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역사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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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군의 전쟁범죄와 그로 인한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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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C급 전범
일반 전쟁범죄, 인도에 반한 죄

피의자 약 5,700여 명[2\]

범죄 사건
학살 사건
난징 대학살(100인 참수 경쟁) | 마닐라 대학살 | 밀리환초 학살 | 바탄 학살 | 보르네오 학살 | 중국 북부 학살 | 치치지마 식인 사건 | 파푸아뉴기니 학살 | 팔라완 학살 | 베허호 사건 | 아라시함 포로 학살
생체 실험
731 부대 | 규슈대학 생체해부
전시 강간
일본군 위안부
강제 노역
정신대 | 죽음의 철도 | 하시마
정치적 추종 세력 및 사상
순국7사묘 · 신사본청 · 야스쿠니 신사 · 팔굉일우 · 일본의 우경화 · 일본의 역사왜곡 · 일본의 피해자 행세 · 일본회의 · 국가신토 · 새역모
가나다 순 배열
[1] 불기소 피의자, 재판 전 사망자 포함.
[2] 개별 사건의 중복 피고인까지 합계되었으며, 이 밖에 추축국 피점령지 내 부역자, 기소유예자가 포함된 수치이다.





1. 개요
2. 원인
2.1. 부실한 근·현대사 교육 분량
2.2. 국민적 무관심
2.3. 정치외교적 의도
3. 일본의 역사 왜곡 목록
4. 동영상 자료
4.1.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한 영상
4.2. 유튜브에서의 왜곡
5. 서브컬처에의 영향
6. 일본어 위키백과의 역사왜곡
7. 같이보기


1. 개요[편집]


일본의 역사왜곡에 관한 문서이다. 일본서기, 임나일본부설이 대표적이다.


2. 원인[편집]



2.1. 부실한 근·현대사 교육 분량[편집]


일본 정규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서는 메이지 유신(1800년대 하반기)까지만 다루고 그 이후의 근·현대사는 전부 소단원 수준으로 다룬다. 많은 일본인들에게 '역사'라고 하면 메이지 유신 이전의 센고쿠 시대, 에도 시대의 전근대 이미지만 떠올린다. 메이지 유신 이후로는 '역사'라기보다는 '사건', '현대 사회'의 일부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한국으로 치면 대한제국 성립 이후에도 역사적인 것들이 많은데 조선시대에서 볼 법한 장면들만 떠올린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교육과정에서 전근대사와 근현대사가 45:55이다. 중학교 <역사②>(200페이지)에서 전근대사와 근현대사 비중이 75:25이고, 고등학교 <한국사>(300페이지)에서 25:75이다. 이를 비중을 고려하여 계산하면 대략 45:55이다. 입시 영향력에 지대한 작용을 하는 수능에서는 고등학교 교과서만 시험 범위의 기준으로 삼다 보니 25:75 기준으로 출제된다. 한편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는 이와 반대로 전근대사와 근현대사가 55:45 비율로 출제된다.

이에 비해 일본의 역사 교과서는 근현대사 비중이 상당히 미미하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자국이 저지른 각종 전쟁범죄들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굉장히 짤막하게 언급하고 넘어간다. 그러면서 자국이 일으킨 전쟁으로 입은 자국의 피해(도쿄 대공습, 원폭투하 등) 내용은 매우 상세하고 감정적으로 서술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1980년 일본은 교과서 검정제도를 강화하면서 일본 중심의 역사를 강조하고 주변국가의 역사를 왜곡하는 교과서를 제작하였다. 일본 역사 교과서는 한국의 고대사부터 현대사에 이르는 여러 곳에서 한국사를 왜곡하였다. 왜곡된 내용은 한국과 일본의 외교문제로까지 확대되었다. 일본의 한국사 왜곡을 규탄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며 올바른 역사를 알리기 위한 독립기념관 건립 추진이 시작되었고 범국민모금운동으로 확대되었다.

독립기념관 공식 소개문


이러한 정서에 더해 후술될 국민적 무관심까지 겹쳐지면서 일본 교육계의 역사 왜곡이 더욱 악화되었다. 여기에는 정치적 이해관계까지 수반된다.


2.2. 국민적 무관심[편집]


상술된 일본 교육계의 만행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일본 국민은 대체적으로 역사에 관심이 없으며 그렇게 민감한 사안인지조차도 모른다. 사이버 우익 세력 외에는 일반 국민들이 크게 관심을 가지는 사안이 아닌지라 어쩌면 교육과 문화 차이에 가깝다. 이들이 인식하는 역사라는 개념은 멀리 가 봤자 19세기 말까지의 이미지를 연상하는 것이 보통이며, 한국 국민이 가장 민감해하는 일제강점기도 '현대 사건' 정도로 인식한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일본 국민은 자국의 역사 왜곡에 대한 인식 수준이 매우 낮으며, 일본인들에게 왜곡된 역사관을 말한다고 발끈해도 오히려 의아해하는 경우가 꽤 많다. 이는 일본인들의 지위와 나이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인데, 자국의 우경화를 반대하고 반전주의를 표방하는 지식인 및 인사들조차 혐한과 극우인사들의 교묘한 주장에 선동되어 한국인들에게 혐한으로 오해받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유키 노부테루가 있다. 이들의 역사인식은 어릴 때부터 국가적 차원으로 배운 '사실'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역사관을 비판하면 반발할지언정 비판을 순순히 인정하지 않는다.


