 친위대 위생학 연구장교에게 취미로 써먹을 해부기술을 전수받았다. 그렇게 전수받은 기술로 죽은 수감자 시체 살조각을 수집하여 전등 갓으로 만드는가 하면 사람 장기를 해부하였다. 또한 사망한 사람들의 피부를 벗겨내 램프셋이나 책 덮개, 장갑 등을 만드는 미친 짓거리를 일삼았다. 만약 문신을 한 수용소 사람들이 있다면 독극물 주사로 그 사람을 살해한 후 문신이 새겨진 피부를 벗겨내어 수집하는 것이 일제의 취미였다. 거기다가 가족이 사용하는 저녁 식탁을 두개골로 장식한 인물이니 말 다했다. 잔학함과 음란함으로 유명하여 희생자들은 '부헨발트의 마녀, 암캐(Die Hexe von Buchenwald, Buchenwalder Schlampe)'라고 불렀다고 한다.

1938년에 첫아이 아르트빈 코흐를 출산했고, 이듬해에 두번째 아이 기슐라(1939~1939)를 출산했으나 곧 사망한다. 1940년에 출산한 세 번째 아이인 구드룬(1940~1941)도 불과 생후 1년만인 1941년에 죽었다. 결국 세 자녀 중 성년기까지 생존한 건 아르트빈 뿐이다. 그러자 이런 슬픔을 수감자를 괴롭히면서 풀었는지 별 짓을 다했다고 한다. 면도날을 박은 채찍으로 임신부 수감자를 때려 유산시키고[2], 여자 수감자들을 알몸으로 만들어 일부러 남자 수감자들이 있는 방에 가둬서 강간당하는 모습을 즐겨보기도 했다.

1940년, 수감자들로부터 횡령한(정확히는 유품) 25만 마르크를 들여서 실내 스포츠장을 건설했다. 1941년에는 소수 여성 감독관(Aufseherin)들을 휘하로 두는 최고 여성감독관(Oberaufseherin)으로 임명받아 수용소의 여간수들을 통괄하는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1943년 남편과 함께 같이 횡령과 기타 죄목으로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었다. 1944년 말~1945년까지 바이마르에 투옥되었다. 1945년 초에는 남편 카를 오토가 뮌헨 나치 친위대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같은해 4월에 처형되었으나, 일제 코흐는 석방되었다. 그 후 루트비스부르크의 친정에서 살던 중 동년 6월 30일 미군에게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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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재판 당시 사진.

1947년 전쟁범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4년 만에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풀려났고, 1951년 석방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피해자들의 탄원으로 독일 법정에게서 다시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일제는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고, 국제인권위원회의 고발위원에게도 대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복역하다가 아들에게 유서를 남기고 60세의 나이로 1967년 9월 1일 아이샤흐 여자 형무소에서 침대 시트로 목을 메어 자살했다. 여담으로 면회를 온 자식 아르트빈에게 "죽음만이 구원이다"라는 편지를 남겼다고 한다.


3. 온갖 소문과 부정[편집]


일제 코흐는 한때 나치의 잔학성을 알리는 아이콘이 되었으며 사람 피부로 만든 전등갓, 독특한 문신이 그려진 피부를 비롯한 각종 신체부위(장기 포함), 인골로 만든 체스말, 식탁 장식용으로 압축한 인간머리 등등, 일제가 모은 기괴한 수집품의 소문은 계속 살이 붙어서 재유포되었다. 그리고 그런 이유 때문에 홀로코스트 부인론자들과 한 논쟁에서 사실 여부가 심각한 논쟁이 되었다. 사족으로 대부분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은 스스로를 부정론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수정주의 내지는 재조명이라고 부르는데 개소리 중 개소리다.

유명한 홀로코스트 부인론자인 아서 버츠(Arthur Butz , 1933~ )는 저서 'The Hoax of the Twentieth Century(1976), pp. 42-43)'에서 이런 글을 남겼다.

"문신이 되어있는 피부는 부헨발트에서 행했던 의학적 실험 때문에 남은 것이다. 부헨발트에서 수감자가 죽으면 수용소의 의사들은 그의 신체를 검사하고 무언가 흥미로운 것이 있으면 그걸 보관했는데, 남은 것들은 바로 그런 의학적인 표본으로 남겨진 것이다. 1948 미국 법정에서 루시어스 클레이 장군이 그녀의 사건을 심리했을 때, 프라우 코흐는 피부로 만든 전등갓과 기타의 물품들은 부헨말트의 사령실에서 1945년 발견된 것이며 당시 일제는 1943년 체포되었기 때문에 그녀의 남편과 함께 살지 않고 있었다. 사람 피부로 장정되었다고 알려져있는 가족사 책은 그곳에서 발견되지도 않았으므로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4. 미디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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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에드먼즈 감독이 만든 '일사 ~나치 친위대의 색녀~(Ilsa, 1974)'가 첫 스타트를 끊게 된다. 1989년에 우성비디오라는 곳에서 출시가 되었지만 삭제판이다.

