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의 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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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종류
2.1. 소집의 종류
2.2. 소집영장의 종류
3. 기타 설명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일본군이 일본 제국의 병역 대상자를 대상으로 한 징집 및 소집제도와 소집영장의 설명으로, 일본어 위키백과 소집영장에 자세히 나온 것을 번역한 것이다. 주요 설명은 1927년부터 일본군이 해체된 1945년까지 시행된 일본군의 소집에 대한 설명이다.


2. 종류[편집]



2.1. 소집의 종류[편집]


1927년에 제정된 병역법, 병역법 시행령, 육군소집규칙, 해군소집규칙에 의한 소집, 그 이후에 제정 및 개정된 법과 영에 따라 생기거나 변경된 소집의 종류는 아래와 같았다.

  • 육군
    • 충원소집: 동원에 있어서 제 부대의 요원을 충족하기 위해 군인을 소집한다.
    • 임시소집: 전시 또는 사변시 필요에 따라 임시로 군인을 소집한다.
    • 국민병소집: 전시 또는 사변시 국민병을 소집한다. 1941년 11월 육군소집규칙 개정(육군성령 제54호)으로 폐지되었다.
    • 훈련소집: 근무 연습을 위해 군인을 소집한다.
    • 교육소집: 교육을 위해 제1보충병을 소집한다.
    • 보결소집, 귀휴병소집: 재영병사에게 보결할 필요가 있을 때 임시로 귀휴병을 소집한다. 1933년 6월 육군소집규칙 개정(육군성령 제20호)으로 명칭을 귀휴병소집으로 변경되었다.
    • 간열점호: 예비역·후비역의 하사관과 병사 및 제1보충병을 모아 조사하고 훈시를 준다.

  • 해군
    • 충원소집: 전시 또는 사변 시 충원을 위해 재향군인을 소집한다.
    • 연습소집: 연습을 위해 재향군인을 소집한다.
    • 보결소집: 임시 병원의 보결 기타로, 귀휴 중 또는 복역 1년째의 예비역 하사관·병을 소집한다.
    • 간열점호: 예비역·후비역의 하사관과 병사를 모아 조사하고 훈시를 준다.

이밖에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에 생긴 소집종류는 아래와 같았다.

  • 징용선박선장소집: 1944년 9월 해군징용선박선장소집규칙(해군성령 제52호), 해군소집규칙 개정으로 생긴 소집이다. 민간의 500톤 이상의 선박을 해군이 징용할 때 그 선장 및 운전기사가 예비역 또는 해군 예비원의 준사관 이상일 경우에는 동시에 소집하는 것이다. 1945년 8월 3일 해군소집규칙 개정(해군성령 제28호)에 따라 징용선박선장 소집은 폐지되었다.
  • 방위소집: 육군의 방위소집과 해군의 방위소집으로 나뉜다.
    • 육군: 1942년 10월 육군소집규칙 개정(육군성령 제52호)과 육군방위소집규칙(육군성령 제53호)이 시행되어 시행된 소집이다. 육군의 방위소집은 '방공소집'과 '경비소집'으로 나뉘며, 공습 등을 할 때 국토방위를 위해 예비역·보충병역·국민병역을 단기간 소집하는 것이었다. 일본 제국 육군의 방위소집은 대기상태와 필요시 소집으로 나뉘었다. 필요할때 방공 또는 경비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1945년 5월 시행된 육군방위소집규칙 개정(육군 성령 제46호)으로 방위소집구분을 기존의 방공소집과 경계소집에서 '방위소집(갑)'과 '방위소집(을)'로 바뀌었다.[1]
    • 해군: 1944년 4월 해군방위소집규칙(해군성령 제20호)이 시행되어 시행된 소집이다. 경비소집과 특별소집으로 나뉜다. 경비소집은 해군 재향군인, 특별소집은 민간선장이거나 이에 준하는 자인 해군 재향군인이 대상이었다.

2.2. 소집영장의 종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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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병 대상자에게 보낸 소집영장. 임시소집영장과 충원소집영장이다.