2.3. 정치외교적 의도[편집]


2010년대 이후 역사 왜곡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일본인들이 한국과 중국에 대해서 그냥 이웃 나라나 또는 좋은 나라로 인식하고 음식과 문화 등에도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장소(대표적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 무지하거나 위안부나 소녀상 등 과거사 문제에서는 일본 정부나 극우 단체들의 선동을 쉽게 믿는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일본의 여러 업계 및 분야에서 유명인사들이 극우들의 주장을 그대로 믿거나 관련 행위를 벌여 한국과 중국에서 논란을 빚는 사태가 다수 벌어진다. 역사 왜곡의 영향으로 역사 인식 자체가 부족해진 것이다. 특히 중국은 2020년대 들어 이러한 일본의 유명인들을 강판시키거나 검열하는 등 강도 높은 보복 조치까지 취하기 시작해 문화적, 외교적 충돌이 예고된다.[1] 현대의 식민사관까지 지속적이다.

당장은 일본 내부, 특히 고위관료층의 자정 작용이 없는 한 고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외국의 위안부 문제로 인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고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지 않은 아베 신조와 후임 총리들의 굳센 멘탈도 멘탈이지만 후술하는 이유로 일본인들의 과거사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시민 사회에서도 왜곡된 역사를 고치려는 시도가 적다. 거기다 지금 일본지배층이 바로 일본전범들의 후손으로 그들은 중조부와 조부가 전범행위로 마련한 부와 권력을 세습하였다. 당연히 조상의 전범행위를 인정한다는 것은 현 일본지배층의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힌다. 나치전범들이 지배층에 완전히 배제된 독일과 큰 차이점을 보이는 이유이기도하다.

하지만 한국, 중국, 미국 등 당시 일제에 의해 피해를 입은 국가가 동서양에 걸쳐서 여럿 존재하며, 이들 국가들이 가진 각종 증거자료들이 존재하고 교육이 지속되는 한 역사왜곡은 불가능하다.

다만 후술하는 역사 왜곡 목록의 경우 현대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 한때 일본의 공식 입장이었으나 지금은 폐기된 주장, 애초에 일본의 공식 입장과 거리가 먼 몇몇 우익들의 혐한성 주장이 서로 뒤섞여 있다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3. 일본의 역사 왜곡 목록[편집]


  • 고구려 만주족 설 및 고구려어 퉁구스어족 설
: 고구려를 구성하는 주류 민족인 예맥족은 만주족과 연관성은 있으나 역사, 문화, 언어적으로 다른 집단이다.
: 중근세 쯤에 한반도에 살던 민족은 멸종하고 북쪽에서 몰려온 퉁구스인들이 현재 한국인이라는 음모론, 위의 설과 종합해 보면 결국 고구려-퉁구스인이 한국인이라는 순환논리가 된다.
: 남조 정부의 주도로 벌어진 고려 말 왜구를 일본 정부와는 무관한 세력이 일으킨 것으로, 극소수의 가왜를 다수인 것으로 왜곡.
: 요시츠네(=칭기즈칸)의 후손이 청나라를 건설했기에 일본인이 청나라를 세웠다는 주장으로 위의 왜곡과 연결된다.
: 일제강점기 교과서 국어독본에 일본의 어느 족장의 아내가 알을 낳았고, 이를 버린 것이 경주로 갔다고 왜곡해 집필.
: 이건 해도해도 너무한 어거지라 아무리 골수 넷 우익이라고 해도 어지간하면 믿지 않을 정도이다.
: 일부 일본인들이 미국에서 원자폭탄 투하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다고 역사를 왜곡하는데, 애초에 일본 정부가 미국에 원폭 투하에 대해 사과하라고 한 적조차 단 한 번도 없었다. 애초에 일본이 전쟁을 일으켜 구실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현대 미국은 일본의 최우선 동맹국이기 때문에 언급하기도 굉장히 부담스러운 사안이다.
: 존재성은 인정하되 강제성이 드러나지 않는 중의적인 표현인 동원 또는 징집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물론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고노담화로부터 30년째 사과와 반성을 하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한국과 일본의 주류 역사학계는 종래의 임나일본부설이 더 이상 성립할 수 없는 역사왜곡이라는 데에 대체로 동의한다. 현재 일본에서 규모가 가장 큰 교과서 출판사인 도쿄서적의 교과서엔 임나일본부설이 빠져있으며, 4세기 야마토 정권의 고분문화, 중국과 교류, 고구려와의 전쟁, 도래인을 통한 기술문화 수입 등을 주로 다룬다.
: 물론 일본인이 조몬인과 전혀 무관한 민족은 아니다. 일본인이 야요이인과 조몬인의 혼혈인 것은 사실이나, 역사나 문화, 유전적 연구(하플로 그룹이나 상염색체, 모+부계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해 본 결과)로 볼 때 조몬인보다는 한반도 대다수 + 그외 동아시아계 야요이인들이 주류에 가깝다.
  • 야요이인 한반도 무관계설
: 민족 개념이 없던 고대 시절에 남중국에서 기원해온 유전자들이 한반도를 거쳐 나왔는데, 한국인과의 연계성을 부정하려는 이유로 한반도를 빼버리고 오키나와를 통해 왔다는 주장이다.[2] 야요이인의 한반도-> 일본 열도 이동은 한국인과 일본인의 민족 개념이 없던 시대의 일이라서 우익들이 하는 것처럼 집착적으로 부정할 이유는 없다. 참고로 학계 차원에서는 야요이인의 이동 경로와 반도 일본어설의 관계 또한 연구 중이다.
  • 다케우치 문서
: 1936년에 일본에서 직접 위서로 판정된 고문서. 기독교와 초고대문명설을 바탕으로 만든 왜곡의 향연이다. 해당 문서 자체보다는 그 문서에서 비롯된 허구의 신비한 금속인 히히이로카네와 아포이타카라가 더 유명하다.
  • 후지무라 신이치의 구석기 유물 조작
  • 히로히토 꼭두각시
  • 베트남 전쟁/한국군/논란
  • 오키나와 전투에서의 집단자결 조작
  • 한국 식문화[3] 및 한류 관련 일본기원설 유포