여성 수감자를 알몸으로 기름에 튀겨 죽인다든지 하는 꽤 잔인한 장면과 더불어 제법 야하긴 하다. 꽤 흥행이 되어서 연이어 시리즈가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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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에 같은 감독이 캐나다에서 속편을 제작, 감독했다. 무대가 아랍의 어느 반미주의 군주국으로 옮겨져 하렘 관리자가 된 일자가 미국인 미녀들을 납치해다가 성노예로 길들인다는 내용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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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에는 스페인 출신으로 여럿 호러, 액션, 스릴러물을 많이 만들던 헤수스 프랑코[3] 감독이 만든 'Ilsa, the Wicked Warden' 가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스페인, 미국, 서독 합작이었다. 한국에서는 2000년도에 난데없는 나치 뺑끼통-일사 4라는 제목으로 비디오가 나온 바 있다.[4]

그 밖에도 'Ilsa, the Tigress of Siberia' 라는 영화도 1977년에 만들어진 바 있는데 이건 제목처럼 시베리아 수용소가 배경이다. 역사적인 사실이랑 거리가 멀게 일제 코흐가 소련 침공 당시 만들어진 수용소에서 호랑이 데리고 고문과 고어, 별별 짓거리를 저지른다는 줄거리로 캐나다에서 제작했다. 놀랍게도 이 영화 제작자는 로저 코먼아이반 라이트만. 그렇다, 바로 아이반 라이트만은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 시리즈와 트윈스(Twins) 감독이다![5] 1989년에 '시베리아 14 수용소'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개봉했다.

솔직히 이 영화들은 작품성은 기대할 거 없는 B급 나치스플로이테이션 무비에 가까운 물건이라 벗기기랑 고어씬에 집중하는 면이 크다. 내용도 결국 일사의 만행에서 몰락으로 가는 뻔한 내용이 주류이고 끔찍한 악행을 저지르는 일사이나 군 장성에게 본인의 몸을 성상납하는 굴욕적인 장면도 있는 등[6] 우리가 생각하는 악녀들의 흔한 사필귀정 스토리. 그와중에 남자 포로 한명에겐 아예 매료되기까지 하는 등 가관의 연속이다.

이 영화 시리즈의 의의가 한 가지 또 있다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몇몇 연출을 오마주했다는 것이다. 영화 데쓰 프루프를 보면 그 특유의 쌈마이했던 연출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물론 내용은 전혀 다르고, 어디까지나 연출만 오마주한 것이다.

미국의 TV 드라마인 CSI : 뉴욕의 시즌 5 22화 Yahrzeit에서는 홀로코스트 관련 물품이 경매에 나온 이야기가 있다. 그 화 후반에 유대인 학살 당시 범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살인 사건의 피해자 유품이던 홀로코스트 관련 물품 가운데 DNA 검사 결과 인간의 피부로 만들어진 램프셋이 나오며, CSI 팀의 주임, 맥 테일러는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소장의 아내가 수용자를 벌겨벗겨 세운 뒤 좋아하는 문신이 새겨진 자의 피부를 벗겨내어 램프셋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것은 바로 일제 코흐가 저지른 짓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게임 다크에덴에서 한 때 일제 코흐를 뱀파이어 마스터들 중 한 명으로 계획하였으나[7] 중간에 계획이 뒤집어져서 결국 나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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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인간도 수감자를 해부하고 실험재료로 보던 요제프 멩겔레 같은 놈이라 나치 전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됐다.[2] 그 수감자는 자살했다고 한다.[3] 1930~2013. 한국에서 '페이스 레스'라든지 여러 영화가 개봉했으며 제스 프랑코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4] "뺑끼통"은 교도소 감방 내 화장실을 의미하는 속어이다. 도대체 왜 저런 말이 제목에 붙었는지는 미스테리.[5] '할리우드에서 제법 이름 있는 감독인데?'라고 놀라겠지만 이 양반은 70년대만 해도 카니발 걸스 같은 영화를 감독했으며 저예산 호러물에서 활동하던 경력이 있다.[6] 흉하게 생긴 비대한 장성이 하의를 벗고 바닥에 드러눕는데 일사가 꺼림칙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서서히 앉으며 끼우는(...) 장면이 있다 이때의 효과음이 주온에서의 효과음과 비슷하다... 이때 부하 한 명이 은근슬쩍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떠보자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자신이 마음에 둔 남자 포로를 찾으러 간다.[7] 브랑코 NE에 위치한 NPC 카를 코흐를 통해 일제 코흐와 관련된 컨텐츠를 준비했는데 연약한 피부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온갖 실험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