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크발 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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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Iqbal-Masih.jpg
이크발 마시
Iqbal Masih
(1983. - 1995. 4. 16.)

1. 생애
2. 업적
3. 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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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편집]


1983년 파키스탄 무리드케에서 태어난 소년은 4살이 될 무렵 부모님의 빚 600루피[1] 때문에 팔려가 카페트 공장에서 하루 10시간 넘게 노예처럼 일해 일당 1루피를 받으면서 일했다. 당시 그가 일한 카페트 공장은 아동들이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베틀에 사슬로 묶어 놓았다고 한다. 그는 그의 일당으로는 어차피 빚을 못 갚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분노에 차 카페트를 찢었다가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그가 10살이 되었을 때 그는 파키스탄 대법원이 구금 상태에서의 노동을 불법으로 판결내렸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고 공장을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첫번째 시도 때에는 경찰들에게 찾아가 그의 공장주를 신고했지만 오히려 경찰들은 그를 붙잡아 다시 공장주에게 넘겨 주고 돈을 받았다. 두번째로 탈출에 성공한 그는 BLLF(노예노동해방전선)의 전단지를 보고 그곳의 학교에 찾아가 다니게 된다. 4년짜리 교육 과정을 2년만에 수료한 그는 자신과 다른 아동 노동자들을 위해 일어서기로 한다.


2. 업적[편집]


그의 노력으로 1만 명의 어린이들이 노예 노동에서 해방되었으며, 몇몇 카페트 공장의 문을 닫았다. 이후에 어린이카페트노동자협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스톡홀름 회의에 참석하고, 1994년에는 리복국제인권재단의 '행동하는 청년상' 수상자가 되었다.


3. 암살[편집]


그러나, 1995년 4월 16일. 이크발 마시는 괴한의 총을 맞았다.

괴한의 총을 맞은 이크발 마시는 결국 12살의 나이에 사망하고 말았다. 배후에는 도망간 카페트 노동자를 살해하는 카페트 마피아가 있었고, 이들은 자기들의 돈줄을 막는 이크발 마시를 암살했다. 그의 장례식에는 800명이 조문을 왔으며, 그의 사후 파키스탄 경제 엘리트들은 카페트 판매 감소를 막기 위해 노동자들이 높은 임금과 열악하지 않은 근무 환경을 보장받았다고 하는 등 카페트 공장 노동자들의 실상을 은폐하려고 노력했지만, 이미 전 세계는 다 알고 있었고, 이후 2000년에 최초로 세계 어린이상을 수여받았다. 2022년에는 파키스탄 대통령 아리프 알비로부터 '시타라에슈자트(Sitara-e-Shujaat)' 상을 받았는데, 이는 파키스탄 시민이 받을 수 있는 두 번째로 높은 훈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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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미국 돈 12달러가 채 안 되었다.