소집의 종류마다 4가지 색상의 종이가 소집영장으로 사용되었으며, 각 색명이 들어간 종이로 불리기도 했다.

  • 빨간색 영장(빨간종이, 赤紙, 아카가미): 육군성의 충원소집, 임시소집, 귀휴병소집, 국민병소집, 보결소집을 알리는 영장이다. 이 영장의 색깔 때문에 불리는 단어가 이 영장을 의미하는 속어로 사용된다.
  • 흰색 영장(흰종이, 白紙, 시로가미): 교육소집, 연습소집, 간열점호를 알리는 영장이다.
  • 파란색 영장(파란종이, 靑紙, 아오가미): 방위소집을 알리는 영장이다.
  • 붉은색 영장(붉은종이, 紅紙, 베니가미): 해군 충원소집을 알리는 영장이다.


3. 기타 설명[편집]


  • 일본제국 철도성에서는 일본군 입대를 명하는 소집영장 제시로 철도 운임을 할인해주는 '입영자 여객운임 할인'이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소집영장의 왼쪽에 '응소원여객운임할인증(応召員旅客運賃割引証)' 또는 '후불증(後払証)'으로 절취하는 방식으로 되어있었다. 본토에서는 1등차와 3등차가 50% 할인되었으며, 2등차는 40% 할인되었다. 조선, 대만, 사할린 남부, 만주국에서는 객차 등급 상관없이 50% 할인되었다.

  • 원래는 일본인만을 상대로만 적용됐지만 1944년부터 식민지에서도 징병제가 실시되어 식민지인도 소집영장을 보내 징집을 했는데, 1924~25년에 태어난 조선인과 대만인 남성들이 이것으로 일본군에 징집되었다. 이에따라 조선인 징병검사가 1944년 4월부터 8월까지 시행되었고 1944년 10월에 가서부터 실제로 일본군에 배치되었다. 다만 이미 시기 자체가 너무 늦어 버린 시점이라 실제 태평양 전선에 투입된 사례는 미미하고 대부분 한반도 방어 부대로 배치되었다.[2] 참고로 조선인의 일본인 입대 자체가 가능해진 것은 1938년이다. 자세한 것은 징병제/일본 참고

  • 소집영장을 갖고 부대에 도착하면 징병검사와 같은 입영신체검사를 받은 뒤 배속돼 전선으로 출발했다. 만일 입영검사에 불합격할 경우 당일 귀가해야 했으며, 이 경우 군에서 제대처리되지만 예비역 등의 형식으로 다시 소집될 가능성은 있었다.

  • 관련 표현 중에 '1전 5리(一銭五厘, 잇센고린)'라는 표현이 있다. 당시 일본의 엽서 우편요금이 1전 5리였는데, 일본군 소집영장을 보내는 비용도 1전 5리였다. 이등병 목숨값은 영장 보내는 1전 5리밖에 안된다는 것을 가르키는 비유어 내지 속어이다. 실제로는 촌역장 직원[3]이 경찰관을 대동하고 직접 가지고 오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에 우송되는 것은 아니었다.

  • 1980년대 초반까지 대한민국 예비군 소집과 관련된 소집의 명칭이 일본군의 소집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1960년대에 제정된 군소집규칙과 1980년대 초반까지 존재하던 대한민국의 병역법과 관련규칙에도 일본군 소집규칙에서 유래된것으로 추정되는 단어가 있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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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의 방위소집은 병역법이 개정된 1962년부터 방위소집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였다. 대한민국의 방위소집은 방위병이 생긴 1969년까지 일본군의 방위소집과 비슷한 제도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1969년부터 1994년까지 보충역을 대상으로 방위병으로 소집해 복무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2] 당장 일본 제국 패망이 불과 1년조차 남지 않은 시점이고 이미 미군은 일본 본토 바로밑인 오키나와까지 올라온 상태였으며 애초에 전선까지 이송할 해군력도 부족한 상황이었다.[3] 한국의 읍면동사무소 공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