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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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장관 (1948~1955)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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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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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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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40대 보건복지부 장관
이태복
李泰馥 | Lee Tae-bok


파일:PS21120400086.jpg

출생
1950년 12월 11일[1]
충청남도 보령군 천북면 신죽리
사망
2021년 12월 3일 (향년 70세)
서울특별시
묘소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본관
한산 이씨[2]
재임기간
제3대 복지노동수석 비서관
2001년 3월 26일 ~ 2002년 1월 28일
제40대 보건복지부 장관
2002년 1월 29일 ~ 2002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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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심복자
학력
보령천북국민학교 (졸업)
예산중학교 (졸업)
성동고등학교 (졸업)
국민대학교 (법학 / 학사)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노동복지학 / 석사[1])
종교
천주교 (세례명 : 다니엘)
약력
도서출판 광민사 설립
주간노동자신문 창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상임집행위원
사회복지단체 인간의 대지 설립
대통령비서실 복지노동수석비서관
제40대 보건복지부 장관
연세대, 한서대 사회복지학과 초빙 교수
인간의 대지 이사장
5대거품빼기 범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
점핑코리아연구소 이사장
국민석유회사설립준비위원회 상임대표
국민석유주식회사 대표이사 및 이사회 의장
매헌윤봉길의사 월진회 회장
5월항쟁 윤상원기념사업회 이사장

1. 개요
2. 생애
2.1. 노동 및 민주화 운동
2.2. 정치 경력
2.3. 말년 및 사망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종교는 가톨릭이며, 세례명은 다니엘이다.


2. 생애[편집]


1950년 충청남도 보령군 천북면에서 태어났다. 천북국민학교(現 천북초등학교), 예산중학교, 서울성동고등학교, 국민대학교 법학과,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석사, 순천향대학교 사회복지학 명예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대학생 때인 1971년 위수령으로 강제징집을 당하기도 했다.


2.1. 노동 및 민주화 운동[편집]


1976년 도서출판 광민사를 설립하여 노동서적을 발행하였으며, 용산 청과물시장에서 지게꾼을 하며 노동운동을 연구하며 노동운동에 참여하였다. 이후 비공개 노동운동 조직인 전국민주노동자연맹을 결성하던 도중 1981년 학림 사건으로 기소되어 당시 고문 기술자였던 이근안에게 모진 고문을 당하였으며,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7년 4개월을 복역하다 1988년 가석방 되었고 1988년 12월에 사면복권되었다. 복역 당시였던 1986년,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에 의해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석방 뒤 1989년 주간 노동자신문과 노동일보를 창간하여 노동운동을 이어서 했고, 사회복지단체인 인간의 대지 대표를 맡았다.


2.2. 정치 경력[편집]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자 2001년 3월부터 2002년 1월까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복지노동수석비서관직에 임명되었다. 이 당시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후 2002년 1월부터 같은 해 7월까지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냈다. 장관직 재임 당시 의약 분업 사태를 수습하였으며, 약값 인하 조치를 실행하려고 하였으나, 국내외 제약사의 압력에 밀려 구체화시키지 못했다고 밝혔다. 2003년 정부로부터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장관직 퇴임 이후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구로구 을에 공천받았으나 지도부 내홍 등으로 인해 공천을 반납했다.


2.3. 말년 및 사망[편집]


이후 5대 거품빼기 운동본부 상임 고문, 국민석유주식회사 대표이사 및 이사회 의장, 매헌윤봉길월진회 회장, 5·18 윤상원 기념사업회 이사장[3] 등을 역임하였으며, 2012년 학림 사건에 대해 31년 만에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13년에는 5·18민주유공자로 결정되었다.

2021년 4월 정세균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하자 후임 국무총리 후보자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같은 해 12월 3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였다. 사망 이틀 전까지 수원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윤상원 열사 기념행사에 참석할 정도로 정정했고, 집안 어른인 '삼산 이태중[4]'의 업적을 기리는 사업에도 참여할만큼 열정적으로 일한 터라 갑작스런 사망에 안타까움을 표한 사람들이 많았다.

민주사회장로 치러졌으며, 묘소는 국립 5.18민주묘지 제2묘역에 안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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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력 11월 3일[2] 한산 이씨 22세손 '馥'자 항렬.[3] '윤상원' 열사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전라남도청을 사수하다 계엄군의 총탄에 숨진 인물로 이태복이 '전국민주노동자연맹'을 결성, 활동할 당시 중앙위원을 지내면서 인연이 있었다고 한다.[4] 조선 영조 때 청백리로 이름 높았던 사람으로 영조의 탕평책에 심하게 반대하다가 수십년 동안 귀양살이를 할 정도로 강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