4. 동영상 자료[편집]



4.1.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한 영상[편집]



일본은 왜 역사를 왜곡하나?[4]

제대로 알려주는 일본의 역사왜곡(메가스터디 사회_장유리 (2013. 8. 14.))

4.2. 유튜브에서의 왜곡[편집]


유튜브에서 WJF Project라는 채널을 운영하며,유튜브 채널 역사를 조금씩 왜곡해서 한국이 일본 것을 표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이건 뭐임? 일본어,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헝가리어 등 1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하여 올리고 있다. 버전별로 있다.
[ 대표적인 날조영상 ]



일본어
영어
한국어

이대 대한 한 블로거의 반박글도 있다. 해당 영상들에 대한 반박 영상들 모음 역시 있다. 진짜 원조 배끼기 및 날조 대국이 한국이 아니라 일본임을 확연히 가르쳐주는 영상들이다. 유튜브에도 영상이 있었으나 넷 우익들의 방해 공작으로 영상이 현재는 내려갔다.

다만 무려 8년된 영상임에도 조회수도 형편 없고, 일본의 수많은 '우파 코인' 영상의 하나 정도로 여겨지는 하찮은 수준이며, 그나마 외국 영상 리플들도 대다수가 일본인의 조악한 영어 리플이다.

한국에서도 환뽕계열 국뽕튜브가 성행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나, 적어도 환뽕 및 국뽕은 자국민들에게도 조롱을 받는다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어떤 블로거랑 아이디가 같은 채널이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한다.

영상 마인크래프트 시이바현 맵 제작자랑 아이디가 동일한 채널!


5. 서브컬처에의 영향[편집]


일본의 왜곡된 우익 사관이 일본 문화업계에 영향을 주는 사례가 적잖게 존재한다. 심지어 역사 왜곡에 대한 비판에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다.

간혹 만화에 등장하는 욱일기나 왜곡된 역사들의 어록을 활용한다면 그 작가는 타국인이나 심지어 동족인 일본인에게도 욕을 먹을 수 있기에 창작물 업계가 많은 만큼 이러한 점에서 조심하고 간과해야 할 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례적일 수 있지만 이러한 측면에서 정부의 무능함을 꼬집는 스토리를 담은 픽션들이 일본에 여럿 존재한다. 실제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어록, 글귀를 보면 역사 왜곡과 관련된 글들이 상당하다. 일본 역사 왜곡에 일침을 놓는 장면이 많은데, 그 때문에 심기가 많이 불편해진 일본 우익들에게 비난을 많이 받는다. #


6. 일본어 위키백과의 역사왜곡[편집]




7. 같이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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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러한 여파를 크게 맞은 인물로는 카야노 아이가 있다. 자세한 건 카야노 아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 사건 문서를 참고.[2] 오히려 일본 열도의 한반도계 도래인들이 다시 오키나와로 이주한 경우가 훨씬 많았으며, 이들이 오키나와의 조몬인과 혼혈되고 이후 나중에 오키나와로 이주해온 일본 본토인들과 다시 섞이면서 오늘날 류큐인의 기원이 되었다.[3] 개고기, 똥술(요료법) 제외.[4] YTN 사이언스 (2014. 8.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